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서집(巖棲集) 조긍섭(曺兢燮)생년1873년(고종 10)몰년1933년자중근(仲謹)호암서(巖棲), 심재(深齋)본관창녕(昌寧)초명인섭(麟燮)초자노견(魯見)특기사항문박(文樸), 이건창(李建昌), 김택영(金澤榮), 황현(黃玹) 등과 교유
巖棲先生文集卷之二十六 / 碑 / 巨濟金縣令峙碑 癸亥
巨濟舊甞爲縣。其守曰令。縣之北有金縣令峙。東語謂嶺曰峙。始金侯大器以肅宗戊辰令是縣。相縣北有山而無道路。行者病其阻。於是以民治而道之。旣成人以爲便。無何民有疫者。按使以非時役民以致疫。爲令之咎。侯坐以被黜。然民猶追思之。名其路曰金縣令峙。其後侯之子孫又來寓于縣。遂爲縣人。至是謂先祖遺蹟在是。而久則或泯也。謀立石以識之。後孫季潤主其事而徵辭於余。余謂古之能興大利者。未甞不勞民也。一勞而永寧之。雖王道不過是也。故曰以佚道使民。雖勞不怨。金侯之峙玆縣甫六月矣。而能使民以此思詠之。至數百年不衰。則非其得爲政之體者能然乎。而或者乃以小眚而疵之。不亦陋哉。余甞病吾邦治具之不修。諓諓然以文法格人之有爲。而卒至於啙窳顚隮。故於其請也。爲書其說如此。俾刻之以示後之爲政者。
암서집 제26권 / 비(碑) / 거제 김현령치 비 계해년(1923) 〔巨濟金縣令峙碑 癸亥〕
거제는 전에 현(縣)이었고, 그곳 수령은 현령(縣令)이었다. 거제현의 북쪽에는 김현령치(金縣令峙)가 있는데, 우리나라 말에 고개〔嶺〕를 치(峙)라고 한다.
처음에 김 현령(金縣令) 대기(大器)는 숙종(肅宗) 무진년(1688, 숙종14)에 거제현의 현령으로 부임하여, 고을 북쪽 산에 도로가 없어서 다니는 사람들이 가로막혀 있는 것을 근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백성들을 동원해서 길을 내었고, 길을 내고나서는 백성들이 편리하게 생각하였다. 얼마 뒤에 백성들에게 전염병이 도는 일이 있게 되자, 관찰사가 철이 아닌 때에 백성들을 동원해서 전염병이 돌게 만든 것은 수령의 잘못이라고 하여 김 현령은 그 죄로 파직되었다. 그러나 백성들은 도리어 지난 일을 생각하여 그 고갯길을 김현령치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 뒤 김 현령의 자손들이 또 거제에 와서 우거(寓居)하다가 마침내 거제현 사람이 되었다. 지금 그 후손들이 선조의 유적이 이곳에 있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면 혹 사라져버릴 것이라고 생각하여, 비석을 세워서 기록해둘 계획을 하였다. 후손 계윤(季潤)이 그 일을 주관해서 나에게 비문을 지어달라고 부탁하였다.
옛날에 커다란 이익을 주는 일을 일으키는 사람은 백성들을 힘들게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 차례 힘들게 해서 길이 편안해진다면, 비록 왕도정치를 행하더라도 이렇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맹자(孟子)는 “편안하게 해주는 방법으로 백성들을 부린다면, 비록 힘이 들더라도 원망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김 현령은 거제현에서 6개월 정도 재직하는 동안 고갯길을 내었고, 백성들이 이 일을 잊지 않고 그를 그리워하게 만들어 몇 백 년이 지나도록 그러한 마음이 줄어들지 않게 하였으니, 정치를 행하는 본령을 터득한 사람이 아니라면 이렇게 할 수 있었겠는가. 어떤 이들이 작은 잘못을 가지고 흠을 잡는 것은 또한 치졸하지 않은가.
우리나라는 정치 제도가 잘 갖추어지지 않아서, 일을 하려는 사람을 교묘하게 법령을 가지고 가로막다가, 끝내는 흠집을 내고 이지러트리고 넘어뜨리고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전부터 병통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비문을 지어달라는 부탁을 받고, 김 현령의 일을 이와 같이 기록하여 비석에 새겨서 후대에 정치를 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게 한다.
[주-D001] 김현령치(金縣令峙) : 지금의 경상남도 거제시의 중심부인 고현동 일대와 조선 시대 거제현의 읍치(邑治)가 위치했던 거제면을 동서로 가로 막고 서 있는 계룡산을 넘어가는 고개이다. 김현령고개라고도 한다.[주-D002] 김 현령(金縣令) 대기(大器) : 김대기(金大期)를 말한다. 그는 조선 숙종 27년(1688)에 거제 현령으로 부임하여 그곳 계룡산을 답사하고, 거제를 동서로 오갈 수 있는 길을 내었다. 그러나 백성들을 길을 내는 공사에 동원하였다는 죄목으로 귀양을 가고 말았다. 후일 거제 유림과 김대기의 후손들인 의성 김씨 문중이 힘을 합쳐 조긍섭의 이 글을 받아 세운 비석이 지금의 경상남도 거제시 고현동 서문 김실령고개에 서 있다.[주-D003] 고을 북쪽 산 : 조선 시대 거제현의 북쪽, 지금의 경상남도 거제시 중앙에 위치한 계룡산을 말한다.[주-D004] 편안하게 …… 않는다 :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나오는 말이다.
ⓒ 부산대학교 점필재연구소 | 정석태 (역)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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