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뉴스데스크|2006-01-26 동백림 사건, 판검사 매수 시도
동백림사건 수사과정중 고문 추정, 중앙정보부 판검사 매수 시도
● 앵커: 이 동베를린사건에도 역시 고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나아가 재판이 뜻대로 돌아가지 않자 당시 중앙정보부가 판사와 검사에 대한 매수를 시도하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용마 기자입니다.
● 기자: 국정원 진실규명위원회는 동백림 사건도 다른 공안사건과 마찬가지로 수사과정에서 가혹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기소된 41명 가운데 천상병 시인 등 8명이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한 사실과 당시 관련자들을 면담한 결과 절반이 가혹행위를 인정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중앙정보부는 재판이 뜻대로 진행이 안 되자 판검사에 대한 매수를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대법원이 간첩혐의에 대한 증거가 없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하자 중정은 검찰과 재판부에 대한 지원비 명목으로 예산을 신청했습니다.
실제 돈의 집행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검사 3명과 검사서기 3명에 대해 한 사람에 5만원씩 30만원, 판사 4명에 대해 한 사람에 5만원씩 20만원이었습니다.
당시 부장판사 월급이 5만 6000원이었던 점을 고려할 때 단순한 지원비로 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 손호철 진실규명위원 (서강대 교수): 자백 이후에 물증을 제시하기 어려운 중정이 일정한 금품을 통해 검찰과 재판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시도한 것으로 판단된다.
● 기자: 국정원진실위원회는 하지만 동백림 사건의 일부 연루자들이 북한과 동베를린을 방문하고 북한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하는 등 실정법을 위반한 것은 사실로 인정된다고 밝혔습니다.
또 동백림사건이 당시 연루자 가운데 1명인 임석진 씨의 자수로 수사가 시작돼 사전에 기획된 것은 아니지만 정치적으로 이용됐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MBC뉴스 이용마입니다.
동백림 사건, 간첩으로 몰았다
진실규명위, 동백림사건 박정희 정권에 의해 간첩단 사건 과대포장
● 앵커: 다음 뉴스입니다. 재독 음악가 고 윤이상 선생 등 무려 190명이 연루됐던 지난 1967년의 이른바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은 당시 박정희 정권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서 과대포장된 것으로 과거사진실위 조사에서 밝혀졌습니다. 먼저 최장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 기자: 국정원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는 1967년 일어난 동백림 사건은 박정희 정권에 의해 간첩단 사건으로 확대 과장됐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당시 중앙정보부가 단순히 대북접촉을 했던 지식인과 예술인들의 범죄사실을 부풀려 무리하게 간첩으로 몰았다는 것입니다.
● 손호철 진실규명위원 (서강대교수): 대북접촉활동을 과장하고 특정사실적용을 왜곡하는 등 사건 외연과 범죄사실을 확대 발표했다.
● 기자: 이 과정에서 중정은 작전명 V-318이라는 수사계획서와 해외거주 혐의자 23명을 국내로 호송하기 위해 일명 GK공작계획서까지 마련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또 중정이 대형 간첩단 사건으로 포장하는 과정에서 학생조직인 민족주의비교연구회를 동백림의 하부조직으로 끼워넣은 것은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는 판단이 내려졌습니다.
당시 6.8부정선거에 대한 규탄시위가 거세지자 학생들의 배후에 북한이 있는 것처럼 왜곡해 시위를 무력화시키려 했다는 것입니다.
● 한홍구 진실규명위원 (성공회대 교수): 6.8부정선거 때문에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는데 민비연(민족주의비교연구회) 사건이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부분을 아주 부풀려 사건을 키우고.
● 기자: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고 장준하 선생을 동백림 조직단의 포섭대상자 명단에 넣은 것은 추후 야당 탄압을 위한 의도로 해석했습니다. MBC뉴스 최장원입니다.
동백림 사건, 정치 목적 악용
1967년 동백림사건의 배경과 실체/김택환 당시 유학생 인터뷰
● 앵커: 이렇게 대규모 간첩단사건으로 과장됐던 이 사건은 당시 박정희 정권의 정권연장 시도라고 하는 맥락에서 나왔습니다. 동백림 사건의 배경과실체를 임영서 기자가 보도합니다.
● 기자: 1967년 여름 전국은 시위로 들끓었습니다.
장기집권을 구상하고 있던 박정희 정권은 6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개헌 가능선인 의석의 3분의 2를 휩쓸었습니다.
하지만 대규모 선거부정시비가 일었고 하루도 쉬지 않고 국민적인 항거가 이어졌습니다.
선거부정규탄정국에서 갑자기 이응노, 윤이상 등 유명인사들이 포함된 사상 최대의 간첩단 사건이 발표됩니다.
● 대한뉴스 (1976년 7월 8일): 독일, 불란서(프랑스) 공부하는 유학생과 그곳에 가서 사는 사람을 평양으로 유인해서 세뇌공작을 마친 다음 우리나라 귀국시켜 대한민국 전복기도했다고 합니다.
● 기자: 동백림 즉 동베를린 북한 대사관을 거점으로 예술인, 의사, 공무원, 학생 등 무려 194명이 간첩활동을 해왔다는 것입니다.
그들 중 일부는 북한노동당에 가입한 사실이 확인됐지만 대부분은 당시 다소 앞서있던 북한에 대한 호기심에 동베를린을 드나들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 김택환 (당시 유학생): 한국 학생이 모여서 우리 이거 따분하게 이게 뭐냐.
크리스마스날 저녁에...
우리 동백림 가서 얻어먹자...
● 기자: 2명이 사형선고를 받는 등 재판은 무시무시하게 진행되다 조작시비와 독일과의 외교문제 등이 제기되면서 3년여 만에 피의자들 전원이 석방됐습니다.
하지만 선거부정시위를 가라앉히는 데 결정적 역할을 이미 끝낸 다음이었습니다.
● 박번진 (당시 민족주의비교연구회 총무): 그 당시 공화당 정부가 부정선거 시비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상당히 고심을 했었습니다.
● 기자: 이듬해 1.21공비사건, 통역당사건이 잇따라 터지며 강화된 반공 구호 속에 69년 9월 삼선개헌안이 강행 처리됩니다.
어렵던 시절 교포들의 호기심 때문에 빚어진 사건이 정권연장의 빌미로 악용됐음이 사건 발생 40년 만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MBC뉴스 임영서입니다.
동백림 사건, 한맺힌 40년
40년만에 진실 밝혀진 동백림사건 관련자 유족들 반응
● 앵커: 너무나 늦게, 근 40년만에 이렇게 진실이 밝혀진 데 대해 동백림 사건 관련자 유족들은 당사자들 살아생전에 진실이 규명됐더라면 하는 큰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김희웅 기자입니다.
● 기자: 서울 인사동에서 찻집을 하고 있는 천상병 시인의 부인 목순옥 씨는 진실은 밝혀질 줄 알았다면서 회한에 어린 듯 지난날을 되새겼습니다.
● 목순옥 (故 천상병 시인 부인): 이제는 정말 그날이라는 시를 썼던, 와이셔츠같이 강한 그 한을 푸시라고 하고 싶어요.
그냥 다 용서하고...
● 기자: 추방된 뒤 다시는 고향땅 밟지 못했던 작곡가 고 윤이상 씨의 유족들은 아직 이 소식을 접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윤이상 선생의 각별한 제자였던 윤인숙 교수는 지하에서라도 기뻐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윤인숙 단국대 교수 (故 윤이상 제자): 동백림사건에 연루된 것을 진실을 밝히는 게 문제가 아니라 우리 민족이 언젠가 그렇게 통합이 될 것이라는 것이 가능하면 좀더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 기자: 윤이상 선생의 고향인 통영에서도 명예가 회복된 만큼 국제음악당과 기념공원 조성 등 추모사업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습니다.
● 이용민 사무국장 ((재)통영음악제): 이 진실의 결과 발표의 후속조치로써 훈장 추서라든지 여러 가지 실질적인 명예회복을 위한 그런 후속조치들이 연이어서 나와줬으면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 기자: 파리에 있는 고 이응로 화백의 유족들도 늦게나마 진실이 밝혀진 것에 환영한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MBC뉴스 김희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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