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 카드가 전하는 안부 / 이미옥
일요일 오전 카톡이 울린다. 동아리 단톡방 맨 마지막에 달린 알림을 확인한다. '오늘 엄마랑 함께 참석해야 할 거 같아요.' ㅈ 쌤의 카톡에 환영하는 댓글이 줄줄이 달린다. 조심히 오라는 답을 달고 점점 어두워지는 창밖을 바라봤다. 비가 곧 쏟아지겠는데. 얼마 전부터 친정 부모님을 모시게 된 선생님은 바빠 보였으나 표정은 밝았다. 갑작스레 건강이 안 좋아진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었지만 오래 그리워한 아버지와 어머니를 바로 곁에서 볼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참, 좋은 사람이다.
부모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사람, 그런 사람들이 종종 있다. 엄마 사랑을 구구절절 읊는 글이나 사연은 또 얼마나 많은가? 내게도 엄마는 특별한 사람이다. 늘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며칠 전에는 엄마에게 전화해 요즘 왜 카드를 쓰지 않느냐고 물었다. 엄마는 내 명의로 된 체크 카드를 쓰는데 어디서 무얼 사는지 친절하게 알림이 온다. 마트나 약국에서 쓰는 게 대부분이다. 그런 문자가 올 때는 잘 지내고 있는 거 같아 안심하곤 한다. 그런데 일주일이 넘도록 알림이 울리지 않았다. 한참 만에 전화를 받은 엄마는 내 물음에 "저번에 니가 찾아다 준 돈 썼어. 왜?"라고 한다. 엄마가 카드를 안 써서 걱정했다고 하니 웃는다. “엄마, 매일 마트에 가서 하드라도 사 먹어.”라며 전화를 끊었다. 겉만 보면 천상 살가운 딸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다정하게 자주 전화하면 될 일인데 그게 잘 안 된다. 체크 카드 이용 문자로 엄마의 일상을 확인한다. 마트 알림은 그냥 넘기지만 약국에서 오면 어디가 아픈 건가 싶어서 전화한다. 대부분 파스나 판피린을 샀다고 한다. 판피린 좀 그만 먹으라고 효과도 없는 잔소리만 하고는 끊는다. 안 보면 걱정스럽고 만나서 10분쯤 지나면 피곤해진다. 지금껏 백 번도 넘게 들었을 말을 하고 또 한다. 과거, 그 짧았던 어느 시점을 엄마는 자기 식대로 내 기억과는 너무도 다르게 얘기한다. 자기 인생 사느라 바쁜 엄마 때문에 언니와 나는 늘 사는 게 버겁고 외로웠다. 대학 등록금에 생활비까지 버느라 아르바이트를 놓지 못했고 나쁜 일이 생겨도 하소연할 데가 없었다. 덕분에 강해졌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나를 키운 시간보다 내가 엄마를 책임지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진다. 어린 나이에도 나는 씩씩하게 살았는데 엄마는 아니다. 병원, 은행 하물며 오일장도 같이 가 줘야 한다. 이제 곧 가을 단풍도 보러 가야 하고 가끔 바다도 보고 싶어 해서 가까운 데로 드라이브도 가야 한다. 그 일을 안 해 주면 마음이 불편하다. 안 하고 싶을 때도 있다. 너무 당당하게 말하면 밉고 내 눈치를 살피면 또 마음이 그렇다. 그래서 꾸역꾸역한다. 다음에 욕하면서 하고 싶어도 못 할 날이 올까 봐.
ㅈ 쌤의 어머니가 곧 환갑이 될 딸을 참 애틋하게 바라본다. 그 어머니 눈에는 여전히 딸이 사랑스러운가 보다. 두 사람의 관계가 그 눈빛에서 드러난다. 나는 아무래도 엄마와는 체크카드 정도의 안부가 적당한 것 같다. 담백하다. 엄마도 그랬으면 좋겠다.
첫댓글 체크카드가 대단한 거 아닌가요? 선생님이 엄마를 책임지는 시간이 참 귀합니다.
토요일에 곡성에서 '심청길 레시피' 연극 봤는데 선생님은 심청이 90프로네요.
체크카드, 그 좋은 방법이 있는데 왜 저는 한번도 생각을 못했을까요? 충분히 잘하는, 효녀십니다. 아마도 그분은 이제 시작이라 꿀이 떨어질 겁니다.
체크카드로 안부 확인, 보통 자녀들에게 많이 하는데 부모님께도 하시는군요. 그건, 어머니 생활비를 선생님께서 책임 지시는 건데, 참으로 살뜰한 따님이십니다. 어머니께서 얼마나 듬직하실까요?
맑은 샘물 같은 이선생님이 투덜되시니 왜 더 친근해지는 것 같을까요? 글 쓰면서 내 마음 있는대로 내 보이는 것이 쉽지 않던데 배우겠습니다. 저도 적당하게 거리두는 담백한 딸 하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맞아요. 하고 싶어도 못 하는 날이옵니다. 부럽습니다.
어머니와 거리두기 하면서 카드 값은 도맡은 미옥님, 현명하시네요. 어느덧 저도 자식들과 거리두고 살고 있네요. 호호.
마음도 예쁜 선생님 효도 많이 하세요. 가끔은 모른척 거리두기도 하면서요.
부드러우면서 뭔가 걸리는 게 있는.
제가 좋아하는 글 스타일입니다.
담담하게 써 내려간 글 행간을 타고
선생님의 엄마를 향한 안타까운 눈빛이 새어 나옵니다.
그 빛이 제 가슴 속으로 들어와 헤어진 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내 엄마를 부르네요.
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