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만났을 때(사도행전 12:1-10)24.08.25.주일낮설교
가수 노사연은 히트곡 ‘만남’을 불렀습니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사랑해 사랑해 너를 너를 사랑해”
그녀는 이유 없이 그저 세상을 향해 만남을 불렀지만 신앙을 갖고 난 이후 그녀는 자신이 왜 그토록 만남을 불렀는지 알게 됐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답니다. “가장 중요한 만남을 가져라. 나를 인격적으로 만나라. 그리고 그 만남의 기쁨을 이웃에게 전하라.”
노사연은 거침없는 크리스천으로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제 삶의 중심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니 인생이 즐거워졌어요.”
권사였던 어머니가 심장마비로 쓰러져 심폐소생술로 간신히 살아났지만 스스로 숨을 쉬지 못하였습니다.
시련은 그녀에게 하나님을 붙잡는 기회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안디옥교회는 서로 사랑했습니다.
안디옥교회는 선교하는 교회요. 영혼을 사랑하는 교회였습니다. 예루살렘에 흉년이 나자 힘대로 헌금하여 구제금을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보냈습니다. 참 대단한 교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교회가 든든히 서가자 또 고난이 닥쳐왔습니다. 본문 1절입니다. “그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이 헤롯은 헤롯 대왕의 손자입니다. 성경에는 여러 헤롯이 나옵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헤롯은 헤롯 대왕입니다. 1대 헤롯입니다. 예수님을 재판했던 헤롯은 헤롯 대왕의 아들 헤롯 안티파스입니다. 그는 당시 갈릴리 분봉왕으로 2대 헤롯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헤롯은 헤롯의 3대, 헤롯대왕의 손자입니다. 헤롯대왕은 일생 9명의 아내가 있었고 그중 8명이 자녀를 낳았는데 큰 부인 미리암이 낳은 아들 중에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블러스가 있었습니다. 헤롯은 이 두 아들이 반역을 꾀했다고 사마리아에서 직접 죽였습니다. 이때 죽은 아들 아리스토블러스에게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이 사람이 헤롯 아그립바입니다.
헤롯 아그립바는 상처가 많았습니다.
누구에게도 상처가 있습니다.
상처 없이 자란 사람도 없고 상처 없이 핀 꽃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상처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 상처가 다른 사람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그러자면 상처를 치료해야 합니다.
그런데 헤롯 아그립바는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그 상처를 막 태어난 교회를 향해 쏟아 부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교회 지도자인 야고보를 칼로 죽이고 또 다른 지도자인 베드로를 감옥에 가두고 죽이려 했습니다.
2절에 나오는 야고보를 보십시오.
이 야고보가 요한의 형 야고보입니다. 베드로, 안드레와 함께 갈릴리 바다에서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제자입니다.
결국 야고보는 예수님의 예고대로 피를 흘리며 순교했습니다.
이제 문제는 베드로입니다. 헤롯은 야고보는 죽이고 베드로를 감옥에 가뒀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쇠사슬에 매어 누어 자는 데 파수꾼들이 문 앞에서 옥을 지키더니” 헤롯은 베드로를 예루살렘 성전 북쪽에 있었던 안토니오 성채 깊은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군인 네 사람씩 네 패로 지키게 했습니다. 그 중 두 명은 감옥 안에, 두 명은 감옥 밖에서 베드로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베드로는 쇠사슬을 차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지금 삼엄한 경계 속에 있습니다.
우리도 가끔 이렇게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할 때가 있습니까?
내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 할 수 없는 문제가 너무 많습니다.
그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도저히 해결 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났을 때
첫째, 하나님 안에서 평안해야 합니다.
감옥에 갇힌 베드로를 보십시오. 6절을 다시 봅니다.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숫군들이 문 밖에서 목을 지키더니”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어 자더니”입니다.
여러분, 정말 지금 베드로가 정신이 있는 사람입니까?
지금 감옥에 갇혀 내일이면 처형당할 수 밖에 없는 긴박한 상황에서 베드로는 “누어 자더니”입니다.
걱정은 되지만 억지로 눈을 붙이고 자는 것도 아닙니다.
아예 큰 대자로 누어 잡니다. 7절이 중요합니다.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일어나라” 여기 “옆구리를 쳤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헬라어 “파탓소”입니다.
이 말은 치긴 치는 것인데 그냥 치는 것이 아니라 무기나 주먹으로 세게 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베드로는 감옥에서 잠시 눈을 붙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의 사자가 그의 옆구리를 무기로 쳐야만 겨우 일어날 정도로 깊히 잠들어 있었습니다. 몇 시간만 지나면 참수형을 당할 그 위험천만한 순간에 그토록 깊이 잠을 잘 수 있을까?
아마도 베드로의 혈액형은 O형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O형은“단무지”라고 합니다. “단순하고 무식하식 지랄 같다.”
O형의 반대는 A형입니다. A형은 “소세지”입니다.
“소심하고 세심하고 지랄 같다.”
위급한 순간에는 A형보다는 O형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 문제는 혈액형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O형이었기 때문에 위기의 순간에 잠을 잘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믿음 때문에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감옥에 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이미 4장에서도 한번 붙잡혀 감옥에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전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때 제사장들이 도무지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도 가르치지도 말라고 했지만 베드로는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유유히 감옥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깨달았습니다.
“아, 하나님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를 지키신다.”
“우리는 고난을 당하나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신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살아계신다.”
내가 감옥밖에 있을 때나 감옥 안에 있을 때, 내가 평안가운데 있을 때나 고난가운데 있을 때 그는 항상 살아 계신다.
미국 TED(테드) 강연에서 소개된 연구 내용입니다.
학창시절 졸업사진을 촬영한 이들을 추적 연구하자 놀라운 결과가 발견됩니다. 바로 밝은 미소로 사진을 찍은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한 이후 사회에 나와서도 성공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한국은 졸업사진을 찍어도 증명사진을 찍는 것 같이 모두 엄격하고 근엄하며 진지한 표정을 짓습니다.
여러분의 졸업앨범 사진도 한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유대 민족을 ‘고난의 민족’이라고 하지만 동시에 ‘웃음의 민족’이라고도 합니다. 유대인은 고난 가운데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대 격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모든 생물 중에서 인간만이 웃는다.
인간 중에서도 현명한 사람일수록 잘 웃는다.”
아인슈타인은 노벨상을 받는 자리에서 유머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나를 키운 것은 유머였고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능력은 조크였다.” 아인슈타인은 유대인이었습니다.
성경은 항상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늘 기뻐하고 미소 짓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항상 웃으면서 평안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우리의 존재 가치는 우리의 능력이나 성공 여부, 인기나 평판과는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들을 희생할 만큼 사랑하시는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걸작품답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께서 도우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맛보아야 합니다.
도저히 해결 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났을 때
첫째, 하나님 안에서 평안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도움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위기가운데서도 평안히 잘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도움 때문입니다.
7절을 다시 봅니다.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여기서 “홀연히”가 중요합니다. 이 말은 “갑자기”라는 뜻의 부사입니다. 늘 하나님의 도움은 우리 눈에 “갑자기” 임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은 반드시 옵니다.
그러나 때와 방법은 하나님이 정합니다.
그런데 “홀연히”라는 말을 원어로 보면 재미있습니다.
“이두”입니다. 이 말은 감탄사입니다.
우리말로는 “아, 오”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너무 기가 막히기 때문에 “아, 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베드로를 구원했습니다.
먼저 사람이 고난당합니다.
그러면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냅니다.
엘리사가 아람군대에게 포위를 당했습니다.
엘리사가 살려달라고 기도하자 하나님은 수많은 천군천사를 보내 그를 보호하셨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 던져지자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러자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단 6:22,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도다.”
천사는 존재하며 하나님도 응답합니다. 문제는 기도입니다.
기도해야 하나님이 응답하고 하나님이 응답할 때 천사가 활동합니다. 다시 7절을 보실까요?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천사를 통해 도와 주십니다.
능력의 비결은 기도입니다.
베드로가 잡혔을 때 교회의 성도들이 중보 기도했습니다.
5절을 보겠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12절을 보십시오.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라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다같이 “기도하고 있더라”
기도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불임환자도 기도를 받으면 임신성공률 2배로 높아진다는 보고가 나왔습니다. 1998∼1999년 서울 차병원에서 불임치료를 받은 환자 199명의 이름을 미국과 캐나다, 호주의 기독교인에게 넘겼습니다. 그들은 물론 이들이 누군지 모르고 환자들도 자기를 위해 누가 기도하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 결과, 기도 받은 여성들의 임신성공률이 기도해주는 사람이 없는 여성들보다 두 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을 공동으로 연구한 미국의 로보 박사는 “연구결과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이를 발표해야 할지 말지 고민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자신이 기독교인이었지만 기도의 결과가 이렇게 클 줄 몰랐다고 했습니다.
뉴욕 타임스에서는 이 방법을 심장병 환자에게도 적용했습니다. 이름을 전혀 모르는 다른 기독교인에게 주고 기도하게 했습니다. 환자들은 기도하는 줄도 몰랐습니다.
치료가 배나 나타났습니다. 기도의 능력입니다.
얼굴을 모른 사람이 기도해도 치료가 임하는 데 얼굴도 알고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기도하면 얼마나 큰 능력이 나타나겠습니까? 이것이 중보기도의 능력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19-20)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도저히 해결 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났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결론은 기도입니다.
문제가 있습니까?
고난이 있습니까?
간절히 기도합시다.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기도는 반드시 응답됩니다.
문제는 기도하라는 신호이고 기도는 응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