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霖雨 (임우, 장맛비)
天作霖雨簇似林 하늘이 내린 장맛비가 촘촘하기 숲 같은데
間陽日日又間陰 간간히 해가 나지만 날마다 또 흐려지고는 한다
濕添谷樹鳥鉗口 축축해진 골짝 나무에서는 새가 부리를 묶였지만
水漲野塘魚得心 물이 불어난 들판 못에서는 물고기가 뜻을 이뤘다
不鋤田疇草生密 호미를 대지 못한 밭이랑에는 풀이 무성하고
乏薪寒廚炊憂深 장작이 달려 차가운 부엌에는 끼니 근심이 깊다
旱餘爲潦彌月積 가뭄 뒤에 장마가 달포나 이어지니
石逕支離綠蘚侵 돌길에는 어지러이 푸른 이끼가 침노한다
■ 次稼隱原韻 (계은시에 화답함)
柴門深鎖雨初淸 시문(柴門)은 깊숙이 잠겼고 비는 막 개었는네
散步庭園心獨平 뜨락을 산보하니 마음만은 평온하다
壎篪淸韻和仲氏 훈지의 맑은 가락으로 중형과 같이 어울리고
日夕農談同友生 해질 무렵 농사이야기를 벗들과 함께 한다
春風擊壤姓名隱 봄바람 불면 격양가를 부르며 은거하고
夏畦勞身壺酒傾 여름 밭두둑서 수고롭던 몸으로 한 병 술을 기운다
力穡由來兼訓子 애써 농사지으며 늘 자식 가르치기를 겸해 왔느니
白頭無事半仙成 머리 세었어도 근심은 없어 반쯤 신선이 되었더라
시문(柴門) : 잡복으로 만든 문. 흔히 ‘가난한 집’의 의미로 쓰인다.
훈지(壎箎) : 훈(壎)은 질나발로서 도제(陶制)의 취주악기이고, 지(篪)는 대로 만드는데, 두악기의 소리가 서로 잘 어울리기 때문에 흔히 형제가 화목함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격양가(擊壤歌):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농민의 노래.
■ 傷感詩 (감상시)
閱世難禁遯世情 세상 보면 은둔하고 싶은 심정 주체하기 어렵더니
黍離誦罷豆燈明 서리의 노래가 끝나자 등잔불이 밝아진다⑫
傷心西海長鯨鬪 심상하는 서해에서는 거대한 노래가 다투고
遺恨東風杜宇聲 한이 풀린 동풍은 두견새 울음소리를 낸다
栗里琴書聊自樂 율리의 거문고와 책으로나마 위안을 얻고
桃源花竹葆餘生 무릉도원의 꽃과 대나무로 남은 생을 보전하라
險道窮達何須問 험한 세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을 물러 무엇하리
笑看浮雲過故城 옛 성터 위로 떠가는 구름을 웃음으로 바라본다
■ 乙丑回甲吟 (회갑에 읊다)
古之乙丑今又迎 예전의 을축년을 지금 다시 맞았나니
虛送光陰六十驚 세월 허송했음을 육십이 되어서야 놀란다
膝下兒孫誰謂慶 슬하의 자손들아 경사라고 말하지 말지니
人間老物不堪情 낡은 존재는 감정을 주체하기 어렵구나
當朝倍切風樹感 오늘아침은 바람에 불린 나무도 느낌 곱절절실하니
出世胡無湘鴈行 세상 태어나 상수의 기러기 같은 행적 없겠는가!
往跡追思皆夢裏 지나온 자취 되돌아보니 모두가 꿈이었던 듯
竹菴獨臥樂餘生 죽암은 홀로 누워 남은 생을 즐기리라
今日復當免胎時 오늘 다시 모태를 벗어난 때를 맞으니
慕親感誦蓼莪詩 부모님 그리움에 료아시를 사무치게 읊는다⑬
雪牕自有琴書樂 눈빛 비추는 창에 늘 거문고와 책을 두고 즐기지만
病枕未遑朋酒巵 병상에 누었으니 술잔을 벗할 겨를이 없다
婚畢娶嫁雖了債 시집 장가 마쳤으니 빚은 다 갚았지만
鴈飛霜月獨無隨 기러기 날고 서리 내린 달밤에 나만 홀로이구나
人間回甲誰云壽 회갑을 맞았음에 누가 장수를 빌어주는가?
六十光陰是不遲 육십년의 광음이 더디지는 않았는 게라
■ 乙酉鄕校秋享建國韻 (향교 가을 제사의 건국 노래)
犬豕狂奔歲月遲 개 돼지 미쳐 날뛰는 더디기도 했으니
鰕亡鯨鬪正斯時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게 바로 이런 때이구
風塵掃盡扶桑域 전쟁의 모진 바람 부상을 휩쓸어버렸고⑭
春色更回古槿枝 봄빛이 다시 유서 깊은 무궁화 가지로 돌아 왔다
萬億濟民是天命 억조창생을 구제함은 하늘의 뜻일지니
三千後地有心期 삼천리 강산 외진 곳에서도 뜻을 품어야 할 때이다
江山無恙依前碧 산천은 무심해도 예전처럼 푸르르니
欲仰蒼穹一問之 창궁을 우러러 물어보고 싶구나⑮
■ 更題建國韻 (다시 건국의 노래를 지음)
循環天運復何遲 순환하는 우주의 운행이 왜 그리 더디었나
三十六年食㤼時 삼십육년은 두려움을 먹고 사는 산 세월이었다
涸轍困漁方得水 바퀴자국에서 곤궁했던 물고기 이제야 물을 만났네
驚弓飛鳥更拪枝 화살에 놀란 비조는 다시 가지를 옮긴다
元彈一發萬乘覆 원자폭탄 한 번 터져 무수한 전차 뒤집히니
謀士千慮獨立期 지혜로운 선비는 천 번이나 독립을 생각했네
芟厥巨魁有餘罪 저들의 괴수는 목을 베어도 죄가 남을 진데
東夷民族可哀之 동이 민족은 그를 가엾이 여기는 구나
(각주)
⑫ 서리(黍離) : 망국의 한을 담은 노래
⑬ 료아시(蓼莪詩): 돌아가신 부모를 그리워하는 「詩經․小雅」의 시.
⑭ 부상(扶桑) : 일본(日本)을 말함.
⑮ 창궁(蒼穹) : 푸른 하늘
(144-098일차 연재에서 계속)
첫댓글 (144-098일차 연재)
(장흥위씨 천년세고선집, 圓山 위정철 저)
98일차에도 '죽암공(계문)의 유고'가 밴드에 게재됩니다.
[본문내용- 죽암공 유고]
(앞에서 이어서, 4일차 마무리 글)
/ 무곡
'죽암공 유고'를 필두로 선집게재는 천년 세월의 끝자락을 향하여 오늘도 쉼 없이 부지런히 달려갑니다.
처음에는 '천년의 끝'이 암흑의 하늘 같이 전혀 보이지 않다가
이제는 실루엣 같이 조금씩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무곡
장마를 '霖雨(림우)'라고 하는 군요./ 무곡
회갑에 본문에 나오는 "회갑에 읊다"가 머리에 쏙 들어옵니다. 구구절절 공감이 갑니다. 꾸벅./ 벽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