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이 못된 놈
눈을 뜨니 새벽 두시 반이다. 찬물에 세수하고 죄복에 앉았다.
투명한 신념,
'이-뭣-고'
큰절 공양 시간이 일곱시인데
혜안 스님이 공양 후에 무문관 대중 공양을 짊어지고 올라오니
우리는 일곱시 사오십분이 돼야 먹을 수 있다.
혜안 스님은 사미인데
신심도 있고 힘도 있어 뵈고 무엇보다 맑아서 참 좋은 느낌이 든다.
오늘은 찬이 꽤 많다.
상추쌈.. 검정콩 조림..단무지가 추가됐다.
'사각사각' 소리까지,
단무지가 이렇게 맛있는 줄 예전에 몰랐다.
아침은 간단히 먹고, 점심은 든든히 먹고, 저녁은 소박하게 먹는다.
운동량이 적기 때문에 공양을 적절히 조절하지 않으면 그날 정진은 실패다.
틈틈이 절을 하거나 운동을 해서 소화도 시키고
꾸준히 자기 관리를 하지 않으면 한 철 견디기가 힘들다
열한시쯤 돼서 잠시 다리를 풀며 차 한잔 했다.
도반이 쌍봉사에서 직접 만든 햇차다.
맛도 좋지만 정성이 고맙다.
한지로 스며드는 따사로운 햇살을 바라보며,
문밖 세상 보이지 않는 온갖 모습들을 하나씩
마음에서 비워내며 고요히 앉아
혼자 따르는 찻물 소리가 마치 천상에서 떨어지는 감로수 소리 같다.
아, 이 행복감! 가슴 가득 밀려오는 선열 (禪悅)
제불보살이시여,
이 한 몸 수행자로 갈아 있게 하심을.
이 한 철 백련사 무문관에서 정진하는 인연을 주심을 눈물겹도록 감사드립니다.
열두시가 다 돼서 방선을 하는데 눈앞 방바닥에 까만 점 하나가 꿈틀했다.
티끌인가 했더니 움직이는 벌레였다.
좁쌀보다 작아 보이는데 방에 들어와서 길을 잃은 듯했다.
조심스레 종이 위에 올려서 문틈 밖으로 내보냈다.
평소 같으면 눈에 띄지도 않았을 텐데 좌선 공덕으로 한 목숨 살려낸 것이다.
산다는 것은 소중한 것이다.
벌레는 벌레의 하늘만큼,
나는 나의 하늘만큼-----.
점심을 먹고 포행하다가 이곳에서 처음으로 뻐꾸기 울음소리를 들었다.
뻐꾸기가 울면 봄이 간다고 했는데 이제 정말 봄이 가긴 가나 보다.
예전에 다큐멘타리를 본 적이 있는데
뻐꾸기는 자기 둥지를 틀지 않고 오목눈이 둥지에 몰래 알을 낳았다.
둥지 주인은 그것도 모르고
열심히 알을 품는데 제일 먼저 부화되는 놈이 뻐꾸기였다.
그런데 이놈은 눈도 채 뜨지 않은 채
본능적으로 주인인 나머지 알들을 등으로 떠밀어 떨어뜨렸다.
어미 새는 그것도 모르고 하나 남은
새끼(?)를 더욱 지극으로 먹이를 물어주며 보살피니
얼마 가지 않아 뻐꾸기 새끼는 어미 새보다 몸집이 더 커졌다.
마치 새끼가 어미에게 먹이를 물려주는 모습 같았다.
그렇게 장성하면
뻐꾸기는 그 은혜를 아는지 모르는지 나 몰라라 하고 제 갈길을 가버린다.
정말 모된 놈이다. 동물만 그런 게 아니다.
사바세계에도 자기만 잘 먹고 배부르면
남이야 굶어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 뻐꾸기 같은 사람들이 많다.
그 지중한 업을 다 어찌할 것인지----.
최소한 남에게 피해는 주지 말고 살아야지----.
오후부터 흐리더니 다섯시경엔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소나기성 비이긴 하나 무문관에서 맞이하는 첫 비다.
가만히 오는 비는 정말 곱기도 하다.
먼저 후박나무 잎을 살짝 밟고 마당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그 소리가 마치 고운 님이 가만가만히 오솔길을 걸어오는 소리 같다.
더위에 축 늘어져 있던 후박나무 잎들이
몸을 살랑살랑 흔들며 반갑게 비님들을 맞이한다.
마당에 피어 있는 자운영 꽃 몇 송이, 토끼풀,
이름 모를 조그만 잡초들도 금방 생기를 되찾으며 샤워를 한다.
저녁 일곱시. 큰 절 저녁예불 종소리가 들린다.
하루 정진 시간 중 새벽 네시부터 한 시간. 저녁 일곱시부터 한 시간이 제일 좋다.
하루의 시작과 끝.
빛이 오는 시간과 돌아가는 시간.
싸한 바람이 문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얼굴에 와 닿는 느낌이 정말 좋다.
주위가 고요해지고 화두도 순일하다.
곁들여 영혼 깊숙히 침잠해 있는 '자성불' 을 불러내는 것 같아 그것 또한 좋다.
저녁 방선 후 자려고 일어서니 세상이 온통 개구리 울음소리로 가득하다.
얼마나 많은 개구리들이 울어쌓기에
이 높은 산중까지 메아리쳐서 수좌의 마음을 흔들어 놓나.
지금이 한창 모내기 철이니 물이 가득한 논에서 제 세상 만난 듯
마음껏 생의 찬가를 부르는 개구리 떼가 한편 부럽기도 하다.
두 손을 모아 귀를 앞으로 기울이니 이런 화려한 개구리 울음 스테레오도 없다.
그래, 실컷 울어라. 신나게 노래해라.
이 순간은 오직 개구리 너희들 세상이다.
6. 2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