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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층
전 광 용
1
박쥐같이 햇빛을 등지고 살아온 칠봉이었다.
낮과 밤을 분간할 수 없었다. 영하 이십 도의 바깥 세계와는 완전히 격리된 굴속이었다. 온기가 서려 훈훈하기까지 하였다.
파이프에서 새어 나오는 에어〔壓搾空氣〕의 숨 가쁜 소리가 그칠 사이 없이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다이너마이트의 폭음이 간헐적으로 굴 안을 뒤흔들고 달아난 뒤는 석탄 부스러기가 머리 위에 튀었다. 동발〔坑木〕1 틈에 괴었던 물방울이 튀어 목덜미에 선뜻한 찬기가 서리다간 등골로 스쳐갔다.
주먹만 한 안전등(安全燈)이 철모(鐵帽) 앞이마에 달라붙었다. 한 줄기 불빛이 자욱한 먼지를 누벼가면 탄벽(炭壁)에 부서지는 반사광이 조각조각 윤기를 띠고 번득였다.
태백산맥의 큰 줄기를 머리에 이고 있는 험산 준봉의 뱃속을 가로질러 꿰뚫은 갱도(坑道) 속이었다.
간선 탄도(幹線炭道) 복판에서 바른쪽 벽을 후비고 밋밋하게 기어올라가는 수백 미터의 사갱(斜坑)을 거슬러 포인트〔分岐點〕 지점에서 다시 옆 굴로 갈라졌다. 파다 버린 폐광구(廢鑛口) 앞에서 왼쪽으로 꺾여 얼마 동안을 꼬불꼬불 들어가 이제 더 갈 곳이 없는 막다른 한끝의 채탄장(採炭場) 이었다.
칠봉이는 쳐들었던 곡괭이를 검은 벽을 향하여 내리찍었다. 곡괭이 날이 젖혀질 때마다 무너지는 석탄 덩어리가 발목을 덮었다. 이제 자가웃만 더 파 들어가면 동발 한 틀을 새로 세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면서 그는 연속 내리박았다.
곡괭이 자리마다 안전등 불빛이 따라갔다. 불빛이 다음으로 옮겨지는 대로 곡괭이 끝은 이동되어갔다.
자칫하면 불발(不發)된 남포 구멍을 다칠 뻔하였다. 착암기를 대고 널찍이 파내야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새로 나타난 암벽(岩壁)을 피하여 약간 구불게 파 들어갔다. 탄맥이 점점 좁아지는 것으로 보아 새로운 줄기를 찾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쪽이 널찍한 곽삽으로 쌓여진 석탄을 퍼서 바닥에 깔아놓은 철판 위로 옮기었다. 이젠 속내의에 땀이 배어 축축해왔다.
레일에 긁히는 쇠바퀴 소리가 아득히 들려왔다. 권 노인이 몰고나간 탄차(炭車)가 돌아오는 상 싶었다.
2
왜정 말엽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미성년 견습 탄부(炭夫)로 들어 와서 해방과 육이오의 두 고비를 석탄굴 속에서 겪은 칠봉이다.
지난 칠석에는 씨름판을 휩쓸고 황소 한 마리를 탔었다.
사끼야마〔先山夫〕라는 탄광 특유의 칭호로 불리는 숙련 광부 칠봉이는 탄광 패들 속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아버지만 불의의 조난으로 세상을 떠나지 않았던들 그는 아버지의 소원대로 이 두메산골에서 벗어났을 것이었다. 애당초 이 탄광에 밥줄을 걸어매지 않았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이야기는 아직도 칠봉이의 머릿속에 되살아오는 냉랭한 기억이었다.
장마가 줄곧 계속되던 초복날이다.
무덥고 침침한 날씨에 사지와 창자가 늘어진 일꾼들은 묵호(墨湖) 쪽에서 사들여 온 송아지만큼 한 개 두 마리를 엎어놓고 복놀이에 배꼽이 들썩하도록 한밥 잘 치르고 난 저녁이었다. 진국인 밀주 몇 잔에 칠봉이 아버지도 얼근한 기분으로 자정 가까워서야 밤일을 교대하여 굴속으로 들어갔다.
칠봉이 아버지가 일하던 채탄장에는 간밤부터 슴새어⁴ 띨어지는 물줄기가 연방 검은 덩어리를 밀어 내가고 있었다. 심상치 않게 본 그는 그날 밤 마련으로는 동발부터 먼저 덧세우리라 마음먹었었다. 일을 파하고 나갈 때에 보급계에 동발 신청까지 해놓았다.
그러나 정작 이날 밤은 거나한 기분으로 농탕치며⁵ 들어가는 바람에 그런 일들은 생각할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일을 시작한 지 한 시간도 못 되어서 갱목이 삐끄러졌다. 암석이 굴러떨어지며 낙반(落盤)⁶이 되었다. 칠봉이의 아버지를 비롯한 굴속의 다섯 사람은 그대로 생매장이 되었다.
이듬해 봄 칠봉이는 학교를 그만두고 탄광에 첫발을 들이밀게 되었다.
안전등의 불줄기가 점점 가까워왔다. 칠봉이의 불빛은 권 노인이 몰고 오는 탄차 쪽을 비추었고 저쪽 불빛은 칠봉이 앞으로 다가왔다.
석탄가루에 범벅이 된 칠봉이의 얼굴에서는 땀이 흘러내려 검은 판때기에 물자리가 파이고 눈알만이 광채를 띠고 있다. 그는 삽을 놓고 소맷자락으로 이마의 땀을 홈치면서 탄차 옆으로 발을 옮기었다.
쩍 벌어진 어깨 위에 걸쳐진 작업복은 본바탕 제빛을 알아볼 자취도 없이 석탄빛으로 반들반들했고, 목에 감은 천 조각도 까맣게 변하였다.
칠봉이는 탄차를 이끌어서 레일 끝쪽에까지 당겨놓고 삽을 들어 석탄을 퍼 담기 시작하였다.
권 노인은 석탄 무더기 위에 몸뚱어리를 거의 내던지듯이 주저앉으면서 눈에 죄어드는 땀을 닦았다.
“담배나 한 대씩 피우고 합세.”
권 노인의 말이었다.
“붙든 참에 실어놓고 쉴랍니다.”
“앙이, 그만하구 옵세. 있다가 같이 퍼 담지비.”
“……”
“오랑이까, 빨리.”
칠봉이는 삽을 탄차에다 걸쳐놓고 권 노인 옆에 와 앉았다.
그는 담배 한 대를 붙여 물었다. 길게 빨아 들이켠 연기는 송두리째 삼켜졌다가 큰숨에 섞여 뿌옇게 흩어졌다. 가슴속이 후련해 오는 것 같았다.
“사끼야마는 아직 시장하지 않소? 보리밥이라는 게 그게 영 실속이 없거덩.”
“그걸 먹고야 어디 배에 심을 줄 수 있능기오.”
칠봉이는 벌써 허기가 찬 듯한 권 노인의 말에 얼굴은 돌리지 않고 말대꾸만 하면서도 자기도 어지간히 배가 쓰려옴을 느꼈다.
“글쎄, 그놈의 배급이라는 게 몇 달씩 밀리다가 준다는 것이 겨우 그 꼴이 아니오, 입쌀은 뉘만큼밖에 안 되고 보리쌀투성이니 그게 어디 되겠소? 간조⁷두 벌써 석 달씩이나 밀리구두 꿩 구워먹은 소식이 아니오?”
“내일 내일 하구 핑계만 해쌓구, 한바탕 맛을 봐야 알지, 그놈의 자슥들이, 흠.”
칠봉이는 큰기침 끝에 건 가래 덩어리를 내뱉었다.
“글쎄, 돈을 받아 쥐어야 가든지 오든지 하지 않겠소, 내 원.”
“언제 떠날랑기오?”
“간조가 나는 거 바사 알지비.”
“참 영희는 어떻게 할랑기오?”
“어떻게 하기는……”
“시집 줄랑기오? 안 줄랑기오?”
벌써 몇 번이나 권 노인더러 농처럼 다짐을 받아보는 말이나 칠봉으로서는 진심으로 나온 실토였다.
권 노인은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칠봉이가 고맙고 믿음직스러웠다.
영희도 한가족같이 칠봉이와 흉허물 없이 지냈다.
그러나 혼인은 아무리 당사자가 주라고 하지만 이 낯선 땅에, 그것도 지금의 권 노인으로서는 단 하나의 피붙이인 딸을 그대로 팽개치듯이 내놓을 수는 없다는 고까운 생각이 들었다.
속초에나 가면, 속내를 잘 아는 고향 사람들끼리 얽어놓는 것이 마음 편하리라고 생각해온 권 노인이었다.
대답 없이 건너다보는 권 노인의 머릿속에는 딸 영희의 장다리 같이 커만 가는 모습이 떠올랐다.
권 노인은 눈을 가늘게 덮으면서 등을 탄벽에 기대었다.
서호진(西湖津)⁸에서 마지막 철수선을 타고 집을 떠난 것이 어제 일 같았다. 우선 형편이나 알아보려고 부듯가에 나온 것이 마지막이었다.
웬 영문인지 초급 중학에 다니고 있던 영희 하나가 묻어 떠났다. 다른 식구들은 모두 버려두고 그것 하나만이 무슨 바람에 휩싸여 붙어 왔는지 통 모를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이럴 때면 권 노인은, “다 운이야, 운” 하고 만사를 운명에 돌리고 체념을 곱씹는 것이었다.
흰 머리카락이 부쩍 늘어간 권 노인을 존대하여 탄광 패들은 ‘노인’ 자를 붙여 불렀다. 하지만 아직 오십 안팎의 권 노인으로서는 그 소리가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배에서 짐짝처럼 부려진 곳이 거제도(巨濟島)였다. 거기서 여수로, 여수에서 다시 목포로 알 만한 사람이 줄 닿아지는 대로 전전하여 흘러갔다.
사실 늦어도 석 달 안으로 고향에 돌아갈 줄만 믿었다.
차츰 나이 차가는 딸의 앞길이 걱정되었다. 고향 사람들이 많다는 속초로 갈 양으로 영암선에 접어들었던 것이 오늘의 시초였다.
삼척까지의 중턱인 철암(鐵岩)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객줏집에서 만난 얼굴들이 서로의 사연을 주고받았다.
대소한(大小寒)이 가로막힌 추위에 석탄만이라도 흔한 고장에서 겨울을 나고 해동하거든 가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들이었다.
꼭 집어낼 목표라곤 없는 걸음에 귀가 솔깃해졌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던 탄광일에 손을 대게 되었다.
‘다 운이오, 운.’
권 노인의 운명론은 더욱 잦게 되풀이되었다. 그는 곧잘 『토정비결 (土亭秘訣)』을 펼쳐놓고는 태세 (太歲)니, 월건(月建)이니 하고 짚어보는 것이었다.
3
딸은 눈만 뜨면 빨리 떠나자고 졸랐다. 이제 죽어도 이 석탄굴에서는 더 못 살겠다는 것이었다. 입춘만 지나면 떠날 걸음이 아니냐고 타일러왔다. 요 며칠은 아버지에게 툭툭 쏘아붙이면서 자기 혼자만이라도 먼저 떠나겠다고 발버둥을 쳤다. 어제 저녁도 자리 속에서 오래도록 흐느끼는 것을 듣고 권 노인은 혀가 아리도록 담배만 연방 피웠다.
그러나 그것도 임금을 받아 쥔 다음에야 어찌할 것이 아니냐고 윽박질렀다. 오히려 가슴속이 서먹해왔다.
매운바람이 무연탄 무더기를 휩쓸고 달아나면 검은 가루가 뽀얗게 머리며 목덜미에 기어들었다.
석탄가루 속에서 괴탄(塊炭)을 주워내는 아낙네들은, 마치 거름 더미 위에서 모이를 찾아내는 병아리 떼 같았다.
이따금씩 떠들어대는 젊은 가시내들의 유행가 곡조가 선탄장(選炭場)의 지루한 하루를 아물려주었다.
현장 감독인 강 주사는 제주도산이라고 노상 자랑하는 흑산호 물부리를 담뱃불이 붙었건 말았건 입에서 떼지 않고 왔다 갔다 서성거리고 있다. 궤짝에 주워 채우면 전표 한 장씩 떼어 주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
색안경을 새로 장만한 강 주사의 눈은 항시 영희에게서 떨어지질 않았다.
석탄가루가 눈에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핑계는 대지만 기실은 영희에게만 눈총을 박고 있는 것이 멋쩍어서 하는 소리라고들 했다.
말없이 석탄 덩어리만 주워 담는 영희의 마음은 훨훨 북쪽으로 줄달음치고 있다. 언제 갈지 아득한 고향이었다. 차라리 서울로 가고 싶었다. 얼어서 튼 손등은 그물코처럼 금이 갔다. 점점 무능해가는 아버지를 원망하고 싶은 심정 이었다.
요즘 여러 날을 계속해서 영희에게는 한 궤짝이 끝날 때마다 전표가 두 장씩 쥐여졌다. 받네 안 받네 승강이를 할 수도 없었다.
영희의 손에 전표를 놓을 때마다 강 주사의 손가락 끝이 영희의 손바닥을 꼭 찔렀다. 이번도 재빨리 손을 빼면서 전표를 움켜쥐고 제 일자리로 뛰어왔다. 얼굴이 붉어지며 화끈 달아올랐다.
“영희는 꿩 먹구 알 먹구가 아잉가베.”
눈치 빠른 필순 엄마가 눈을 끔벅하며 핀잔을 주었다. 영희는 어쩔 줄을 몰랐다. 억울한 생각이 들어 코허리가 찡 하여왔다.
“영희는 좋겠네요. 사끼야마 칠봉이도 장가들겠다지, 강 주사도 저렇게 안달이 나서 눈에 달이 올랐지…….”
또 무슨 말이 나올지 몰라 영희는 다른 쪽으로 돌아섰다.
영희는 칠봉이에게 마음이 쓸리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몸을 아끼지 않고 묵묵히 일만 하는 칠봉이가 가여운 생각이 들었다. 부산에서 본, 화려한 거리의 거짓으로 가득 찬 사내들보다 얼마나 믿음직한 일꾼인가 싶었다.
그러나 이럴 때마다 영희 자신은 죽어도 이 탄광에서는 이 이상 더 살지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겹쳐 들었다.
그러고 보면 칠봉이에 대한 자기의 심정은 한갓 동정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하고 미안쩍은 마음을 걷잡을 수도 없었다.
서울!
서울이라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가고 싶었다. 강 주사 쪽으로 힐끔 머리를 돌리다가 눈이 마주쳤다. 강 주사는 강 주사대로 서울을 그리는 영희의 마음속에 낚싯줄을 늘이고 있었다.
전표 타러 간 필순 엄마는 삐쭉하며 강 주사를 쳐다보았다.
“누군 장님인 줄 아는가베. 내 말 한마디문 거저…….”
말끝을 어리벙벙하면서 필순 엄마는 영희에게 눈길을 슬쩍 돌리는 흉을 하였다.
강 주사는 쉬 하고 입에 손가락을 대면서 필순 엄마에게 전표 두 장을 더 쥐여 주고는 사무소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마지막 참에서 강 주사는 영희의 손에다 한 움큼을 꾹 우겨 주었다.
“서울로 가구 싶어 한다지? 내가 데려다 줄게…….”
“……”
“내 말만 들어.”
영희는 당황하였다. 필순 엄마가 곧 뒤에 다가오는 바람에 머뭇거리다가 그대로 돌아서고 말았다.
4
짜증이 나게 씨익거리던 에어 소리가 뚝 그쳤다.
제삼번 교대로 밤 12시에 일자리에 붙었으니 벌써 네 시간이나 흘러갔다. 새벽닭이 첫 홰를 친 시간에 점심 소동이었다.
칠봉이의 뒤를 따라 권 노인도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그들은 부지런히 석탄을 퍼 담았다. 쇠로 만든 한 톤짜리 탄차가 가득 찼다. 권 노인 혼자 밀기에는 힘에 벅찬 무게였다.
칠봉이는 권 노인과 나란히 탄차를 밀고 점심터인 포인트께로 나갔다. 철길의 분기점을 지나 본선에서 대기하고 있는 기관차 도로리¹⁰ 뒤에 탄차를 연결시켜놓고 포인트 옆 석탄불 둘레에 모여 들었다.
이미 먼저 온 일꾼들이 불 가장자리에 삥 둘러앉았다. 재빠른 축들은 벌써 점심 그릇들을 내놓고 식사를 시작하고 있다. 안전등 불빛에만 의지하던 그들은 포인트 위 천장에 달려 있는 휘황한 고촉 전등에 눈이 아물거렸다. 검은 얼굴들이 유달리 두드러져 입 놀리는 대로 하얀 이빨만이 표 나게 반사되었다.
칠봉이도 권 노인과 마주 앉아 점심 보자기를 풀었다. 된장 냄새가 콧구멍으로 기어들었다. 시장한 뱃속이었다. 어느 틈에 끝났는지 모르게 후딱 치워버리고 더운물로 입가심을 하여 배를 채웠다.
고된 노역 속에서도 하루 한 번의 가장 정다운 점심참이었다. 이야기 장판이 벌어졌다.
“넝감은 몇 축이나 했쉐까?”
노름판의 ‘섰다’ 대장으로 ‘땡이’ 라는 별명을 가진 춘삼이가 권 노인 쪽을 돌아다보며 말을 건넸다.
“게우 네 번밖에 못 했음메.”
“늙은이가 그만하문 잘한 폭이디.”
모두가 도급이었다. 일한 분량대로 임금이 정해져 나왔다. 하루 종일 굴속에 들어와 있어도 땡이처럼 군장단으로 시간을 보내면 몇 푼 얻어 쥐지 못하였다. 그들에게는 채찍질이 필요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자기 힘에 벅찬 과로를 악을 쓰면서 건디어나갔다.
“칠봉이 자넨 동발 하나 더 들어갔갔디.”
땡이는 칠봉에 게로 말머리를 돌렸다.
“보리밥 먹고는 어림도 없는 기야. 땡이 니는 어찌했나?”
“나야 뭐 걱덩 있어야디, 간조 날 섰다 해서 봉창하문 될 건데. 거 땀 흘리구 멀 해, 못나게스리 돈도 안 나오는 판에…….”
“나도라, 정 이라문 가만 안 둘랑 기다.”
“글쎄 말이디 응, 때려죽일 놈의 새끼들이 한 달에 몇만 톤씩 파내놓는 석탄은 다 어디다 팔아먹구스리 이따위 수작들을 한다는 거야. 한수 녀석이야 일디감티 잘했디. 미군 부대를 따라 원주엔가 갔대니께.”
“이거 죽은 듯이 가만히 있을 기 아이고 무슨 본때를 봬줘야 할 기 아잉 기오?”
“칠봉이와 춘삼이 두 사람이 또 한번 대표로 일을 봅세, 대중을 위해서 어찌 겠음메.”
칠봉이의 말에 멍하니 앉아 있던 권 노인이 입을 열었다.
“그것이 좋겠소.”
여러 사람이 같이 찬동을 하였다.
씨익 하고 에어의 통하는 소리는 점심참의 흥을 깨뜨렸다.
칠봉이는 머리에서 떼어놓았던 안전등을 철모에 다시 꽂고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
“에, 빨리 끝내구 돌아가는 길에 영월집에 들러 대포 타령이나 안 할랑기오?”
하며, 땡이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좋아, 홧김 에 서방딜이라구, 술이나 진탕 먹어보디.”
칠봉이는 권 노인과 함께 빈 탄차를 밀고 채탄장으로 들어갔다. 둘은 말없이 차에다 석탄을 퍼 담았다. 권 노인이 탄차를 몰고 나간 다음 칠봉이는 새로 세울 동발을 톱으로 잘랐다.
안전등으로 천반을 골고루 비춰 보았다. 온통 단단한 너리바위로 되어 있었다. 양쪽 지주(支柱)만 단단히 박히면 가로지를 도리¹¹는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싶었다. 석 자 간격으로 새 지주를 벽에 바싹 붙여 세우고 밑을 단단히 다졌다. 건너편 벽에다가 다시 새 지주 한 개를 박았다.
가름지¹² 도리를 들어 위쪽에 홈이 진 한쪽 지주 위에 올려놓고 도리의 다른 한쪽을 들어 어깨에 메었다. 두 손아귀에 힘을 모아 나머지 쪽 지주 홈에 빠드득 들이밀고 기울어진 지주를 발길로 힘껏 찼다. 후 하고 큰숨이 나왔다. 땀방울이 등으로 흘러내려가는 것이 벌레가 기어가듯 간지러웠다.
양쪽 섶¹³의 먼저 지주와 새 지주 사이를 방목으로 연결시켜놓고 큰못을 박아놓았다.
칠봉이는 동발을 한 틀씩 새로 세워 들어갈 때마다 일한 보람을 느꼈다. 마음속이 흐뭇해왔다.
동발 검사를 왔던 조사계원이 돌아간 다음 얼마 아니 되어 또다시 에어는 끊어졌다.
칠봉이는 일손을 놓고 권 노인과 함께 채탄장을 떠났다. 불발된 남포 구멍을 흘깃 돌아다보면서 그대로 두고 가는 것이 어쩐지 미적지근한 생각이 들었다.
광구(鑛口) 쪽으로 가까워질수록 추위는 점점 더 거세어졌다. 아득히 입구의 기르마¹⁴ 같은 구멍으로 환한 햇빛이 내다보였다. 하루 중에 이때가 가장 마음에 거뜬한 순간이었다. 그것도 이날 같이 밤중에 들어왔다가 아침에 나가는 삼번 교대의 싱싱한 기분이 더욱 그러하였다.
탄도 한옆으로 얼음 밑을 뚫고 빠져나가는 배수로의 물소리가 요란스러웠다. 굴 어귀 콘크리트 천반에는 고드름이 얼레빗¹⁵ 살같이 가지런히 매달렸다.
굴 밖에 나서니 아침 햇살이 눈에 부시었다. 맑게 갠 푸른 하늘 아래 흰 눈을 이고 있는 산등성이는 새하얀 줄을 또렷하게 금 긋고 있었다.
5
함바〔飯場〕¹⁵ 앞 모퉁이에 있는 영월집 에서는 탄광 패들이 모여앉아 노름판이 한창이었다.
명색 섰다를 한다면서 호주머니가 말라붙은 그들은 기껏 파랑새 담배 한 대씩을 붙여놓고 거기에 신이 나서 화투장을 뒤지고 있다.
이번에는 칠봉이가 물주요, 거기에 땡이, 포인트 담당인 고주, 도로리꾼 덕구 하여 칠팔 명이 방 안에 가득 차게 둘러앉았다.
권 노인이 아랫목에서 낮잠에 코를 골고 있다.
밖은 조금 전에 시작한 눈이 이제는 앞이 보이지 않게 쏟아지고 있다.
화투장을 나누어 주고 난 칠봉이는 제 몫 두 장을 겹쳐 쥐고 엄지손가락으로 빠드득이 한 장을 훑어 조이고 있다.
“자, 섰다. 그라문 그랗지, 될라는 판이라……”
호기 있는 소리를 치면서 사타구니 밑에 쓸어 넣었던 담배 뭉치 속에서 한 대를 끄집어내어 판 가운데 덧짙러놓았다.
어디서 번쩍 한잔 걸쳤는지 땡이는 불그스레한 상판에 눈을 껌벅이며 화투장을 들여다보다가,
“그러면 나도 서디”
하고, 담배 한 대를 따라 질렀다.
“젠장, 하필 따라지야.”
고주는 입을 다시면서 화투장을 판 가운데 던졌다.
한낮이 기울도록 방 안에서는 ‘구삥’ 이니 ‘땡’ 이니 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이따금 너털웃음 소리가 길가에까지 울려 나왔다.
판이 거의 식어갈 무렵 술상이 벌어졌다. 권 노인도 아랫목에서 부시시 일어났다:
“자, 한 잔씩 들라요. 오늘은 물주가 땄으니까 한잔 살랍니더. 인자 밀린 간조가 쏟아져 나왔으문 외상값도 다 갚구, 앙 그래요? 할마시.”
술잔을 든 칠봉이가 영월집 노파를 보면서 픽 웃었다.
“밑천 다 털어먹는 판이래두, 도대체 간조는 나온다는 거요? 안 나온다는 거요?”
“글쎄 염려 말라구요, 곧 나온대두요.”
노파의 말을 땡이가 채어 받았다.
한 잔을 들이켜고 난 땡이는 권 노인 앞에 잔을 내밀면서 입을 열었다.
“넝감, 한잔 들라우요 사윗감은 잘 골르셨수다. 이만하면…….”
칠봉이 쪽을 흘깃 보면서 끝은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권 노인도 이빨을 드러내고 히히 웃으면서 잔을 받았다.
“글쎄 안 준다능 기야 어찌하는기오.”
칠봉이는 땡이한테 잔을 건네면서 권 노인 쪽을 지켜보고 있다.
“넝감이 쓸데없는 고집 부리다간 딸만 놓티디. 넝감, 선탄장 강 주사가 눈에 달이 올랐시오. 딸 잘 간수하라요. 괘니시리 귀신도 모르게 채가게 말구.”
“아따, 그깟 놈이야 누가 겁나는 기라요?”
눈이 휘둥그레지는 권 노인을 보면서 칠봉이는 땡이 말을 막았으나 강 주사에 대한 속마음은 언짢았다.
“사실이야, 이런 맹충이 보게. 필순 엄마가 그러는데 영희한테 잔뜩 눈독을 들이구 있는 게 강 주사가 오금을 못 쓴대두. 그 색골 몰라, 어디 내놓는 줄 알어.”
“마, 그만하고 술이나 드이소.”
태연하려면서도 칠봉이의 마음속은 부글거렸다.
주거니 받거니 몇 차례씩 술잔이 오고 가는 사이에 빈속에 급히 들이켠 술이 재빠르게 취기가 돌았다.
게슴츠레한 권 노인의 눈동자는 더욱 풀어졌다.
어느덧 흥이 난 땡이의 사발가가 저절로 풀려져 나왔다. 술판이 점점 익어갔다.
―석탄 백탄 타는 데는 연기만 푸불썩 나구요―
후렴은 한데 어울려서 젓가락 장단까지 겹쳐졌다.
권에 못 이겨 권 노인도 오래간만에 「신고산 타령」의 첫꼭지를 떼었다.
“뚜우.“
이번 교대의 사이렌 소리가 울려왔다. 그들은 흥을 깨치고 자리를 떴다. 이제 제각기 작업복을 갈아입고 굴속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밖은 사나운 눈보라가 시작되었고, 추위가 한결 거세어졌다.
6
산골의 늦겨울 저물녘은 숨 돌릴 사이도 없이 어듐을 재촉하여 왔다.
일자리로 나가던 칠봉이는 선탄장에서 돌아오는 영희와 마주쳤다. 눈보라 속에서 웅크리고 걸어오다가 칠봉이를 알아차린 영희는 갸웃이 며리를 숙이고 지나갔다.
무심히 인사를 받고 저만큼 갔던 칠봉이는 다시 홱 돌아섰다. 갑자기 무슨 단단한 대답 한마디를 듣고 싶은 충격이 일어났다.
영희에겐 지금까지 직접 혼담 이야기를 건네어본 일이 없었다. 아까 술자리에서 흘려버린 강 주사에 대한 소문도 머리에 되살아왔다. 자식이 선손을 써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겠다는 의아심이 들었다.
“영희.”
큰 소리였다. 영희는 걸음을 멈추었다. 칠봉이는 영희 쪽으로 뚜벅뚜벅 결어갔다.
“영희.”
다시 불렀다. 그러나 다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술기운에서인지 가슴속이 화끈 끓어올랐다.
“아버지가 머라 안 하드나?”
불쑥 내민 첫마디였다.
“아니.”
칠봉이를 쳐다보는 영희의 눈동자는 늘란 표정이었다.
영희의 등을 밀어서 돌각담¹⁷ 섶으로 피하여 섰다.
일찍이 영희 앞에서 그렇게 거세게 느껴보지 못하였던 흥분 같은 것이 밀려왔다.
“아버지가 결혼 이야기를 안 하등기야…… 나하꼬.”
다짐하듯이 끝의 한마디에 힘을 주었다. 영희의 머리가 수그러졌다. 새 새끼처럼 종알대느니보다 말대답이 없이 순하게 서 있는 영희가 더 좋았다.
칠봉이는 말문이 풀린 것만 같았다.
“밀렸던 간조나 나오문 새봄에 살림두 채릴란다. 그러면 사택도 하나 받을 게구.”
칠봉이는 영희 어깨 위에 놓은 손에 힘을 주었다.
“나도 삼십 년 살다가 요새 정말사는 것 같다. 니 영희 따문이다.”
“와 대답이 없나?”
영희는 고개를 숙인 채 몸집을 돌리면서 아무 대꾸도 없다. 눈가루를 머금은 바람이 영희의 귓밥을 할퀴고 나갔다.
“니 서울 가구 싶어 하는 거 내 다 안다. 자식이 나서 학교로 갈 때문, 나도 그때는 대처로 갈란다. 사내대장부가 어디 가서 못 살겠나? 니 생각은 앙 그렇나?”
“……”
“와 대답이 없나?”
칠봉이는 영희의 허리를 끌어 돌리면서 대답을 재촉했다.
영희는 아무 말도 없이 길 옆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칠봉이는 영희의 몸뚱이를 붙잡고 다그쳤다.
“대답 안 할라나?”
“……”
“영희, 니 싫으나, 내가?”
“아니.”
“그럼 와 대답이 없나?”
영희는 빠른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칠봉이는 다시 뛰어가서 영희를 붙잡았다. 멸시를 당한 것만 같았다. 슬그머니 부아가 치밀었다.
“니 정말 대답 안 할라나? 알았다. 그놈 강 주사가 좋아서 그라지? 맞다.”
픽 돌아서는 영희의 동작이 날래어졌다.
“누가 강 주사가 좋다나, 정말 난 이 석탄굴에서는 죽어두 못 살겠어요. 이게 어디 사람 사는 거요? 개돼지만도 못하게…….”
영희는 칠봉이의 껴안은 팔을 뿌리치고 반 뛰다시피 달아났다.
칠봉이는 맥이 탁 풀렸다.
석탄만 파고 탄광의 영웅으로 살아온 과거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 같았다.
영희가 사라진 쪽만을 지켜보고 있다. 얼어붙는 눈바람 속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목을 놓아 통곡을 하고 싶었다.
“봐라, 어디 가만두나…….”
누구에게랄 것 없이 중얼거리는 칠봉이의 어깨 위로 눈보라만 사나워 졌다.
7
칠봉이는 권 노인을 보기에도 멋쩍은 생각이 들었다. 곡괭이질을 하는 권 노인을 남겨두고 실어 담은 탄차를 몰고 나갔다.
‘개돼지만도 못하게…….’
영희의 뱉어버린 마지막 말이 칡덩굴처럼 머릿속에 엉키고 감겨서 풀려지질 않았다. 영희가 그렇게 원한다면 간조가 나는 대로 함께 이곳을 떠나리라 마음먹었다.
술기운에 숨이 가빠진 권 노인은 쉬어가며 천천히 곡괭이질을 하였다. 해춘만 하면 꼭 속초 쪽으로 떠나리라는 속셈을 하면서 고향에 남긴 가족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더듬어보는 것이었다.
요행히 그대로 생존만 했으면 팔순이 될 노모, 큰아들이 인민군에 뽑혀 가고 외롭게 남아 있는 며느리, 국민학교에서 지금쯤은 중학에 들어갔을 작은놈, 병석에서 쿨럭거리던 마누라…… 가슴 속이 짝짝 찢어지는 것만 같은 심정이었다.
토지 개혁에 겨우 남은 과수원 사흘갈이도 아쉬움처럼 떠올랐다.
걷잡을 수 없는 뒤헝클어진 생각에 잠겨 빈 탄차를 몰고 돌아오던 칠봉이는 귀를 찢는 듯한 폭파 소리에 깜짝 놀라 멈칫했다. 의아스러운 눈초리로 머뭇거리다가 탄차를 내던지고 그대로 굴속 한끝으로 막 뛰어갔다.
화약 냄새가 코를 쿡 찔렀다. 불안한 예감이 머릿속으로 스쳐갔다.
‘불발된 남포 구멍이 댔구나.’
칠봉이는 비틀걸음으로 어둠 속을 향하여 뛰어들었다.
가스로 앞이 보이지 않았다. 뭉클하고 밟히는 것이 있었다. 재빨리 불빛을 보냈다. 자욱한 연기 속에 기다란 토막 하나가 떨어져 있다. 끄집어 당기었다. 아직 피가 뛰어 푸득거리는 권 노인의 다리 한쪽이었다. 불빛으로 다시 굴섶을 훑었다. 찢어진 고깃덩어리가 벽에 훑어져 붙어 있다. 찢기고 부서진 조각을 주워 모을 염도 못 하였다. 바스러진 머리 조각이 박쪽처럼 한끝 벽 밑에 굴러떨어져 있다.
칠봉이는 머리가 아찔하여 한모로 쓰러졌다. 권 노인의 다리 조각을 붙잡고 있는 손이 떨렸다.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막 비명을 치고 일어나 뛰었다. 무엇이 목덜미를 끌어당기는 것만 같았다. 레일에 걸려 곤두박질을 했다. 죽음이 닥쳐오는 듯한 두려움이 오싹 몰려들었다.
입춘이 지났다. 양지발에 풀싹이 움트기 시작하였다. 햇볕에 등이 노곤해왔다. 산골짜기의 얼음 풀린 물소리가 마음속을 뒤숭숭하게 했다.
칠봉이는 철모 챙¹⁸에 안전등을 달고 굴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아버지가 묻힌 원수의 굴속이다. 권 노인을 자기 손으로 죽인 것만 같은 굴속이었다. 서울, 영희, 입속에서 맴을 돌았다.
저녁에 나올 때는 꼭 사무실에 들러서 이번에는 단단히 임금 지불을 따지고 해붙이리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하면서 걸었다.
아득한 한끝에석 반딧불처럼 안전등이 반짝였다.
영희는 탄광촌에서 이미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되었다.
-끝-
2016년 7월 5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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