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가을날 도산국민학교 가을운동회(1972)" 중에서~ (아름다운 사람들 : 이재일 - 안계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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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前略)~
류귀현 선상님께서 곱고도 아리따운 율동으로 1학년들과 함께 한 무용놀이(우리들은 1학년 어서어서 배우자 학교 마당 참새들아 같이 배우자~)가 끝이 났다. 운동장에 모여 있는 모든 도산골 사람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항곡 목실골에서 조동골과 도산서원과 부내(분천동) 동네를 지나 이안(예안) 장터까지 울려 퍼질듯한 굉장히 큰 박수 소리였다.
다음 게임의 순서를 진행하기 위해 안계화(2-1반), 이재일(2-2반) 선상님께서 2학년 아이들 앞에서 두 분끼리 서로 마주보고 연신 서로 눈웃음을😄😆😍 지으시며 "오자미로 박깨기 놀이"를 준비하고 계셨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우리들은 두 분의 눈에 각중에 먼지가 들어가서 저렇게 마주 보시면서 살갑게 눈을 맞추며 서로 눈을 깜빡이는 줄로만 알았다.
이윽고 다음 게임에 대한 진행 상황이 마이크로 크게 울려 퍼졌다.
"다음 행사 순서로는 우리 귀여운 2학년 학생들이 '오자미로 박깨기'를 하는 놀이가 있겠습니다. 안계화 - 이재일 선상님께서는 두 분끼리만 절때로 아무도 없는 딴 데로 가지 마시고 워엣든지 각자의 자리를 꼭 지켜 주시고 시시만큼 제자리에서 확씨리 아들(아이들)을 준비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외진 귀신교실이나 아무도 없는 뒷뜰 묘목장으로는 절때로 두 분끼리만 가시면 안됩니다. 큰 일 납니다. 그곳은 아주 위험한 곳입니다." 가을운동회 행사를 총괄 진행하고 계시는 이동섭 선생님께서 마이크에 대고 큰 목소리로 "두 분 끼리만 워데로 가면 위험하다."는 말씀만 되풀이 하여 여러 번 방송을 했다. 천지도 모르는 우리는 마이크가 고장난 것도 아닌데 왜 자꾸만 같은 말씀을 하시는가 하며 의아해 했다. 그리고 이 벌건 대낮에 아이들도 아닌 두 분의 선상님이 같이 어디를 간들 그게 뭐가 그리 위험한 일일까 하며 더욱 의문스러웠다. 도산골에 사는 호랑이들은 이미 옛날에 왜놈들이 다 잡아가서 위험한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가 위험하단 말인고?" 우리들은 어린 생각에 아마 귀신교실에는 "여러 놈의 귀신들이 다 모여 살기에 외진 곳으로 오는 사람을 마구 잡아먹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어설프게 할 뿐이었다.
도산골 어르신들이 갑자기 웅성거렸다. "거참 벌건 대낮에 보는 눈도 쎄밸랬는데 대체 두 분끼리만 딴 데로 워데로 간단말인고~ 거 참~ 거 참~ 허허~ 선남선녀들이 외딴 데로 둘서만 가면 본시 엄청 위험한 것이여~ 호랭이 저리 가라 할만콤 억시로 위험한거여~ 벌건 대낮도 다 소용없당께~ 성춘향과 이몽룡도 거시기 뭐 아무도 없는 물레방깐 그네 아래서 고만 거시기 해서 절단 났땅께~ 뭐 알기도 혀~ 허허 참~ 디따 거시기 하네 그려~ 그~ 그~ 그런말 있짠능가 '남녀칠세 지남철'이라고~ 거 참~ 거 참~ 그려 그려~ 선남선녀들을 거시기 해 놓면 거시기 해 져서 거시기 나뻐린 당께~~." 급기야 운동회를 구경하고 있던 도산골 아지매들까지도 소곤소곤대기 시작했다.
"야들아! 예쁜 우리 담임 안계화 선상님을 우리가 단디 지키재이~ 허술히 지켰따간 큰 일 났뿐데이~ 뒷감당 절때 못한데이~ 절딴 난데이~ 운동회고 나발이고 당장 당번부터 정해서 두 눈 부릅뜨고 우리 고운 선상님부터 단디 지켜야 된데이😅😂🤣~."
(결국 우리는 고운님을 단디 지키지 못한 탓에 그만 절딴이 나버려서 두 분의 러브 스토리는 꽃이 피어 아름다운 인연을 맺으셨답니다.)
2학년 때 우리 담임이셨던 참 고왔던 안계화 선생님은 이재일 선생님과 마침내 해피하게도 천생연분을 맺으셨습니다. 우리가 가을운동회 때부터 순번을 정해가며 담임 선생님을 두 눈 부릅뜨고 억수로 단디 지켰지만 다 소용이 없었습니다. 도산 마당에서 벌어진 사랑의 힘은 자연 수업 시간에 배운 말굽지남철 보다도 끌어당기는 힘이 더 쌨고 커다란 운동장에 서 있던 엄청나게 큰 플라타너스 나무보다도 더 높았고 대사 동네에 있는 칼선대(갈선대) 보다도 더 견고했습니다. 아니 원촌 흥구가 운동회날 담임 선생님을 단디 지켜야할 차례 때 그 놈의 솜사탕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단디 못 지킨 결과가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낙원을 이재일 선생님께 통째로 갖다 바치는, 도산골에서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아름다운 사건으로 종결되었습니다. 도산골이 수몰된 지 거반 반세기가 지났지만 이 로맨틱한 이야기는 우리들의 기억 속에 그리고 추억 속에 아름다운 전설로 영롱하게 자리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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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이재일 선생님의 연세도 올해로 여든 셋이 되셨으며 지금은 대전에서 살고 계십니다. 몇 해 전 가을 깊은 어느 날(11월), 이재일 선생님께서 이 "도산국민학교 가을운동회" 글을 어찌 어찌 어디서 보셨는지 경희대학교 홈페이지를 다 뒤져서 메일 주소를 찾아 소식을 손수 보내주셨습니다(참고로 경희대 교수는 1500여 명에 이릅니다). "옛날 그때 그 종구가 지금 이 글을 쓴 이(This) 종구가 맞느냐?"고 하시며... 그런 일로 해서 지면이긴 하지만 50여 년 만에 참으로 감격적인 만남을 가졌습니다. "아! 선생님~ 황송하고 감사합니다. 그때는 우리 담임 선생님을 빼앗겨서 몹시 미웠지만 지금은 많이 많이 사랑합니다." 선생님 내외분! 오래 오랫동안 우리들 곁에 강건히 계셔 주세요.
~중략(中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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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내외분의 이야기는 "에세이는 사랑을 싣고~" 그리고 "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등 다수 글에 실려 있다.
♤예나 지금이나 금실이 원앙 같으신 이재일-안계화 선생님의 정겨운 최근 모습이다(세번째~여섯번째 사진). 그리운 은사님이자 사진으로만 뵈도 향수를 가득히 불러오는 옛어르신들이다(첫번째 사진은 1972년 53회 선배님들의 졸업 앨범에 있는 두 분의 모습. 1972년 두 분께서는 우리 2학년들의 1반과 2반의 담임을 각각 맡고 계셨다). 안계화 선생님의 고우신 모습은 반 세기가 흘러간 세월도 무색하다(세번째 사진). 강건하신 모습이다.
우리 마을 부내(분천동) 동네 풍산할매(동창 권택윤이네 외할머니)가 이모님이 되시는 이재일 선생님(2-2반)은 1972년 우리들이 2학년 때 담임이셨던 안계화 선생님(2-1반)과 갓 결혼하시고 얼마 되지 않아서 인사차 분천동에 오셨을 때 온 동네가 난리가 났었다(두번째 사진). 우리는 저녁에 새색시인 담임 선생님을 보기 위해 풍산할매네 큰 기와집 안채 넓은 마루로 마실 어른들과 함께 마구 우르르 몰려 갔었다. 그때 마냥 부끄러워 하든 새색시 우리 선생님의 곱단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린 아이였던 우리들이 보기에도 참 고왔던 모습이었다.
일생을 살아가는 가운데 선남선녀인 연인들이 한 학교 지붕 아래 지근거리인 옆 교실에서 함께 근무한다는 것이 얼마나 로맨틱한 일인가! 이태 전에 이재일 선생님께 여쭤 보았다. "우리 안계화 선생님 처음 보았을 때 어떠셨어요?"라고 물었더니... "사람이 아닌 천사였다."고😄😆😍~~
첫댓글 건강해 보이시는 모습이 좋아요~
벌써 여든이 넘으셨다니 세월이 빠르네
하기야 우리들 나이가 벌써 환갑때이니.
건강하시고
인자하신 두분 선생님 모습이 보기에 너무 좋습니다
늘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