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산에 가면 보일듯 말듯 나무들 사이로 피어 있는 진달래를 볼 수 있다. 의례 봄이 되면 북으로는 백두산에서부터 남으로는 제주도의 한라산에 이르기까지 온 산을 진분홍으로 물들이는 진달래는 오랜 세월을 두고 이 땅에서 피고 지면서 굴곡 많은 역사와 함께 숨을 쉬며 살아왔다.
진달래의 어원을 살펴보면 《양화소록》에서는 붉은 홍진달래(紅杜鵑)보다 하얀 백진달래(白杜鵑)에 더 높게 쳤다. 그것은 하얀진달래가 홍진달래보다 메마르고 각박한 땅에 자라면서도 마치 두견새가 촉(蜀)나라가 있는 북쪽을 향해 울 듯이 백진달래도 북쪽을 향해 피기에 일편단심의 절조를 가상히 여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17세기 문헌인 《역어유해(譯語類解), 중국어에 한글 음을 단 어학서》 에는 두견화를 '진ᄃᆞᆯ래'라고 기록하고 있다.
진달래는 진달랫과에 속하는 낙엽성 관목으로 크게는 3m까지 자란다. 진달래는 참꽃 또는 두견화라고도 한다. 줄기는 연한 갈색이며 가지 끝부분에서 가지가 갈라지며 꽃이 매달린다. 봄이 오면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꽃은 5장의 꽃잎이 한껏 벌어지지만, 보통은 가지 끝에 적게는 세 개에서, 많게는 여섯 개가 모여 달린다.
진달래는 척박한 토양에서 잘 자라며, 특별히 산성토양을 좋아한다. 그동안 이 땅에 진달래가 많았던 이유는 산이 그만큼 헐벗고 척박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진달래는 수분이 많거나 한여름 볕이 너무 강한 곳을 좋아하지 않는다. 꽃이 지려고 할 즈음 꽃을 모두 따주면 이듬해 더욱 풍성하게 꽃을 피우며, 꽃이 지고 순이 나올 때 일부만 남겨놓고 따주면 역시 튼실하게 잘 자란다. 또 실내에서 겨울을 춥지 않게 지내면 꽃이 피지 않는다고 한다.
진달래를 중국에서는 두견화(杜鵑花)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두견새가 울 때 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중국 촉나라 두우가 전쟁에서 패하여 나라를 잃고 죽어서 두견새가 되어 매년 봄이 오면 피눈물을 흘리면 온 산천을 날아다니는데 이 눈물이 떨어져 핀꽃이 두견화라는 것이다. 두견새 입속 색깔이 진달래처럼 붉어서 이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누가 뭐라 해도 진달래 하면 떠오르는 시인은 김소월일 것이다.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은 언제 읽어도 가슴이 뭉클하다. 요즘은 어느 가수가 노래로 불러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영변에 약산/진달래꽃/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가시는 걸음걸음/놓인 그 꽃을/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통일되면 봄에 약산에 올라가 진달래 꽃 구경을 실컷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우리 민속놀이 중 ‘화전(花煎)놀이’가 있는데 이때 사용하는 것이 진달래다. 진달래가 만발한 3월 삼진날 진달래 전을 부쳐 먹고 춤추며 노래하고 하루를 보내는 전통놀이다. 이 밖에 무병하고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성밟기를 했는데 진달래를 꺾어 꽃방망이를 만들고 이것으로 서생의 머리를 치면 과거에 붙고 기생의 등을 치면 정을 준다고 믿었다고 한다.
특히 진달래는 술로도 유명하다. 꽃잎으로 술을 담근 지 100일 만에 마시는 술이다. 그중에서도 충남 당진의 특산 술로 유명하다고 한다. 이 술을 마시면 심신 안정에 좋다는 소문으로 진달래 씨가 마를 뻔했으나 한 번에 많이 마시면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고 눈에 좋지 않다고 소문이 나 요즘은 잔잔해졌다.
우리나라 진달래는 변종과 정품이 섞여서 자라는데 흰 꽃이 피는 ‘흰진달래’ 잎자루에 털이 있는 ‘털진달래’ 잎이 넓은 ‘왕진달래’ 잎 면에 돌기가 있고 윤기가 나는 ‘반들진달래’, 열매가 가늘고 길며 한라산에서 자라는 ‘한라산진달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