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하기 좋은 계절은 '없다'.
요즘도 독서의 계절하면 가을을 떠올립니다. 실제론 여름에 독서량이 다른 계절보다 높은 데도 우린 대부분 가을을 독서하기 좋은 계절로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가을이 주는 이미지가 대표적으로 ‘천고마비의 계절’과 함께 ‘독서의 계절’이라는 두 테마로 수렴된 듯 고착화된 채 우리 안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사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도식만큼 학습효과도 대단한 작품이 많지 않습니다. 가을만 되면 책 한권쯤은 읽어야겠다는 서슬 퍼런(?) 결심을 하게 되는 것도 그와 같은 학습의 결과가 강박적 스트레스로 표출되었을 거라는 믿음을 부추깁니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독서량이라는 측면에서 가을이 여름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가 설명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름 독서량이 가을 독서량을 월등히 앞선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자발성에 기초하지 않은 '독서에 대한 부담'은 결국 부담으로 그친다는 교훈을 재확인해준 셈입니다.
그렇다면 독서의 세계를 여는 자발적인 독서는 어디서 출발하는 걸까요? 당연한 말이지만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개개인이 좋아하는 책을 고르는 데 있습니다. 그런 책은 경우에 따라 경수필이 될 수 있고 주변에서 재미있게 읽어다는 소설이 될 수도 있습니다. 취향에 따라서는 골치 아픈(!) 사회과학 서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더 나가면 전문서적이 그 자리를 꿰찰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경우든 독서의 시작은 내가 좋아할 만한 책에서 출발합니다. 보편적으로는 소설이 되겠지요. 그래서 오늘 저도 그런 보편성에 기초해 재미있는 소설 몇 권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냥 재미있는 게 아니라 읽는 순간부터 빨려든다는 느낌이 드는 소설입니다. 그런 소설들은 대부분 이런 특질을 갖고 있습니다.
우선 속도감이 대단합니다. 목표에 도달하는 데 제일 빠른 방법은 지름길입니다. 둘러 가면 지루하고 익숙한 길이라면 무미건조합니다. 소설이 속도감을 갖췄다는 것은 지루하지 않고 건조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건이 빠르게 전개되니까 사실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겠지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는 얘기는 바로 글의 속도감에 있습니다.
두 번째는 ‘다음 이야기가 뭘까?’ 하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소설이어야 합니다. 드라마는 시청률을 중시하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처음부터 보지 않았더라도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다음 이야기를 꽁꽁 숨겨두지 않습니다. 다음 사건을 어느 정도, 때론 내기가 가능할 정도로 상상할 수 있어야 현재 시청자 뿐 아니라 잠재적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시청률은 곧바로 광고료 수입과 연결된다는 점을 상기하시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하지만 소설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음 이야기가 훤히 드러나면 재미가 사라집니다. 소설도 드라마처럼 돈 주고 구입한 것은 같지만 드라마는 다른 여러 티브이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시청료로 나눈다면 구입비용이 극히 낮은 반면 소설은 직접 자신이 돈을 주고 그 책을 샀다는 점에서 특별한 구석을 갖추고 있습니다. 거금(!)을 주고 샀는데 이런 ‘다음 이야기가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아 그것만큼 돈 아까운 경우가 없습니다. 소설은 복선을 드러내 독자들이 손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한편에서 복선이 자칫 다음 이야기를 그려내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교묘하게 깔아야 합니다. 아니면 복선을 통해 다음에 전개될 이야기 방향을 추측했는데 전혀 다른 결말로 치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독자에게 “과연!” 이라는 찬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반전의 묘미, 바로 그것입니다. 반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추리소설이 제격일 것입니다.
세 번째로 교훈을 얻었다면 더더욱 좋습니다. 어떤 책이든 교훈이 없지 않습니다. 소설이라고 재미만 있고 나름의 기준에 따라 교훈을 갖추고 있지 않다면 읽은 뒤의 감흥이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교훈이란 무슨 대단한 교훈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여러 가지 교훈 중의 하나를 재확인하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읽은 소설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자각에 이르면 평가가 높아지고 모르긴 몰라도 그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교훈만 강조하면 소설은 본래의 맛인 재미를 잃게 되므로 소설을 고르는 데 어느 유명한 작가의 대단한 평을 갖춘 소설을 고집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그런 소설은 문제의식이 또렷해 자칫 다음 독서로 이어지는 독서빨(!)에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위에 든 요소들을 두루 갖춘 소설 몇 권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먼저 제목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템테이션》, 《깊은 상처》가 그 주인공들입니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과 《깊은 상처》는 독일 태생의 베스트셀러 소설가 넬레 노이하우스의 작품입니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제게 넬레 노이하우스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만든 장본인입니다. 개인적으로 빠른 속도감과 공교히 배치된 복선, 현실 가능성 등에서 그 소설에 후한 점수를 주었습니다.
대학시절 당장 내일이 시험인데도 손에 쥔 소설이 너무 재미있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동이 터오를 때까지 읽고 결말을 확인하고 나서야 시험준비를 했던 때의 추억을 상기시켜주었습니다. 아, 네. 시험은 나쁘지 않게 봤습니다. ^^ 읽어 보시거나 읽은 분이시라면 그 소설이 넬레 노이하우스를 추리소설계의 혜성이자 소설 분야에 뚜렷이 족적을 남길 거장으로 등극케 한 대표작으로서 손색이 없다는 점에 고개를 주억거리시리라 확신합니다.
《깊은 상처》는 그의 최근작으로 역시 삼박자를 갖췄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만,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의 매력에 깊이 빠졌다면 기대치를 조금 낮추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살짝 조언하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깊은 상처》가 전작에 견줘 무슨 결격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니 크게 염두에 둘 말은 아니라는 점, 덧붙입니다.
《템테이션》 역시 《빅 픽처》, 《위험한 관계》등의 소설로 널리 알려진 더글라스 케네디의 근작입니다. 개인의 욕망이 결과한 파괴적 양상과 위트 넘친 사건 전개, 기대 이상의 반전 등이 영화 화면처럼 펼쳐집니다. 특히 이 소설은 개연성 높은 대중연예계의 암투와 속내를 드러내며 현장성과 극적 긴장감을 자아냈다는 점에서 별 네 개 반을 주어도 손색이 없습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각각의 소설 내용을 간추리지는 않겠습니다. 한번 읽어보시고 나름대로의 잣대로 평가하시면 될 듯합니다. 여기서 팁 하나. 소개해 드린 소설들은 적어도 쓴 돈이 아깝지 않다는 것. 읽다가 획 던져두지는 않으리라는 것. 주변에 읽어보라고 권하게 될 거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