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30일 토요일 백두대간 19회차 희양산 (땜빵)

[양산박]

2019년 11월 30일 토요일 백두대간 19회차 희양산 (땜빵)

대전 청솔산악회를 따라서 범지기 님 초대

코스 : 이화령 ~ 조봉 ~ 황학산 ~ 백화산 ~ 평전재 ~ 사다리재 ~ 곰틀봉 ~ 이만봉 ~ 사선봉 ~ 희양산 ~ 지름티재 ~ 은티마을

산행거리 : 약 22 km  산행시간 : 약 9 시간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371711/1810141

거리 22 km

소요 시간 9h 13m 45s

이동 시간 8h 52m 14s

휴식 시간 21m 31s

평균 속도 2.5 km/h

최고점 1,086 m

총 획득고도 875 m

난이도 보통

 백두대간 (白頭大幹) 19 – 희양산

봉암사

양산박

부처님 세상에 와 생로병사 구원하고

문수보살 손길 맞아 온갖 병을 씻으시네

희양산 정기 받아 구도정진 하였으니

온 세상 구제하여 극락정토 만드소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프로로그

작년 이맘때 인도 출장으로 자유인 산악회 22기 팀과 함께 할 수 없었던 구간이다. 이화령에서 은티마을까지 거리가 꽤 되는지라 쉽게 땜빵산행을 할 방법이 묘연했다. 지난 여름 <솔나리>꽃을 보기 위해 비를 맞으며 이만봉을 올랐었다. 이제 백두대간 졸업을 앞두고 졸업 전에 빠진 구간을 완주하고 싶은 마음에 사니조은에게 연락하니 기꺼이 함산하겠다고 한다. 계획을 세웠다. 아침 일찍 수원에 들러 그를 픽업하여 은티마을에 주차하고 택시로 이화령으로 이동하여 산행하는 것이 좋겠다. 그렇게 계획을 세워놓고 있는데 전 직장 동료였던 정종훈(범지기)님이 속해 있는 산악회에서 마침 같은 구간을 뛸 예정이라는 말에 계획을 급히 변경하였다. 사니조은과 고인돌 형님과는 일요일 닭목령 ~ 대관령 구간을 함께 하기로 하고 나 혼자 대전 청솔산악회 산행에 동참하기로 했다. 이틀 연속 백두대간 산행을 하는 것이 은근히 부담도 느껴지지만 이런 기회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니니 내가 좀 힘에 부치더라도 관철시켜야겠다는 생각으로 계획을 확정했다.

오창 휴게소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아침 해가 솟는다.

산행기

아침 7시 30분에 중부고속도로 상행선 방향 오창 휴게소에서 만나기로 하고 집에서 6시에 출발했다. 내비게이션에는 약 1시간 정도 걸린다고 예상한다. 조금 여유있게 가면 좋은 것이다. 새벽 고속도로에는 안개가 자욱하다. 7시 조금 넘어서 휴게소에 도착했다. 7시 30분 조금 넘어 도착한 산악회 버스를 타니 작은 플라스틱 그릇에 찹쌀밥을 넣어 김 한 봉지와 함께 건넨다. 이 산악회는 사장님이 직접 버스를 운전하고 산악회를 운영하는데 이렇게 아침밥으로 찹쌀밥을 제공하고 하산하고 나면 김치찌개에 약간의 하산주를 준다고 한다. 난 집에서 밥을 든든하게 먹고 온지라 찹쌀밥을 배낭에 넣고 들머리인 이화령까지 가는 짧은 시간 잠시 눈을 붙였다.

이화령 고갯길이 시작되자 운전사인 산악회 사장님이 대원들에게 산행시 유의할 점을 간단히 설명한다. 특히 날씨가 차가와서 일부구간에 얼음이 있을 수도 있으며 상고대가 피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은근히 기대된다. 벌써 겨울모드로 바뀐건가?

이화령 풍경

버스가 들머리인 이화령에 정차하자 산악회원들이 우루루 내리는데 몹시 서두르는 모양세다. 나는 평상시 산행때처럼 느긋하게 내리는데 먼저 내린 대원들이 벌써 산을 오르고 있다. 들머리에 있는 이름돌 앞에서 폼을 잡고 사진을 찍는다든지 고개 이름의 유래를 살펴본다든지 하는 절차없이 곧바로 산으로 뛰어오른다. 고갯마루는 금세 텅 비어 버렸다. 우리를 싣고 온 버스는 잠시 서 있는다. 나는 고개에 세워진 이런저런 기념물들을 살펴보고 풍경도 사진에 담는다. 반대편 휴게소가 있는 곳으로 가서 이화령 이름돌 앞에서 사진도 찍는다. 이러다 일행들과 너무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들지만 마침 화장실에 다녀온 범지기 님과 시간을 맞춰서 오르는데 충분했다.

이화령 (이우릿재 548 m)

이 고개는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과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을 잇는다. 고개가 험준하여 짐승이나 도적의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여러 사람들이 어울려 지나가야 하였기에 ‘이우릿재’라고 불렀으나 일제 강점기인 1925년 차가 지나다닐 만큼 넓어진 신작로가 생기면서 고개 이름이 이화령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들머리에는 산불조심 기간으로 입산금지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백두대간을 걸으면서 이런 길을 몰래 들어가는데 익숙해졌다. 가야하는데 가지말라하니 몰래 돌아서 가는것이다. 조금 더 올라가니 철조망으로 막아 놓았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철조망을 밟고 지나간 탓에 철조망은 이미 탄력을 많이 잃어버려서 밟고 넘어가는데 그리 어렵지 않다. 산길 한 가운데 작은 건물이 있는데 철문으로 단단히 막혀 있고 건물은 이미 낡아서 폐가 수준이다. 산줄기를 따라서 올라가면서 여러개의 헬리포트와 참호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건물도 군시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화령은 충북과 경북의 경계로 만일 북한군이 남침을 했을 때 방어하기에 중요한 위치이므로 이런 군 방어시설을 많이 갖춘 모양이다.

저 너머 너머가 백화산이겠지?

오른쪽 계곡 너머로 이만봉 산줄기가 보인다. 백화산에서 내려오는 코스다.

출발은 조금 늦었으니 오르막이라도 부지런히 걷지만 아무리 가도 앞서 간 사람들의 꼬리조차 보이지 않는다. 전체 약 20 Km 거리를 9시간 정도 걷는다 하니 9시에 추랄했으니 오후 6시쯤 끝이 날텐데 이 산악회에서는 4시쯤에 산행을 마친다고 한다. 두 시간을 단축하려면 뛰듯이 걸어야 한다. 힘이 닫는 한 부지런히 걷는다. 오른쪽 나무 숲 너머로 비슷한 고도의 산줄기가 흐르는데 백화산을 거쳐 내려오는 코스다. 이 코스는 말발굽 모양으로 생겼는데 이화령에서 백화산까지 계속 오르막이고 거기서 우측으로 P 턴하여 이만봉을 거쳐 내려가는 형상이다. 그러니 올라갈 때는 오른쪽으로 내림 코스를 보고 백화산에서 내려갈 때는 또 오른쪽으로 오름 코스를 보게 된다. 오르는 길 왼편 멀리 주흘산과 부봉의 암릉이 멋지게 펼쳐진다. 주흘산은 구름을 머리에 이고 있다.

이화령을 출발하여 만나는 첫 번째 봉우리 조봉에서 범지기 님과 함께

노박덩굴 열매

산줄기 위의 작은 늪지대가 얼어 있다.

왼쪽으로 주흘산과 부봉이 따라다닌다.

산행을 시작한 지 50분쯤 걸려 1.2 km 떨어진 조봉(鳥峰 673 m)에 올랐다. 조봉에서 앞서 가던 사람들 중 뒷편에 있는 두 명을 만났다. 그리고 조금 더 가다가 황학산(黃鶴山 912.8 m)에서 또 여러명을 따라잡았다. 뒤에 쳐져서 사진을 찍으면서 조금 느린 걸음으로 걷는 사람들이다. 우선 후미팀이지만 따라잡으니 안심이 된다.

황학산을 조금 지나 오르는 길에 반대방향에서 오는 한 산행팀을 만났다. 새벽 2시쯤 은티마을을 출발해서 이화령으로 가고 있다고 한다. 8시간을 걸어온 것이니 이화령에 닿으면 9시간쯤 꽉 채우게 될 것 같다.

황학산 이름돌이 단아하다.

백화산으로 오르는 길에 암릉이 나타난다.

백화산(白華山 1063.5 m)

백화산으로 오르는 길은 험난하다. 크지 않은 암릉도 지난다. 구름이 백화산을 휩싸고 돌다가 흩어진다. 암릉 위에 서니 조망이 활짝 열린다. 지나온 능선길이 길게 아래로 벋어 있다. 이름 모를 산봉우리가 구름 사이사이 퍼져 있다.

백화산(白華山 1063.5 m)은 이번 코스의 반환점이다. 마치 마라톤 코스에서 뒤돌아오는 지점과 비슷하다. 말발굽 모양으로 된 이 코스에서 백화산을 기점으로 P 자형태로 꺽여서 내려가게 된다. 괴산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로 겨울철 봉우리에 눈 쌓인 모습이 마치 흰 천을 덮어 놓은 모습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범지기 님 - 산을 소중하게 여기며 늘 가까이 하고 싶어하는 진정한 산꾼이다.

혹시 지리산이 보이나요?

앞으로 가야할 방향 - 희양산 봉우리 끝이 조금 보인다.

뇌정산 뒷쪽으로 펼쳐진 산줄기 - 속리산과 덕유산이 보인다는데 ~

함께 산행하던 라파님이 남쪽 흐릿한 안개에 덮인 산군을 가리키며 지리산이 보인다 한다. 반야봉과 천왕봉이 구분될 정도로 선명하게 보인다 하니 그의 안목이 부럽다. 산을 다니다 보면 주변에 있는 산 이름뿐만 아니라 멀리까지 저게 어느산이고 저게 무슨산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들을 가끔 만나는데 나는 그들이 정말 부럽다. 갑자기 지리산에 가고 싶다. 올 해 1월 1일 일출 산행으로 중산리부터 음정마을까지 걸은 이후 한 번도 가보질 못했다.

라파님은 또 덕유산이 보인다 한다. 눈 쌓인 덕유산에 가고 싶다. 이번 겨울에는 덕유산을 꼭 걸어볼 참이다. 세찬 바람에 바위며 나무에 상고대가 하얗게 피어나고 무릎까지 눈이 쌓인 덕유산에 꼭 가 볼 참이다.

평전치(平田峙)

백화산에서 평전치쪽으로 조금 진행하니 조망이 트이는 곳에서 잠시 희양산 암릉이 조금 비친다. 이 구간에서 제일 궁금했던 곳, 제일 가보고 싶은 곳이다. 희양산 아래에 있는 봉암사의 스님들이 길목을 지키고 있어 실강이하다가 뒤돌아선다는 산이 희양산이다. 먼 발치로 바라보아도 정말 멋드러지게 생겼다. 대가 좋아하는 대봉시처럼 원뿔모양으로 위로 올라갈수록 뾰족해지는데 전체가 하나의 바위덩어리다. 바위 중간중간에 소나무가 나있고 나머지는 북한산 인수봉마냥 직벽에 가까워 아무도 오르내리지 못하는 그런 산이다. 오늘은 봉암사 스님들이 지키고 있지 않을까? 아까 올라오면서 내려가는 산객들에게 물어보니 스님을 보지 못했다 하니 내가 운이 좋은 편인가보다.

하늘은 맑고 눈이 부시게 푸르다 - 가을하늘도 아니면서

지나온 길 - 백화산 정상이 보인다.

이화령에서 올라온 길 - 불쑥 튀어나온 봉우리가 황학산쯤 되려나? 그 너머로 주흘산 영봉과 부봉이 보인다.

평전치 조금 못미쳐 찬 바람을 피해 능선길에서 조금 벗어나 점심을 먹었다. 자유인 산악회에서는 모든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식사를 하는데 이 산악회는 각자 준비해온 음식을 아무데서나 먹으면 된다고 한다. 라파 님과 범지기 님과 함께 먹는데 범지기 님이 준비한 음식이 뜻 밖이다. “형님 오신다고 내장탕을 끓여 왔어요” 보온 밥통에 찌게를 가득 담아왔다. 차가운 날씨에 따듯한 국물로 밥을 먹는다는 것은 산행을 하는 사람에게는 지나친 호강이다. 아침에 산악회에서 나눠준 찰밥과 함께 한 그릇 뚝딱 해치웠다. 내가 사온 빵과 커피로 입가심하고 과일 한쪽을 나눠먹으니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평전치에서 분지리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평전치(平田峙)는 평평한 밭이 있는 고개라는 뜻이다. 분지리 안말에서 올라오는 길로 연결되는 고개라지만 실제로 평평한 밭이 있는 고개는 아니다. 어쩌면 저 아래 안말에 그런 밭을 일굴만한 평평한 땅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고갯마루는 상당히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뇌정산(벼락뇌雷천둥소리정霆山 991.4 m)갈림길을 지난다. 백화산에서부터 줄곧 시야가 트인 곳마다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을 보이던 산이다. 산이름에 벼락이니 천둥이니 하는 한자가 들어간 것이 예사롭지 않다.

오후 1시가 다가오는데 아직 갈 길은 멀고 하산시간으로 예고한 오후 4시까지는 3시간 남았다. 마음이 급해진다. 함께 걷던 범지기 님의 걸음이 날개 돋힌 듯 빨라진다. 이제까지 뒤에 따라오거나 조금 앞서 가던 사람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나도 잰 걸음으로 뇌정산 갈림길에서 내리막 산길을 따라가지만 앞서 간 범지기 님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산행에 누가 되면 안되겠기에 부지런히 달려보지만 소용없다. 그렇게 뜀박질하듯 걸어서 겨우 사다리재에서 기다리고 있는 범지기를 만날 수 있었다.

뇌정산 갈림길

벼락 맞은 소나무가 신령스럽다.

“제 걸음이 느려서요 ~. 조금이라도 내리막 길에 거리를 좀 벌어 놓으려고 빨리 걸었어요 ~.” 백두대간을 걷는 사람들은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RPM을 높여서 앞 팀과 거리를 단축시킬 능력이 되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오르막도 쉬지 않고 달린 탓인지 허벅지에 은근한 압박감을 느낀다.

사다리재(고비미薇 밭전田峙 820 m)는 지난 여름 비오는 날 분지리 안말에서 내가 오르려다 포기한 코스다. 이만봉에 솔나리가 많이 핀다는 말을 듣고 유구 엄니집에 들렀다가 서울가는 길을 빙 둘러서 찾아왔었다. 비가 제법 많이 내려 우산을 받치고 안말에서 올라오는데 땅은 질어서 미끌어지고 계곡에는 물이 많아 감히 건널 엄두를 내지 못해 그냥 포기하고 내려갔었다. 마침 위에서 내려오는 산꾼을 만나 그가 담아온 솔나리, 병아리난초, 나나벌이난초 등 각종 야생화를 보고 다시 마음이 동하여 그가 가르쳐준 대로 계곡을 건너지 않아도 되는 도막에서 시작하는 코스로 다시 도전하여 올랐던 기억이 새롭다. 사다리재 고개이름의 유래를 고사리밭이라는 미전치(薇田峙)에서 찾는 사람도 있는 듯한데 내 생각에는 분지리 안말에서 이 능선길로 올라오는 고개가 사다리처럼 가팔라서 그리 부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원주 치악산의 사다리병창이라는 이름 유래와 비슷할 것 같다.

사다리재에서 분지리로 이어지는 산길이 사다리처럼 가파르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사다리재에서 인증사진을 남기고 범지기 님은 또 급히 사라진다. 오르막 길에 나무데크 계단이 이어지고 사방이 확 트인 조망처가 나타난다. 곰틀봉이다. 이번 산행구간은 이렇게 멋진 조망을 감상하면서 느린 걸음으로 가면 좋겠다. 발 아래 분지리 마을에서 백화산으로 이어지는 계곡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치 나뭇잎 잎맥처럼 갈라진 모습이 선명하다. 건너편 이화령 너머로 보이는 암봉은 조령산이리라. 문경쪽으로는 발 아래 봉암사가 있는 상괴리 골짜기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약간의 미세먼지가 있으나 대체로 산행하기에 좋은 날씨다.

곰틀봉은 예전에 곰이 많이 서식하는 장소라서 그렇게 불렀다는 말이 있는데 자세한 유래는 모르겠다. 곰은 단군신화에도 우리 한민족의 조상으로 여겨질 만큼 신성한 동물인데 1915년 일제의 해수퇴치운동으로 우리 한반도에서는 거의 멸종된 상태다. 최근 들어 지리산 반달가슴곰을 방류하여 개체수가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그런 곰을 잡으려고 곰 올가미(곰틀)를 설치하던 곳이 곰틀봉이었을까?

곰틀봉에 곰은 없고 대신 시원한 조망이 펼쳐진다.

지나온길 - 백화산에서 평전치 그리고 뇌정산 갈림길을 따라 능선이 이어진다.

뇌정산과 그 아래 상괴리 - 계곡 마을 끝에 봉암사가 있다.

마치 바다위 파도처럼 산줄기가 넘실댄다.

라파님과 범지기님이 산줄기에 넋을 빼앗겼다.

희양산까지 금방 닿을 수 있을 듯 가깝게 보였는데 가도 가도 보이지 않는다. 앞서 가는 회원들의 자취도 없고 갈림길에 간간이 산악회 이름이 적힌 방향표지만 땅에 놓여 있을뿐이다. 대간 능선길에는 큰 소나무가 많이 보인다. 돌이 파이고 솟은 능선길에 소나무가 없으면 무척 쓸쓸해 보일 듯하다.

오후 2시 이만봉(二萬峰 990 m)에 닿았다. 9시 30분 이화령을 출발한지 4시간 30분만에 약 12 km 를 걸었다. 금강산이 1만 2천봉이라는데 어찌하여 이 괴산에 2만봉이 있는가. 유래를 알아보니 임진왜란때 이 아래 골짜기에 2만 명의 피난민이 들어와 난을 피했다는데서 그 이름이 왔다고 한다. 이만봉은 야생화 탐방하는 사람들에게는 솔나리 꽃의 메카처럼 여겨진다. 잎이 솔잎처럼 가늘고 길게 하늘거리고 그 끝에 두 세 송이 핑크 빛 나리꽃이 다소곳이 피어 있는 솔나리를 보기 위해 7월이 되면 전국에서 꽃사냥꾼들이 모여든다.

소나무가 우거진 백두대간 능선길을 걷는다.

임진왜란 때 이만명이 피난을 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전설이 전해온다.

지난 여름 비바람 맞으며 솔나리를 보려는 일념으로 힘들게 올랐던 능선길이 조금은 눈에 익었다. 용바위와 바당바위라 이름지은 바위들이 있다지만 어느게 어느건지 잘 모르겠다. 작은 오르내림이 거듭되면서 몸이 지쳐간다. 도막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에서 주의해야 한다. 시루봉방향으로 직진하기 쉬우니 조심해야 한다. 왼쪽 구왕봉 방향으로 조금 진행하니 누군가 작은 돌에 매직으로 희양산 사선봉이라 써 놓은 이름돌이 나타난다. 이제 희양산이라는 이름이 보이기 시작하니 오늘 산행의 종점이 가까워 오나보다.

희양산 사선봉

배넘이 평전

사선봉에서는 급한 내리막길이다. 참나무 잎이 수북히 쌓인 길을 조시조심 내려가는데 낙엽 밟는 소리가 요란하다. 작년 이맘때 부리기재에서 농바우 마을쪽으로 내려가던 길과 비슷하다. 지그재그로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평지가 나오는데 위에서 날아 쌓인 낙엽이 무릎까지 올라온다. 잠시 길이 헷갈린다. 희양산은 왼쪽에 있는데 표지기는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키가 엄청나게 큰 잣나무 숲 한가운데 이정표가 서 있다. 배너미 평전이다.

시루봉 0.9 구만봉 2.8 이만봉 2.0 그리고 오늘 날머리인 은티마을까지 2.4 km 남았다고 표시되어 있다. 나무에 노란색 천이 걸려 있는데 그 위에 “윗쪽산은 봉암사 수행경지내입니다. 365일 (부처님 오신날 포함) 출입을 금지합니다.”라고 쓰여 있다. 오호라 이 곳이 바로 봉암사 스님들이 희양산 출입을 막는 곳인가 보다. 다행히 지키는 스님은 없으니 눈 딱 감고 희양산 구경을 갈 수 있겠구나. 이정목 아래 배냥을 내려 놓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겨울철 산행이라 얕보고 물을 1리터 한병만 준비했는데 긴 산행에 지쳤는지 물을 다 마셔버렸다. 범지기 님이 작은 물병을 건네준다. 물맛이 그야말로 꿀맛이다.

배너미 평전에서 희양산으로 출입을 금지한다.

라파님과 범지기님은 힘이 남아 도는지 시루봉을 찍고 오겠다고 떠나고

나는 잣나무 숲에 잠시 앉아 쉬다가 천천히 희망봉 (아니 희양봉)을 향해 떠난다.

배너미 평전은 백두대간 마루금이 구분되지 않을 만큼 평평한 땅이다. 지명에 ‘배넘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것은 그 고개를 넘으면 배를 탈 수 있는 지형에 해당된다는 고인돌 형님의 해석이 떠오른다. 충청북도 연풍사람들이 이 평전을 넘어 문경으로 가서 배를 타고 낙동강으로 흘러갈 수 있어서 붙인 이름인가? 아니면 문경 사람들이 이 평전을 넘어 연풍으로 와서 배를 타고 한강으로 흘러갈 수 있어서 붙인 이름인가? 모든 지명에 구체적인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산 이름에 배(船)자가 들어가는 것은 그에 맞은 사연이 분명 있을 법하다.

라파와 범지기 님이 시루봉에 다녀오겠다고 한다. 편도 0.9 km 면 한 시간을 잡아야 하는데 나는 부실한 다리를 탓하면서 그냥 앉아서 쉬겠다고 했다. 그 둘은 배낭을 벗어둔 채 훌쩍 시루봉으로 향하고 나는 한참 앉아서 휴식을 취하다가 천천히 구왕봉 방향으로 걸어 오른다. 

작은 산봉우리를 넘어 커다란 소나무 우거진 암릉길을 내려가는데 시루봉을 다녀온 범지기 님이 벌써 따라온다. 바위길 가에 작은 돌을 가지런히 쌓은 돌담이 보인다. 희양산성이다. 옛날 견훤의 침략을 막기 위해 신라에서 쌓았다는 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돌성은 꽤 오래된 것 같다. 이런 철옹성이라면 소수 정예가 VIP를 지키기 위해 항전하기에 적절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물론 물이 없으니 장기전에는 불리하겠다.

후삼국을 세웠던 견훤을 막기 위해 신라에서 쌓았다는 희양산성

봉암사 출입을 막기 위해 쌓은 봉암산성은 3중 구조로 되어 있다. 돌과 나무와 철로 만든 울타리다.

희양산 (햇빛희曦 볕양陽 山 999 m)

엄밀히 말하자면 희양산 암봉은 백두대간에서 벗어나 있다. 대간길에서 문경쪽으로 쑥 배를 내밀고 있으니 백두대간에서 벗어나 있다고 봐야 하겠으나 그래도 한 다리 척 걸치고 있으니 이 멋진 산을 어찌 모른 척 하겠는가.

지증대사가 희양산의 지세를 보고 '산이 사방에 병풍처럼 둘러처져 있으니 마치 봉황의 날개가 구름을 치며 올라가는 듯하고 계곡물은 백겹으로 띠처럼 되었으니 용의 허리가 돌에 엎드려 있는 듯하다'고 감탄했다 한다.

희양산 갈림길에 배낭을 벗어 두고 그리운 희망봉을 오른다.

발 아래 구왕봉은 봉암사 터에 살고 있던 9마리 용이 쫒겨나 각각 왕이 되어 이 구왕봉에 자리잡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아름다운 저녁 노을이 조금씩 비쳐든다.

오후 4시 희양산 갈림길에 도착했다. ‘희양산 봉암사는 조계종 특별선원으로 100여명의 스님들이참선하고 있으니 정숙을 요청하오며 가이드라인을 넘지 말아주십시요 – 봉암사 주지 –‘라고 쓴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벌써 하산했어야 하는 시간이지만 범지기와 함께 배낭을 벗어 두고 희양산으로 오른다. 라파님은 우리보다 앞서 희양산에 다녀온다. 멀리 속리산쪽으로 저녁 노을이 물들어간다. 발 아래 구왕봉이 희양산과 미(美)를 견주는 듯 온 몸을 드러낸 채 아름다움을 과시한다. 바위와 소나무의 어울림. 희양산은 하나의 큰 바위산이고 그 위에 듬성듬성 세월에 몸을 비틀며 자라난 소나무들이 꽃무늬처럼 장식한다.

희양산이 은하철도 999 가 경유하는 역인가보다. 범지기 역장님

발 아래 봉암사가 있고 그 너머가 뇌정산이다.

백화산에서 벋어내린 백두대간 산줄기

겨울철 짧은 해는 숨 한 번 쉬고 나면 한 뼘씩 내려간다.

봉암사가 위치한 문경쪽은 그야말로 천길 낭떨어지다. 안전을 위해 사람들이 접근하지 않도록 얇은 로프를 매어 놓았다. “이 곳에서 돌이라도 떨어지면 절까지 구르겠어요” 범지기님과 벼랑끝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왼쪽 능선을 따라 오늘 우리가 걸어온 이만봉과 백화산이 보이고 그 능선 오른쪽으로 벋어내린 뇌정산도 가까이 다가온다.

지름티재

우리 뒤에 쳐져 있던 후미팀은 배너미평전에서 은티마을로 하산했다고 하니 이제 우리 둘만 남았다. 시간에 대한 부담이 무겁게 다가온다. 갈림길에서 희양산을 다녀오는데 40분쯤 소비되었다. 이제 아무런 미련없이 산을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버스에서 산악회 회장님이 설명한 30미터 가파른 바위 낭떨어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튼튼한 동아줄이 연이어 매어져 있으니 그리 힘들지 않게 내려올 수 있었다.

뒤에 남은 우리 둘이 걱정되는지 라파님이 지름티재에서 기다리고 있다. 오후 5시 30분인데도 산에 가려진 계곡에는 해가 져서 어두컴컴하다. 은티마을까지 3 km 남았으니 부지런히 걸으면 30분이면 내려갈 만하겠다. 처음에는 불빛 없이 걸을만 하다 싶었는데 조릿대 숲을 조금 걷다 보니 앞이 잘 안보인다. 배낭에서 랜턴을 꺼냈다. 지난번 마산봉 산행때 사용하지 않은 채 배낭에 넣어 두었는데 아주 요긴하게 쓴다. 평지 같은 느린 내리막길을 달리듯이 걷는다.

지름티재로 내려가는 바위 절벽길은 은근히 스릴을 느끼게 한다.

겨울철에는 얼음이 있어 더욱 주의가 요구된다.

지름티재로 가는 길에도 봉암사쪽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방어막을 쳐놓았다.

해가 서산 너머로 꼴깍 져버린다. 오후 5시 30분

“형님, 우리 회장님이 끓여주는 김치찌개는 못먹게 생겼습니다. 그 맛이 기가 막힌데” 범지기가 아쉬운 듯 한 마디 꺼낸다. 이렇게 산에서 내려와 배가 출출할 때 돼지고기 성성 썰어 넣은 김치찌개 한 그릇에 밥 말아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이렇게 늦었으니 김치찌개 타령은 접어 두고 일찍 내려온 회원들 핀잔이나 받지 않을까 걱정이다. 과수원이 시작되는 곳에 희양산 이름돌이 하나 서 있는데 여기부터는 눈에 익었다.

지름티재에서 하산한다.

은티마을 주막집

날아가버린 김치찌게

은티마을 주차장에 도착하니 버스는 시동을 걸고 출발준비를 하고 왕왕거린다. 배낭을 껴안은 채 자리에 앉으니 수고했다며 모두들 격려한다. 배고프겠다며 옆에 앉은 이우지가 과자를 건네고 앞에서는 귤을 넘겨준다.  지친 몸에 물을 들이킨다. 이제 버스에 앉아서 차가 서 있는 오창휴게소까지 편안하게 자면서 가면 된다.

청솔산악회 멤버들은 정말 대단하다. 내가 하산한 시간이 6시쯤인데 벌써 1시쯤에 내려온 사람이 몇몇 있다고 한다. 약 22 km 거리를 4시간에 주파했다고 하니 시속 5.5 km 로 달렸다는 얘기인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한 편 백두대간을 저렇게 달리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사람마다 느끼는 감성이 다르겠지만 산을 걸으면서 주위 풍경도 보고 동료들과 이바구도 까면서 다녀야지 마라톤을 뛰듯이 산을 오르면 무슨 재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우연챦게 함께 산행하면서 귀중한 경험을 했다. 특별한 기여를 한 것도 아닌데 마음으로 환대해 준 청솔 산악회 회원님들의 따뜻한 배려에 감사드린다. 특히, 느린 걸음을 마다하지 않고 동행해준 라파님과 범지기님께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7시경 오창 휴게소에 도착하여 9시경 집에 도착했다. 마침 김치찌개를 끓여 놓았기에 밥 한 그릇 후딱 해치우고 피곤한 몸을 쉬었다.

[사니조은]

산악회분들 엄청 빠르네요 백두대간이라 멋진 풍경이 많고,,,이젠 한구간 남았네요 파이팅!!!

[양산박]

맞아요. 나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시속 5 키로는 너무 빨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