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승을 찾아내고 스스로 제자가 되어라
조선 후기 문인이자 화가였던 김정희는 시와 그림은 물론 서예와 금석학에 뛰어난
실력을 보인 당대 최고의 예술가였습니다. 그에게는 교유하는 벗과 제자, 선배들이 많았는데 그중 가장 외롭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함께 보낸 잊지
못할 제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시골의 그림쟁이였던 허련이었습니다. 허련은 당파 싸움으로 인해 낯선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시작하게 된 김정희를
찾아가 시중을 들었던 유일한 제자였습니다. 하지만 김정희는 허련을 제자로 받아 주지 않고 ‘스승을 찾아내고 스스로 제자가 되라’고 말합니다.
이는 학문을 연구하고 끊임없이 수련하여 스스로 배움의 길을 얻어야 한다는 깊은 가르침이었습니다. 결국 허련은 스승 김정희가 박제가와 완원,
옹방강을 스승으로 섬기기 위해 열정을 다했던 것처럼 부지런히 책을 읽고 화첩을 연구하여 예술의 세계를 구축해 나갔습니다. 그런 제자를 기특하게
여긴 김정희는 제주도 유배 시절뿐 아니라 죽을 때까지 허련에게 글씨와 그림을 가르쳤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열정을 다해 함께 그림의 꽃을 피운
추사 김정희와 소치 허련의 이야기는 오늘날 대화와 소통이 부재한 사제지간에 새로운 귀감이 될 것입니다.

작가:배유안
그림 : 서영아
추사의 호통에 덩달아 마음이 뜨끔해지는 그림쟁이입니다. 정신을 담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그린 책으로 『진돗개 보리』, 『내가 가게를 만든다면?』, 『밥상을 차리다』, 『어떤 아이가』, 『해리엇』 등이
있습니다.
감수자 : 전국초등사회교과모임
전국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모여 활동하는 교과 연구 모임입니다. 어린이 역사, 경제, 사회
수업에 대해 연구하고, 학습 자료를 개발하며, 아이들과 박물관 체험 활동을 해 왔습니다. 현재는 초등 교과 과정 및 교과서를 검토하고, 이를
재구성하는 작업을 통해 행복한 수업을 만드는 대안 교과서를 개발하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추천 : 서울대학교 뿌리깊은 역사나무
역사 연구와 역사 교육의 성과를 널리 알리기 위해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 김태웅 교수님과
대학원생들이 만든 모임입니다. 학교 선생님, 학생 그리고 역사에 관심 있는 시민과 더불어 오늘의 역사 교육 문제를 풀어 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벼루는 먹을 곱게 갈아 내어 먹물을 만들지만
자신은 잘 닳지 않는 돌이었다. 단단한 몸으로 먹의 살을 조금씩 발라내는 강한 돌덩어리였다. 얼마나 먹을 갈았으면 저 야문 돌에 구멍이 날까?
더군다나 단연 벼루를! 허련은 경이로운 눈으로 추사 선생을 보았다.
추사 선생이 이번에도 무심한 듯 말했다.
“한 열 개쯤 구멍을 내
봐야 겨우 보이는 게 있지.”
허련은 구멍 난 벼루를 들어 보았다.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만큼의 구멍에 가장자리는 종잇장처럼 얇았다. 추사
선생이 말했다.
“그만 내려놓고 먹이나 갈게.”
허련은 벼루를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치열한 연습. 이것이었나, 추사 선생의
글씨와 그림이 그토록 자자한 명성을 얻게 된 것이? 허련의 가슴이 뛰었다. 자신도 벼루에 구멍이 나도록 먹을 갈고싶었다. ---
p.43-44
추사 선생의 독서량과 연습량은 실로 엄청났다. 부지런하고 열성적인 것으로는 누구에게 뒤져 본 적이 없던 허련이지만
잠깐의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는 추사 선생의 근면함에는 혀를 내둘렀다. 추사 선생은 획 하나, 글자 하나를 수십 번 수백 번 연습하는 연습
벌레였다. 누구나 알아주는 대가가 되고서도 끊임없이 뭇...벼루는 먹을 곱게 갈아 내어 먹물을 만들지만 자신은 잘 닳지 않는 돌이었다. 단단한 몸으로 먹의 살을 조금씩
발라내는 강한 돌덩어리였다. 얼마나 먹을 갈았으면 저 야문 돌에 구멍이 날까? 더군다나 단연 벼루를! 허련은 경이로운 눈으로 추사 선생을
보았다.
추사 선생이 이번에도 무심한 듯 말했다.
“한 열 개쯤 구멍을 내 봐야 겨우 보이는 게 있지.”
허련은 구멍 난 벼루를
들어 보았다.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만큼의 구멍에 가장자리는 종잇장처럼 얇았다. 추사 선생이 말했다.
“그만 내려놓고 먹이나
갈게.”
허련은 벼루를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치열한 연습. 이것이었나, 추사 선생의 글씨와 그림이 그토록 자자한 명성을 얻게 된
것이? 허련의 가슴이 뛰었다. 자신도 벼루에 구멍이 나도록 먹을 갈고싶었다. --- p.43-44
추사 선생의 독서량과 연습량은
실로 엄청났다. 부지런하고 열성적인 것으로는 누구에게 뒤져 본 적이 없던 허련이지만 잠깐의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는 추사 선생의 근면함에는 혀를
내둘렀다. 추사 선생은 획 하나, 글자 하나를 수십 번 수백 번 연습하는 연습 벌레였다. 누구나 알아주는 대가가 되고서도 끊임없이 뭇 명필들의
서체를 감상하고 연구하며 자기만의 서체를 만들어 나갔다. 스승의 문 안에는 배울 게 많았다. 허련은 우러르는 마음이 절로 생겼다. 추사 선생은
무심한 듯 책이나 화첩을 허련에게 건네주기도 했다. 허련은 그것을 황송하게 받아 꼼꼼히 읽고 살폈다. 그러면 그것이 그때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임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뿐, 추사 선생은 손님 누구에게도 허련을 제자라고 소개하지는 않았다. 허련은 혼자 있는 시간은 한 시각도
아껴서 책을 읽고, 화첩을 보고, 그림을 그렸다. --- p.68
그림에 미치고 학문에 목말라서 먹으로 양식을 삼아 살아온
세월이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는가? 아니었다. 알고 보면 젊은 날, 세상에 인정받으려고 얼마나 애썼던가? 조선 땅 끄트머리 한 귀퉁이에서 까마득한
조선의 중심부를 바라보며 욕심냈었다. 고향과 가족을 던져두고 무수히 오르내렸던 한양길, 사대부가의 높디높은 솟을대문 앞에 서면 어쩔 수 없이
위축되던 자신의 모습에 울컥한 적도 많았다. 그 욕망을 추사 선생은 탓하지 않고 받아 주었다. 욕망해야 이룰 수 있다며 격려해 주고, 기꺼이
디딤돌이 되어 주었다.
‘스승님!’
허련 영감은 가만히 추사 선생을 불러 보았다.
“압록강 동쪽에 너만 한 사람이
없다.”
바람결에 추사 선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나 제자 삼지 않는다고 인색하게 굴던 추사 선생이었으나 결국 최고의 칭찬을 해
주었다.
“하하하, 네가 나보다 낫구나.”
추사 선생이 껄껄껄 웃었다. 허련 영감은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래, 스승의 칭찬
하나면 충분하지 않은가? 내 스승이 누구신가? 바로 추사 김정희 선생 아니신가!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