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욕심만 차리려니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회사도 서로가 양보하고 남을 배려할 때
회사 전체가 행복해집니다. 자기의 욕심을 다 챙기면 남을 배려할 수 없습니다.
남을 배려한다는 것은 나의 욕심을 줄였을 때 가능합니다. 남을 배려하고 남에게 무언가를 해주었을 때
나는 즐거워지고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누구든 소욕지족이 기본이 되면 차츰 행복을 담을수 있는 그릇이
갖추어 집니다. 나의 행자 시절에 은사이신 도원 스님께서는 귀감이될 만한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셨는데,
통도사 뒷방 노장님들에 대한 이야기도 그때 해주셨습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시절, 통도사에서는 한 사람에게 등잔 하나만 켤 수 있는 기름을 공급했습니다.
그런데 밤에 경전 등의 책을 보고자 하면 등잔 하나만으로는 어두워서 책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아래 위로 등잔 두 개를 켜야 했고, 하는 수 없이 다른 하나의 등잔에 드는 기름은 개인의 돈으로 구입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상하 두개의 등잔접시에 기름을 붓다 보면 기름이 밑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떨어지는 몇 방울의 기름 때문에 밑의 접시에는 반드시 절에서 사준 기름을 넣고,
위의 접시에는 자기 돈으로 마련한 기름을 부어 썼습니다.
왜냐하면 윗 등잔에 기름을 붓다가 아랫 등잔으로 떨어지는 것은 내것이 공공의 것에 도움이 되어 괜찮지만,
등잔의 위치가 반대가 되어 공공의 것이 내것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공공의 돈으로 마련한 재물이 사적인 것으로 돌려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옛 어르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공공의 것을 자기 것처럼 쓰면 이미 수행자의 본분에서 벗어난 것이므로,
작은 기름 한 방울이라고 가벼이 여기지 말라는 것이며, 이러한 마음이 행복의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공무원들이나 개인 회사의 직원들 중에는 종종 공공의 것을
자기 것처럼 착각하며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별 것 아닌 듯한 작은 일로부터 시작된 착각이
점점 눈덩이처럼 커져 큰 사건을 일으키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무엇때문에 공공의 돈이나 물건에 손을 댑니까? 욕심 때문에 손을 대는 것입니다.
흔히들 생각하기에는,
‘소욕지족의 마음을 가지면 오히려 퇴보하여 목표 달성을 하기 어렵지 않을까?’
의심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 분수를 알고 분수에 맞게 살면 행복한 마음자리에 안착하게 되고,
허욕을 부리며 살면 나날이 불안해지고 점점 더 불안해 집니다.
잠시 여행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나는 미얀마를 아홉번 갔다 왔습니다.
미얀마가 불교국가이고 국민들의 신앙심이 높다는 점도 자꾸 가게 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지만,
무엇보다도 거기 사는 사람들이 좋아서 자꾸 가게 됩니다.
미얀마의 아이들은 관광객을 따라 다니며 물건을 팝니다.
그런데 인도와 다른 점은, 아이들이 물건을 팔아달라는 것이지, 그냥 공짜로 돈을 달라는 소리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돈 한 푼을 주면 그 아이도 나에게 꼭 뭔가를 하나 줍니다.
미얀마에는 부처님의 사상이 일상생활 속에 깔려 있기 때문에 무엇 하나라도
공짜로 꿀꺽 삼키는 짓을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늘 웃으며 우리를 따라다니고,
손을 대면 안 되는 곳이 있으면 얼른 우리에게 일러줍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보다도 훨씬 눈이 맑고,
억지웃음이 아니라 따뜻한 웃음이 있는 사람들 입니다. 그 사람들은 상대와 나를
비교해서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게을리 살아서
우리보다 가난한 것은 아닙니다. 아주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막노동을 하거나 장사를 하고도,
저녁 시간이 되면 그날 번 몇 푼 되지 않는 돈으로 금을 사서 부처님 몸에 붙이고
부처님전에 꿇어앉아 기도합니다. 우리들처럼 ‘이 돈 가지면 콩나물이 얼마만큼이다’라고
생각한다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자기 배부른 것 생각하지 않고 자기의 욕심을 버리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 신도님들께 물었습니다.
“이 중에 저 사람들보다 내가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나 아무도 자신 있게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행복은 제3자가 상대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그날그날을 즐겁게 살아야 행복 합니다.
즐거운 것이 행복 아니겠습니까? 하루 하루 작은 것에 감사하고 즐거워할 줄 아는 삶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들 대부분은 어느 자리까지 올라 가야하고, 얼마만큼 돈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때가서 가족이나 가까운 이들에게 잘해주겠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때 가서 큰 것 해주겠다는 생각만 합니까? 지금 사랑하는 이에게 예쁜
손수건이라도 하나 사주는 것이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나는 중요무형문화재 불화장이신
석정노스님을 모시고 1년에 꼭 한차례씩 연밭을 보러 갑니다.
내가 “스님, 지금쯤 연꽃이 한창입니다.” 하고 연락드리면,
스님께서는 날짜 정하여 제자들과 함께 옵니다. 그때 나는 하루 종일 연밭에 있지만
촬영은 하지 않습니다. 그날은 아예 카메라를 잊어버리고, 석정스님께서 연꽃 구경을 하시듯이
나도 꽃구경만 합니다.
그날 만약 ‘좋은 사진 찍어야 하는데’하는 생각에 얽매이게 되면 스님을 따라다니는 것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시간이 아까워서 미치고, 좋은 것이 있으면 찍고 싶어서 미치게 됩니다.
그럼 그 어른과 나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른도 짜증스럽고, 나는 못 찍어서 짜증스럽고...
두 사람이 다 즐겁지 않고 일행이 모두 힘들어 집니다. 하지만 내가
사진에 대한 생각을 몽땅 놓아버리고, ‘다음에 나 혼자 한번 더 와서 찍자’고
하면서 석정스님을 잘 모시는데 열중하게 되면, 노스님으로부터 좋은 말씀도 많이 듣는 등
얼마나 즐거운 시간을 갖게 되는지 모릅니다. 또 나 혼자 사진을 찍으러 갈 때도,
아무것도 못 찍는 날은 꽃구경한 걸로 만족하고,
좋은 사진을 찍은 날은 그것대로 좋은 날로 삼고 있습니다.
‘요번에는 국전에 내야 되겠다’는 등의 어떤 목표를 정해놓지 않고 과정을 즐기면서 살다 보니,
원래의 평화로운 자리로 돌아가게 되었고, 매일 매일이 행복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누구든 어떤 목표를 정해놓고 거기에 얽매이다 보면 하루하루 사는 것이 짜증스럽고 힘이 듭니다.
자기가 생각한 대로 공부도 안되고 일도 안되면 그저 짜증이 나고 불행한 생각만 들게 되는
것입니다. 일도 즐거운 마음으로 할 때 일이 되고, 공부도 즐겁 할때 공부가 됩니다.
지금 이 시간에 충실하다면, 행복은 저절로 따라 옵니다.
나중에 목표를 달성하고 난 뒤에 얻어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행복도 저절로 따라옵니다.
부디 기억하십시오. 행복이란 목표달성 후의 어느시점에 가서야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순간 순간 하루하루 작은 것에 만족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지낼때라야 행복할 수 있고,
그 마음이 유지되어야만 행복도 그대로 지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을 잘못 이해하지는 마십시오. 이 시점을 불행하게 보내면 나중에는
행복하지 않다는 뜻이지. 달성 후의 행복은 행복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부디 소욕지족의 마음으로, 목표달성의 그 과정 하나하나를 즐거운 마음으로 행하여,
날마다 행복한 날들이 되기를 축원드립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南無摩訶般若波羅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