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증*
벽과 벽 사이에 말의 미라가 각질을 떨군다
언제부턴가 잠긴 문지방에 쌓인불만지수 실시간 질문에악플을 단다
방이 궁금한 별빛이 들어오지 못하는 밤 야근하는 자판의 일터에서 어제의 잔상이 점묘로 빛을 내며 배꼽 토닥거리면서울고 있다
갈피를 못 잡는 붓질 퉁명스런 벽의 옆구리를 스치며 잠의 커튼을 슬쩍 들어 올린 동공의 가장자리가 파문처럼 퍼지는데 까맣게 그을린 우주의 변방인 듯 퇴화된 지느러미가 문을 두드린다
무슨 먹이를 끼우고 싶니? 바위틈을 빠져나가는 은어소리 나비처럼 팔랑팔랑 두드리다 돌아간 방문 앞에서 천년을 살았던 얼룩을 떼어 낚싯밥을 달았다
번쩍이는 유리벽한가운데 은빛 아이섀도가칠해진 날개를 찾으려 두리번거릴 때
버릴 수 없는 허물의 그림자에 깔려 눈앞에서 웽웽 버둥거리던 벌레 똬리처럼 만 몸으로 벽 속에 숨어 눈을 감는다
좁은 길
서리 낀백지 앞에 섭니다 바늘구멍을 드나들던 개미들이 외쳐요 댕글링 귀고리가 팔랑거리면 좁고 깊은달팽이관에서 죽어간 사과나무 씨앗을 뿌리라고 버리고 온 방에서 자란 설익은 간증이 갈대로 엮은 바구니를 꿰뚫어요 녹스는 서재의 신음으로 홀린 고물상 돈이 안되요 고개를 흔들흔들, 칠을 벗기는 액자 등 뒤에서 더듬이를 뻗은 종이가 가장자리를 말리는데 죄지은 자를 불러 모았던 당신은 껍질을 벗겨야 가벼워진다며 구부리고잘라내라 조릅니다 눈물이 가득한 액자를 비틀어 침략자의 열쇠를 뽑아냅니다 소금 기둥이 굳은 어제가 뒤통수를 잡을 때 뒤돌아보지 말라고 차임벨을 울리던 손 폭식한 보자기를 묶으려 거짓말을 했어요 귀 터진 박스들이 까치발을 들고 탈출할 입구를 물어요 꼬리를 흔들며 중얼거리는 수화로 리셋 버튼을 누를 때 금식으로 말라붙은 귀로는 타박 한마디 구겨 넣지 못한다고 비틀거리는 발자국 하나가 붉게 찍힙니다
그을린 얼굴
황달기 번져가는 피부를 바라보며, 소리잃은 경보기 달궈진 환부를 식히려 기 쓰고촉수를 뻗는 연기에 무뎌진 입을 가린다
명품 누룽지의 명성에 산파를 자처하더니 제 몸에 불을 붙이는 가스레인지, 모처럼스위치를 돌리고는 검게 그을린 아궁이처럼은 안 될 거라며 냄비를 들썩거리는데
감쪽같이 틈새를 메운다는 광택제도 마다하고 삼십 년을 견뎌온 벽, 고령에도 반들거리는피부를 자랑했지만 머릿속 회로는 눌어붙고 서슬 퍼렇게 떵떵거리던 가오가 사라진 순간 난데없이 나타난 회색 커튼이 저녁의 배후를 가린다
백옥 피부를 자랑하던 여자 남편의 날개 되어 동행한 막다른 골짜기 수명 다한 전구처럼 깜박거리면 고랑을 비상하던 날갯죽지에 실밥이 투두둑 얼굴을 붉히고 파김치 되어 뒤척이는 밤마다 단선의필라멘트 꾸벅꾸벅 잠이 들 때
붉게돋은 반점 위로 구불구불문턱을 넘는 검은 꼬리 누렇게 타들어가는 담벼락의 숨구멍을 더듬는다
거울
물려온 발자국을 멈칫거리며, 뜯어내는 입구
시들은 안색이 발등의그림자를 놓친다 속이 들여다보이는 눈동자에 옷걸이를 거는데 쩍, 충혈된 눈금이 벌어진다
이마를 쓸어 올려 그늘을묶었다 오른손의 욕설을 왼손으로 되받는 스토킹, 썩어가는연민을 언젠가 도려내리라 작정하는 순간 말을 걸어오는 일란성 초상화
얼굴을 할퀴고 눈동자를 파내고 짓무른 다크써클을 비벼내자 배꼽에 거울을 붙인 현재가 멍든 마스카라를 지워낸다
바깥을 단절시킨 얼룩 전시장 사각 발톱을 선물 받은 캣 워킹에 내려않는 등뼈를 곧추 세운다
부식되는 모서리를 벗어나려는 검불의 반사광이 경련을 일으키는 순간 머리카락을 고정시킨 진주핀의 기억이 반짝 떨어져나간다
초점을 잃고 재빠르게 달려 나가는 출구는 다리가 없다
황금 미끼
사거리로 뻗어간 무선 낚싯줄 달콤한 찌들이 옷깃 세운 식욕을 낚는다
빼앗긴 핏덩이를 잊어버리려 쉴 새 없이 알을 배는 대리모, 신물 일으키는 식탐 카르텔의 미끼로 던져질 새끼들이 빵틀에서 쓰린 속을 채우는데 뼈가 튀어나온 알찬 복제어는 뱃가죽 두둑하던 잉어의 후손 낳자마자 품절이다
속 비치는 속물과는 결이 다르다는 원조 도미빵 바다 건너온 두툼한 육질의 기억 화석처럼 각인된 혀끝에서 오도독거리는 복고의 맛, 몸통보다 기다란 지느러미가 부서진다
각 세운 추위가 팽팽한 바닥 줄을 끊어놓을 때면 열 받아 펄떡이는 머리를 씹으며 부러울 거 없다는 표정 거품 문 왕년의 내력에 침을 튀긴다
적당히 쌀쌀한 물 좋은 날, 초보딱지 태우며 고수를 꿈꾸는 낚시꾼
흐물거리는 찌꺼기를 꾸역꾸역 가슴에 채워 넣고 봉투 속으로 구겨 넣는 빳빳한 황금 아가미에 파랗게 이글거리는 눈빛
바삭, 살 오른 붕어를 밀어낸다
이혜정 약력
이화여자대학교 졸업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과정 수료 동서 문학상, 국민일보 신앙시, 최충문학상 입상 2022 시현실 신인문학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