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들이 5. 함평
2019. 4. 금계
4월 4일, 오늘 봄나들이는 함평이다. 가끔 꽃샘바람이 불기도 하지만 버스 차창을 스쳐가는 들판에는 봄빛이 무르녹았다.
궁벽한 시골 함평은 누군가의 꾀로 나비 축제를 열어 일약 유명세를 탔다.
나비라는 말을 빼고 함평을 논하지 말라.
함평 전통 5일시장이 낡은 건물을 헐어내고 새 단장을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기쁘고 흥겹고 축복받을 일이 건설이다.
나만 봄나들이 나온 게 아니다. 참새들도 기와지붕에 앉아 뜀박질하며 삼천리금수강산에 봄이 왔음을 재잘재잘 쫑알쫑알 뭐라고 뭐라고 알아듣지도 못할 에스페란토어로 앙증맞게 지껄인다.
함평 시내 횟집 수족관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숭어, 참돔, 돌돔.
뜻 맞은 술벗과 함께 왔더라면 회를 떠서 커어, 소주 한 잔 젖히면 기분 좋은 텐데 혼자 어슬렁거리는 것이 못내 아쉽다.
과일가게 색색이 예쁜 과일들을 한 장 찍었더니 주인아주머니가 득달같이 달려 나와,
“왜 찍소?”
“그냥 구경삼아 기념으로.......”
말끝을 흐리며 씩 웃자,
“오메, 환장허겄네.”
함평읍사무소. ‘평화롭고 살기 좋은 함평’
‘제21회 함평 나비대축제. 4.26. - 5.6. 함평엑스포공원’
읍사무소 옆의 공원 입구. ‘함평공원은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나도 환영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공원 올라가는 길. 흐드러지게 핀 벚꽃들이 나그네의 마음을 흥겹게 해준다.
길 왼쪽으로는 여러 가지 내용의 비석들이 즐비하다.
공원의 비석들 가운데 김여사 염소 시혜불망비가 눈에 띄었다.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다.
영광의 鹽所(鹽田)에 살아서 염소부인으로 불렸다. 자식 없는 과부였지만 부지런함으로 부를 이루었다. 모든 재산을 함평군에 기부해서 농중학교(현재의 함평골프고등학교) 설립을 후원했다.
지금의 사립학교 설립자들 가운데 간혹 학교 공금을 유용하는 사람들은 염소부인의 행적을 거울삼았으면 좋겠다.
千家活佛 모든 집마다 살아있는 부처요
一郡生靈 온 군에 생동하는 넋이시다.
今稱廉素 지금은 염소라 일컫지만
百世遺馨 향기로운 뜻은 백세에 이어지라.
함평공원 세심정(洗心亭).
1907년 이동범 건립. 정면 3칸, 측면 3칸 팔작지붕 누각.
함평 공원에서 내려다보이는 함평천의 노거수 왕버들나무.
함평천 강둑에도 개나리가 만발하였다.
함평중앙교회에서 나온 사람들이 길 구석에 천막을 치고 지나가는 나그네들한테 국수 한 그릇 자시라고 권한다. 그러잖아도 배가 출출한 판국인데 이게 웬 횡재인고. 묵은지를 가늘게 썰어 넣어 간도 딱 맞고 맛이 좋다. 생각 같아서는 한 세 그릇쯤 포식하고 배를 쓰다듬었으면 좋을 지경이다.
전지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오늘 저처럼 길 잃은 양한테까지 일용할 양식을 베풀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하나이다. 아멘.
‘꿈과 끼를 키우는 행복한 함평 교육 천지’
함평교육지원청. 제발 우리의 학교들이 입시경쟁에만 매달리지 말고 저 표어처럼 자기들의 희망을 오롯이 키워나가고 자기들의 재능을 개발하는 즐거운 무지갯빛 학교가 되었으면 좋겄다.
나는 저처럼 조금쯤 후지고 시큼하고 허술한 이발소를 좋아한다. 거기에 촌색시가 물동이를 이고 백조가 노니는 호숫가 다리 위를 지나가는 그림이라도 한 장 걸려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나는 조금쯤 정갈하고 아가씨가 턱수염을 정성껏 밀어주는 고급이발소에 들어가면 괜히 죄지은 것처럼 살갗에 닭살이 돋는다.
함평군청 왼쪽에 걸린 현수막.
‘국민이 지킨 역사, 국민이 이끌 나라.’
조금 지나면 함평군청 경계선으로는 줄을 지어 빨간 철쭉꽃이 장관을 이룰 것이다.
길거리에 내걸린 현수막을 보면 요즘 함평군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대강 짐작할 수 있다.
- 입으로는 봉사, 주민 피해 주는 군의원은 축사 건립 철회하라!
- 주민들 생존권 빼앗고 함평군에 이익 없는 축산과학원 유치 반대!
얼마나 팔자 좋은 사람이 이토록 별실까지 따로 있는 기와집에서 호사를 누렸을까.
예전에는 요긴하게 쓰였을 항아리들이 장식용으로 일제히 곤두 박혀 봄볕을 흠뻑 뒤집어쓰고 반들거린다.
꽃가지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함평 시가지.
함평을 상징하는 나비와 무당벌레가 붙어있는 길거리의 기념탑.
이 찻집은 문 바깥에 탁자와 의자와 재떨이를 준비하고 멋진 스파이더맨과 슈퍼맨이 그려진 흡연구역을 마련해 놓았다. 흡연실은 끽연실이라는 말로 바꾸었으면 좋겠다.
함평성당의 성모동산. 예쁜 돌담 집에 모셔놓은 것이 특이하다.
함평학다리고등학교. 함평군은 기존의 골프고등학교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거기에다가 함평군내 고등학교를 통폐합한 새로운 거점 고등학교를 세웠다. 아직 보완공사가 조금 더 남은 모양이다.
새 학교 운동장에서 농구를 즐기고 있는 고등학생들. 부지런히 자라거라. 너희들이 우이들의 희망이다. 학교는 점수를 따는 곳만이 아니다. 운동도 열심히 해서 몸을 키우고 단련시켜야제.
정처 없이 싸돌아다니다가 지나가던 행인한테 한 장 찰칵 부탁했다.
나는 칠순이 넘도록 큰 불편 없이 오만 동네를 싸돌아다니도록 허여해주신 조물주한테 깊은 감사를 올린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전국 농협, 수협, 축협 조합장 일제선거가 있었다.
워따메, 하나면 쓰겄구만 뭘라고 똑같은 플래카드를 넷씩이나 허벌나게 걸어 놓았단가.
오래 걸었더니 조금 피곤하다. 내 발길은 드디어 20여 일 후에 나비축제를 열 함평 엑스포공원에 이르렀다.
무당벌레와 나비를 의인화시켜 놓은 작품인 것 같다.
여기는 완전히 만화동산인 듯.
나비 애벌레, 그리고 애벌레가 갉아먹은 이파리에 달아놓은 가로등.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큰 사마귀한테 걸렸다가는 뼈도 못 추릴 듯.
초롱꽃인지, 방울꽃인지, 거 참, 색깔 한번 고혹적으로 예쁘구나.
나비축제가 열릴 함평엑스포공원 정문.
엑스포 공원 주차장 앞 황소.
함평 버스 공용 정류장. 함평 군민 교통(공영). 언제 짬이 나면 저 꼬마버스를 타고 좀 더 시골스런 곳으로 돌아다녀봐야겄다.
또 가을이면 엑스포공원에서는 국화 축제가 열린다. 사정이 허락하면 그 때도 한 번 구경해야겄다. 오늘도 함평 구경 한번 잘 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