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댄스 영화제 경쟁 부문에 올라간 단편영화 [동화](A Nursery Tale) 한 편을 연출한 것이 경력의 전부인 재미교포 이지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 [내가 숨쉬는 공기]에는, 놀랍게도, 할리우드의 톱 스타들이 줄줄이 캐스팅되어 있다. [라스트 킹]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포레스트 훠테이커, 성격파 배우 케빈 베이컨,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세 가지색 시리즈 중 [화이트]에서 주연을 맡았었고 [비포 선라이즈]로 많은 국내 팬들을 갖고 있는 줄리 델피, 한때 아이돌 스타였던 사라 미셀 겔러, [미이라] 시리즈의 주인공인 브랜든 프라이저, 그리고 앤디 가르시아까지 출연하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캐스팅이 가능했던 것일까? 캐스팅에만 총 2년이 걸린 [내가 숨쉬는 공기]는 원래 한국에서 촬영하려고 했었다. 이지호 감독은 처음에는 한국 배우들을 캐스팅해서 서울에서 촬영할 생각을 갖고 시나리오를 썼다. 그런데 시나리오의 초고를 본 매니저와 에이전트는 완성도가 매우 뛰어나다면서 미국에서 제작할 것을 권유했다.
이 영화의 기본 아이디어는 한국에서 나왔다. [행복][기쁨][슬픔][사랑]이라는 소제목이 붙은 채 별도로 전개되는 4개의 독립된 이야기는 결말 부분에서 서로 서로 연결고리를 갖고 하나의 이야기로 통합된다. 이야기의 핵심인 4 명의 캐릭터를 한국에서 찾은 이지호 감독은 그 캐릭터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고민에 빠졌다. 그의 어머니는, 인간은 희,노,애,락이라는 감정에 빠져 있는 존재이며 인간은 이 4가지 감정에 얽혀 빠져나갈 수 없다고 말해 주었고, 어머니의 말에서 영감을 받은 이지호 감독은 슬플 애를, 사랑 애로 바꾸어 각 인물간의 연결고리를 찾았다. 그리고 여기에다 [오즈의 마법사]의 4명의 주인공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반영해서 [내가 숨쉬는 공기]의 독특한 이야기 구조가 완성되었다.
승마 경기에 거액을 걸었다가 빛더미에 올라간 펀드 매니저는 은행을 털기로 결심한다.(행복) 바로 앞의 미래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남자는 삶이 무미건조하게 변해간다. 그런데 어느날 그 능력이 자신에게서 빠져나갔음을 알게 된다.(기쁨) 또 뛰어난 외모와 가창력으로 주목받는 신인 여가수는 매니저의 빚 때문에 폭력조직이 운영하는 매니지먼트로 타의에 의해 소속사가 옮겨지게 된다. 그녀는 벗어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슬픔) 사랑하는 여자에게 고백할 타이밍을 놓친 남자는 그녀의 주변에 머물며 지켜보기만 한다. 그런데 그녀가 희귀혈액형으로 목숨이 위험에 처하게 되자 미친듯이 혈액을 찾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사랑)
4가지 이야기는 각각 독립되어 있지만 마지막 씬에서 교묘하게 연결된다. 첫번째 이야기 [행복]에서 펀드 매니저 역을 맡은 포레스트 훠태커는 삶의 함정에 빠져 비극적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우울한 남자의 황량한 내면을 뛰어나게 형상화하고 있다. 두번째 [기쁨]에서 브랜든 프라이저는 미소년의 이미지를 벗고 연기파로 변신하려고 한다. 세번째 [사랑]의 사라 미셀 겔러는 락스타 역을 맡아 악덕 폭력 조직의 보스 앤디 가르시아에게 위협당하면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역할을 하고 있다. 4번째에 해당되는 [사랑]은, 의사 케빈 베이컨이 희귀 혈액형을 가진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온갖 어려움을 뚫고 혈액을 구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내가 숨쉬는 공기]에서 이지호 감독은 스스로 카메오로 출연한다. 록스타 역을 맡고 있는 사라 미셀 겔러가 TV에 출연하는 장면에서 스튜디오 FD 역할을 맡아서 얼굴을 선보이고 있다. 이지호 감독이 [내가 숨쉬는 공기]의 낯선 내러티브 장식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타란티노 이후 선형적 내러티브 장식을 파괴하고 해체하여 조각난 이야기들을 퍼즐처럼 맞추는 구성은 다양하게 선보였다. [내가 숨쉬는 공기]에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성실하게 짜맞춘 4개의 이야기 조각들이 어떻게 화답하고 조응하는가 하는 문제보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는 신인 감독의 연출력이다.
현재 이지호 감독은 유하 감독이 연출한 [비열한 거리]의 헐리우드 리메이크를 준비하고 있다. [원작이 매우 아름답기 때문에 원작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살려보고 싶다. 큰 기대를 하고 있다. 시나리오는 [컨피던스]의 스트립터를 했던 교포 작가 더그 정이 맡아서 손질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미국에서 독립영화를 만든 교포 감독은 있었지만 할리우드에 입성한 한국계 감독으로서는 사실상 최초인 이지호 감독은, 지금보다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훨씬 큰 감독이라는 것을 [내가 숨쉬는 공기]는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