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즐거움은 포기할 수 없어! / 양선례
86세의 시어머니는 혼자서 끼니 해결이 어려워지자, 살림을 정리하여 우리 집으로 오셨다. 시아버지 돌아가시고 한동안은 혼자 사셨다. 시누이 세 분이 번갈아가며 어머니를 극진히 챙겼으나 어느 날 병원에서 빈혈 판정을 받았다. 부실한 식사가 원인이었다. 결국 어머니의 유일한 아들과 살림을 합친 거다. 연세는 드셨지만 젊어서부터 꽤 오래 시장을 돌며 장사를 하신 터라 생각은 트인 분이셨다. 큰아들에 비해 해준 게 없는데 다 늙어서 더부살이를 한다며 며느리인 내게 늘 미안해 하셨다. 아들집이지만 손님처럼 행동하셨다. 주말이면 늦잠 자는 며느리 깰 새라 아무리 식사가 늦어도 재촉하지 않았다. 국물 없는 밥상을 차려도, 반찬이 김치밖에 없어도, 달게 식사하셨다.
어머니를 닮아선지 세 명의 시누이와 남편도 뭐든지 잘 먹었다. 둘째시누이는 마흔 살이 넘어서 늦둥이를 낳았는데 임신 당시 90킬로그램이 넘었다. 평소 자신의 몸무게보다 20kg이 는 거다. 아기를 낳았는데도 몸무게는 별로 줄지 않아 지금도 헤비급이다. 매일 아침 가는 사우나에서 형님(둘째시누이)의 별명은 ‘하마’다. 본명을 아는 사람은 드물지만 ‘하마’를 모르면 간첩이란다. 남은 두 분도 둘째시누이만큼은 아니지만 몸집이 크고 살이 쪘다. 명절이면 웬만하게 음식해서는 금방 동이 나고 만다. 안 그래도 큰 내 손이 점점 커지는 이유이다.
남편은 결혼 당시 호리호리해서 보기 좋았다. 적당한 키에 날씬한 체격이었는데 결혼 일 년 만에 무려 10kg이 늘었다. 부지런히 장을 봐와서 상을 차리면 퇴근하여 온 남편이 오늘의 메뉴가 뭐냐고 묻는다. 주꾸미 삼겹살에는 소주가 제격이야. 꽃게탕이라 술 생각나네. 돼지고기 두루치기에 소주가 빠지면 섭하지. 술 마실 이유는 충분했다. 처음에는 밖에 나가서 비싼 술 안 사먹고 집에서 먹으니 좋았다. 친정아버지와 달리 술주정도 없고 호탕하게 늘어가는 웃음과 배짱도 괜찮았다. 장을 볼 때 일부러 술을 챙기기도 했다.
저녁마다 진수성찬을 차렸다. 잘 먹어주니 만드는 재미가 났다. 잘 차려서 한 끼 먹으면 끝났다. 다음 날까지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충분한 양을 해도 남는 게 없었다. 음식에 배를 맞춘 듯 식사가 끝나면 빈 접시만 남았다. 옆 사람이 군침이 돌 정도로 맛나게 잘 먹었다. 먹는 양도 많은 데다 술까지 곁들이니 몸무게는 금세 늘었다. 게다가 속도도 빨랐다. 군대에서 가장 빨리 밥을 먹는 사병이었다는 걸 자랑했다.
결혼 십 년이 지나자, 총각 때보다 무려 20kg 가까이 체중이 늘었다. 거의 저녁마다 회식을 하고 들어왔다. 밖에서 먹는 기름진 음식과 술은 그대로 살이 되었다. 마흔이 될 때까지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운동밖에 하지 않았다. 결국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지금도 여전히 먹는 걸 줄이지는 못했지만 간식이나 야식을 줄여 몸무게는 10kg 는 데서 오락가락한다. 그런데도 몸매는 디(D)자형이다. "아빠, 현대병원(집 가까이 있는 여성 전문 병원) 302호 예약할까요?" 놀리는 아이들의 말에 "아니, 낳으려면 좀 남았어. 아직 아기가 밑으로 안 내려왔어."라고 대답한다. 으이그,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들은 풍월은 많아 가지고 별 걸 다 알아요.
마흔 넘어서는 다행히 꾸준하게 운동한다. 등산, 골프, 탁구를 지나 지금은 수영으로 몸을 다진 지 십 년이 넘었다. 새벽 다섯 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수영장으로 향한다. 한겨울에도 마찬가지다. 근력을 기르고자 요즘에는 헬스도 곁들인다. 그 의지에 혀를 내두른다.
나는 느리게, 꼭꼭 씹어서 먹는 편이다. 점심시간에 급식 배식을 가장 먼저 받는데도 교직원 중에서 가장 늦게 먹고 일어선다. 빨리 먹으면 체한 듯 속이 답답하다. 그러니 남편과 동시에 밥을 먹어도 그 양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 대식가 남편과 살아도 꽤 오래 처녀 시절의 몸무게를 유지했다. 아이 셋 낳고도 금방 원래의 몸무게로 돌아와서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라고 성급하게 판단했다.
사십대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나잇살이 생기기 시작했다. 많이 먹어도, 야식을 즐겨도 아침에 속이 더부룩하거나 얼굴이 붓는 일이 없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는 것처럼 어느 순간 거울을 보니 볼이 터질 것 같았다. 얼굴은 크고 살은 없는 데다 검은 뿔테안경까지 껴서 도서관 사감처럼 딱딱해 보이던 인상이 후덕해졌다. 나와는 거리가 먼 낱말이던 이쁘다, 인상이 좋다는 말도 간간이 들었다.
문제는 그 살이 얼굴뿐 아니라 중부지방에도 찐다는 거다. 허리에 두터운 챔피언 벨트를 두른 듯 조금만 많이 먹으면 갑갑해졌다. 전체적인 균형이 깨져서 맘에 드는 옷을 입어도 맵시가 나지 않았다. 원피스는 어느 순간 펑퍼짐한 편한 옷으로 바뀌었다. 허리띠를 사면 가장 안쪽에 송곳으로 구멍을 더 뚫어야 내 몸에 맞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체질량 지수(BMI)는 과체중을 지나 비만을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다이어트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디톡스 다이어트, 간헐적 단식, 저탄고지 식사 등의 방법으로 살을 빼고자 노력하는 이가 내 주변에도 많다. 그 어려운 일을 어떻게 하는지 볼 때마다 놀랍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과의 싸움이 바로 다이어트 아니던가.
나는 지금 인생 최고 몸무게를 찍고 있다. 입맛 당기는 음식은 여전히 많고, 먹을 때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 그 즐거움을 아직은 포기하고 싶지 않다. 평생을 ‘다이어터’로 사는 남편도 있는데 나 정도야 뭐. 남편이 곁에 있어서 위안이 되는 밤이다. 하하.
첫댓글 다이어트의 다자도 생각하지 않고 음식 앞에서 마냥 행복했던 날이 그립네요. 처음에는 즐거움을 포기하는 게 어려웠는데 지금은 적응이 된 듯합니다.
즐길 수 있으니 행복한 때입니다. 부럽습니다.
저도 그 날이 머지않은 듯합니다.
아직은 몸에 좋은 것보다 맛난 걸 골라 먹는답니다.
잘 먹고 아프지 않게 사는 것이 행복합니다.
하하 훌륭한 남편 덕에 행복을 포기하지 않았군요. 다행입니다. 맛있게 먹었던 기억은 평생 가는 것 같아요. 신혼 시절에 그 댁 집들이 가서 소고기 구워 먹었던 일을 잊을 수 없답니다.
하하 그걸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저는 장완, 정학 동학년선생님들 초대했다는 것만 기억나지 메뉴는 다 잊었답니다.
참 행복한 해였어요.
남편의 술타령은 우리 집과 비슷하군요. 천천히 먹는 좋은 습관이 있다니 부럽습니다. 저는 번개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버릇이라기보다는 빨리 안 씹어져요.
떡이나 떡국등은 진짜 꼴등으로 먹는답니다.
고맙습니다.
살면서 갖는 여러 가지 행복 중에 맛있는 음식 마음 껏 먹는 행복도 크게 차지하는데 살 때문에 그것을 못하니 슬프기는 합니다. 그래도 건강하게 살려고 다이어트 하는 남편이 있어서 조만간 같이 동참하지 않을까 싶네요.
남편은 평생을 그러고 사는 걸요.
저는 맛난 것 오래오래 먹고싶어요.
진짜 날씬한 분은 선배님이시죠.
글쓰기 공부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느리게 드시는 교장선생님이 부럽습니다.
저도 다이어터인데 성공을 못해서 걱정이랍니다.
아직은 기회가 많습니다.
인천일 마치고 얼른 집가까이로 오시지요.
사 드시는 음식은 아무래도 자극적이지요.
토닥토닥
선생님 둥근 얼굴에 안경낀 모습 제 이상형입니다. 선한 웃음까지도
글이 맛있는 음식처럼 찰지고 재미있어요.
오메!
이름 같다고 칭찬 샤워해 주시는군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이번 글도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시어머님, 시누이님, 남편 이야기에서 선생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끌어 내시는 글솜씨가 탁월하시네요.
그런가요?
게으름 부리다가 꼴등으로 올린 걸요.
올해는 재밌게, 그리고 짧게 쓰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애궂은 시누이님과 남편을 팔아서 조금 미안하네요. 글 읽을 가능성 낮으니 천만다행! 하하.
글이 차지고 맛있어서 입안에 침이 고입니다.
화목한 가정의 이야기가 후덕한 선생님 모습과 닮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정말 재밌어요. 삶의 경험들이 밝게 묘사 되어있고 시선이 따듯해서 좋아요. 긍정의 힘, 너른 마음, 댓글로 일일이 관심해 주시는 열심 덕분에 글쓰기방이 활기가 있어요.
선생님은 모범학생, 반장같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