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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음 선원 대행스님 법문
여러분들이 이제껏 살아오며 행을 한 것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자동컴퓨터에 입력이 되어 있으니 자동적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은 대로 받게 되는 겁니다. 좋은 일이든지 나쁜 일이든지 모두 거기서 나오는 거죠. 자기가 한 대로 그대로 입력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참 묘한 법이죠. 묘한 법이라고 할 수밖에요. 미생물에서부터 진화되면서 억겁을 거치면서 이렇게 인간으로 나왔으니 만물의 영장이기도 하구요.
또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은 내가 항상 오신통이 여러분들에게 갖추어져 있다고 했는데, 오신통도 이름일 뿐이지 대단한 게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다 가지고 계시니까요. 무슨 없는 것을 발견을 해야 그게 대단한 거지, 본래 있는 것인데 여러분들이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얘기하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여러분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을까 해서 지금 현실의 물질적인 용어를 가지고 얘기를 하겠습니다.
오신통이라 하면 천안통, 천이통, 타심통, 숙명통, 그리고 신족통인데 이것을 현대 용어로 비유하자면 각각 천체망원경, 무전통신기, 탐지기, 컴퓨터, 그리고 팩시밀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다섯 가지가 물질이라는 이름이 아닌 자동적인 재료로 우리 모두에게 주어져 있다는 사실은 수차 말씀 드려 잘 아실 겁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벗어나서 대뇌로 돌아간다면 전체통신이 된다는 걸 레이다 망으로 비유해 보죠.
정말 그렇습니다. 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렇게 거룩하고 소중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인간의 몸이 아니라면 이 도리를 모르거든요. 여러분들도 가정에서 살아가면서 누가 먼저 죽거나 멀리 헤어지게 되면 슬프고 외로움을 느끼시니 소중하다는 걸 느끼실 겁니다. 그래서 통신이 되면 다 활동을 할 수 있게끔 컴퓨터에 입력이 됩니다. 이건 자동입니다.
여러분들은 별 거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물질인 컴퓨터만 생각하겠지만, 그 물질적인 컴퓨터도 사람이 입력을 해야지만 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반면에 여러분들이 공부하면서 문제가 생기면 용도와 상황에 따라 다가오는 대로 입력을 해 넣으면 그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들은 그걸 이해 못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이 마음으로 자동기계를 굴리려면 오신통이 돌아가는 이 바깥에서 만이 굴릴 수가 있는 거죠. 바깥에서 오는 것, 안에서 일어나는 것은 자기가 한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어, 그대로 컴퓨터에 입력이 되는 겁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자동적으로 그렇게 돼 있다는 걸요. 그래서 심봉이라는 것은 그대로···. 누진이 레이다 망이라면 레이다 망을 받친 심봉은 오신통과 레이다 망을 전부 굴려도 움직이지 않는 겁니다.
그것은 하늘을 받친 평발로서의 뭐라고 할까 불기둥이라고 할까요. 불은 하나이지 둘이 아니니까. 물도 하나이듯이. 물은 흘러 도는 것을 말하고 불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진리는 돌아가고 불기둥 하늘을 받친 채 움직임 없이 그대로 밝아 있습니다. 불기둥, 즉 심봉은 꿈쩍하지 않아도 그대로 넉넉하고 거기에 모든 것이 붙어서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이 넉넉하면 돌아가는데 녹이 슬 사이가 없습니다. 넉넉한 마음은 심봉에 기름을 주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넉넉치 못한 사람은, 자기 소견으로 인해 돌리질 못하기 때문에 녹이 슬게 됩니다. 그러니 뻑뻑해져서 잘 돌아가지 않게 되는 거지요. 그래서 심봉은 움직이지 않지만 바깥에 붙어 있는 다섯 가지의 불바퀴가 돌아가는 겁니다. 이것을 불바퀴라 해도 좋고 물바퀴라 해도 좋고 자연 수레바퀴라 해도 좋습니다.
그렇게 돌아가는 이 자체를 벗어나 그 밖에서 돌릴 수 있게 하기 위해 오는 대로 용도에 따라 거기다 입력을 시켜라 그러는 겁니다. “거기다 놓아라”고 하니까 또 놓는 걸 몰라서 “어떻게 놓아야 되느냐”는 거예요. 도대체 컴퓨터에 왜 입력을 시키겠습니까? 나중에 필요할 때 사용하려고 입력을 시키는데 순서대로 입력을 시켜 놓아야 만이 모든 일을 일사천리로 해 나갈 수 있어요.
우리도 지금 그렇게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 기계가 굉장히 비싸더군요. (웃음)그런데 말입니다. 우리는 그보다 더 비싼 겁니다. 얼마나 소중합니까?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여러분들. 남들은 어떨지 몰라도 자기 가정에서는 대들보들 아닙니까? 하다 못해 제비 새끼들도 둥지가 있는데 사람들이 둥지가 없고 그 식구들이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소중하지 않은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 잘된 것은 감사하게 입력해 놓고 안되는 것도 거기서 만이 해결할 수 있다고 입력해 놓으면 그대로 돌아가요. 여러분들에게 실험하면서 체험하고 체험하면서 실험하며 당당하게 생활할 수 있는 자유인이 되라는 것이지, 남한테 빌어먹는 사람이 되라는 게 아닙니다.
내가 조금 답답할 때는 음성이 높아져요. 아무리 작게 할래도요. 답답할 때는 그렇게 되거든요. 왜냐하면 내가 말을 해서 여러분들한테 입력이 된다면 언젠가는 그게 나옵니다. 그런데 음파가 여러분들한테 갔다가 되돌아오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걸 느끼면 목소리가 커집니다. (웃음)참 답답합니다. 사람이 공을 던졌으면 다시 쥐어와야 탁 받을 텐데 아무리 던져도 아무데나 가서 푹 박혀 버린다면 어쩔 수 없는 거 아닙니까?
여러분들 마음이 어디 둘입니까? 셋입니까? 하나도 없는 것이 천차만별로 돌아가면서 마음을 쓰기 때문에 하나도 없다고, 공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움직이는 것, 생각하는 것, 보는 것 등 모든 게 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예전에 부처님들께서 ‘공했다’라고 말씀 안 하셨겠습니까. ‘없다’ ‘비었다’ ‘공했다’ 등등 표현은 여러 가지지만 모두 뜻은 하나입니다.
앞에서 말한 오신통을 비유한 다섯 가지 재료 위에 레이다 망이 붙어 있듯이, 주장자를 만들 땐 용머리를 맨 위에 갖다 붙여 놓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 하면 내 주장자 하나로 인해서, 주장자를 깊은 물로 비유한다면, 용이 들고 나며 춤을 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레이다 망이 안에서 일어나는 것, 바깥에서 오는 것을 전부 보고해 들이면, 컴퓨터에 입력이 되어 그냥 돌아가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생각을 잘 하셔야 대뇌를 통해 컴퓨터에 좋게 입력이 되는 겁니다. 무엇이든 좋게 입력을 해야 합니다. 가만히 보면 여러분들은 꿈을 꾸고도 ‘아이구! 꿈이 언짢으니까 무슨 탈이 또 날 거야. 이거 어떻게 해야 좋은가?’하는 생각들을 하니 그렇게 입력이 되어서야 좋게 나올 리 있습니까.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웃으면서 입력을 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네(주인공)가 있다면 하늘이 무너진들 어떻고 땅이 꺼진들 어떻습니까? 나 이 자체가 죽고 사는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 없이 놓아버리는 겁니다. 금방 죽는다 해도 보살은 생사를 버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중생들은 생사에 끄달리거든요. 죽고 사는 것에 얽매이죠. 마구니나 외도들은 소견을 좋아하지만 보살은 소견에 흔들리지 않아요.
여러분들도 흔들리지 말고 다 놓으란 말입니다. 금방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까짓 것 한번 죽지 두 번 죽나요. 그러니까 보살은 버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양면을 다 버리지 않고 놓아버리는 겁니다. 어떻게 해야 더 자세히 얘기해 드릴까요? 입력하는 것만 잘 아시면 돼요.
여러분들 소신껏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건데도 불구하고 그냥 절벽입니다. 절벽···. 그리곤 나한테 와서 하는 소리가 “집을 사려고 하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날짜는 언제가 좋겠습니까?”이렇게 물을 때는 내가 이 날까지 이렇게 해온 결과가 뭔가 하는 생각이 나면서 눈물이 주르르 흐른단 말입니다. 나를 좀 덜 울리려거든 그 철벽을 뚫으세요. 아주 간단하게 그렇게 입력하는 것이라는 걸 지금 말씀 드렸습니다. 오신통이 어떻고 하는 것보다는 그냥 그대로 얘기해 드려야겠습니다.
지난 번에도 말했듯이 우리들에게는 자력, 전력, 통신력이 무한량 뒷받침되어 있습니다.
레이저광선을 가지고 치료를 하기도 한다지요. 물론 이렇게 외부에서도 치료가 가능하지만, 안에도 지수화풍이 있어 광력, 전력, 자력 등이 갖추어져 있으므로 속에서 일어난 것은 속에 있는 것들을 이용해서 치료해야지요. 그렇기 때문에 안에서 할 것은 안에서 치료를 하고 바깥에서 할 것은 바깥에서 하는 거죠. 그리고 정신분열은 주인공이 이끌고 가게끔 자주 입력을 넣어주는 거죠. 그 쪽 컴퓨터에 입력을 넣어주는 겁니다.
이렇게 자세히 가르쳐 드리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데 날더러 어떤 분은 부처님의 경전 얘기를 안하고 이런 얘기한다고 그러지요. 질서도 없고 체계도 없다고 그럽니다. 그러나 본래 체계 없는 자리이기 때문에 바로 질서정연 하게 체계가 있는 겁니다.
우리는 마음의 인등을 켜고 앞장서야지 뒤에서 쫓아가면 늦어요. 여러분들 깊이 생각하셔야 합니다. 늦는다는 것을요. 버스 지나간 뒤에 타려고 아무리 기다리고 섰어도 이미 때는 늦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배 고프면 밥 먹고 목마르면 물 마시고 자고 싶으면 자는 겁니다. 그냥 오는 대로 용도에 따라 입력만 해 넣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관하라’ ‘지켜보라’는 거지요. 지켜보면, 밖에서 입력시켰던 것이기 때문에, 팩시밀리에서 탁탁 나오듯, 밖으로 나오게 되지요.
내가 지금 말한 것을 깊이 생각하고 지극한 믿음으로 모두를 내 몸같이 생각하고 내 아픔같이 생각하고 효도하고 충성하고 시간 지키고 약속 지키고(웃음)···. 술 많이 과음하지 말구요. 과음을 하면 정신을 잃으니 남에게도 해가 되고 나도 좋지 않으니까 술을 마시더라도 적당히 마셔야지요. ‘살생하지 말라’는 것도, 난 살생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 몸과 같이 생각하고 내 아픔 같이 생각하면 살생을 그렇게 안 하게 된다는 거지요.
예를 들어 자식이 부모를 위해 닭을 한 마리 사다 해드리는 것이 간접적인 살생이 된다고 합시다. 그러나 주인공에 맡겨 놓으면 살생을 한다 할지라도 그건 살생이 아닙니다 마음 컴퓨터에 ‘이것은 내 마음과 둘이 아니다’라는 입력을 해놨기 때문에 무명만 쳤을 뿐이지, 무명만 벗겨준 것이지 살생을 한 게 아니지요.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십시오. 그렇다고 해서 아무거나 다치는 대로 죽여서 먹고 그러지 마시구요. 상황에 따라서 말입니다. 계획적으로 그렇게 하면 더 나쁘구요. (웃음)
옛날에 어느 절에 스승과 제자가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그 은사가 헛헛증이 나서 일어나질 못하고 누워 있게 되었지만, 산에서야 뭐 먹을 게 있습니까? 예전엔 더 이루 말할 수 없었죠. 그런데 그 제자가 살생하지 말라는 것도 무릅쓰고 ‘내가 살생을 해서 죽으면 죽고 살면 살고 벌레가 되든 뭐가 되든 아무래도 좋다. 우리 스님이 일어나시기만 하면 된다’하고선 지렁이를 많이 잡아 푹 고아 매일 두 대접씩 드렸단 말입니다. 아 그랬더니 화식이 돌고 기운을 차려 일어나셨거든요. 그렇게 봉양을 했지만 지렁이들은 그 스님 덕에 지렁이의 모습을 벗었더래요.
여러분들은 바쁘게 생활하시는 분들이니까 한 자리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그저 하루 부지런히 일하시고 저녁에 한 30분 동안 여유를 가지고 앉아서 ‘주인공 당신이 있으니까 내가 생겼고, 내가 있으니까 당신을 생각하고 당신한테 모든걸 다 맡기며, 수억 겁을 거치면서 진화하고 창조되었으므로 당신은 다 알지만 내 현재 의식은 모르고 있으니 난 꼭 당신을 알아야 겠다’는 그런 도전이 필요합니다.
저녁이면 30분 동안씩 꼭 이렇게 관해 보십시오. 잘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컴퓨터에 모든 것을 뜻으로 입력시켜 놓고 밖으로 나오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또 인과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옛날에 어느 부부가 외아들을 두어 아주 애지중지하게 기르다가 장가를 들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가 부모 몰래 땅을 다 팔아 가지고 둘이 멀리 도망쳐 버렸습니다. 부모는 처음에는 괘씸했지만 나중에는 보고 싶어졌습니다. 돌아오길 기다리며 노심초사하는 거지요. 죽었나? 살았나? 병들지 말고 굶지 말고 잘 살아 주었으면···. 하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부모 마음은 이랬어요.
그러다가 집도 팔고 절로 들어갔어요. 어머니는 채공 노릇을 하고 아버지는 불 때고 나무 패는 부목을 맡아 그러저러 살다가 죽었습니다. 죽어서 그 이웃에 다시 태어나 그 절의 스님이 되었어요. 부부가 다 비구로 사형사제 되어 절에 있는데, 어느날 하루는 다른 사제가 바리때를 들고 나갔다 오더니 이런 얘길 하는 것입니다. 가는 길에 웬 움막이 있어 들여다 보니 늙은 부부가 한 사람은 부대를 두르고, 또 한 사람은 옷을 입고 있는데 둘 다 병들어 참 불쌍하더라구요. 이 말을 들은 전생 남편인 사형이 사제를 시켜 그 바지저고리를 시주 받아오라고 했습니다.
움막에 간 사제는, 그 노 부부가 옷 없으면 밥도 얻어 먹으러 가지 못한다고 완강히 버티는걸 겨우 시주 받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사형의 지시로 그 더럽고 이가 수두룩한 옷을 양잿물로 깨끗이 빨아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그 옷이 다 헤어질 정도로 둘이 법당과 요사채를 닦았습니다. 나중에는 조그맣게 된 걸레를 그냥 물에 타서 먹어버리기까지 한 거예요. 하나도 남기지 않고, 그 정성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거지요.
그런데 한편 두 노부부가 밥도 못 얻어 먹고 병든 채로 죽어가고 있는 것을, 건너 동네 사람들이 모셔다가 돌아가며 봉양했습니다. ‘자식 없는 노인네들을 어떻게 이렇게 두느냐’는 자비스런 마음이 생긴 거지요. 그렇게 잘 살다 보니 부모 생각이 나서 옷을 시주한 절에 찾아가 스님네한테 말했습니다. 부모를 버린 죄로 벌을 받아 내내 고생해 왔는데, 스님네들께 옷 한 벌 시주한 후부터 이렇게 편안히 살고 있다고.
그러자 그 은사스님이 자초지종을 다 얘기했습니다. 옷 시주 받아 온 스님네들이 바로 환생한 부모님이며, 전생에도 이생에도 자식을 위해 얼마나 애썼으며, 그들이 시주 받은 옷을 어떻게 했는지 소상히 알려주었지요. 이 말을 듣더니 그 스님네들 앞에 그만 푹 쓰러져서 그 자리에서 가버렸어요. 노 부부가 그 부모 손에서 간 것입니다. 의식은 자기 안에 넣고 그 무명만 친 것이니, 그 자식들은 또 산 거지요.
내 늘 하는 소리지만 이것도 자기 마음 편하기 위해서지, 그 자식들을 위해서가 아니지요. 우리는 한 배를 탔으니 주먹밥 하나라도 같이 먹지 않겠습니까. 이 주먹밥 하나가 온 우주를 먹이고도 남음이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아셔야 합니다.
첫댓글 이 주먹밥 하나가 온 우주를 먹이고도 남음이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아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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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지만...저도 이제 여기서 작별인사를 드려야 할 듯 합니다...
(걍 왔다 걍 가는 길이라 아무도 신경써진 않겠지만....)
광초님 서운한데요...대행스님법문 잘 읽고 있는데요..._()_
제가 볼때는 대행스님도 많은 대중들을 염두해두고 얘기하는거 같아요 중생들마다 특색이 있어서 전부 제각각이거든요
자신이 좋아하는 법문이 다달라요
그래서 불필요하지만 어쩔수없이 제각각인 중생들을 위해서 말씀이 사방으로 퍼져요
그래서 깨달아도 중생을 위해서 쓰잘데없는거 다 알아야하죠
광초님 저도 대행큰스님법문 감사히 잘 보고있습니다.^^
시간이 나실때, 대행스님 동영상 법문 올려주세요
불교방송에 가면 볼 수 있지만, 광초님이 올려주시면 더 좋을거 같아요
광초님,
많이 아프세요?
얼른 건강회복하시기를 불전에 기원드립니다.
오늘 오랫만에 대행스님 동영상법문을 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