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부자의 아들과 제침공의 딸 석존께서 사위국의 기원정사에 계시면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설법(說法)할 때의 일이었다. 제침업(製針業)에 종사하여 바늘을 만드는 기술이 그 당시에는 그를 따를 자가 없다고 할 만큼 훌륭하고 뛰어난 사나이가 있었다. 그에게는 바라나시성 안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할 만큼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이와 같이 용모가 비길 데가 없이 아름다운 딸에게 성안의 청년들은 물론 원근에 있는 젊은이들은 남모르게 사모하는 생각으로 불태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 성 아래에는 제일가는 부잣집에 또 성안에서 제일가는 미남자라고 칭찬을 받는 아름다운 한 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의 일인데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 요염한 모습을 한 눈으로 본 그는, ‘이 사람이 소문난 바라나시의 미인이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 뒤에 집에 돌아와도 그녀의 일이 잊어지지 않고 매일 홀로 한 방 안에 들어앉아서 생각에 잠기고 말았다. 그는 마침내 결심하고 어느 날 부모님을 찾아가서, “갑자기 이런 말씀을 드리면 반드시 노여움을 받을 것으로 생각하오나 저는 어느 제침공의 딸을 마음속으로 사모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그 딸과 결혼을 하고자 합니다. 어쨌든 허락하여 주십시오.” 하고 허물없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부모에게 고백해서 그 사모하는 괴로움을 해결하려고 했다. 부모는 아들의 이와 같은 갑작스럽고 더욱이 엉뚱한 요청을 듣고 놀랐다. “너는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신분이 낮은 직공의 딸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가문과 자산이 좋은 우리 집에는 맞이할 수가 없다. 천한 집과 인연을 맺는 것은 우리 가문을 더럽히는 것이다. 모처럼의 희망이기는 하나 그것만은 들어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들은 부자든지, 대신이든지, 모든 거사(居士)라든가 훌륭한 신분을 가진 집의 딸을 너의 아내로 맞이하려고 물색하고 있다.” 하고 완고한 사상에 젖어 있는 부모는 외아들을 소원을 거절했다. “말씀을 어기는 것은 황송합니다만 저는 가문이라든가 지위라든가 자산이라는 것 등은 결혼의 첫째 조건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충분히 사랑할 수 있는 여성일 것이 결혼의 첫째 조건입니다. 명예라든가 지위라든가 자산이라는 것은 둘째 문제입니다. 부디 그 딸을 맞이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만약 이 희망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저는 자살하고 말 것입니다.” 하고 그는 강경하게 말했다. 외아들의 이와 같이 강경하고 더욱이 열렬한 희망을 들은 부모는 자살한다는 말에 강렬한 자극을 받아서 가문•자산•지위 등을 따지고 있다가는 귀여운 아들을 잃게 된다고 생각하여 몹시 고민했다. 그 결과 아들의 생명과 가문이라는 것과는 도저히 바꿀 수 없을 만큼 아들의 생명이 중요한 것을 알고 아들의 생명을 잃을 것을 두려워하여, “네가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있다면 따지지 않겠으니 너의 희망대로 하자.” 하고 마침내 허락했다. 아들은 드디어 안심하고 부모에게 단정히 예의를 갖추어 자기방으로 돌아왔다. 부모는 재빨리 사람을 보내서 그 딸의 아버지인 제침공을 집으로 불렀다. “갑자기 당신을 부른 것은 다름이 아니요. 당신의 딸을 나의 아들과 결혼하게 하지 않겠소?” “부자님의 각별한 말씀이오나 저는 직공이고 이 댁은 백만장자이기 때문에 맞지 않는 혼사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딸은 동업하는 사람들의 젊은이가 아니면 결혼시키지 않으려고 하오니 허물하지 마시고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하고 거절했다. 부자의 생각으로는 성안에서 제일가는 자신의 청혼을 곧 승낙할 줄 알고 고자세를 취해 왔으나 이와 같이 거절당하자 뜻밖의 일에 놀랐다. “당신은 무슨 까닭으로 제침공이 아니면 결혼시키지 않으려고 합니까? 우리 집으로 출가하면 더위와 추위의 고생이 없고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아무것도 부자유스러울 것이 없는데 그것이 싫습니까?” “자산이 풍부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같은 신분을 가진 자를 구하고 있습니다. 비록 같은 업에 종사하고 있지 않더라도 적어도 저의 직업에 동정과 이해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딸을 주겠습니다. 자신이 없더라도 손에 기술을 익힌 사람이라면 저의 직업과 맞는 것입니다. 저는 신분과 지위와 계급 같은 것은 귀여운 딸의 결혼 상대로서 별로 고려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말하고 제침공은 부자의 간청을 거절했다. 아버지는 손님이 돌아가자 곧 아들을 불러서 그쪽의 의견을 그에게 전하고, “그러한 형편이므로 너도 그 결혼은 단념하는 것이 좋겠다.” 하고 권고했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그는, ‘이것은 내가 그 사람이 하고 있는 제침술(製針術 : 바늘을 만드는 기술)을 연구하는 것이 선결문제이다. 어쨌든 한 사람이 훌륭한 제침공이 되어야 하겠다.’ 하고 결심했다. 그 후 그는 몰래 제침 기술의 연구에 몰두했다. 그 결과 그는 몇 개월 후에는 많은 바늘을 만들게 되었다. 그는 그 바늘을 기름으로 닦아서 깨끗이 해서 그것을 한 묶음으로 해서 대나무통에 넣고 그 제침공의 집 가까이의 길거리에 서서, “명장이 만드는 빛나는 바늘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하고 자기가 만든 바늘을 길가에서 팔기 시작했다. 제침공의 딸은 창문으로 이 미남의 바늘을 팔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일부러 나와서, “당신은 어리석은 일을 하십니다. 천하의 명장이 우리 집 앞에서 팔다니요.” 하고 그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래서 그는, “아니, 저는 결코 미친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이와 같이 만든 바늘을 팔고 있는 것을 당신의 아버지가 아신다면 반드시 당신의 결혼을 허락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이러한 말을 들은 그 딸은 자기도 마음속으로 그를 좋은 사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이야기가 끝나자 빨리 아버지에게 가서, “아버지 길가에서 이상한 바늘을 팔고 있는 청년이 있습니다. 가 보십시오.” 하고 말했다. 직업에 충실한 아버지는 비록 자기가 이름 있는 명장이라고 할지라도 바늘에 대한 연구에 열성이 있었기 때문에 딸이 시키는 대로 그 청년을 집에 불러들였다. “자네는 실제로 바늘을 만들 수 있는가?” “훌륭한 바늘을 만들 자신이 있습니다.”“그럼 그 바늘을 나에게 좀 보여 주게.” “좀 보아 주십시오.” 하고 부잣집 아들은 대나무통 속에서 한 개의 바늘을 꺼내 보였다. 그 바늘을 자세히 들여다보던 제침공은 “상당히 잘 만들었구먼.” 하고 감탄했다. “그것은 아직 솜씨가 나쁩니다. 더욱 교묘하고 정밀하게 만들어진 것이 있습니다.” 하고 말하면서 다시 다른 한 개를 보였다. “그것 참 잘 되었군.” 하고 칭찬했다. 그래서 청년은 몇 십 개의 바늘을 차례차례로 꺼내 검사해 줄 것을 바랐다. “마직막으로 제가 만든 것 중에서 가장 우수한 것입니다.” 하고 말했다. “상당히 우수한 것이군.” 하고 칭찬했다. 제침공은 바늘을 물속에 넣자 바늘은 물 위에 떴다. 물위에 바늘이 뜨는 것을 보고 그는 매우 기뻐하며, “나는 아직 이와 같이 정교한 바늘을 본 적이 없다. 딸을 자네에게 주겠다.” 하고 기쁨에 가득 찬 제침공은 마침내 바라나시 미인이라고 칭찬을 받던 딸은 이 청년의 아내로 할 것을 쾌히 승낙했다. “그렇습니다. 그럼 저의 희망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실은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하고 부잣집 아들이라는 것과 지금까지 괴로워해 온 모든 것을 낱낱이 고백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은 제침공도 그 열성에 감격했다. 그래서 부잣집 아들은 가문과 직업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그 기술을 연마해서 사랑하는 미인과 결혼할 수 있게 되었다. 부자도 아들의 열성에 놀랐으나 아들의 소망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듣고 점차 안심하고 마침내 길일을 택해서 경사스런 화촉을 밝히게 되었다. 부잣집 아들은 지금의 석존이며, 그때의 미인은 지금의 야쇼다라이다. 〈불본행집경 제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