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토지 개발이나 건축 인허가 규제가 유독 까다로운 우리나라에서 전원주택을 한 채 짓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몸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 전원주택 한 채 짓고 보니 머리가 하얗게 셌더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래서 등장한 게 다양한 편법적 수단이다. 전원주택 건축 수요자들이 시간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 까다로운 '정면 승부'가 아닌 손 쉬운 '측면 승부'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정부가 인허가 규제를 까다롭게 적용하고 있지만 '기는 단속'에 '나는 편법'이다.
예전에는 일부 현지 부동산중개업자들이 전원주택 수요자를 도와 복잡한 인허가를 대신 편법적으로 처리해줬다. 그러나 요즘엔 상황이 좀 바뀌었다. 규제가 갈수록 복잡해지면서 보다 전문적인 부동산 지식으로 무장한 '허가방'이 수요자의 의뢰를 받아 부동산 인허가를 대행해주고 있다.
허가방은 전문적인 부동산 법률과 건축 지식을 갖추고 복잡하고 까다로운 각종 인허가 절차를 대신해 주는 일부 토목측량설계사무소를 말한다. 주로 건축·개발 인허과 관련 부서 출신의 전직 공무원이 운영한다.
그래서인지 허가방은 군청 등 관공서 주변에 많은 편이다.
# '마이더스의 손' 허가방
부동산에 밝은 일부 허가방에선 규제를 피한 편법적인 땅 거래를 알선하기도 한다.
서울에 사는 강모(43)씨는 얼마 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는 충남 연기군의 임야 2600여㎡를 전원주택 건축용으로 매입했다. 현행 규정대로라면 서울에 사는 문씨가 연기군의 임야를 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현행 법상 외지인이 토지거래허가구역 안의 땅을 사려면 전가족이 1년 이상 현지에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씨는 편법을 썼다. 즉 현행법상 토지거래허가구역이라도 주소지 이전 없이도 땅을 살 수 있는 991㎡(300평)에 대해서만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나머지 1652㎡(500평)에 대해서는 땅 주인과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임대료를 일시불로 지불하는 대신 나머지 땅(500평)에 대해서는 근저당을 설정하는 조건이었다.
외지인인 문씨가 거래허가를 받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현지 허가방의 도움을 받아 어렵지 않게 규제를 피해갈 수 있었다.
일부 허가방은 해당 관청의 인허가 담당자와 유착관계를 유지하며 편법적인 인허가를 받아주기도 한다. 지난해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 전원주택을 짓기 위해 임야 2314㎡(700평)을 매입한 박모(55)씨의 경우다.
박씨는 땅 매입 뒤 전원주택 건축을 위해 군청에 인허가를 신청했으나 평창군 담당자는 박씨 땅이 경사도 규정(17.5도)을 약간 넘어선 18도라며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궁리 끝에 박씨는 군청 인근의 W측량토목설계 사무소를 찾았다. 이곳에 인허가 대행료로 300만원을 지급한 그는 한 달 뒤 개발행위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전문적인 법률 지식으로 무장한 채 까다로온 건축 인허가를 척척 받아주는 허가방도 있다. 토지개발 전문회사인 T업체의 대표인 조모(47)씨는 경기도 용인인 양지면에서 B전원주택단지를 개발하면 허가방의 도움을 톡톡히 받았다.
자연환경보전권역인 양지면의 B전원주택 단지는 부지 면적이 총 5만㎡(1만5000여 평)으로 개발허가를 받기 힘든 사업이다. 용인시 규정상 부지 면적이 5000㎡(1500평)을 초과할 때마다 도시계획위원회 자문 등의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업체는 현지 허가방의 도움을 받아 얼마 전 10여 차례에 걸쳐 부지를 5000㎡(1500평) 이하로 나눠 별다른 문제없이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현지에서 이른바 ‘쪼개 허가받기’ 로 불리는 이 방식은 기획부동산업체들이 선호하는 편법이다.
조씨에게 이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은 다름아닌 처인구청 인근에서 J토목측량설계사무소라는 허가방을 운영하는 L소장이다.
L소장은 전직 공무원 출신으로 용인시 건축 관련 법령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다.
#편법은 위험부담 있어 신중해야
토지 개발이나 주택 건축 인허가가 심한 상황에서 편법 인허가는 자칫 낭패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수요자 입장에선 불법이 아니라면 꼼수(편법)도 부려볼 만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대정하우징 박철민 사장은 "규제가 까다로울수록 인허가에 보다 전문적인 부동산·건축 관련 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만큼 비용 부담도 늘 수 있다"며 "비용 부담을 줄이고 인허가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불법이 아닌 범위 내에서 샛길도 노려볼 만 하다"고 말했다.
▲ 토지 개발이나 주택 건축 인허가가 심한 상황에서 편법 인허가는 자칫 낭패를 볼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