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에 지도 한 장을 들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진도라는 섬을 찾아 개척지가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간 적이 있었다. 그 여정이 결국은 사업을 정리하고 아내와 세 자녀와 함께 이삿짐을 트럭에 싣고 대전에서 출발하여 9시간 만에 배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한 계기가 되었다. 진도의 가난한 시골 농촌 어느 여자 집사님 헛간채에 방을 들여 단칸방에서 다섯 식구가 생활하면서 어느 집사님 밭 귀퉁이에다 천막을 치고 교회 개척을 시작했다. 당시에 나의 신분은 집사였고 재정적인 여유는 10만 원이 전부였다. 교회 개척 2년이 되니 성도가 15명이 되었다. 생활비는 5만 원을 받고 예배당을 건축할 꿈을 가졌는데 하나님은 다시 교회 개척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게 하셨다. 진도에서 우상 숭배가 가장 심했던 마을에서 마을 이름을 따라 칠전교회를 세워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였고, 2022년 11월에 40여 년의 사역을 마쳤다. 은퇴 후에는 이제 원로목사로서 마음에 짐을 내려놓고 매일의 삶이 제법 여유가 있는 인생 후반전을 살아가고 있다.
돌이켜 보면 그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의 은혜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 40여 년의 농촌목회에서 나를 이끌어주신 것은 하나님 말씀이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 8:29)라는 성경 말씀을 항상 마음에 새기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작은 시골교회를 섬겨왔다. 목사가 나이 들어 은퇴하고 나면 가장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은 어느 교회를 나가느냐가 가장 고민스러운 문제가 된다. 가장 현명한 방안 중 하나는 은퇴 후에 멀리 떠나주기를 바라는 것이 대부분 교회의 현실이다. 이 또한 멀리 떠나도 어느 교회를 나가느냐가 고민스럽다. 일반 성도와는 달리 은퇴하신 목사님들이 그대로 교회에 나오시면, 목회자들은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 부담스러워하는 현장을 많이 보았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여유가 있고 규모가 있는 교회는 노후 생활이 보장되지만, 시골교회에서는 은퇴하면 대부분이 생활고를 겪고 있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다. 나 역시도 30~40명 되는 교회를 섬겨왔기에 은퇴 후 현재 13평의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러나 조금도 부끄러움은 없다. 그 이유는 은퇴하면서 좋은 집에서 걱정 없는 은퇴비를 받는 것도 복된 일이지만 그보다 더 귀한 은퇴 후의 선물은 자녀들의 축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은퇴비도 많이 받고 자녀도 잘되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이겠지만 후손이 복을 받고 잘 되는 것이 가장 귀한 은퇴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40년의 목회를 하면서 5명의 자녀를 길렀다. 3명은 몸으로 낳은 자녀이고 2명은 오갈 데 없는 아이가 있어서 함께 자고 함께 밥 먹으며 초등학교 때부터 돌보았더니, 이들이 결혼하더니 ‘목사님’이라는 칭호는 멀리 가고 ‘아버지’라는 칭호를 써서 5명의 자녀가 되었다. 시골교회에서 아이들을 대학까지 보내는 일이 정말 힘들고 어려웠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아이들은 많은 고생을 하며 학교를 다녔지만 불만이나 불평을 하지 않았다. 장남은 목회자가 되어 부산에서 규모가 있는 교회 담임목사가 되었고, 딸과 사위는 선교사가 되어서 큰 영향력 있는 선교사로 사역을 하고 있으며, 또 한 자녀는 장로로서 교회를 섬기는 모습을 본다. 나는 이것을 가장 귀한 은퇴선물이라고 생각하니 노후의 삶이 하루하루가 귀하고 소중한 시간으로 채워진다.
그렇다고 자식만 생각하고 한가하게 사는 것은 아니다. 나는 목회 사역 중에 알코올 중독자들을 변화시키는 국제금주 학교 사역을 지난 30여 년간 목사님들과 함께 섬겨왔다. 그리고 이 학교를 통해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고 사회에 소중한 일꾼들이 되어 교회를 세우고 사역을 하는 가운데 종종 말씀을 부탁하여 함께 예배를 드리는 삶이 그저 기쁘고 감사하다. 농촌교회 사역을 오래 하며 얻은 경험을 나누기 위해서 농어촌 목회자 세미나에도 강사로 불러주어서 감사하다. 미국에서까지 설교 요청도 와서 넓은 세계를 바라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무엇일까를 늘 생각하면서, 나름대로 은퇴 이후의 삶이 하루하루 기쁨과 감사로 채워 가고 있다. 노후의 삶 가운데 누구나 겪는 문제 중의 하나는 건강 문제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육신적으로 약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먹는 문제와 운동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건강이 좌우되기도 한다.
은퇴 전에는 매일 새벽 4시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새벽예배로 시작해서 900여 평의 예배당 용지를 조경하며 부지런히 일했더니 건강을 주셔서 청년 때 73킬로 체중이 지금도 변함없이 그대로이다. 지금도 5시면 일어나 두 시간 정도 말씀과 기도로 하루를 열고 천여 그루의 종려나무를 기르며 주님이 부르시는 날까지 시간을 소중하게 사용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산다. 40년의 농촌목회였지만 시간과 때를 소중히 여겨 군인 부대에 예배당도 건축했고, 진도지역에 기아대책 진도지부도 설립했으며, 비록 섬 지역이지만 목사님들과 함께 국제적인 찬양 축제를 개최하여 조직위원장을 여러 번 맡으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기도 하였다. 나의 목회 사역에서 가장 힘들기도 했지만 가장 보람 있는 일은 국제금주 학교 사역이었다. 노년 삶의 기쁨과 여유는 주어진 삶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지난날에 대해 전능하신 하나님이 주시는 보너스라고 생각한다.
첫댓글
40년의 농촌목회가 쉽지 않으셨을텐데 수고 많으셨어요~
인생 후반전~기쁨과 감사로 채워가시는 하루하루의 삶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