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오르비에토 대성당 정원
2024. 6. 17
이사야서 36~39장까지!
(이사 36,4)
네가 무엇을 믿고 이렇게
자신만만하단 말이냐?
묵상ㅡ
아시리아 임금 너,
정녕 몰라서 묻는거세요.
무엇을 믿고 자신만만
하냐니!
히즈키야가 누구의
손 안에서 명령을 받고
움직이는 임금인지
진짜 모르는 사람처럼
질문을 한다.
갈수록 가관이네.
'너는 전쟁 계획과
능력이 고작 입술에서
나오는 말뿐이라고
생각하느냐? 네가 지금
누구를 믿고 나에게
반역하느냐?'(이사36,5)
우상숭배에 찌든
아시리아 임금이
히즈키야의 뒤에
계신 주님을 조롱한거다.
누구를 믿고? 라는 표현이
가당키나 한가. 어따대고,
웃기는 놈이다.
그 뒤에도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은 계속
주님을 조롱하며,
히즈키야 임금과
유다 백성들을 약올린다.
심지어 이렇게 회유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한다.
(이사 36,17)
때가 되면 내가 와서
너희를 너희 땅과
다름없는 땅으로, 곧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
빵과 포도밭의 땅으로
데려가겠다.
그러더니 급기야,
이런 말까지 내뱉는다.
'이 나라들의 모든 신
가운데 누가 자기 나라를
내 손에서 구해 낸 적이
있기에, 주님이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구해 낼 수 있다는
말이냐?’ (이사 36,20)
맙소사! 산헤립 너,
주제파악 좀 해야겠구먼.
어따대고 시방!!!
홀로 하느님이신
우리 주님 자존심
지대루 건드린거다.
니들 그러다 아작난다.
나도 열불이 나는데
그 말을 전해듣던
당시의 사람들은
얼마나 열불이 났을까.
그런데도 그에게 절대
대답하지 말라는 임금의
명령대로 침묵을 했다니,
아이구야 다들
홧병났을거다.
그러나 조롱은 거기까지!!!
산헤립 너, 이제 죽었어.
주님께서 히즈키야 임금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신다.
어마어마하신분의
침묵이 해제되던 날,
산헤립을 압박하신다.
'네가 누구를 조롱하고
모욕하였느냐? 네가
누구에게 큰소리를 치고
눈을 치켜들었느냐?
바로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다.'(이사 36,23)
샘통이다.
좋은말로 할때 못이기는척
그만둘것이지, 어디 감히
만군의 주님을 조롱하고,
보도듣도 못한 유언비어를
날조하냐고!
(이사 36,29)
네가 나에게 격노하고
너의 소란이 내 귀에까지
올라왔으니 나는 네 코에
나의 갈고리를 꿰고 네
입술에 나의 재갈을 물려
네가 왔던 그 길로 너를
되돌아가게 하리라.
이제부턴 복수타임,
주님 말씀 그대로
산헤립은 니네베로
돌아가서 두아들에게
목숨을 잃게 된다.
깔끔한 죽음으로 급인생정리!
이럴거면서 그리
호언장담을 해가며
조롱을 했더란 말인가.
임금이 입도 싸지,
끝도없이 나발나발,
결국 입으로 망한거다.
(이사 36,4)
네가 무엇을 믿고 이렇게
자신만만하단 말이냐?
라고 히즈키야 임금에게
뜬금질문, 황당물음표
던지던 산헤립의 말로가
결국엔 이리 되었으니,
자나깨나 입조심,
꺼진 입방정도 다시 보자.
이런 교훈마저 등극할판,
무엇을 믿다니 세상에나
당연히 우리 주님이시지.
홀로 한분 뿐이신 주님,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내오시어, 당신
자녀로 삼아주신분,
그래서 히즈키야 임금이
자신만만했던거잖아.
누구나 입방정은
떨수 있지만 그러지
말라고 달래도 듣지
않는다면 과도함의
죄가 추가되는것 같다.
입이 무기가 되어
하느님마저 조롱하다
장렬하게 전사한
산헤립의 말로가
나에게 귀감이 되어준다.
고맙다고 해야 하나.
침묵이라는 덕목이
우리에게 필요한것은
아마도 무분별한
입방정 때문일 터,
이사야를 비롯하여
예언자들이 쏟아낸
쓸모있는 말이 아니라면,
차라리 침묵하면서,
주님과 타인의 말을
잘 듣는 경청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때로는 여러 말보다,
조용한 침묵이 우리에게
보물을 안겨줄때가 많다는
것을 체험한다.
또 누군가 나를 오해하거나
비방하며 입방정을 떨어서
억울한 마음이 들때조차,
'그래, 우리 주님이 듣고
계시지. 때가 되면 내편이
되어주실 것을 믿고 굳이
변명하거나 동요되지 말자.
침묵은 소극적인 방어가
아니라 주님께서 등판하실
때를 기다리며 기도하는거야.'
라고 스스로를 달랠수 있다면
바로 아시리아임금 산헤립이
히즈키야를 보고 했던 그말이
내 일상에서도 실현되는 것이다.
"너 무엇을 믿고 자신만만하단
말이냐"
첫댓글 요셉피나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