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교정 36. 성냥 시대
성냥 천하
얼마 전 지나간 우리들 세상에는 참, 성냥 천하라는 게 있었다. 장작나무를 사서 방에 불을 지필 때에도, 숯불을 피워 간단한 음식을 조리할 때에도, 연탄이 보급되어 불을 피울 때에도 성냥이 꼭 있어야 했다. 정전이 되어 촛불을 켤 때에도 성냥 없이는 암흑세상이었다. 학교 선생님이 난로불을 피우실 때도 성냥은 교실의 필수 비치품이었다. 소사 아저씨가 학교 쓰레기장 한 귀퉁이에서 소각을 할 때에도 학교에서 제공한 성냥을 사용했다. 심지어 일본에서 개발한 석유 곤로(熴爐)라는 주방 취사용품이 부엌에 등장했을 때도 성냥이 필요했다. 가히, 능히 세상을 쥐락펴락한 성냥 천하였다.
석유곤로에 점화를 할 때는 손잡이 레버(lever)를 움직여 석유를 머금은 심지를 올려놓고 집열판 역할을 하는 테두리 갓을 들어올려 성냥불로 불길을 댕겼다.
가스와 석유와 연탄 이전의 예전 우리들 시절에는 주된 연료가 나무와 숯이었다. 그래서 옛날부터 불을 만들자면 나뭇가지를 맞비벼 열이 나고 탄내가 나고 연기가 날 때까지 비비고 호호 불어 불씨를 키워 마른 볏짚에 불을 살려 나무에 불을 붙였다.
또는 쇠를 부싯돌에 부딪쳐 어렵게 불꽃을 일으켜 불씨로 키우고 마른 풀잎에 불살라 불길을 만들어내었다. 이렇게 고생스럽던 불 피우기가 성냥이 등장하므로 생활이 확 달라졌다. 그런데 붉은 인을 나무 끝에 묻혀 만든 성냥은 발화시에 코를 찌르는 자극적인 냄새가 사람의 턱뼈를 괴사시키고 인체를 허약하게 하는 문제를 일으켰다.
인류가 1685년에 우연히 성냥을 개발하기 시작하여 200년이 넘은 1911년에 이르러야 성냥의 결점을 보완한 그럴 듯한 성냥이 나왔다. 조선은1880년에 일본에서 성냥이 들어왔다.
불꽃을 피운다는 것, 불씨를 만든다는 것, 불길을 유지한다는 것 모두가 쉽지 않았다. 불 피우기가 어려웠기에 남은 숯불을 재에 묻어두고 다음날 새벽녁에 일어나 재사용하였다. 그래서 우리가 어렸을 때는 장작이나 숯을 사서들이기도 하고 곤로의 아랫부분에 있는 석유 탱크에 붓기 위해 석유를 질그릇 병이나 대두 유리병에 담아 사오기도 했다. 당시에는 플라스틱(plastic) 통이 없었다. 참고로 얼마가 지난 이후에 플라스틱 제품류와 그릇 등 용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무튼 와갓집 일로 어머니께서 서울 종로 4가 연지동 외할아버지 댁으로 가셨을 때에 형이 수제비를 만들어주겠다 해서 우리는 작은 화덕에 성냥불로 숯불을 피웠다. 불을 피우기 위해 부채질 대신 풍로를 사용하였다. 형은 어머니가 하시는 것을 여러 번 본대로 흉내 내어 감자도 넣고 멸치도 넣고 끓는 국에 밀가루 반죽을 떼어 넣어 우리들에게 수제비를 만들어주었다.
형은 반찬으로 작은 항아리 단지의 뚜껑을 열고 열무 김치를 젓가락으로 떠서 접시에 담아 내놓었다. 이를 계기로 동네 아이들은 형에게 엄마라는 별칭을 부르며 놀려대었다. 이때 성냥이 없었으면 불도 못 피웠고 수제비도 없었다.
또 바람 불고 비가 좀 오면 여차하고 화를 버럭 내고 나가버리는 전기의 나쁜 행태에 모두가 싫어했다. 이런 비감한 정전사태가 반복될 때마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도 아이들은 초를 찾아오고 성냥을 찾아와 불을 밝힌다. 정말 성냥이 왕인 시대였다. 그래서 누가 이사 오면 인사로 성냥을 두 통씩 사들고 인사를 갔다.
또 친지들이 가게를 개업하면 역시 왕 성냥을 사서 불 같이 일어나라고, 잘 되라고 덕담으로 격려를 했다. 또, 할아버지들이 쌈지 주머니를 풀어 펼쳐 담배 가루를 꺼내 긴 담뱃대 곰방대에 다져 넣고 불을 붙이실 때에도 성냥은 세월ㄹ 바꾼 거였다. 선생님들이 권련 담배를 피우실 때에도 성냥은 필수품이었다.
또, 뭐 이런 게 다 있어하고 감탄케 하는 벽에 문지르면 발화되는 벽성냥이 등장하여 재미를 주었다. 마찰할 때 딱 소리가 나며 발화가 되서 딱 성냥이라고도 불렀다. 율브린너는 영화 속에서 계단을 내려오며 한발을 올리고 딱 성냥을 켰다. 한국의 군인들도 워커발에 마찰 지점을 긁거놓아 딱성냥이 잘 켜지도록 했다. 어쨌거나 이렇게 긴요한 성냥이 날개를 달았다. 폭발적 수요를 기록했다. 주머니에 넣고 다닐 작은 성냥의 출시였다.
사업자들은 작은 성냥 상자 전 후면에 손님들에게 알릴 영업 문구를 넣고 전화번호를 적고 약도도 넣어 광고용으로 그림도 그려 넣고 선전용으로 사진도 넣어 손님들에게 나눠주는 시대였다. 집집마다 영업점에서 나눠주는 성냥이 흔하게 넘쳐닜다. 이를 모으는 수집광도 생겼다.
성냥 전성시대의 신호탄이 맞나 싶다. 그런 꿈 같은 거짓말 같은 세월이 다 지나갔다. 가스 라이터가 세상에 출현하므로 한 세상을 풍미하고 절대적이었으며 인간관계에 마져 주름잡던 성냥은 전설 속으로 사라져 갔다. 가스가 취사용, 난방용이 되므로 심지어 가스통도 휴대용 포터블 사이즈(portable size)도 나오므로 성냥의 영광은 역사 너머로 밀려났다. 또 가스는 무엇에 의해 밀려나려나 !!
아마, 태양광 전기나 핵융합 에너지가 기다리려나 모르겠다.⁷
성냥은 비록 최단신이었지만 짧은 수명의 인간, 그 어느 왕과도 비교가 안 되게 수 세기를 호령하고 제패한 불의 황제였다. 성냥은 인간에게 유익과 편의와 인간 문명의 불꽃을 피우기 위해 자신의 몸을 불태운 역사에 기록되는 성스러운 황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