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암집 제4권 / 유사(遺事) / 군수 성공 유사〔郡守成公遺事〕
공의 휘는 몽열(夢說)이다. 글을 잘 지었으며, 가정 무술년(1538, 중종33) 별시에서 장원으로 합격하였는데, 그가 지은 대책문이 사람들 입에 회자되었다. 함양과 영천(榮川)의 군수를 지냈고, 후사가 없이 일찍 세상을 떠났다.
과거에 급제하여 고향으로 내려올 적에 형부랑(刑部郞)으로서 충주를 지났는데, 충주 목사가 융숭하게 대우하였다. 다음 날 새벽에 말도 없이 일찍 출발하여 안보역(安寶驛)에 이르러 아침밥을 먹는데, 아름다운 여자종이 말을 달려 뒤따라 왔으니, 어젯밤의 방기(房妓)였다.
목사가 보냈는데 반드시 과거에 새로 급제한 사람의 절구시를 받아 돌아오고, 받아 오지 못하면 태형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다. 방기가 묵는 곳까지 따라 가기를 원하였지만, 곧 붉은 저고리를 벗어 뒤집고서 안쪽에 절구 한 수를 써 주어서 돌려보냈다. 첫 구에 읊기를 “삼베옷을 비단옷으로 갈아입고 돌아오다가, 아름다운 여인이 말을 달려오는 것 놀라 바라보네.〔麻衣換著錦衣回 驚見佳人走馬來〕”라고 하였는데, 다음 구절은 생각나지 않는다. 목사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지만, 당시 인물의 기상을 상상할 수 있다.
부인은 박씨로, 서리 맞은 대나무 같은 지조가 있어 평생 소복을 입었고, 사람들과 말을 주고받지 않으니 고을 사람들이 칭찬하였다.
[주-D001] 가정 무술년 :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에 의하면, 성몽열은 기해년(1539, 중종34) 별시 갑과(甲科)에 장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주-D002] 안보역(安寶驛) : 현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안보리에 있었던 안부역(安富驛)인 듯하다.
ⓒ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남명학연구소 | 정현섭 (역)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