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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관룡사 2019, 용선대 * 2019.02.17. / 청천산악회, 17기 서러움 말고, 성스러움 석장승 한쌍의 안내를 받고 구룡九龍이 비천했다*는 ‘귀뚜라미 경경경 운다’고* 읊었지만 언덕 반석盤石에 앉은 용선대龍船臺* 여래如來 ---------- * 구룡 ; 창녕 관룡사, 관룡산, 구룡산은 원효대사가 수도중에 1. 산에서 내려다 본 관룡사 전경 2. 관룡사 전경 3. 원효대사가 화왕산 정상에서 기도중에 9마리의 용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았다하여 寺名은 觀龍寺, 절 뒷산은 관룡산(좌), 구룡산(우)라고 부른다. 모두 화왕산 줄기이다. 4. 출입구는 두 곳이다, 위와 같이 돌계단 돌문을 통과하는 보행길이 있고, 우측으로 도로길이 또 있다. 5. 돌담장 사이로 들어가는 작은 통로는 일주문을 대신하는 소박한 절이다. 6. 우측 도로길로 가서, 들어 가는 문 7. 소나무도 경배하는 모양을 하고 있다. 8. 좋은 절에 오셨으니 훌륭한 스님의 법문을 들어 보겠습니다. 부산 석불사 주지 달원 <만족으로 오신 부처님>이란 글을 타자해서 올리오니 나누어서 읽어 보겠습니다. (1) "우리는 부처님이 오셨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철저히 자기 기준에 의한 판단입니다. 부처님은 오신 바도 없고 가신 바도 없습니다. 항상 여여 하시기에 가고 오는 바가 없는데도 우리는 자꾸 오셨다 말하고, 안 보이면 가셨다고 합니다." * <<石佛>> 통권 46호, 석불사 주지 달원 <만족으로 오신 부처님> 중 9. 부처님은 도솔천의 호명보살로 있다가 사바세계로 오신 것이다. 이것이 보살도이다. (2) "그렇다면 부처님께서 오셨다고 할 때 어디서 오신 것을까요. 부처님께서 당신의 출생 연기緣起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 나는 이 사바세계에 오기 전에 도솔천에서 호명보살護明菩薩(빛을 수호한다는 뜻)로 있었다.' 고 밝히셨습니다. 호명보살은 어느 순간이나 어느 입장에서도 어둠이나 상대적인 것을 앞세우지 않고 오로지 참된 생명의 가치로부터 출발하겠다는 분입니다. 반면 우리는 상대적인 입장에서 스스로의 가치분별에 의해서 살고 있습니다." * <<石佛>> 통권 46호, 석불사 주지 달원 <만족으로 오신 부처님> 중 10. 본래 자리인 도솔천 만족함이 충만한 곳으로부터 오셔서, 먼족함을 주체적 지니는 분. (3) " 부처님께서 '나는 본래자리에서 왔기 때문에 이 사바세계에 놀러 왔다.' 고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본래자리란 무엇일까요. 부처님께서 오셨다는 도솔천 그곳은 언제나 만족함이 이어지는 곳입니다. 즉 부처님께서는 모든 것이 만족한 곳으로부터 오신 것입니다. 이 말은 어떤 조건이 닥치거나 상대적인 상황이 벌어져도 항상 만족함이 주체적인 입장인 것입니다." * <<石佛>> 통권 46호, 석불사 주지 달원 <만족으로 오신 부처님> 중 11.관룡사 대웅전 (4) " 우리는 어떤 조건을 갖추지 못해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배고픈 사람에게는 시장이 반찬이듯 어머니의 정성과 농군의 정성어린 노고를 생각하며 간장 한 종지를 놓고서도 기쁜 마음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진수성찬을 안 차려줘서 만족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에 불만이 상주常住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만족한 도솔천에서 부처님이 오셨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 <<石佛>> 통권 46호, 석불사 주지 달원 <만족으로 오신 부처님> 중 12. 약사전 석조여래는 몸체가 풍만하다. 고려시대 작품이다. (5) " 그렇다면 부처님께서는 왜 모든 것이 만족한 도솔천에 계시지 않고 이 사바세계로 오셨을까요? 사바세계는 '참지 않으면 도저히 괴로워 살 수 없는 세계' 입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이곳으로 오셨습니다. 모든 것에 만족하시는 분이 이 모순으로 가득한 세계에 오셨다면 우리의 판단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미 만족이 여여한 분에게는 언제 어느 상황에서도 오직 만족뿐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참지 않으면 도저히 괴로워 살 수 없는 사바세계도 부처님께는 불국토가 되고, 극락이 됩니다. 이는 극락은 가야 할 곳이 아니라 참 생명의 출발점이란 것을 알아차릴 수 있게 합니다. 때문에 오늘'내가 산다' 는 참다운 의미는 '본래 부처님 생명으로 태어났음을 잊지 않고, 오늘도 부처님 생명으로 살고 있음' 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 <<石佛>> 통권 46호, 석불사 주지 달원 <만족으로 오신 부처님> 중 13. 우리는 모두 부처님 생명으로 왔기 때문에 모두 만족을 누리야 할 존재이다. 그런데 왜? (6) "부처님 오신 날을 맞는 의미는 '부처님 생명으로 왔다' 라는 마음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본래의 참 생명은 만족으로부터 와서 만족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부처님이 오셨다는 것은 우리도 본래 부처로서 왔기 때문에 항상 만족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만족함을 잃지 않고 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기 안에 있는 데바닷다를 극복해야 합니다. 데바닷다는 천하의 악인으로 부처님 일대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손톱에 독을 발라 부처님을 살해하려다가 그 독이 자기 몸에 퍼져 죽은 사람입니다. 그는 부처님을 만나자마자 '부처님' 하고 엎어지며 항복한 것같은 행동을 했지만 마음은 부처님을 살해하려 했습니다." * <<石佛>> 통권 46호, 석불사 주지 달원 <만족으로 오신 부처님> 중 14. 내 마음 속의 데바닷다를 극복해야 한다. (7) "그(데바닷다)는 엄청난 원리주의자였습니다. 원리주의자들은 '나는 남들한테 해를 끼친 적이 없어. 살아오면서 내 원칙에서 벗어난 적이 없어.' 라고 합니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나는 내 원칙의 노예가 되어 살아' 가 아닐까요. 그들은 자신의 원칙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향해서 비난의 눈초리를 보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원칙을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데바닷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른 생명이 나에게 베풀어 준 은혜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자신만의 힘으로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님 은혜로부터 선생님과 많은 친구와 세상의 모든 은혜의 집합체가 자신이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나일 수 있는 이유는 자신에게 베풀어 준 세상의 은혜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石佛>> 통권 46호, 석불사 주지 달원 <만족으로 오신 부처님> 중 15. 자신 안의 데바닷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죽은 과거와 결별해야 한다. (8) "이 소중한 은혜를 잊어버린 자신 안의 데바닷다가 있다면 그것부터 극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원칙이 삶을 살아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원칙을 만들고 지키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 안의 데바닷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죽은 과거와 결별해야 합니다. 과거란 말은 지나갔다는 뜻입니다. 모든 상황이 종료됐다는 것입니다. 종료된 것을 끄집어내서 탓하지 마십시오. 과거는 과거대로 보듬고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그리고 결별하면 그뿐입니다." * <<石佛>> 통권 46호, 석불사 주지 달원 <만족으로 오신 부처님> 중 16. 天上天下 唯我獨尊 (9) "그리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오지 않은 것을 붙잡고서 왜 그것을 미리 걱정해야 합니까? 분명한 것은 (미래를) 준비는 하되 앞으로 다가 올 상황에 의해서 지금 누려야 할 이 기쁨의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미래와도 결별하면 그뿐입니다. 오직 부처님 생명으로 태어나고 있는 이 순간만이 진실입니다. 이 순간에는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습니다. 직책도 없습니다. 나이도 없습니다. 오직 지금 부처님 생명으로 태어나고 있는 현재가 있을 따름입니다. 이를 부처님께서는 '天上天下唯我獨尊' 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 <<石佛>> 통권 46호, 석불사 주지 달원 <만족으로 오신 부처님> 중 17.봄이 옵니다. 2월 17일 현재 / 참생명은 관념과 물질을 뛰어 넘는다. (10) " '천상' 은 온갖 관념이 지배하는 세계입니다. '천하' 는 온갖 물질이 지배하는 세계를 가리킵니다. 그러한 세계로부터 '나 홀로 존귀하다唯我獨尊'라는 의미는 우리의 참생명은 관념과 물질을 뛰어넘는 최상의 가치를 갖고 태어났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걸림이 없는 자유인으로 태어났기에 가는 곳마다 항상 만족함만이 따라올 뿐입니다. " * <<石佛>> 통권 46호, 석불사 주지 달원 <만족으로 오신 부처님> 중 18. 난초 종류인데 노랗게 새싹이 돋았다가 점차 푸른색으로 변한다. 날마다 좋은 날, 날마다 부처님 오신날이다. (11) " 만족을 아는 사람이 가는 곳에는 어둠이나 적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로지 밝음만이 있습니다. 이것이 본래 생명의 법칙이며, 만족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이 자리에 왔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당당하게 선언하십시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이렇게 날마다 부처님생명으로 태어나고 부처님생명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게는 만족, 불만족을 따질 새가 없습니다. 후회할 과거도 걱정할 미래도 없습니다. 오로지 기쁨으로 가득 찬 오늘만이 있습니다. 이제부터 날마다 부처님 오신 날로 맞읍시다. 그리하여 주변에 인연 맺는 모든 분들을 부처님생명으로 받들어 모시는 데 온 힘을 쏟읍시다. 오늘같이 좋은 날, 거듭 감사와 찬탄 그리고 축하를 올립시다. 나무석가모니불! (끝) * <<石佛>> 통권 46호, 석불사 주지 달원 <만족으로 오신 부처님> 중 19. 관룡사 입구 여장승 * 장승은 마을 장승, 사찰의 입구나 사방을 경계하기 위해 세워진 사찰장승, 지역간의 경계를 하는 곳이나 성문, 병영, 해창, 관로 등에 서 있는 공공 장승 등이 있다. 20. 관룡사 입구 남장승 * 장승의 기원은 고대 성기 숭배에서 나왔다는 설과 사찰 토지의 표지로 이용했다는 설 등 여러 가지가 있다. * 우여곡절 ; 2003년 태풍 매미때 유실도어 도난 당한 후 충남 홍성에서 되찾았다. 21. 장승 현지 안내문, 재작성 22. 왼쪽에 서 있는 것이 남장승이고 오른쪽에 서 있는 것이 여장승이다. * 관룡사 소유 토지의 경계를 구분하는 표지이지만 사찰 토지 안에서 사냥과 어로를 금지하는 호법, 절에 잡귀가 출입하는 것을 막아 주는 수호신 풍수지리적으로 허한 곳을 보충해 주는 비보 등 다른 의미도 부여하여 세워진 것으로 본다. 이는 불교와 민간 신앙의 결합을 잘 보여 준 사례이다. 23. 경내 신도들이 쌓은 소박한 돌탑에도 신앙심과 정성이 깃들어 있다. 용선대 24. 절에서 좌측으로 15분~20분 정도 위로 올라가면 거대한 바위에 석조 여래가 좌정하고 있다. 통일신라 작품이다. 용선대의 용선은 '반야용선般若龍船'의 줄인 말이다. 25. 반야般若는 지혜를 말한다. 龍船이란 진리를 깨닫는 피안으로 용이 이끄는 배를 타고 가는 것을 말한다. 26. 해남 달마산 미황사 대웅보전 주춧돌에는 게나 거북을 새겼는데, '법당이 반야용선' 임을 상징한 것이다. 통도사에는 반야 용선 벽화가 있다. 27. 약 1300년 전 통일산라 작품이다. 최근 팔각형 좌대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용선대 위에 모셔진 석불좌상은 통일신라 초기인 722~731년 사잉 조성되었음이 밝혀졌다. * 예전보다 부처님이 많이 깨끗해졌다. 석불을 정화하는 기술이 발달하였나 보다. 28. 여래의 방향은 동향이다. * 일설에는 일제가 그렇게 돌려놨다는 얘기도 있으나 근거는 없다. 그러고 석굴암도 동향이지 않는가? 해가 뜨는 동쪽을 신성시한 측면도 있고, 오히려 불력으로 왜구를 짓누른다는 의미도 있다. * 사바세계에서 피안의 극락정토로 인도하고 계신다. 29. 다시 한번, 깨끗하게 정화한 여래상이 신기하고, 신성하다. <경배드립니다.> 30. 아제아제揭諦揭諦 * 아제아제揭諦揭諦(게=揭 / 체=諦 이지만 ' 아제' 라고도 발음한다) * 앞의 아제는 사람이 거기에 있다. 뒤의 아제는 法空 의미 -> 사람과 법이 다 공했으며, 그 생각 조차도 놓아 버린다. 有다 無다 하면 온갖 번뇌가 일어나니 유무를 놓아 버린다. 31.바라아제 波羅揭諦 *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 아제, 모지사바하 ; 반야심경 마지막 주문구절. 산스크리트어를 한역한 것을 음대로 독송한것, * 의미 ; 가자, 가자, 저 피안의 세계로 가자. 모두 함께 저 피안의 세계로 가자. 오! 깨달음이여. 축복이어라! * 바라아제 ; 공에 이르러 보니까 공은 아무리 찾아 봐도 없고, 생사도 끊어지고, 부처니 중생이니 그런구별도 안되고, 모두 부처라, 생사고해의 苦를 받지아니하더라. 32. 禪家 사제간의 살벌한 정진 스승 마조가 울력(運力)을 하다가 제자 오대은봉(등은봉)이 수레를 밀고 가는 것을 보고 다리를 뻗고 주저앉아 길을 막았다. 은봉 ; "스님 제발 발 좀 거두어주십시오" 마조 ; "한번 펼친 것은 다시 거두어 들일 수 없다." (이전불수 已展不收) 은봉 ; "나가고 있는 것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 (이진불퇴 已進不退) 그대로 수레을 밀어 버려 스승의 다리가 많이 상했다. 마조 ; (도끼를 휘두르면) "방금 내다리 상처 낸 놈 앞으로 빨리 나와라." 은봉 ; 재빨리 앞으로 나가서 목을 내밀었다. 마조 ; 도끼를 바닥에 팽개쳤다. 마조는 혜능과 함께 선사상 양대 기둥이 된 인물. 33. 청휴 휴정(서산대사)의 선시 山自無心碧 / 雲自無心白 / 其中一上人 / 亦是無心客 산자무심벽 / 운자무심백 / 기중일상인 / 역시무심객 산은 스스로 무심히 푸르고 구름은 스스로 무심히 희구나 그 가운데 앉아있는 한 사람 또한 무심한 나그네 일세. 34. 조금 위쪽에서 떨어진 거리에서 본다. 35. 용선대에서 바라 본 관룡산 경관 36. 용선대에서 바라 본 관룡산 경관 37. 용선대에서 바라 본 관룡산 경관 38. 용선대에서 바라 본 부근의 바위 39. 용선대 진입 입구 우측절벽 40. 용선대의 일부 41. 용선대에서 바라 본 화왕산 민둥산. 관룡사 뒷산을 관룡산과 구룡산으로 나누어 칭하나, 크게보면 화왕산의 줄기들이다. 42. 용선대에서 바라본 화왕산 정상의 민둥산(지속적 관리) 경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