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힘들었던 한주를 마치고 새벽까지 잠이 오지 않더니 아침에도 일찍 몸이 움직였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내내 이 책을 들고 있었다. 한강의 작품들을 거슬러 읽어보기로 하고 거실을 서성이며 내내 서서 읽은 책.
자신의 껍질을 깨기 위해 우리는 얼만큼의 길을 돌아가야 할까. 감추고 싶은 자기만의 상처들을 보듬고 사는 일은 어느만큼 견딜 수 있는 일일까. 그리고 마침내 그 상처를 기꺼이 응시할 수 있게 될 때 다가올 다른 삶을 마주하는 태도는 어떨까.
군에서 총기 사고로 두 손가락을 잃고 망나니가 되어가며 가족을 위협하던 운형의 외삼촌, 미소 뒤에 섬뜩한 차가움을 감춘 것 같은 그의 어머니, 그런 엄마가 죽은 뒤 유산을 물려받고 새엄마와 결혼한 후 얻은 자식들에게 전처의 자식들에게는 보이지 않던 살가움을 보이고 마침내 유산까지 그들에게 남겨준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죽음을 한없이 슬퍼하며 전처의 무덤 옆에 안장하려는 전처 자식들에게 반대하다 유산을 나누는 조건을 듣고는 태도가 돌변하는 새엄마의 아이들, 어린 시절 새아빠의 겁탈에 대한 최선의 반응으로 무작정 먹어대며 거대한 몸을 갖게 되었지만, 짝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시작한 다이어트를 성공하고 원하는 사랑도 얻는 듯 하지만 다시 버림 받고 거식증으로 고통받다 죽음의 경계도 넘나들며 주인공의 시간을 흔든 L, 겉으로는 더 할 수 없이 완벽해 보이는 삶을 살지만 육손이로 태어났다는 사실로부터 끝없이 도피하려는 어둠을 지닌, 마음속에 바릴 수 없는 상처의 공동을 지닌 E, 그리고 그 모든 모습에 못지 않게 자신의 마음 속에 알 수 없는 E의 것과 같은 공동을 지니고 다른 사람들의 석고 모형을 뜨는 조각가인 운형, 그들 모두 타인들에게 감추고 싶은 상처와 아픔들을 자신의 삶 어딘가 깊히 들어앉힌 채 껍데기 혹은 껍질만으로 공허하게 살아가던 상처 가득한 삶의 주체들이다.
끝없이 등장하는 손, 몸, 얼굴의 석고 모형의 이미지들은 결국 마지막에 스스로의 석고모형을 뜨고 깨뜨린 채 그동안의 껍질뿐이었던 삶에서 깨끗하게 사라져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마침내 자신의 유고전에 E과 함께 나타나더니 사람들이 알아채지도 못할 순간 다시 사라지는 조각가 운형과 소설 거의 전부를 차지하는 운형의 기록을 읽는 액자소설 속 일인칭 화자인 소설가 나, 둘은 하나의 공통점으로 이어진다. 병. 운형은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 사이의 왜곡된 진실을 찾고자 했던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시선을 지닌 "진실은 불쌍한 것"이라 생각하게 된, 하여 다른 이들을 끝없이 관찰하는 데서 자신의 빈 무언가를 찾으려 한 마음의 병이었다면, '나'는 운형의 기록을 읽은 후 2년 병을 앓고 격리된 생활을 한다.
"한 사람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것은 무엇일까. 가난, 실업, 우울증, 탈속. 그 중 무엇이라도 좋겠으나 내 경험으로 비춰볼 때 그 답은 질병이다. 그후 지나간 2년이 나에게 그것을 가르쳐주었다. 예기치 못했던 병울 오랫동안 앓다가 거리에 나오면, 이 사회라는 것이 건강한 사람들의 집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대의 차가운 손"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바로 그 '병'을 앓거나 앓았던 경험으로 인해 스스로 사회로부터 자신의 내면을 격리시킨 채 껍질만으로 살아오던 인물들이었다. 대부분 그렇게 살아간다. 운형의 가족들이, L이 그러듯. 마침내 그 껍질을 올곧이 깨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유일한 방법이 운형과 E처럼 세상으로부터 숨어버리는 것뿐일까. 우리가 껍질을 벗고 이 사회 속에서 살아갈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대의 차가운 손"을 맞잡아줄 또 다른 그대는 없는 것일까. 죽은 것처럼 사라진 운형과 E가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이 그저 욕심이기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