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22년 된 냉장고가 계속 말썽이 났다. 냉동실은 잘 작동되었지만, 냉장실엔 냉기가 사라지고 없었다.
아내가 서비스센터에 문의를 했더니, 냉장고의 전원을 끄고 이틀을 기다리란다. 그렇게 하면 냉기가 흐르는 관을 막고 있던 얼음이 녹아서 냉장실도 다시 작동이 될거라고 했다.
미심쩍었지만, 시키는대로 했더니 과연 그 말이 맞았다.
신기하게도 냉장고가 잘 돌아갔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이러한 작동불능 상태가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그래서 왠만해선 물건을 바꾸지 않는 아내도 드디어 새 냉장고를 사기로 결심을 했다.
아내가 며칠간 인터넷쇼핑몰을 뒤져서 이것저것 따져보곤, 우리 입장에선 매우 거창한 문짝이 네개나 달린 냉장고를 주문했다.
새 냉장고가 주문한지 이틀만에 도착했다. 크기가 너무 커서 현관으로 들여올 수 없어서, 냉장고 문짝을 떼어낸 다음에야 집안으로 들여올 수 있었다.
설치기사가 헌 냉장고를 수거해갔다. 새 냉장고의 절반 크기도 안되는 냉장고...
왕십리 반지하 단칸방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했을 때, 이 작은 냉장고도 집안에 들이기가 어려웠었다. 계단에서 방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너무 좁아서 설치기사가 낑낑대다가 겨우 냉장고를 들였던 기억이 있다.
그후 이 냉장고는 광명시로 이사다니며 세군데, 화성시로 이사 다니며 세군데 까지, 모두 일곱군데 집에서 우리식구와 생사고락을 같이 했다.
그 흔적들이 냉장고 여기저기에 고스란히 남아있다.아이들이 어릴 때 냉장고에 고무자석으로 식구들 이름을 오려 붙였는데, 그것이 아예 냉장고와 한몸이 되어버렸고,
이런저런 메모를 붙여놓은 것들도 추억처럼 쌓여있다.
옛 냉장고를 보내기 전날 밤
사진 한 장을 찍어 영정사진처럼 남겼다.
잘가라 냉장고! 그간 너무 고생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