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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평론집 [☆'제망아가'의 사도들☆]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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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망아가'의 사도들]
나민애 평론집 / 시작비평선 0015 / 천년의 시작(2016.02.27) / 값 2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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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문 … 4
제1부 여성시학의 갈래화를 위하여
•무성성無性性의 사랑과 병증病症의 치유법―김남조론 … 10
•‘종교적 카타로스catharos’의 열매―허영자의 「감」 깊이 읽기 … 21
•헌신적 기다림의 내면적 변천사―김초혜론… 33
•운명애와 증오 사이의 비극적 거리감?―신달자의 「등잔」 읽기 … 45
•‘누이’의 서정에서 ‘세한도’의 길로―유안진론 … 54
•진혼鎭魂, 죽은 자를 위한 마지막 노래― 강은교의「비리데기의 여행노래」에 대하여 … 65
•흩어진 심장의 지도를 찾아서―노향림론 … 76
•‘여류’와 ‘마녀’는 없다?―김승희·최승자 두 시인과 1980년대의 성취 … 89
•식물성 고통요苦痛謠의 꽃, 만개―최문자론 … 104
•‘그림자 유령’의 심혼주의―안정옥론 … 120
•고통스러운 영혼의 방향方向과 방향芳香―박라연론 … 134
•시인의 ‘궁달窮達’과 심미적 유배자의 초상―정수자론 … 143
•천문天文의 마지막 활용법―이은규론 … 155
제2부 제망아가의 기억
•문학이 하는 다른 기억, 은유적 살림의 시―세월호, 기원, 후, 문학 … 164
•제망아가祭亡雅歌―어린 아가를 위한 슬픈 노래 … 181
•잡음의 세계에서 ‘푼크툼’을 건지다―대중문화 키즈 2세대의 詩作 보고서 … 192
•여윈 신화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 209
•당신 붓에 묻은 피는 언제의 것입니까?―서정시와 100년의 내력 … 222
•죽은 바람의 심폐소생술―공기의 재래종과 변종 사이에서 … 234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물의 이미지―물의 원형 이미지와 그 변용을 중심으로 … 249
•‘부음의 시기’, 임을 위한 진혼곡鎭魂曲 … 270
•‘너무나 가벼운 나’에서 ‘한없이 무거운 너’에게로 … 280
•동아冬兒에게―통곡의 벽을 건너라 … 292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일리야(il y a)’ … 304
•‘극서정시’ 선언의 진의와 미학적 성과 … 317
제3부 아직 끝나지 않은 노래
•고요한 비극성의 탄생―최하림론 … 332
•죽음은 가라, ‘고래’가 온다―이건청 시집『반구대 암각화 앞에서』 … 345
•인간 정신의 극단에 대하여 고함高喊―오세영의 「그릇」 다시 읽기 … 356
•시로 쓰는 ‘농사직설農事直說’―윤재철론 … 366
•‘사람 국수’의 마음학―이재무론 … 381
•혼돈混沌, 아직 끝나지 않은 노래―오정국론 … 392
•슬픈 것은‘詩꿈-살이’―이승욱론 … 400
•빈가조頻伽鳥의 ‘그림-노래’―박형준론 … 409
•낭만과 리얼 사이의 경계감각―여태천론 … 427
※ 발표지 목록 … 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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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망아가祭亡雅歌
-어린 아가를 위한 슬픈 노래
나민애
1. 인간 모독의 시대라서, 미안해
또 어린 영혼이 상처받았다는 소식이 면도날이 되어 대중을 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절망한다. 이런 인간 모독의 시대에 문학이 어떤 위안이 될 수 있을까. 고작 글 몇 줄, 고작 종이 나부랭이- 이런 것들이 절망의 시대, 혹은 아가의 눈물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대답은 회의적이다. 그렇지만 이럴 때 우리가 문학이라도 하지 않으면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답답한 마음을, 이 분노와 슬픔을 문학을 통해 기록하고 읽지 않으면 부채감이 마음을 범람해 버릴 태세다. 그래서 오늘도 살아 있는 사람들은 죽지 않았기 때문에 글을 쓰고, 죽지 못했기 때문에 노래한다. 그리고 오늘의 애가哀歌는 제망매가祭亡妹歌가 아닌 제망祭亡아가, 아가, 우리 아가들에 대한 노래이다. 더 이상의 아가가 혼자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다. 울 수만 있다면 우리 같이 울자는 희망이다.
아가는 부모에게서 태어난다. 세상의 많고 많은 시인도 누군가에게서 태어난 아기였으며 대개는 어머니나 아버지를 알고 있다. 누구에게나 부모란 잊을 수 없는 근원이며 축복이다. 그리고 때로는 지울 수 없는 상처이거나 벗을 수 없는 짐이기도 하다. 시인들도 마찬가지여서 어떤 이는 희생적이고 가엾은 어머니에 대해 가슴 아픈 헌시獻詩를 썼다. 몇몇은 폭력적인 시대의 은유로, 혹은 실제로 폭력적이었으며 전혀 존경할만한 구석이 없는 아버지에 대해 피로 얼룩진 절규를 내뱉었다. 또 누군가는 시간이 흘러 이해되기 시작한 부모의 늙은 뒷모습을 가슴 아프게 읊조리기도 했다. 이렇듯 어머니에 대한 애도, 어머니를 통한 위안, 아버지 상像에의 증오와 반항, 아버지와의 화해 - 이런 것들은 현대시의 빈번한 모티브가 되어 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한때 아이였으며 여전히 누군가의 아이일 수밖에 없는 시인이 쓴 부모상은 쉽게 찾아 볼 수 있어도, 한 아이의 부모이며 아이들의 어른인 사람이 쓴 아이상은 드물게 보인다. 물론 아이에 관한 시로 동시라는 장르가 있기는 한다. 그러나 여기서 드물다는 말은 아이를 독자로 상정하고 창작되는 동심의 세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어른의 세계에서 아이의 일이 소홀하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설명을 보아도 인간의 의식은 어머니와의 2자 관계, 아버지의 이름이 투입된 3자 관계로 끝이 나고 만다. 인간의 성숙단계에는 아이가 투입되어 4자 관계가 형성된다는 이론을 찾기 힘든 것을 보니 아이라는 이 이상한 타자는 EBS와 교육학 서적에서만 다루어지는 대상인 듯하다. 광고에서는 확실한 효과를 보장하는 3B(미녀, 동물, 아이)의 하나로 아이의 이미지를 쉽게 이용한다. 경제에서는 아이의 교육과 개발을 목적으로 부모의 지출을 유도한다. 그렇지만 정작 본격 문학, 성인 문학에서 아이의 문제는 소외되어 있다.
2. 약육강식의 지옥도, 또는 잃어버린 천국
'엄마를 부탁해'의 열풍 속에서 엄마는 다시금 기억되고 있다. 나의 어머니이자 한 남자의 연인이자 누군가의 아이로서. 그렇지만 우리는 '아이를 부탁해'라고 부탁할 사람이 없다. 엄마의 자리매김과 반비례하여 더욱 작아질 수밖에 없는 아이는 말하는 듯하다. '엄마가 필요해'라고. 우리 사회에는 생물학적인 엄마 외에도 다른 '엄마'들이 필요하다. 아래 인용된 작품은 - 만약 내게 기억될 엄마가 있다면, 그것이 저주가 아닌 축복으로 기억된다면- 다른 모든 아이들에게도 역시 엄마를 가질 권리가 있음에 대한 슬픈 이야기들이다.
아이들 넷은 모두 아버지가 달랐다 엄마는 같았다 엄마는 빨간 매니큐어를 열 손가락에 바르고 옥탑방을 떠났다 네 아이는 한방에서 조약돌처럼 뒹굴었다 비닐봉지처럼 부스럭거렸다……난간에 놓인 꽃에 물을 주려고 올라갔던 막내가 의자에서 떨어졌다 뜨거운 옥탑방 앞으로였다 며칠이 되어도 눈뜨지 않았다 바람이 옥탑방을 칭칭 동여맸다 두 발에 걸을 때마다 삐약삐약 소리가 나는 노란 슬리퍼를 신기고 두 귀가 축 늘어진 강아지 모양의 가방을 매어준 막내를 트렁크에 넣었다 갑자기 어딘가에 빈자리가 자라기 시작했다 세 아이는 트렁크를 끌고 지하철역으로 갔다 계단을 내려갈 때는 셋이 트렁크를 들었다 손잡이가 있는 쪽을 조금 더 높이 들었다 막내의 머리가 그쪽에 있었다 엄마가 돌아온다고 했던 공항이 보이는 강변에서 밤새 땅을 팠다 그곳에 트렁크를 넣었다 땅은 트렁크를 고스란히 껴안았다 흙을 덮는 장남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막내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썩은 냄새가 싫었다는 생각을 떠올리느라 열한 살의 오빠는 트렁크에 구멍을 내어주는 것은 잊었다 네 살배기 막내는 그곳이 비키니옷장 속인 줄 알 테니 배가 덜 고플 것이다
- 이원, 「10×10cm 타일」일부,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문학과지성사, 2007)
엄마도 사람이니까 배고팠을 수 있고, 아빠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돈 벌러 갔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런 경우에는 어떤 이유도 변론이 안 된다. 엄마가 돌아오지 않은 삶은 아이에게 지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지옥에서 '막내'는 죽었다. 보호벽이 사라졌을 때 가장 약하고 어린 개체가 희생당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자연의 순리이다. 우리는 그것을 벗어날 수 없는 자연의 일부이며, 구체적으로는 유인원의 일종이다. 그래도 이 시를 읽는 우리는 이 자연의 순리에 그래, 그래, 순응할 수만은 없다.
걸을 때마다 삐약삐약 소리가 나는 노란 슬리퍼와 강아지 모양의 가방은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쉽게 알 수 있는, 아이의 상징이며 보물이다. 이 보물을 부장품처럼 동반하고 막내는 배고프지 않은 세계로 떠났다. 고작 네 살배기였다. 지은 죄가 있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원죄라는 것도 비껴갈만한 그런 나이였다. 그러니 이 시의 끝에 놓인 '막내는 배가 덜 고플 것이다'는 시구는 마치 우리에게 묻는 듯하다. 너는 든든하게 아침밥을 먹고 나왔느냐고, 배부르냐고. 아이의 배고픔에 그것이 네 위장에서 토해질 것 같지는 않느냐고.
이 작품이 최루성 신파를 위해 지어진 가상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우리는 약육강식의 지옥에서 아이가 희생당하는 것이 현실의 일부임을 이미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있는데도 없는 척 해왔기 때문에 천국을 정글로 만든 것은 엄마, 아빠가 아니라 바로 '여기-나'라는 자책감을 버릴 수 없다. 문제는 자책감과 그에 대한 용서를 구함이 아니라 자책감의 유지이다. 이 시를 읽으면 물론 슬프다. 그런데 그저 슬픔으로 끝난다면 막내는 죽어서도 배부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 조시弔詩는 다음과 같은 것을 요청하고 있다. 슬프다면 영원히 슬퍼할 것. 진혼鎭魂한다면 내면으로 할 것. 그래서 그것이 일회성이 아니라 영혼에 흉터처럼 각인될 것을 소망하라고.
3. 죽어도, 살아도 '엄마'와 함께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 안도현, 「스며드는 것」 전문, 『간절하게 참 철없이』(창작과비평사, 2008)
시인은 일상을 한순간에 전복시키는 파괴 전문가이다. 그들은 기존 관념에 대해 또는 그것을 담당하는 무감각한 뇌에 뇌관을 설치하고 폭파를 시도한다. 폭발음의 하나로서 저렇게도 사람이 아닌 것과 사람 간의 차이를 무화無化하거나 외면의 사물에서 깊은 사정을 찾아낼 수 있다. 인용시를 읽었을 때 이 같은 시인의 본질을 엿볼 수 있으며 동시에 시라는 것이 영양학적으로나 실용적으로나 참 도움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감탄하게 된다.
절멸에 도달한 꽃게는 '엄마'였다. 죽음의 물이 스며들 때 한참을 버둥거렸다. 생명의 본능이 아니라 모성의 본능 때문이었다고 시인은 적었다. 그리고 '어찌할 수 없을' 때가 되자 알들과 함께 조용히 잠들어 버렸다. 어미 꽃게의 발버둥이나 뱃속의 알까지가 죽어버린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그래도 우리가 이 시에서 따뜻함을 느끼는 것은 알들의 마지막을 담당한 어머니의 목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어린 생명들은 어미의 두려움에 전염되어 같이 불안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어머니의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라는 말에 안도함으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세상의 어린 것들이란 그런 존재다. 그들에게 죽음보다 무서운 것은 혼자 남겨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상승지향적인 어른들은 이 키 작은 존재를 내려다봄에 익숙치 않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갓파」에서는 뱃속의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아빠 갓파가 태아에게 물어본다. 세상이 이렇게 풍지고 부모가 시원찮은데 그래도 나오겠느냐고. 때에 따라 뱃속 아기는 나오기를 거부하고 그대로 어미 뱃속에서 잦아든다. 비판적이며 현명한 거장의 상상이다. 어른이 아가에게 이 선택권을 줄 수 없다면 자궁 밖의 세상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말로도 들린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김남조, 「설일」) 라고 어른은 위로하지만 아기는 아직 이 스스로의 위로법은 물론이거니와 신의 존재도 알지 못한다. 아기에게는 엄마가 바로 유일신이다. 우리가 그러했듯, 또는 지금도 그러하듯 아기에게는 분명 '세상보다 어미가 필요했던'(채호기,「세상보다 어미가 필요했던」, 《현대시》, 2009. 10.) 것이다.
어디서 나왔을까 깊은 산길
갓 태어난 듯한 다람쥐 새끼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 맑은 눈빛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고집할 수가 없다
세상의 모든 어린 것들은
내 앞에 눈부신 꼬리를 쳐들고/ 나를 어미라 부른다
괜히 가슴이 저릿저릿한 게
핑그르르 굳었던 젖이 돈다
…(중략)…
너를 떠나서는 아무데도 갈 수가 없다고
나는 오르던 산길을 내려오고 만다
하, 물웅덩이에는 송사리떼 무사하다
-나희덕, 「어린 것」일부,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창작과비평사, 1994.
나희덕 시인의 작품이 그래도 많이 읽힌다는 얘기는 희망적으로 들린다. 그의 작품들에는 사람살이에 대한 진짜 이야기가 있다. 우리 삶에서 평범하면서도 놓치기 쉬운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인용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담담하게 풀어쓴 이 작품에는 곳곳에 어머니로서의 감각이 숨 쉬고 있다. 세상의 모든 '어린 것'들이 나를 어미라 부른다는 말이나 그 어린 것들의 눈동자를 눈부시게 바라보는 것이나 '너를 떠나서는 아무데도 갈 수가 없다'는 사랑의 고백이나가 그러하다. 이 모성적 감각의 절정은 '어린 것'들을 보고 이미 말라버린 젖이 돈다는 구절에 있다. 세상의 논법에서는 이해되지 않고 감정 혹은 문학의 논리로만 이해되는 이 말은 부모와 형제에 대한 일차적인 '애愛'를 통해 남의 부모와 형제까지 사랑하라는 공자의 주장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개인적이고 생물학적인 모성이 아니라 보편적이고 인류애적인 모성은 '어린 것'을 키워본 가슴에서 시작되어 '모든 어린 것'에로 확장된다. 어머니의 세계관에서 '어린 것'들은 연령이 어린 것, 어리석은 것, 여린 것들까지를 포함하며 위기의 생명('물웅덩이 송사리떼')을 보호한다. 이것이 어머니 시인만이 쓸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읽는 동안 '어린 것'으로서의 나도, '어린 것'의 보호자가 되어야 할 부담감을 느끼는 나도 구원받는다.
4. 위선적 동정, 위안의 거짓말
내가 가장 오래 상상한 것은 그 애의 메마른 등이었지
목말라
점심으로 먹은 몇 개의 과자처럼 그 애가 봉지에 담겨 부스럭거릴 때
나는 온몸이 가려웠지
목말라
…중략…
그러나 내가 가장 오래 익숙한 것은 누군가의 비극에 대한 나의 전염적 도취였어
불쌍해
나는 완벽한 밀폐용기처럼, 샐 틈 없이 그 애들을 가두었을 학습된 무기력을 공상했고
사기야!
그가 그 애의 식판 위에 무엇을 놓았고, 무엇을 빼앗았을지, 그 애와 나 사이에 존재했을 공백들을 노려봤지
…중략…
그 애들도 모르는 실밥 풀린 상처를 세탁한 옷 속에서 찾아낼 때
나 역시도 위안의 거짓말로 만족의 회전수를 늘려가는, 이해할 수 없는 환상적 불행의 도취자였어
- 조혜은, 「밀폐용기 속의 아이들」일부, 《현대시》2009. 08.
내면의 나이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세상의 나이를 먹으면 어른이 되는 법. 이 어른이 되면 어른은 아이의 과거를 가졌으나 더 이상은 아이가 아닌 존재가 되고 만다. 그리고 하나와 다른 하나 사이의 깊은 격절감에 의해 '내가 너의 고통을 안다'고 말할 수 없듯, 어른이 어른 아닌 존재를 이해한다는 말은 순전히 거짓말에 해당된다. 위의 시인은 이 거짓말의 허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아마도 시인은 착취당하는 고아원의 아이들을 보고(또는 듣고) 온 마음으로 동정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한 어린 아이가 배고픔에 시달릴 것을 생각하며 '목말라'라고 느끼는 착한 마음은 거짓이 아니며 잘못도 아니다. 그러나 그 마음의 정체가 '누군가의 비극에 대한 전염적 도취'이며 타인에 대한 동정 자체에 빠져 자기만족을 행하는 경우라면 이것은 위선일 뿐이다. 시인은 이렇게 자아비판을 이어나간다. 몇 푼의 후원금이나 몇 번의 자원봉사를 행하며 나의 도덕적 자만심을 충족시키고 그들의 불행과 대비되어 더욱 빛나는 나의 행복을 확인한다면 이것은 무위無爲함보다 비겁하다.
시대를 사는 정신으로서의 문학의 우선적 기능은 회의하는 것, 자책하고 고백하는 것, 남의 비난에 앞서 우리를 비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회의, 자책, 비판이 책상과 관념 안에서 이루어지고 끝나는 백면서생의 것이라면 '문학은 피로 쓰인다'고 감히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위 시에서 시인은 이 고통의 공감과 위선적 동정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境界에 대해 경계警戒한다. 어떤 생명도 값싼 동정의 눈길을 받을 만큼 가볍지 않으며 누구도 자기도취를 위해 다른 존엄을 이용할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인간 존엄의 무게가 무겁다면 이 시의 주제 역시 그만큼의 무게감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무게감은 고스란히 읽는 이에게 옮겨와 마음을 천근만근으로 만든다. 이렇게 시인의 고백은 개인적 자아비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보편성까지 획득해서 나-너-우리의 내면을 건드리고 있다. 선행으로 면죄부를 사듯 죄책감을 일시 모면하려고 했던 행위들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굳이 시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어린 것들에는 동정이 아니라 '엄마'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아주 많은 복수의 '엄마'들-이를테면 엄마인 엄마 말고도 아빠 엄마나 아저씨 엄마, 처녀 엄마나 삼촌 엄마 같은-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러하듯이 '안다'는 말과 '감당한다'는 말 사이에는 대서양만큼의 거리가 놓여 있다. 사실 어른 되기도 힘든 세상에 이 힘없는 타자를 책임지는 일은 벅차고 과중하다. 우리는 천수관음이 아니라서 수많은 아이를 다 안아줄 수천의 팔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이런 현실적 문제에 부딪히고 나면 맞서 싸울 힘도, 회피할 뻔뻔함도 없음에 '나에겐 도망칠 수 없는 지리멸렬의 미학이 있을 뿐이라'(진은영,「그런 날에는」일부, 《시인시각》2009. 여름)는 시인의 고백을 아프게 듣게 된다. 그럴 때마다 고달픈 '엄마'됨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시이다. 그러니 이 애가哀歌에서는 엄마 되기에 힘이 부친 당신과 나를 위해서 이 시를 종결로 삼지 않을 수 없다. 시인이 적어놓은 저 '이쁜 오누이'는 당신의 옆집에 살았을지 모르고, 앞으로 당신의 울타리에 살지도 모른다. 혹은 지금도 내 마음 속에 같이 살고 있을지도 모르다. 이렇게 모르는 일투성이이니 다시금 일어서서 살아볼만 하지 않은지.
57번 버스 타고 집에 오는 길
여섯 살쯤 됐을까 계집아이 앞세우고
두어살 더 먹었을 머스마 하나이 차에 타는데
꼬무락꼬무락 주머니 뒤져 버스표 두 장 내고
동생 손 끌어다 의자 등을 쥐어주고
저는 건드렁 손잡이에 겨우겨우 매달린다
빈자리 하나 나니 동생 데려다 앉히고
작은 것은 안으로 바짝 당겨앉으며
‘오빠 여기 앉아’ 비운 자리 주먹으로 탕탕 때린다
‘됐어’ 오래비자리는 짐짓 퉁생이를 놓고
차가 급히 설 때마다 걱정스레 동생을 바라보는데
계집애는 앞 등받이 두 손으로 꼭 잡고
‘나 잘하지’하는 얼굴로 오래비 올려다본다.
안 보는 척 보고 있자니
하, 그 모양 이뻐
어린 자식 버리고 간 채아무개 추도식에 가
술한테만 화풀이하고 돌아오는 길
내내 멀쩡하던 눈에
그것들 보니
눈물 핑 돈다.
- 김사인, 「오누이」 전문, 『가만히 좋아하는』(창작과비평사, 2006)
.♣. ◆ .♣.
고요한 비극성悲劇性의 탄생
- 최하림론
나민애
1. 혁명가가 된 시인과 시인이 된 혁명가
시인은 죽고 문학세계는 완료되었다. 이제 우리는 오직 작품을 통해서만 최하림 시인을 만날 수 있다. 그를 기억하기 위해 총7권에 대한 독서를 시작하자. 그러나 이들 시집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비단 개별 시인의 시적여정만이 아니다. 여기에는 시인이 혁명가여야 했던 지난 시대의 아픔이 발견된다. 또한 혁명이 끝나고 난 뒤에 혁명가가 취할 수 있는 가장 미학적인 선택이 들어있다. 사회와 시대라는 참고문헌을 곁에 끼고 읽을 때 이 시인의 세계는 과연 ‘현명의 시’에서 ‘서정의 시’로 변모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역사와 자아와 그리고 서정과 분투하는 일을 통해 작품을 써 온 것이다. 그래서 최하림의 시는 혁명과 시가 얼마나 다른지 말한다. 아니다. 사실 그는 오랜 시간 혁명과 시가 얼마나 같은 지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최하림 시인에 대한 가장 정확한 논평은 1982년의 평론(「고통의 인식과 확대」)에서 이루어진 바 있다. 시인과 같은 <산문시대>동인이었던 평론가 김치수는 “최하림은 우리 시단을 주도한 두 경향의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으면서 순수와 참여의 분리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시의 완성이라는 목표에 연결하려 했다”고 말했다. 날카로운 비평적 감각에 뜨거운 애정을 더했으니 이 평가는 앞으로도 시인에 대한 논평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 글에서 김치수가 시인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린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렇게 ‘아주 좋습니다’는 말을 들었으니 듣는 우리도 즐거워야 할 터인데 실제로는 별로 그렇지 못하다. 즐겁기보다는 시인의 오랜 문우였던 한 비평가가 이 글을 쓰면서 몹시 가슴 아팠으리라 예상하게 된다.
읽는 우리가 함께 씁쓸한 것은 사회의 다른 영역이 그렇듯 문단에서도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기’란 참 쉽지 않기 때문이다. 치우침을 거절하기에 인간은 너무 나약하고 외로움은 막강하다. 그래서 우리는 김치수의 언급을 바탕으로 최하림의 문학적 생애가 몹시 외로웠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외로움은 사람을 나약하게 하거나 비굴하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 진정성을 자랑하는 문학에서 나약함이나 비굴함을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다행이도 최하림 시인의 작품을 보면 적어도 문학의 세계에서라면 외로움이 굳건함에 기여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된다. 어느 유파에도 속하기를 거부하는 그는 ‘최하림류’에 속한다. 시인의 홀로서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의 남겨진 작품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제 평가를 받지 못하는 다른 외로움들을 독려할 만하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만약 당신이 외로운 시인의 작품 세계를 향해 ‘외롭습니까’ 하고 묻는다면 그의 작품들은 ‘아닙니다’ 대답할 것이다. 시인의 진정한 동료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산문시대>로 이름 붙여진 ‘혁명의 시대’가 있었다. 그 다음으로는 혁명의 짝패격인 ‘고통’이 있었다. 나아가 고통으로 좌절한 혁명의 마음이, 혁명도 친구도 없이 혼자 일어설 때에는 ‘말(언어)’를 동료 삼았다. 그래서 그의 시집들을 나열해 놓으면 혁명, 고통, 말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시인의 행적이 나타난다. 그리고 행적이 도달한 지점을 우리는 시인 자신의 시어를 빌려 ‘고요한 비극성’의 세계라 부름직하다 (「햇볕이 무진장 내려」).
비극의 시대라고 할 때 우리는 1970년대 전후를 자동연상하게 된다. 그리고 당시 최하림의 출발은 분명 울부짖는 목소리, ‘고조된 지극성’이었다.
그런데 어느 사이엔가 고통을 조용해지고, 그러면서도 종내 비극적임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 서점에서 구할 수 있는 최하림의 작품들만을 가지고는 이 시인이 본질적으로 조용한 적막을 자랑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낮은 노래에는 분명 비애감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것은 한 시인의 기질 문제로 해석될 수 없다. 개인이 아니라, 여기에는 실재했던 비애의 시대가 세월을 견디면서 한 인간의 존재 내부로 들어가 빚어낸 결과가 있다.
한사람이 아니라, ‘더러운 그리움’을 공유했던 세대가 시간의 풍화를 견디며 변화하고 스스로를 지켰던 어떤 슬픈 방도, 시적 방도가 담겨져 있다.
최하림의 시는 시대에 함께 대응했던 세대의 시에서 시작해 시대를 홀로 소화하는 독자성의 시로 나아간다. 이를 확인하면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시인의 최후에도 쥐고 있던 것이 피 토하는 비극이 아니라 ‘고요한 비극’이라니, 이것은 어떻게 가능했는지, 또는 이런 것은 왜 가능해야 했는지를
2. 시대를 위한 마음, 서정을 향한 마음
최하림의 첫 시집『우리들을 위하여』는 혁명가의 노래이다. 그의 최근 작품에만 익숙한 경우라면 이 세계가 매우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시집의 전체는 제목 그대로 70년대의 아픔과 목소리에게 바쳐졌다. 구체적으로는 억센 굶주림과 원한 및 분노로 이루어진 강렬한 파토스가 가득하며 여기에는 ‘All for One, One for All’ 식의 사고 방식이 깔려 있다. 그래서 이 시집은 최하림의 시라고 하기보다는 시대의 작품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는 주어를 ‘우리’에게 양보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대부분의 시는 ‘우리’의 것이고 ‘나’라는 존재는 우리의 하나로서만 존재한다. 최하림 시인의 작품에서 인칭, 혹은 주어의 정체성을 매우 중요하다. 1991년의 세 번째 시집에서부터 ‘우리’는 사라지고 ‘나’가 드러난다는 지적(오생근)이 있었는가 하면, 1998년의 시집에 대해서는 ‘나’도 사라지고 ‘비인칭’이 등장한다는 평가(황현산)가 있었다. 다시 첫 시집으로 돌아가 인칭에 주목하면, 강렬한 고통은 나의 것이기 이전에 우리의 고통이었다. 이 시인은 ‘우리는 아프다’고 슬프게 울부짖으며 시의 첫 발짝을 떼었다.
이 시기 많은 시인들은 혁명을 사랑했다. 그들은 시인으로 태어나 혁명가가 되어야 하는 시대를 살았고, 우리의 아픔보다 나의 아픔을 더 크게 느낀 경우에도 시대에 대한 짐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 역사에서 90년대에도 혁명이 가능했는가를 묻는다면 대답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모두의 혁명이라는 개념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혁명이 끝난 다음에 혁명가는 어떻게 되는가. 체 게바라처럼 다른 혁명을 도모해서 혁명을 지속하든가 정치가로 변모해 혁명을 부정하는 세력으로 변화하든가 그것도 아니면 자살해 버리는 세 가지 길이 있다. 세 가지 일이 불가능할 때, 우리는「치숙」이나「심문」등의 소설에서처럼 혁명가가 파렴치한으로 전락한 경우를 익히 들은 바 있다. 물론 이것은 근대와 서사의 일이었다. 이것과 달리 우리의 현대 그리고 서정의 영역에서도 많은 혁명적 정신과 시심이 있었다. 문학의 시대적인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것들이 어디로 향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최하림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역시 그의 첫 시집의 혁명이 어디로 갔는지를 살펴봄이 필요하다. 그 실마리의 하나를 두 번째 시집 自序자서에서 찿을 수 있다.
아침 바다라든가 낮바다, 저녁 바다를 고루 보았을 터인데도 어인 일인지 지금의 기억에는 붉은 바다밖에 없다. …(중략)… 돌산 기슭에는 역광으로 생긴 보랏빛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 보랏빛 속에 흐르는 슬픔을 표현코자 무던히 덤벼들었으나 바다의 울부짖음에 사로잡혀 있었던 나의 관심과 시어들은 그것을 잘 묘사해내지 못했다.
-『작은 마을에서』부분
여기에서 시인은 매우 상징적으로 ‘붉은 바다’와 ‘보랏빛’을 언급했다. 그는 전자를 강렬함과 울부짖음이라고 기억했고, 후자를 조용한 슬픔이라고 생각했다. 둘 사이의 대조적 구조는 시인의 전체 마음을 그려준다. 이것을 해석하자면 마음 절반은 신념과 대의, 정의감이라는 ‘붉은 바다’로 되어 있다. 시인의 시간에서는 붉음이 먼저 나타났고 첫 시집을 혁명의 노래로 만들었다. 그 다음에 최하림을 찾아온 것은 보랏빛이었다. 노을이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때가 지나자 어둠이 내려오기 직접 하늘은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의 마음 절반은 보라색이 상징하는 슬프고 막연하고 절실한 감정이 차지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한 감정이란 서정성의 다른 표현 일 수밖에 없다. 최하림 시인에게 순수나 참여의 구분이 중요하지 않았던 이유 역시 여기에 들어 있다. 그는 한때 혁명가를 꿈꾼 시인이었다. 그리고 한번 꿈꾼 후에는 혁명을 잊지 않는 시인이 되었다. 혁명과 시-시인의 내부에는 순수의 원천과 참여의 기질이 동반되고 있었으므로, 굳이 구분할 필요도 하나를 선택할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나아가 어느 것도 아니면서 둘을 동시에 생각한다는 말은 시인에게 이 둘의 공통감각을 일깨우는 다른 중심이 있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3. ‘어둠’이 드러내는 고통과 결벽의 감각
최하림이 붉은 참여의 시인인가, 보랏빛 순수의 시인인가를 붇는 것은 무의미하다. 시인은 산문에서 붉음과 보라만을 말해놓았지만, 실제 작품에서는 붉음이나 보라 어느 한 편이 주요하지 않다. 그는 마음의 한 편을 지지하는 대신, 두 마음의 합으로서의 ‘어둠’을 제시하고 있다. 최하림 시인에게서 ‘어둠’은 첫 시집에서부터 2000년대 이후의 작품에까지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지속적이되 그 용법은 처음과 나중이 다른다. 이 용어의 변화는 시인의 변화와 궤도를 같이 하므로 어둠이 지닌 의미를 기준 삼아 전체 시집을 초가, 중기, 후기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1)
우리들은 허사에서 배어나오는 암흑을 보며
암흑 속에서 승냥이처럼 울부짖는다
울부짖음이 암흑 속으로 사라져 암흑이 되어 돌아온다.
암흑이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를 눈보라 속으로 몰아 넣는다
-『설야』부분, 제1시집
2)
밤에는 고요히 어둠이 온다
나는 더듬거리며 ‘어둠이여’라고 부른다
어둠이 이불처럼 감싸고 잠들 준비를 하게 한다
-「밤에는 고요히 어둠을 본다」부분, 제5시집
1)은 1974년에 발표된「설야雪夜」의 마지막 구절이고 2)는 그로부터 24년 후의 작품이다. ‘어둠’이라는 같은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렇게 다르다. 어둠이 공통되게 화자를 둘러싸되 하나는 울부짖는 고통의 원인이 되고, 또 하나는 고요하게 받아들여지는 무엇으로 그려지고 있다. 1)은 발표된 시기가 70년대이니만큼 여기서의 어둠이란 시대의 부정을 의미할 만하다. 그의 시에서 어둠의 의미를 따라가면서 시적인 변화를 지적할 수 있다면 어둠이 외부적인 고통의 원인, 거부해야 할 대상을 의미하는 시기를 첫 시기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우리들을 위하여』와 『작은 마을에서』의 시집이 그 부분에 속한다.
시인에게 어둠이 외부에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발견될 때, 그래서 심연이라는 말로 치환될 수 있는 때를 중기라고 말할 수 있다. 이시기는 1988년 세 번째 시집에서부터 1998년 다섯 번째 시집까지에 해당한다. 이 경우 시집의 제목인 ‘겨울 깊은 물소리’나 ‘속이 보이는 심연’ 등은 어둠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으로서 어둠의 용법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대변하고 있다.
이렇게 시인이 어둠에 변화를 가했어도, 그가 진한 심상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은 여전히 고통스러워 보인다. 사랑과 미움이 한 단어이듯, 혁명과 변절이 한 뿌리에서 출발했든, 그가 어둠에 대해 느끼는 부정과 이끌림은 고통의 감각이라는 하나의 원인을 갖고 있다. 불행히도 이 시인의 작품에는 기뻐하며 환호작약하는 장명이 드물거나 없다. 아름다움은 있어도 기쁨은 없다. 그 원인으로서 우리는 시인의 어떤 고백을 제시할 수 있다.
몇 해 사이 나를 괴롭힌 것은 죄였다. 5월 광주로부터 비롯된 이 생각은, 살아남은 자의 울부짖음에서 출발하여 씻어내야 할 문화의 어둠, 혹은 형벌로 인식되기에 이렀다.
-「자서」부분,『속이 보이는 심연으로』
이때가 1991년이니 광주의 5월과는 시간적 거리감이 있다. 때문에 그의 죄에 대한 인식은 광주의 것이면서도 또한 아니기도 하다. 문제는 그가 죄=어둠=형벌을 동일시한다는 점, 그리고 그것을 가슴 안에 꼭꼭 품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의 고통이 광주에서 유발된 것이라면 그의 시는 혁명의 휴유증이 문학적으로 발현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실제로도 작품에는 혁명의 시대에 죽지 못했다는 부채 의식이 남아 있다. 그래서 시인은 ‘수치스러워 못 살겠다’고도 말하고(「정방폭포」), ‘어둠이 무너져 별이 보일 때까지’ 싸움을 벌이자(「영동」)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것이 다가 아니다. 고통에는 광주의 것이 아닌 부분이 분명히 있다. 이 시인에게는 고통에 민감하다는 내부적인 원인이 있다. 10년이나 지난 시점에 80년 5월을 상기하는 일이나 그것을 죄와 더러움에 연결시키는 감각은 민감한 결벽적 성향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시인이 고통을 떨구지 못하는 것은 점점 혼자만의 고통이라는 외로운 현상으로 변화했을 것이다. 모두가 고통스러울 때의 고통과 누구도 고통을 기억하지 않을 때의 고통은 서로 같을 수 없다. 고통이 외면된 시기에 그가 얼마큼의 고통을 어떻게 향유했는지는 아래의 구절에 적혀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아량과 여유를 말한다
노년의 마음에서 우러나옴직한
그것은 신성에 속하는 것일까
-「시간은 영원히 고통스럽다」부분, 제5시집
어둠 속에 내가 있으면
모습을 보이는, 그리고 하던 일 멈추고
하나도 이상스럽게 않게,
사랑이 많이 남은 가슴으로
껴안아주는, 당신은 심연처럼
푸르고, 심연처럼 깊습니다.
-「겨울 초상화」부분, 제4시집
최하림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에는 시간을 견디는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시인이 하고 싶었던 말은 ‘시간은 여전히 고통스럽다’라는 말에 압축되어 있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아량과 여유 같은 것은 다 거짓말로 보인다. 시대가 깨끗하지 못해서 고통스럽고, 그 시대를 잊어버리지 못해서 고통스럽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견뎌내야 해서 고통스럽다. 고통의 시간을 버리지 못하고 견뎌야 하는 시인의 현실 인식은 오지 않는 예수를 기다리는 사도들의 나날이나. 이루어지지 못할 혁명의 미래를 바라는 늙은 혁명가의 믿음을 연상하게 한다. 시인의「베드로」연작을 읽어보면 ‘도적같이 오리라’(베드로후서 3장10절)던 예수는 없고 “나는 계속 걸어갔다”는 베드로의 지난한 행보만이 적혀 있다. 시인이 베드로 상과 자신을 일치시키게 된 큰 공통점은 ‘걸어감’에 있다. 고통이 있었지만 시인은 참고 조금씩 나아갔다. 그리고 걸어가는 과정 중에서 나를 안아주는 깊은 심연을 만나게 되었다. 어둠이 심연으로 표현을 달리했다는 것은 고통의 어둠을 시간을 견디게 하는 양분으로 바꾸어냈다는 말과도 같다. 이 변화는 우리와 시인을 기쁘게 하지는 않으나 적어도 과거를 품고 미래를 바라보게는 만들어준다.
4. 말,‘고요한 비극성’을 이끄는 동력
최하림 시인의 외로운 행보가 주된 친구로 삼은 것은 ‘말’이다. 세상이, 삶이, 또는 살아 있는 것 자체가 혐오스러울 때 ‘말’내지 ‘시’는 어깨를 도닥여 주었다. 이 시인만큰 ‘말’이라는 같은 제목의 시, 또는 ‘시’라고 이름 붙여진 시를 여러 번 발표한 이도 많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작은 마을에서』는 ‘시詩’라는 시가 두 편,『겨울 깊은 물소리』에는 ‘말 ’이라는 시가 세 편 실려 있다.
이제 우리는 세계가 평화롭다고도
생각할 수 없고 쉽사리 역사를
자유스럽다고도 말할 수 없으리라
이제 우리는 외칠 수도 없으리라
돌아볼 수도 없으리라
…(중략)…
이제 너는 가야 한다
-「너는 가야 한다」부분, 제3시집
인용된 시에서 가장 가슴 아픈 선언은 ‘이제 우리는 외칠 수도 없으리라’는 구절에 있다. 시인은 세계나 역사가 평화롭거나 자유롭지 않으며 이에 대해 전처럼 큰 함성으로 대응할 수 없다고 진술한다. 큰 울부짖음으로 시작한 이 시인의 전작을 상기한다면 그의 세계가 전면적으로 좌초될 위기에 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시적 혼란의 시기도 고통이지만 외침마저 불가능한 시기는 더한 고통의 시기이다. 만약 그가 혁명가라면 ‘할 수 없다’는 불능을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받아들이는 순간 혁명은 종료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시인이라면 불능의 인정에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할 수 있다. 그는 “너는 가야 한다”는 말로 시의 마지막을 채운다. 불가능이 있어도 시인은 ‘간다’. 이것이 혁명가와 시인의 차이이다. 혹은 혁명이 끝난 시기에 혁명이 시인 안에서 자기망의 혁명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이 시인에게서 변혁할 수 없다고 해서 변절하지 않기, 묵묵히 침묵과 패배를 감당하기, 그러면서 내면적으로는 혁명의 정신을 자기 혼자만의 방식으로 익히기를 배운다. 이것이 혁명의 진수를 배반하지 않는 방법이다. 그리고 시인의 방법적 행보를 통해 ‘고요한 비극성’이 탄생한다. 외침의 목소리를 빼앗긴 혁명가에게라면 청각적인 것은 점차 줄어들겠지만 대신 시각적인 부분을 적극 활용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얻은 것은 ‘풍경 뒤의 풍경’과 같은 놀라운 시력의 확보와 여기서 비롯된 고요한 비극성의 형성이다.
시인이 고통의 시기를 그저 걸어갈 때, ‘말’이라는 동반자 역시 친구의 곁을 지치며 ‘간다’(「말」)같은 제목 다른 시편에서 시인은 말과 함께 어둠을 비추면서 ‘꿈을 꾸리라’고 말한다. 시인과 말이 함께 꾸는 꿈, 외부에서 찾아오는 어둠이 아니라 내면에서 파생돼 어둠을 포옹하는 일은 ‘고요’ 쪽으로 향하고 있다.
오래도록 걸으면
우리는 물을 볼 수 있으려니
눈물 흘리지 않아도 고요에
이를 수 있으려니
-「바람이 이는지」부분, 제6시집
골짜기는 깊어가고 내를 따라 가을 물은
졸졸졸 흐르다가, 그것도 그치고 나면
일대는 무통의 적막뿐, 그뿐,
아내는 낮은 소리로 산을 보고 있으면
우리는 작아지고, 그림자들이 우리를
어둠 속으로 몰고 간다고, 나는
말없이 귀를 기울인다 말은
-「갈마동에 가자고 아내가 말한다」부분, 제6시집
최하림 시인의 작품은 비극과 고요 중에서 전자는 세월에 삭아가고 고요의 비중이 커지는 시기를 맞는다. 그 과정 전체를 요약하는 한 구절로 시「바람이 이는지」를 읽어볼 수 있다. 그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고통스러워하면서, 혁명의 뒷일을 감당하면서, 자책하면서 문학 곁에 머물렀다. 이것은 시에서는 ‘오래도록 걸으면’이라고 적었다. 이 사람은 그 끝에 ‘고요’를 생각하고 있다. 시「바람이 이는지」가 고요에 대한 기대라면, 그 다음 인용시에는 ‘무통의 적막’을 보았다는 경험담이 적혀 있다. 오랫동안 찾았던 그 희귀종의 확인을 적는 자리에는 우리라는 인칭도 없고 모든 것이 처음부터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이것은 외면과 내면의 고통을 이기는 고요의 방법론이라 할 만하다. 후기시로 갈수록 시인은 ‘점점 투명해져간다’ (「버들가지들이 얼어 은빛으로」). 즉, 눈물을 잠재우고 어둠의 고통을 스스로 어둠이 되고자 한다. 이것을 고요가 이룩하는 ‘세계의 투명도 透明度에 도달하기’ 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가장 후기의 작품을 접하고 나면, 이 시인의 죽음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극도의 투명해진 결과가 아닐까 생각도 되기도 한다.
5. 사라지는 모든 것을 대신해서
우리는 최하림 시인을 보면서 그와 동시대의 청년들을 떠올리게 된다.
1960년대의 전후에 등단했고 70년대 혁명의 시대에 젊은 청년이었던 시인들은 문단의 원로가 되었다. 이들에게 해당되는 시대의 요약문은 ‘더러운 그리움’ 이라 할 만하다. 이것은 한 시인의 입에서 발언되었지만 시대의 공통분모였고 미학적 근거였으며 시작의 원동력이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그들의 마음은 ‘더러운 그리움’을 기억하고 있다. 언젠가는 최하림과 산문시대, 김명인과 마종기 등이 한 기치의 다른 양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여기서 최하림 시인이 맡은 바 역할은 ‘더러운 그리움’에서 출발해 ‘고요한 비극성’까지 올랐더 그 거리에 해당한다.
최하림 시인이 추구한 것은 지속 가능한 혁명성이었다. 이때의 혁명이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체제 전복으로 이해할 수 없다. 시인에게 혁명은 내면의 것이며 자가발전적인 것이었다. 가두의 함성이 사라졌을 때, 다시 말해 혁명이 버려질 바로 그때, 시인은 혁명의 정수를 고스란히 안아 내면으로 옮겨왔다. 그리고 모두의 혁명이 끝났어도 시인은 혼자만의 혁명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것이 그의 작품에서 시적이며 예술적인 형태고 드러났다. 시대의 혁명은 끝났어도 내면의 혁명을 지속하는 것은 70년대가 낳은 가장 아름다운 선택이 될 수 있었다. 시인은 날마다 혁명하며 살았고 그의 초상은 고요로 이어졌다. 혁명가의 시선이라면 마땅히 기존의 것을 와해시키고 새로운 것을 꿈꾸는데 장점이 있다. 시인은 ‘풍경 뒤의 풍경’을 보았다고 했다. 어둠이 아닌 ‘심연’의 속을 바라다본다고 했다. 그리고 많은 것을 부정 한 후에 그가 발견한 것은 끊임없이 고요해지기 였다. 그러면서 점차 그의 세계는 투명도에 근접해갔다.
혁명과 예수의 공통점은 온다고 해놓고 오지 않는 데 있다. 오진 않지만 기다려지는 데 있다. 이승에서 고통의 반대말을 충실하게 기다리며 자신의 일을 행하던 한 시인은 계속 기다렸다. 때문에 이 시인의 고요는 어디까지나 비극적 고요이다. 그 고요에는 고행이라든가, 인내라든가, 침묵과 같은 땀에 맺힌 핏방울이 다소 섞여 들어 있다. 이제 시인은 사라지고 고요만이 남았다. 아니, 시인과 함께 그의 고통이나 시간, 고요마저도 사라졌다. 사라진 자리에 우리는 시인에게 배운바 ‘모든 것은 흘러갔다’고 적는다. 그의 시는, 사라지는 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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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민애 評論集 [※‘제망아가’의 시도들※]
[ 서문 ] -
‘제망아가 祭亡雅歌’,
혹은 ‘제망祭亡- 아가’를 위하여
등단한 지 10년 만에 첫 평론집을 묶는다.
그간 쓴 평론을 헤아리면 170편이 조금 넘는다. 원고가 많아져도 평론집을 내는 것은 주저되는 일이었다. 그 각각의 원고는 정말 최선이었는지, 그때의 생각을 지금도 여전히 같다고 말할 수 있는지. 평론집을 엮기 위해서는 170번이 조금 넘는 수만큼 자문해야 했다. 물론 소중하지 않은 글은 없다. 그렇지만 애써 주머니에 모은 구슬을 하나씩 걸러내는 마음으로 여러 편의 글을 내려놓고 또 내려놓았다. 그 결과 34편의 글을 골라 첫 평론집을 꾸리게 되었다.
이 평론집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한국시가 사랑하는 13명의 여성 시인들을 다룬다. 여기에는 원로 시인부터 신진 시인까지 고루 배치되어 있는데 한 명 한 명 저마다의 아름답고 개성적인 세계를 지닌 시인들이다. 홀로도 빛나지만 한 지면에서 같이 볼 때 그들은 저마다의 특성을 더욱 강조할 수 있다. 아직은 미진하지만 1부의 스타일을 보다 확충하여 여성 시인들의 현대시사를 꾸려보는 것이 다음의 계획이다.
2부는 문예지의 특집 원고로 실렸던 평론들이 중심이다. ‘세월호’ 사태에 대한 문학적 고민, 시대의 비극에 대처하는 문학의 비극성에 대한 글, 대중문화라는 인식론적 장의 변화와 시의 변모, 이미지와 전통의 문제 등에 대한 글들이 여기 수록되어 있다. 이어 3부에서는 최하림, 오세영, 이재무, 박형준 등 남성 시인들의 작품론을 따로 모아 1부의 구성과 대구를 이루고자 했다.
평론집의 제목을 ‘제망아가의 사도들’이라고 붙였는데 제목의 일부는 2부의 글에서 가져왔다. 애초 시가 얼마나 아름다운 ‘아가雅歌’였는지, 그 노래를 기리고 기억하는 사람들은 시를 쓰거나 공부한다. 그리고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그 아름다움을 기억하는 일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평론집을 ‘제망아가祭亡雅歌’라고 붙였다. 사라져가는 ‘아가雅歌’를 애도하는 끝자리에서 새로운 ‘아가雅歌’가 탄생하기를 바라는 의미가 여기에 들어 있다.
더불어, ‘제망아가’는 ‘제망祭亡- 아가’라는 의미 역시 담고 있다. 우리가 이 시대에서 지키지 못한, 어린 아가처럼 순수하고 소중한 존재들이 너무나 많다. 시는 그 상실과 존재들을 최후로 기억하는 장르가 될 것이다. 잃은 사람은 통곡할 것이며, 읽은 사람 역시 통곡할 것이다. 안타깝지만 ‘제망祭亡- 아가’로서의 역할은 이 시대 시가 담당할 소임 중 하나이다.
2007년에 등단할 때 세 가지 약속을 했다. 하나는 등단 소감에서, ‘열심히 읽겠다’고 약속했다. 두 번째는 나의 선생님과, ‘아첨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세 번째는 시인 아버지와, ‘섬기면서 보겠다’고 약속했다. 십 년 동안 이 세 가지 약속을 잊지 않도록 노력했다.
평론집을 내주신 천년의시작 편집실과 이재무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평론가의 소임을 가르쳐주신 오세영 선생님, 권영민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평론가가 존재하는 것은 작품이 있기 때문이다. 이 평론집에 수록된 시인들과 지금도 시를 쓰고 있는 모든 시인들께 감사드린다.
2017년 정월
나 민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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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4의 글 ◆
평론집의 제목을 ‘제망아가의 사도들’이라고 붙였는데 제목의 일부는 2부의 글에서 가져왔다. 애초 시가 얼마나 아름다운 ‘아가雅歌’였는지, 그 노래를 기리고 기억하는 사람들은 시를 쓰거나 공부한다. 그리고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그 아름다움을 기억하는 일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평론집을 ‘제망아가祭亡雅歌’라고 붙였다. 사라져가는 ‘아가雅歌’를 애도하는 끝자리에서 새로운 ‘아가雅歌’가 탄생하기를 바라는 의미가 여기에 들어 있다.
더불어 ‘제망아가’는 ‘제망祭亡-아가’라는 의미 역시 담고 있다. 우리가 이 시대에서 지키지 못한, 어린 아가처럼 순수하고 소중한 존재들이 너무나 많다. 시는 그 상실과 존재들을 최후로 기억하는 장르가 될 것이다. 잃은 사람은 통곡할 것이며, 읽은 사람 역시 통곡할 것이다. 안타깝지만 ‘제망祭亡-아가’로서의 역할은 이 시대 시가 담당할 소임 중 하나이다.
―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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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민애 평론가∥
∙ 1979년 충남 공주 출생.
∙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 2007년『문학사상』신인문학상으로 평론가 등단.
∙ 주요 평론으로는「잡음의 세계에서 ‘푼크툼’을 건지다」「여윈 신화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무성성의 사랑과 병증의 치유법-김남조론」「여성 시학의 갈래화를 위하여」 등.
∙ 주요 논문으로는「‘지식인-시인’의 시적 과제와 이상理想-시인 신석초의 경우」「『맥』지와 함북 경성鏡城의 모더니즘-경성京城 모더니즘의 이후와 이외」「1930년대 후반『시학』지와 신세대 시인의 시적 이상」 등.
∙ 편저『신석초 시선집』및 공편『광장으로 가는 길』
∙ 저서『1930년대 ‘조선적 이미지즘’의 시대』
∙ 현재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재직. 《동아일보》 ‘시가 깃든 삶’ 코너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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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시작비평선 0015. 문학평론가 나민애의 첫 평론집『‘제망아가’의 사도들』이 천년의시작에서 발간되었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2007년『문학사상』평론 부문으로 등단하며 문단 활동을 시작한 나민애 문학평론가는 170여 편의 평론을 발표하며 활발하게 현장 비평을 해오고 있다. 그 중에서 선별한 34편의 평론이 수록된『‘제망아가’의 사도들』은 이 시대가 여성의 문학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슬픔의 시대를 지나며 그 슬픔에 빙의된 자로서의 문학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또한 작금의 시대에 우리 시가 어떻게 변모해가고 있는지, 그리고 거기에서 파생된 현상들과 문단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명징한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비평집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1부에서는 13명의 여성 시인들을 다루었고 2부에서는 시대적 비극에 대처하는 문학의 비극성과 대중문화의 인신론적 장의 변화와 시의 변모, 이미지와 전통의 문제 등을 다루고 있으며 3부에서는 최하림, 오세영, 이재무, 박형준 등 남성 시인들의 작품론을 1부와 대조시키며 심도 있게 파고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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