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린도후서 10강 돈 그리고 은혜의 황금사슬
~ 8장 연보 모범 9장 연보 자세
26.04.28(화)
고린도후서 8장 17절에서 24절
17 그가 권함을 받고 더욱 간절함으로 자원하여 너희에게 나아갔고,
18 또 그와 함께 그 형제를 보내었으니 이 사람은 복음으로써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요,
19 이뿐 아니라 그는 동일한 주의 영광과 우리의 원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교회의 택함을 받아 우리가 맡은 은혜의 일로 우리와 동행하는 자라,
20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에 대하여 아무도 우리를 비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21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뿐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
22 또 그들과 함께 우리의 한 형제를 보내었노니 우리는 그가 여러 가지 일에 간절한 것을 여러 번 확인하였거니와 이제 그가 너희를 크게 믿으므로 더욱 간절하니라,
23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료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24 그러므로 너희는 여러 교회 앞에서 너희의 사랑과 너희에 대한 우리 자랑의 증거를 그들에게 보이라
지난주에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오늘은 돈 얘기입니다. 돈 그리고 은혜의 황금사슬이라고 하는 제목으로 오늘 고린도후서 8장과 9장을 공부하죠.
세 가지 포인트 있습니다.
돈에 대한 성경적인 사고를 배우는 것입니다.
성경적인 사고를 가지지 않으면 돈을 제대로 다루지를 못해요.
그 다음 두 번째 돈과 은혜의 관계
내 마음과 은혜의 관계는 내가 좀 생각하겠는데 돈과 은혜의 관계 중요한 얘기입니다.
세 번째 돈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식을 깨닫는 겁니다.
이거를 알지 못하면 우리가 신앙생활 제대로 할 수가 없어요.
돈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요. 자 이제 오늘 말씀을 살펴보죠. 은혜와 돈 혹은 돈과 은혜 문맥을 좀 이해를 할 필요가 있어요.
8장과 9장이 갑자기 왜 나오는가 지난주에 설명에 이어지는 것이지만 1년 전에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에게 부탁을 했어요.
예루살렘 교회가 지금 굉장히 기근 때문에 허덕이고 있고 가난하니까 예루살렘에 있는 형제들을 위해서 자기가 복음을 전해서 세운 이방인 교회들이 많잖아요. 그 이방인 교회들 고린도 교회도 포함되죠.
고린도 교회에게 1년 전에 부탁했어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서 좀 모금을 하자 그래서 돈을 좀 보내자 돕자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모금을 시작을 했는데 무슨 문제가 생겼어요.
거짓 교사들이 들어와 가지고 저 바울 가짜야 저 바울 돈 벌고 싶어서 저런 일 하는 거야. 막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바울 사도가 지금 1년 전에 부탁한 일을 하다가 중단이 된 거죠. 어떻게 못 믿는 사람을 위해서 이걸 해요. 못한다고요.
그러니까 바울 사도가 지금 고린도후서를 쓰면서 사실 이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자기를 변호하기도 하고 또 복음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애쓰고 이제 회개한 사람들이 있자 이제 이거를 드디어 말할 수 있게 된 거죠.
케이스 스터디 두 개가 있어요.
첫 번째는 마게노니아 교회 더 정확히 말하면 마게노니아 교회들 더 정확히 말하면 마게노니아 교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예요.
어떤 이야기인가 하면 은혜라는 것이 마게도니아 교회들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여기 마게도니아 교회들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베뢰아 교회나 데살로니가 교회나 빌립보 교회나 다 이 마게도니아 교회들이라고 할 수 있고요.
혹은 어떤 학자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빌립보를 가리켜 얘기하는 것일 것이다. 그럴 경우에도 빌립보에 여러 가족교회들이 있었기 때문에 교회들이라고 표현할 수가 있어요.
근데 은혜의 역설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게 여기 케이스인데 환란에 많은 시련이 넘치는 기쁨을 가져왔고 극한 가난이 풍성한 염보를 가져왔다
무슨 얘기입니까? 굉장히 이상한 게 환란에 많은 시련 그냥 환란이 아니고 환란의 많은 시련 환란이 아주 넘쳤어요.
그런데 뭐가 또 넘쳤다고 그래요. 기쁨이요. 넘치는 기쁨이 있었대요 환란이 많으면 슬픔이 많아야 되잖아요. 세상 근심이 많아져야 되잖아요.
근데 넘치는 기쁨이 있었대요 또 여기서 끊고 극심한 가난이 빌립보 교회가 굉장히 가난했죠. 가난했는데 그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했대요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조합입니까?
극심한 가난이며는 헌금을 해도 조금밖에 못할 텐데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바울 사도가 얘기하고 싶은 건 이거예요. 은혜의 역설 무엇이 이렇게 했는가 그들이 돈이 많아서 아니요. 여유가 있어서 아니요. 은혜가 하나님이 마게도니아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가 그 일을 했다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키워드 은혜예요. 은혜 그래서 마틴 로이드 존스가 얘기한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로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얘기를 바꿔서 말하면 그리스도인은
은혜로밖에는 설명이 안 되는 사람이에요. 이해가 안 가거든요. 근데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거거든요. 그럼 우리는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어떻게 바꿨나 하나님의 은혜는 그냥 눈물만 흘리게 하는 게 아니잖아요. 은혜는 역사거든요.
근데 은혜가 어떤 일들을 해요. 은혜는 돈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바꿔요 은혜는 자기 자신에게 사로잡혀서 살아가는 사람이 자기를 넘어서서 다른 사람들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줘요
은혜는 자기밖에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도록 만들어요. 은혜는 우리를 그리스도인 닮게 만들어요. 은혜가 하는 일이에요.
그 중에서도 바울 사도가 이런 고백을 하는 거예요. 자기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고린도전서 15장에서 한 말이죠.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고 나를 이렇게 만들었고 이렇게 형성했고 나를 변화시켰다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는 거야. 많겠죠.
나 공부 많이 해 가지고 이렇게 됐다고 나 성공해 가지고 열심히 노력해 가지고 이렇게 됐다고 근데 자기가 수고도 많이 했고 일도 많이 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는 거예요.
이게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고백인 거예요. 보편적인 근데 은혜가 하는 일 중에 정말 중요한 일은 뭔가 하면 관점을 바꿔요 눈을 바꿔요
그래서 어떤 관점을 바꾸는가 하면 4절을 보면
8장 4절에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그랬어요.
굉장히 그냥 읽으면 밋밋해 보여요. 그렇지만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 이게 뭐예요? 지금 바울은 모금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예루살렘 교회를 도와줘야 하는 모금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이것은 빌립보 교회나 갈라디아 교회나 모든 이방인 교회들이 다 예루살렘교회를 위해서 하자고 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거를 엔아이비 성경에 보면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을 뭐라고 번역을 했냐 하면 특권이라고 번역했어요.
특권 그리고 또 하나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그러면 지금 빌립보 교회가 아마도 제가 생각할 때는 빌립보 교회가 굉장히 가난했고요.
그러니까 바울샤도가 아이고 이 사람들한테는 내가 모금 얘기는 차마 못 하겠다. 이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아니면 얘기는 했을지언정 이 사람들이 뭐 연보를 해서 이렇게 많이 줄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렇게 느꼈을지 모르겠어요.
근데 빌립보 사람들이 혹은 마게도니아 교회가 우리에게 간절히 구했대요 우리도 제발 이 특권에 참여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구했대요
굉장히 이상한 얘기입니다. 사실은 간청했다는 거예요. 이 간청했다는 말은 어떤 영어 성경들은 배교했다고 썼어요.
그러니까 거지가 구걸하는 것처럼 아 제발 좀 한 표 한 푼 주세요. 제발 좀 밥 좀 주세요. 하는 것처럼 제발 우리의 우리의 이 재정을 좀 가지고 가서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해 주세요. 이렇게 얘기를 했다는 거죠.
이게 무슨 얘기를 하는 건가 하면 세상에서는 어때요 받는 자가 받는 혜택을 특권과 은혜로 여기죠 근데 거꾸로예요. 주는 자가 주는 행위를 특권과 은혜로 여겨요
주면서 이런 거예요. 주는 사람이 아우 받아주셔서 너무나 감사해요.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이게 세상에서 갑과 을의 관계와 채무자와 채권자의 관계를 생각하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에요.
근데 복음의 은혜가 이런 일을 이루는 거예요.
받는 자가 주는 자에게 간청하는 게 세상의 관점이죠. 제발 좀 저 좀 도와주시면 안 돼요.
그런데 여기서는 마게도냐 사람들이 바울한테 제발 우리 걸 좀 받아 가시면 안 돼요. 많고 적은 문제가 아니에요. 부자냐 가난하냐의 문제가 아니에요.
내가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 그런 거 아니에요. 은혜의 문제 은혜 이 얘기를 바로 하고 싶은 거죠. 내가 증언하느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그랬어요.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라는 얘기는 그들이 가진 것만 가지고 하지 않았다는 얘기예요.
쉽게 말하면 빌려가지고 내가 5년 상환으로 갚을 테니 제발 좀 지금 예루살렘 교회를 도와줘야 하니 제발 좀 빌려주세요. 하고 그렇게 줬다는 얘기죠
힘에 지나도록 자기들의 능력 바깥에 일을 했다는 거예요. 뭐가 은혜가 그렇게 만들었다고요. 그래서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우리가 바라던 거 뭐예요?
바울이 바란 거는 돈이에요. 돈이 예루살렘 교회를 도와줄 수 있는 돈이에요. 근데 이 사람들은 자신을 준 거래요. 자기 자신을 바친 거래요.
이렇게 바울 사도는 은혜가 이런 일을 했다고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케이스 스터디 그리스도의 모범이에요.
어떤 말씀이죠. 9절의 보문 8장9절에
우리 주위에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시니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도 은혜예요. 주의 속 그리스도를 너희가 알기를 원한 아니에요.
주의 속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기를 원한다. 그랬어요. 그리스도의 은혜는 뭐죠 부유와 신으로서 너희를 위해 가난해지셨대요 물질적 개념으로 지금 바울이 설명하고 있는 거 아시겠어요.
성육신 얘기하는 거예요. 하늘에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죄인의 모양을 입고 오셨어요. 죄인이 아니시지만 그리고 죄인처럼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어요.
왜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올려 앉히시기 위해서요. 아무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저주밖에 받을 것이 없는 운명을 하나님의 축복밖에는 받을 것이 없는 운명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축복 하나님 자신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과 사랑 안에 거하시는 사랑이신 하나님이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가 되셨어요. 그 얘기를 하는 거예요.
고린도 교회에 대해서 바울 사도가 기대하는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서 기대하는 게 무엇인가 하면 고린도 교회는 가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빌립보 교회하고는 달랐다고요. 빌립보 교회도 그들이 은혜를 받아서 그들의 극심한 가난 가운데에서도 넘치는 염보를 하였는데 너희들은 가진 사람들이란 말이에요.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부유하신 자로서 우리 가난한 자들을 영적인 의미에서 우리를 부유케 하기 위해서 친히 가난해지셨다면 너희에게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이제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나누어줌으로써 그들이 지금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또한 그들로 하여금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워주게 하라 이런 얘기를 바울사도가 고린도 사람들에게 기대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묘한 긴장이 있어요.
은혜와 명령 사이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그가 이미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 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하게 하라 이 은혜를 성취하라는 말이 무슨 말이에요. 이 은혜는 지금 모금 얘기하는 거예요.
예루살렘교회를 도와주는 이 프로젝트 이거를 은혜라고 표현해요.
이 모금 이걸 은혜라고 표현해요. 완전히 관점이 다른 거예요. 바울사도는 은혜를 나누는 거지 돈을 나누는 게 아니어요 눈에 보이는 건 돈이지만 은혜를 나누는 거라고요.
7절에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고린도 교회는요 믿음과 말과 지식과 이런 은사들이 풍성했던 교회였어요.
그런데 바울 사도가 지금 말하는 건 뭐예요? 은사에만 풍성한 게 아니고 은혜에 있어서도 부유하고 풍성하고 탁월한 사람들이 되라고 그런 교회가 되라고 은혜에 있어서 얼마나 이거 중요한 얘기인지 몰라요.
우리 삶에서 나 은사가 있다. 이런 게 아니고 그것도 성령이 주신 은사예요. 그러나 은혜가 풍성해야 돼요. 은혜에서 탁월한 사람이 돼야 돼요.
그런 얘기를 바울 사도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 말이 중요합니다.
8절에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래요. 이 말을 왜 쓸까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고자 함이라 명령으로 하면은 고린도 사람들이 이제 회개했기 때문에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서 모금을 하고 그들을 도와줘야 한다는 바울샤도의 마음을 이제는 간절한 마음으로 자기들이 받고 우리가 진짜 그 형제들을 보지 못했지만, 도와줘야 되겠다.
진실한 마음과 믿음으로 그걸 할 거 아니에요.
자원하는 마음으로 근데 바울 사도가 해 회개했으니까 해 그러면 뭐가 돼요. 자원하는 마음이 마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되잖아요. 의무적으로 하는 것처럼 되잖아요.
그러기 때문에 너희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명령하지 않겠다고 말이에요. 그러면서도 바울 사도는 사실 명령해요. 이제 하던 일을 성취할지 이게 명령이죠. 마음에 원하던 것 같이 완성화돼 있는 대로 하라 근데 명령인데요.
여기에 있는 대로 하래요. 아까 마게도니아 교회에게 주신 은혜는 어떤 거였어요. 없는 데도 했어요. 자기들의 힘에 지나도록 했어요.
근데 바울 사도가 지금 명령하는 거는 너희 있는 만큼 하라고 얘기해요. 여기에 명령이에요. 근데 고린도 사람들이 진짜 은혜를 받았다면 그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고 있다면 바울이 있는 대로 해 라고 하는 말과 마게도냐 사람들에게 주신 은혜하고 자기들에게 주신 은혜하고 다 하나님의 은혜잖아요.
그러면 자기들도 힘에 지나도록 넘치게 할 것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들도 언제나 이거 십일조 해야 돼요. 이거 해야 돼요. 얼만큼 해야 돼요. 그런 게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라 명령하는 게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와 명령 사이에서 우리들은 늘 갈 수 있어야 돼요. 이 긴장이 있는 거예요. 하라고 했으니까 한다. 이것만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은혜가 하는 역할을 은혜가 우리 안에서 하는 일을 우리는 봐야만 돼요. 그래야 참된 하나님께 드림이 되는 것이죠.
또 동기와 행동 사이에도 생각해 볼 문제가 있는데,
양은 변화된 마음의 질에 비례하는 것이에요. 우리가 돈과 관련해서 혹은 헌금과 관련해서 이야기할 때 언제나 양에 관심을 가져요 얼마큼 했나 바울이 목표액이 이만큼입니다.
고린도 교회에 할당된 거는 이만큼입니다.
요 목표액을 채우세요. 이렇게 말할 수 있었겠죠. 근데 바울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질을 얘기해요. 그 질은 뭘까요? 어떤 동기와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가 하는 것이겠죠.
고린도 후서 8장 11절 12절은
이제는 하던 일을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 같이 마음에 원하던 것 바울 사도는 지금 고린도 사람들이 너희의 원함 너희의 마음 마음의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완성하되 있는 대로 하라 그랬죠 그리고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않는다.
연보가 되게 하는 것은 바울이 명령했으니까 우리는 할 수 없이 합니다가 아니라 이 사람들이 정말 아 우리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예루살렘 사람들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해서 그들이 나의 형제요 주안의 한 형제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의 아픔과 가난과 힘듬과 어려움을 내 문제로 여기고 우리가 정말 같이 도와줘야 되겠죠. 하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하기를 바울은 바라고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사도의 마음은 평균하게 하는 거예요. 일방통행을 의미하지 않아요.
8장 13절 14절을 보면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누구예요? 예루살렘 사람들은 편안하게 되고 너희 돈을 가져다가 쓰니까 그다음에 너희들은 너희 돈이 저쪽으로 가니까 너희가 가난해지고, 곤고해지게 하려는 그런 게 아니고 균등하게 하렴 균등하게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면 이건 경제적인 문제예요.
분명히 근데 후에 후에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얼마든지 상황이 바뀌어서 그들이 부유해지고, 우리가 가난해질 수 있어요.
그러나 바울 사도가 여기서 얘기하는 것은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돈만의 얘기는 아니라고요.
로마 15장에서 바울 사도가 로마 교회에서도 모금을 하고 다 모금을 하는데 이런 얘기를 해요.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욕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게 마땅하다 그들이 누구죠 저희가 누구죠 유대인들이에요.
복음이 어떻게 흘러 들어왔죠 이방인들에게로 유대인들을 통해서 복음이 흘러 들어온 거예요.
그래서 너희가 그런 면에서 영적으로 빚진 자인데 너희가 이제는 물질로 그들을 섬길 수 있다는 거예요. 육적인 것으로 얼마든지 이걸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아주 깊게 보게 되는 내용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마음이라고 하는 건 뭔가 하면 부모가 자녀가 둘이 있는데, 하나는 너무 성공을 하고 부자가 됐어요. 하나는 너무 실패를 해 가지고 인생에서 너무나 가난한 삶을 살아가요 잘나게 된 아들과 이렇게 못 사는 있어요. 밥을 못 먹어요. 그럼 편안하겠어요. 마음이 그럴 수 없죠
그러니까 평균되기 하려는 그 하나님의 은혜로운 마음이 여기에 표현되는데
8장 15절에
기록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랬어요.
이 얘기는 출애굽기에 있는 말씀을 지금 인용하고 있는 말씀인데 광야 시절에 만나를 거둘 때 어떤 사람들은 많이 거뒀어요. 요령 부린 거죠.
내일은 내가 먹기 싫으니까 이틀 치 하루에 거둬야 되겠다. 해 썩고 벌레가 나서 못 먹어요. 그리고 좀 적게 거둔 것 같다 근데 하나님께서는 부족하지 않게 만드셔요
그러니까 적게 거둔 자나 많이 거둔 자나 충분하게 하신 거예요. 모두에게 이게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에요.
그러면 우리가 이런 말씀들을 이해할 때 이게 하나님이 우리를 균등하게 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걸 이해할 때 예루살렘 교회는 가난해서 밥도 못 먹어요. 고린도교회는 지금 하루에 다섯 끼를 먹어도 돼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거라는 거죠.
그러므로, 너희가 기쁜 마음으로 그들에게 자원하는 마음으로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여기서 끝나지 않아요.
그들이 너희를 섬기게 될 것이라고 말해요.
그러니까 여러분 돈이라는 것이 되게 민감해요.
그래서 돈에 대해서 말하면 은혜롭지 않다고 느끼기 쉬워요
근데 사실은 돈과 은혜는 뗄 수 없는 관계예요.
여러분 그래서 돈 얘기하면 되게 민감해지죠 돈 얘기하면 졸질 않아요. 왜 그래요. 돈을 사랑 하니까 그런 거예요. 무슨 얘기를 하나 들어야 되겠다.
근데 잠언 11장 24절 보세요.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여러분 내가 이거 이거 내꺼야 날 그렇게 한다고 부자가 되는 거 아니라고 그래요. 주님이 흩어 구제하고 도와줘도 계속 도울 것이 있게 되는 삶 여러분 이게 정말 복된 삶 아니에요.
고린도후서 10~2강 돈 그리고 은혜의 황금사슬
그걸 설명하는 게 은혜의 황금사슬이여요.
황금이라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돈을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돈이 아니라 이 은혜라는 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듯이 은혜가 만들어낸 어떤 것 그것이 또 다시 어떤 새로운 은혜로운 일을 만들어내고 또 은혜로운 일을 만들어내고 그게 계속 순환되는 거여요.
이런 순환속에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부름을 받은 거예요. 이게 교회의 삶이고 신자의 삶이에요. 이걸 좀 보자고요. 어떻게 일어나는지 근데 그게 뭐하고 관계가 있어요. 돈과 관계가 있어요.
바울 사도가 이 복음을 위해서 세 사람을 천거해요.
바울샤도가 자 내가 다 잘 관리할 테니까.
나만 믿고 맡기세요.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
첫 번째 인물 디도예요.
디도는 바울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디모데와 함께 근데 고린도 사람들이 그냥 아무 배경 없이 내가 디도한테 맡겼어 디도가 재정을 잘 처리할 테니까. 헌금 많이 하시오. 이렇게 말했다라면 그러면 사람들이 자기 사람 세워놓고 자기가 하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이런 식으로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근데 디도가 지금 어떤 일들이 있었나요?
중간 편지를 가지고 고린도에 갔죠
그리고 그 편지를 전해주는 그 디도의 마음이 바울의 마음하고 동일했어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 고린도 사람들이 회개했어요. 그러자 디도에게 큰 큰 기쁨에 임했고 안심을 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고린도 사람들과 바울의 관계만이 아니라 이제는 디도와 고린도 사람들 사이에 깊은 사랑이 생기기 시작한 거예요.
연대의식이 생기기 시작한 거예요.
그런 배경을 가지고 바울 사도가 디도 여러분들이 신뢰하는 그 디도를 내가 세워서 이 재정을 맡깁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죠.
저희를 위하여 같은 간절함을 고린도 사람들을 위해서 간절함을 디도의 마음에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러니까 디도가 마음이 없으면 할 수가 없죠 근데 간절한 마음 고린도 사람들이라면 간절한 마음이 있어서 디도에게 이 일을 맡긴다는 거예요.
그가 권함을 받고 더욱 간절함으로 자원하여 너희에게 나아갔다 디도에게 맡기는 이유입니다. 또 있어요.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료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 나의 동료라는 것 바울의 동료라는 거 다 알아요.
그런데 뭐라고 또 설명하죠.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 너희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얘기해요. 디도는 신뢰할 만한 바울이 신뢰할 만한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고린도 사람들이 신뢰할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재정을 우리가 다룰 때 돈을 다룰 때 이런 조건이 필요한 거예요. 믿을 수 있어야 돼요.
모두가 또 디도 외에 두 번째 인물이 나와요.
그 형제라고 표현이 되고 있는데 여긴 그냥 형제라고 이름이 소개되진 않아요.
두 형제는 이름이 소개되지 않고 하나는 그 형제 또 하나는 한 형제라고 소개되는데 그 형제라고 얘기할 때 이 사람은 아마도 고린도 사람들도 알고 있고 바울 사도 알고 있는 사람이여요.
근데 그와 함께 그 형제를 보내왔으니 이 사람은 복음으로써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요 아시겠죠.
이런 사람에게 재정을 맡기는 거예요.
모든 교회에서 한두 교회가 아니에요. 그 다음에 이뿐 아니라 그는 동일한 죄의 영광과 우리의 원을 나타내기 위하여 그니까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에요. 이거 아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우리가 지금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알아요. 자기가 맡은 일을 그리고 여러 교회에 택함을 받아 이 택함을 받았다는 얘기는 요즘식으로 말하면 어떤 교회에 파송을 받는 공식적인 선교사 같은 거죠.
그러니까 교회들이 이 사람을 택하여 세운 사람이여요. 공식적으로 이런 것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이 사람이 아마 누가이거나 실라이거나 바나바이거나 이렇게 추측을 해요. 굉장히 비중 있는 인물이라는 거죠.
그리고 우리가 맡은 은혜의 일 여기서도 그러죠 은혜의 일이라고 복음이라고 말하면 되는데 돈이라는 말 안 써요 은혜라 그래요.
관점이 바뀌는 거예요.
은혜의 일로 우리와 동행하는 자랑 이런 사람
또 한 사람을 지금 추천했어요.
세 번째 인물이 있어요. 또 한 형제를 추천합니다.
두 번째 형제죠 그들과 함께 우리의 한 형제를 보내오노니 우리는 그가 여러 가지 일에 간절한 것을 여러 번 확인하였거니와 간절한 것을 이 사람이 어떤 일을 할 때 거기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여러 번 확인했어요. 이제 그가 너희를 크게 믿음으로 더욱 간절하니라
이 간절함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일에 대한 열심만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열심이기도 해요.
이런 열정 이것들은 굉장히 바울 사도가 사람을 선택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라는 걸 보게 되죠.
그리고 이제 이런 세 사람을 다 뭉뚱그려서 뭐라고 얘기하는지 보세요.
디도는 아까 본 대로 나의 동료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 우리 형제들은 두 사람이여요. 우리 형제들은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사자라는 표현을 쓰는 거는 여기서 보통 헬라어에서는 사도라는 말을 그대로 쓴 거예요. 근데 사도라는 말의 원래 의미는 보냄을 받은 자거든요.
여기서는 사도라는 고유적 의미로 썼다기보다는 교회에 보냄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냥 내가 세운 사람이 아니고 교회에 보냄을 받은 사람들이다. 하는 얘기고 가장 놀라운 찬사가 나와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라고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자랑이라고 이보다 더 큰 찬사는 없겠죠.
이런 사람들에게 재정을 맡겨요 왜 그럴까요?
이 사람 돈 좋아하는 사람이야 이런 오해도 받았고 정직하지 않아 이런 하는 비난이 있었어요.
그런 것들 때문에 바울은 조심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20절과 21절에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거액의 연보에 대하여 적은 돈이 아니었어요.
여러 교회에서 모았기 때문에 아무도 우리를 비방하지 못하게 어떤 구설수에도 휘말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조심한다는 거죠. 조심한다는 거예요. 돈은 조심해야 돼요.
그리고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뿐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을 조심하려 합니다. 지금 선한 일을 하고 있죠.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만 조심한다고 그러지 않아요.
하나님 앞에서 조심한다는 뜻은 사람 앞에서도 조심하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돈 때문에 한국 교회가 얼마나 많이 넘어지기 쉽고 정말 문제도 많겠습니까?
이 바울이 지금 돈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우리가 봐야 돼요. 여기서 우리가 너무 많이 넘어지기 쉬워요 사람 앞에서도 조심하는 거예요.
이게 지금 세 사람을 세우는 이유예요.
바울 사도가 자기가 직접 하지 않고 또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회개의 진정성이 연보를 바치는 데 달려 있다는 것도 바울이 얘기해요.
너희가 진짜 회개했으면 너희의 그 회개를 참된 회계를 하나님의 한 형제들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들을 돕는 일에 너희가 이 연보를 잘 맞춰야 된다.
8장 24절
그러므로 너희는 여러 교회 앞에서 너희의 사랑과 너희에 대한 우리의 자랑의 증거를 그들에게 보여라 회개의 증거를 보이라는 얘기죠
바울 사도는 연보에 대한 이야기 이걸 우리가 헌금으로 적용할 수 있는데, 미리 준비해서 연보를 바쳐야 할 이유를 미리 준비한다는 말이
9장 1절부터 5절까지 많이 나와요.
반복해서 준비해 준비해 준비해 왜 급하게 하지 말라는 거예요. 바울이 이제 온대 그러니까 우리 큰일 났다 부산을 떨면서 막 그렇게 하지 말라는 거예요. 억지로 하지 말래요. 준비하지 않으면 억지로 하기가 쉬워요 즐겁게 하라고 그래요.
헌금을 할 때 때 그리고 모금액을 채우는 게 바울의 목표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요. 그러면 준비해서 우리의 수입에 따라서
고린도 전서 16장 1절과 2절에서
주일마다 모일 때 내라는 거예요. 그렇게 준비해 놓으라
5절을 보세요.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그러니까 미리 디도와 두 형제를 보낸다는 거죠.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준비하지 않고 드리는 건 충동적으로 드리기 쉽고 많이 드릴 수 있을지 몰라도 집에 가면 딴 생각나는 거죠. 시험 듣는 거죠.
준비해서 그리고 자기의 수준에 맞춰서 믿음으로 은혜 받은 것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믿음으로 드리라는 거예요.
여기서 연보라는 말 조금 이해를 하죠.
9장 5절에서 두 번 연보라는 말을 쓰는데 이 연보라는 말은 8장 9장 다른 곳에서 쓰는 연보라고 번역된 말하고는 다른 단어를 썼어요. 바울이 이거는 기프트 선물이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정확하게 말하면 1차적으로는 축복을 의미해요. 하나님의 선물
그리고 2차적인 의미는 풍성하다 넉넉하다 많다 이런 뜻이 있어요.
고린도교회가 받은 이 물질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이해를 해야 된다는 거죠. 우리가 가진 게 다 하나님의 축복이에요.
이 축복을 나누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연보라는 말을 우리가 제대로 이해를 하면 이거는 헌금이라는 말하고 약간 다르게 헌금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는 개념이 강하다면 연보라는 것은 뭐 수재 의연금처럼 이렇게 어려운 일을 당한 형제들을 돕는 차원에서 구제를 하는 사랑하는 그런 차원에서 연보라는 말이 사용되는 거예요.
근데 그 연보의 특징은 뭐죠
너그럽게 후하게 풍성하게 나눠져야 되는 것이에요. 이런 부분들을 이해를 하면
6절에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 많이 거둔다
여기 적게 심는다고 했을 때 이 적게 심는다 많이 거둔 많이 심는다 이거는 양에 대한 문제를 사실 말하는 게 아니에요.
적게 심는다고 했을 때 이것은 인색하다는 뜻이에요. 인색하게 심지 말라는 거고요. 여기 많이 심고 많이 거둔다는 말을 할 때 이 많이라는 말은 축복이여요.
축복 하나님의 축복을 심으라고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을 또 거두라고 이게 은혜의 원리거든요. 은혜의 황금사슬이에요.
이거를 바울샤도가 설명을 하는데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너희로 하여금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했다고 8절에 얘기해요.
8절 보세요.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가끔이 아니고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자
여러분 바울이 지금 어떤 얘기를 하고 있는지 아시겠어요.
하나님의 관대하심을 보여주는 단어들이 너무 많이 나와요.
8절에 넘치게 넉넉하여
10절 풍성하게 더하게 더하기는 무성하게라는 뜻이거든요.
또 11절에 넉넉하게 너그럽게
12절 많은 감사 넘쳤느니라
13절 후한 연보
14절 지극한 은혜
15절 말할 수 없는 무슨 얘기예요.
이렇게 풍성함을 바울 사도는 연보라고 하는 개념에서 이 풍성함을 강조하는 거야. 넉넉함 후함을 강조하는 거예요. 모든 착한 일이라고 그랬는데 그 착한 일이 뭐였어요.
고린도 사람들에게는 구체적으로 너그럽게 연보를 하는 거죠.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서 그럼 너그럽게 연보를 하면 이게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죠 성도들의 부족한 걸 보충해요. 누구 예루살렘 성도들의 부족한 걸 보충해요.
이건 실제적인 실제적인 결과예요.
또 하나 저희가 예루살렘 사람들이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고 사모하고 간구하며 사모하고 그들이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를 사모하느니라 너희를 위해 기도한대요
그들이 우리는 돈을 보냈는데 그들은 우리에게 기도를 보내는 것이죠. 그리고 너희를 사모한대요 아 우리가 혼자가 아니구나 정말 보지도 못한 이방인 교회들을 향해서 우리가 주안의 형제구나 형제 사랑을 경험하는 거예요.
또 거기서 끝나지 않아요. 그들이 하나님께 감사하게 돼요.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또 12절 하반절에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로 말미암아 많은 감사로 말미암아 넘쳤느니라
감사함이 넘친다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근데 여기서 끝나지 않아요. 황금사슬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이 믿고 복종하는 것을 고린도 사람들이 증명한 셈이 되는 거예요.
이 일을 통해서 13절이에요.
이 직무로 이 직무는 뭐예요?
연보를 통해서 증거를 삼아 너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을 믿고 복종하는 것과 그들과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너희의 믿음도 증명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궁극적인 결과를 가져와요.
근데 이게 다가 아니에요.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바울 사도가 15절에 말해요.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로 말미암아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사가 뭐죠 바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선물로 인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하는 거여요.
그러면 이게 다시 또 예루살렘 교회에게 흘러가서 그들에게 넘치는 은혜가 다시 모든 착한 일을 만들고 이렇게 이렇게 해서 계속 계속해서 확대되면서 순환되는 거예요. 이게 바로 은혜의 황금 사슬입니다.
그래서 연보와 헌금의 중요한 원리가 있어요.
감사보다 기쁨에서 나온 거예요.
감사는 받은 은혜에 대한 것이지만 기쁨은 내 삶 전체에서 하나님이 내 삶을 책임지시는 나의 목자가 되시고 나의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분이 되신다는 신뢰를 가지고 내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축복을 나눌 수 있게 되어 풍성하게 나눌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즐겨낸다는 거를 이렇게 읽지 마세요.
많이 내는 자를 사랑한다. 아니에요. 즐겨내는 자 기쁨으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 중요한 것입니다.
헌금은 믿음의 표현입니다.
믿음의 표현이라는 말은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과 행하고 계시는 일 그리고 행하실 일로 인해 우리가 여전히 만족하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을 향한 지속적인 신뢰예요.
이런 믿음이 없으면 우린 돈을 믿게 돼요.
이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돈을 축복입니다. 은혜입니다. 하고 드리는 거예요.
세 번째 헌금은 사랑의 표현이에요.
무슨 말이에요. 사랑은 다른 사람에게 언제나 베풀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의 흘러넘침이에요. 이게 우리의 헌금 생활에서 중요한 원리가 돼야 돼요.
적용하죠.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우리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거예요. 여러분이 은혜받은 증거를 돈을 여러분이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통해서 증명하셔야 되는 거예요. 이거는 우리의 숙제예요.
여러분이 돈을 어떻게 쓰시는가는 여러분의 신앙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지표예요.
두 번째 우리는 은혜를 통해 후히 주신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넘치도록 후하게 주시는 하나님이에요.
근데 그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닮아가요 어떻게 넘치도록 후한 사람이 되는 거예요. 베푸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모든 착한 일을 항상 넘치게 하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세 번째 돈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죠.
여러분이 가진 돈 하나님의 축복이에요. 은혜예요.
돈 때문에 넘어지지 않고 돈 때문에 교회가 무너지지 않고 돈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그런 일들이 좀 많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이제 다음번 강의는 11강인데 인간의 교만을 깨뜨리는 복음의 능력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살펴볼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