[ 네들란드 노인복지 형태의 케이팜-시골마을 ]
거주노인 169명 다니다 길 잃어도
직원 170여명이 길 찾아줘
의사·간호사 흰 가운 안 입어
클래식 스타일 등 7개 마을 선택
소득 따라 입소 부담금 달라
▶지난해 9월, 문재인 정부는 ‘앞으로 치매는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선언했다. 전국 256곳에 간호사·사회복지사 등이 근무하는 치매안심센터가 문을 열었고, 치매 환자와 가족이 행복한 ‘치매안심마을’을 지정하는 사업도 진행 중이다. <한겨레>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사회보장제도 연수 과정 중 지난 10월24일(현지시각) 치매안심마을의 모델이 된 네덜란드 ‘호헤베이크(호그벡) 마을’을 찾아, 마을 공동창립자인 이보너 판아메롱언과 함께 마을 구석구석을 둘러봤다.
마르턴 디흐뉨(가명·75)은 암스테르담에서 자주 길을 잃었다. 홀로 집을 나섰다가 실종되곤 했다. 똑똑한 금융컨설턴트였던 그의 뇌 신경 세포는 치매를 앓으면서 점점 손상됐다. 10년 전에 처음 증상이 나타난 이후로 아내인 엘리(가명·62)는 남편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2015년 봄, 마르턴은 주거지를 ‘호헤베이크 마을’로 옮겼다. 호헤베이크 마을은 네덜란드 수도인 암스테르담에서 자동차로 20여분 걸리는 베이스프의 주택가 한켠에 있다. 여기서 마르턴은 길을 잃지 않는다. 네모난 성냥갑 모양을 한 마을 1만2천㎡ 전체를 벽돌 담장이 둘러싸고 있다. 그 담장 안에 마르턴과 같은 중증 치매노인 169명이 모여 산다.
마르턴이 사는 집에는 향기로운 꽃이 꽂혀 있고 클래식 음악이 흐른다. 그는 치매를 앓기 전에 말러와 푸치니를 좋아했다. 음식은 프랑스식 생선 요리가 주로 제공된다. 이 집은 ‘클래식’ 스타일이다. 호헤베이크 마을 안에는 네덜란드식, 기독교식, 문화·예술식, 인도네시아식 등 7가지 주거공동체가 있다. 거주자의 취향에 따라 생활양식을 고른다. 마르턴은 혼자서 마을을 산책할 수 있다. 길을 잃으면 도와줄 직원 170여명이 상주한다. 가족과 함께 바깥나들이도 한다. 엘리는 일주일에 서너번 남편을 찾아온다. “치매 환자에게도 삶의 질이 중요하다. 이곳에선 일상생활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호헤베이크 마을은 내가 남편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2009년 완공된 호헤베이크 마을은 이를테면 치매 노인을 위한 요양시설이다. 하지만 ‘병원’이 아니라 ‘마을’이라고 부른다. 노인들은 ‘환자’가 아니라 ‘거주자’로 불린다.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이 일하지만 하얀 가운을 입지 않는다. 노인 5~7명이 모여 사는 집집마다 평상복을 입은 직원이 상주하며 장을 봐서 요리하고 노인들을 돌본다.
이곳은 원래 요양원이었다. 요양원에 간호사로 근무했던 판아메롱언은 1992년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숨지는 일을 겪고 요양원 경영진에게 ‘생활양식이 비슷한 노인들끼리 모여 사는 주거 형태’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그 뒤 호헤베이크 마을 창립을 사실상 주도한 판아메롱언은 “중증 치매 노인은 가뜩이나 뇌가 혼란스러운데 주변 환경이 생경하게 느껴지면 더 큰 혼란을 겪을 수 있다”며 “치매 노인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누리고 자기 집 침대에서 생을 마치는 것처럼 느끼게 하려고 만든 시설”이라고 설명했다.
비슷한 요양시설이 한국에도 없지는 않다. 2014년 개원한 서울 강남구 세곡동의 서울요양원이 대표적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재정 250억원을 투자해 직접 운영한다. 대기인원만 1080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다. 치매 노인 150명이 생활하는 이곳 역시 호헤베이크 마을처럼 10개의 ‘마을’로 나뉘어 있다. 병실에 입원한 이들이 ‘마을’ 거실에 모여 식사하고 노래도 배운다. 작은 실외 텃밭도 있다.
결정적으로 다른 점도 있다. 하늘이다. 창문을 통해서만 겨우 바깥 풍경이 보이는 한국의 요양시설과 달리, 호헤베이크 마을의 시설 절반 이상은 건물 외부에 있다. 치매 노인들은 파란 하늘 아래서 햇빛과 바람을 느끼며 산책을 느릿느릿 즐긴다. 마을 곳곳에 나무와 꽃들이 가득하다. 누가 봐도 ‘마을’이다. 정문에 들어서면 왼쪽에는 레스토랑과 펍, 슈퍼마켓이 있고 오른쪽에는 커다란 분수대와 극장이 있다. 정문과 직선으로 연결된 널찍한 중앙로에는 미용실, 음악감상실, 요리실 등이 늘어서 있다. 언어는 잊어도 음악에는 반응하는 치매 노인들은 ‘모차르트의 방’이라고 이름 붙인 음악감상실에서 피아노 연주를 듣고, 요리실에서 추억을 떠올리며 팬케이크를 굽는다. 판아메롱언은 “취미활동 클럽도 많다”며 “카페에서 애플타르트를 함께 먹는 일은 매우 중요한 사회활동”이라고 말했다.
치매 노인들은 자유롭게 마을 곳곳을 누볐다. 한국 기자들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말을 걸거나, 기자의 팔짱을 끼고는 내내 함께 걸어다니기도 했다. 판아메롱언은 그들의 이력은 물론 성향까지도 깨알같이 파악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자원봉사로 노인들의 버스 여행을 기획하는 잉리트 더흐로트(63)는 “치매 노인들의 미소를 보면 행복하다”고 말했다. 더흐로트의 남편은 버스 운전 자원봉사를 한다. 이런 자원봉사자가 140여명에 이른다.
호헤베이크 마을을 배우러 해마다 수백명이 찾아온다. 미국, 뉴질랜드, 프랑스 등에 컨설팅도 해줬다. 호헤베이크 마을이 공공시설이 아니라 비영리단체가 운영하는 곳인데도 10년째 지속가능한 이유는 네덜란드 사회보장제도의 탄탄한 뒷받침 덕분이다. 1968년부터 실시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에 따라, 모든 국민은 신체수발·간호 서비스, 시설 거주 서비스 등을 보장받는다.
요양등급 판정을 받아 호헤베이크 마을에 입소한 치매 노인은 적게는 월 500유로(약 65만원), 많게는 2500유로(약 322만원)를 부담한다. 소득이 많을수록 비용도 많이 내야 한다. 다소 비싸긴 하지만, 요양시설이 지급받는 1인당 월 6천유로(약 774만원)는 장기요양보험이 부담한다. 판아메롱언은 “빈곤한 치매 노인이라고 해도 노령연금을 받기 때문에 개인 부담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네덜란드는 노령연금이 전세계에서 가장 든든한 나라다. 전체 인구 1700만명 가운데 만 66살 이상인 300만여명의 모든 노인이 노령연금을 받는다. 네덜란드에 50년 이상 거주했거나 소득 활동을 한 노인이라면 홀몸노인은 월 1180유로(약 152만원), 부부는 각각 814유로(약 105만원)를 받는다. 네덜란드의 노인 빈곤율은 1.4%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치매 노인을 받아주는 요양시설이 많지 않아 ‘치매 난민’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한국은 호헤베이크 마을을 본떠 치매안심마을을 조성하기로 했지만 아직 마을 어귀에 현판 하나 붙이는 게 고작이다. 한국은 과연 ‘치매국가책임제’로 가는 길을 제대로 찾아가고 있는 걸까. 한국의 치매 환자는 70여만명, 80대 이상 노인 10명 중 4명은 치매를 앓고 있다. 전세계 치매 인구는 5천만명에 육박한다.
베이스프(네덜란드)/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health/868512.html#csidx49c6fa5bd86a05ea80b125cd7ed30dd
첫댓글 치매센터 요양원이
건물안에서→마을안으로 바뀌는
노인복지가 최고네요
마을 외곽 테두리는 담장이 쳐 있어 외부로 나가 길 잃어버릴 염려도 없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