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두 의학박사의 요양병원 이야기(103)
생모
“환자를 서울에서 모시고 오는데 부산역에 저녁 9시에 도착한답니다.”
밤 10시나 되었을까? 70대 후반의 여성 환자가 우리 병원 차를 타고 도착하였다. 환자가 잘 걷지를 못해 휠체어를 대기시켰는데 아들이 모친을 업고 들어왔다. 입원 수속할 때 보호자 서명을 하라고 하니 아들은 한사코 자신은 보호자가 아니라고 말하며 환자는 무연고자라고 말하였다. 어쨌든 보호자가 보증 서명을 하지 않으면 입원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하자, 보호자는 ‘환자 아들의 친구’라고 적고 서명을 하였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사정이 딱하였다.
환자가 보호자의 생모이긴 한데 어릴 때 어머니가 자기를 버리고 집을 나갔다고 한다. 아들이 성장하여 결혼도 하고 살다 생모가 그리워 수소문을 하여 찾아보니 모친이 산언덕 달동네에서 병들고 가난하게 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우리 병원에 모시고 온 것이다.
병든 모친을 재워주고 먹여주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모친은 파킨슨병으로 거동도 불편하고 치매도 있어 자주 넘어져 머리를 다친 적도 있다. 다칠 때마다 아들이 와서 큰 병원에 모시고 가 정밀검사도 하고 치료도 하고 온다.
모친은 가슴속에 맺힌 것이 많은지 절대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주위 사람을 경계하고 거리를 두었다. 한 번은 모친이 침상에서 내려오다 넘어져 대퇴골 골절상을 입었다. 보호자이길 거부했지만 아들에게 연락하니 금방 달려와 큰 병원으로 모시고 가서 수술을 받게 하고 다시 모시고 왔다.
2차병원에서 골절수술하고 2주 정도 입원하는데 천만 원 정도 치료비가 나왔는데 전액 보호자가 부담하였다. 국가에서 일방적으로 정하는 의료 수가는 1년에 1~2%밖에 오르지 않아 물가상승률에 턱없이 못미친다. 입원생활 중 낙상하여 골절이 되면 수술비 등은 전액 본인과 보호자가 부담해야 한다고 입원시에 서약서를 받는다.
“어릴 때는 나를 버린 어머니가 너무 미웠습니다. 결혼을 하고 자녀들을 키워보니 차츰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집을 나갔겠지요.”
모친은 걸음걸이가 불편하여 물리치료실에서 재활치료를 받는다. 필자가 담당의사가 된 지 3년이 되었지만 한 번도 웃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이분을 만날 때마다 늘 등을 두드려준다. 등을 두드린 지 3년 만에 하루는 이분이 빙긋이 웃음을 지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 한번 마음의 문을 여니 자주 웃음을 보인다. “원장님, 제가 처음에 왔을 때 그 병실에 가보고 싶습니다.” 보행기를 밀면서 병실을 찾아 3년 전에 같이 있었던 동료들을 만나 손을 잡고 웃기도 한다. 아들을 버린 마음의 상처와 죄책감이 얼마나 컸을 것인가. 3년 만에 돌아온 환자의 웃음소리에 간호사와 요양보호사, 물리치료사 등 의료진도 크게 보람을 얻는다.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아이를 버리고 떠났지만 어머니는 어머니였다. 버림받았지만 아들은 아들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정신적, 육체적 연결 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모친은 이제 80이 넘었다. 모친이 치매에 걸려 아들을 못 알아보기 전에 아들이 ‘어머니, 이제 용서합니다’하고 모친을 껴안아주는 모습을 보고 싶다.
요즘은 결혼한 세 쌍 중 한 쌍이 이혼을 할 정도로 이혼율이 높다. 환자를 치료하면서 상담을 해보면 같이 사는 것보다 이혼하여 따로 사는 것이 부부에게도 자녀에게도 행복한 경우가 있다.
한 번은 며느리가 아이를 버리고 달아나 할머니가 아이를 키우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아이의 할아버지와 상담한 적이 있다.
“손자를 제 아들로 입양시키려고 하는데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이혼한 아들도 홀가분하게 새 출발을 할 수가 있을 것이고 손자에게도 내 재산을 직접 나누어 줄 수 있으니 좋을 것 같아서….”
“아, 그런 방법도 있군요.”
조부모와 손자로 구성된 가족을 가끔씩 본다. 가정을 꾸려 살다 보면 세상의 풍파를 맞기도 한다. 부모가 헤어져 산다면 할아버지, 할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사는 것이 차선의 방법이 되기도 한다.
결혼생활은 서로의 희생과 부단한 노력이 없으면 깨어지기 쉽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시집가는 딸에게 ‘죽어도 그 집 귀신이 되거라’하는 말을 어릴 때 자주 들었다. 이혼할 때는 잠깐 통쾌할 수가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후회하게 되고 주위의 시선에 힘들어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이혼하기 전 1년 정도 별거생활을 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