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역리학
1절, 역리易理학의 기원과 하도, 낙서
〈그림 1) 용마하도龍馬河圖 〈그림 2) 신귀낙서神洛書
지금으로부터 5, 6천 년 전에는 인간들을 가르치는 위대한 영적靈的스승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들의 수명은 수백 세에 달했으며, 그 스승들은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며 자연과 하나가 되어 조화로운 삶을 산 신인神人들이었다.
그 신인들 가운데 천지자연의 움직임을 자연수의 상수象數 원리로 체계화하여 인류문명의 새벽을 열어준 영적 스승이 있었으니 그분이 5,500년 전 동방 배달시대의 태호 복희씨이다. 태호복희太昊伏羲씨는 일찍이 천하天河에서 나온 용마龍馬의 등에 그려진 무늬에서 하늘과 땅의 생명 율동의 상을 깨닫고 이것을 그림으로 그렸다. 그것이 하도河圖이다. 〈그림 1)
이 하도는 하늘의 계시로 자연 속에 숨겨진 질서인 상象을 읽고, 이를 천지의 기본수인 1에서 10까지 수數자로 체계화되어 있음을 깨닫고, 이를 수數의 상象으로 그려서 전해주므로 인류역사에 이바지하였다.
이러한 하도와 음양의 짝을 이루는 것인 또 하나의 게시문서가 낙서洛書이다. 〈그림 2)
이 낙서는 4,200여 년 전에 하夏나라의 우임금이 9년의 홍수를 다스리던 중 낙서에서 나온 커다란 거북神 등에 드리워진 여러 개의 점상點象같은 것에서 천지자연의 변화의 기를 깨닫고 그림으로 그려낸 것이다.
이 하도와 낙서는 지구촌세계에서 살고 있는 우리 일반적인 사람의 눈이나 감각으로는 알 수 없는 우리 지구인들보다도 몇 만 년 더 발달해서 진화되어 외계에서 살고 있을 수도 있다고 가정해볼 수 있는 외계인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들의 모든 것을 풀어 볼 수 있는 우주 변화의 암호문 해독판이다. (개벽 실제상황. 105p. 2005년 12월 22일. 초판 1쇄. 증산도 경전, 지은이. 안경전을 참고하였음.)
그 후 하도, 낙서의 상수 원리는 이후 문왕文王, 주공周公, 공자孔子를 거쳐 음양 팔괘八卦를 구성 원리로 주역周易으로 체계화되어 대대로 전해져오고 있다.
또한, 천문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역원曆元을 정하려면 수천만 년을 적분추산積分推하게 된다.
그 시점이 지금으로부터 약 5, 6천 년 전에 북극성을 중심으로 하여 북두칠성의 자루 끝부분의 별인 요광성瑤光星, (도교에서는 '파군절명의 별'이라고 부름)이 자방子方으로 일월日月과 오성五星,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 일렬로 서 있는 시점이 됐을 때인 갑자甲子년, 갑자甲子월, 갑자甲子일, 갑자시甲子時로서, 이때를 상원上元이라 하고, 이 시점을 역원曆元으로 시작하여 지금 이 시각까지 전래되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방식대로 사주팔자를 보려면 4갑자의 사주팔자는 60년, 아니 수천 년이 되어도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필자의 의문이 화두話頭로 계속된 지 약 30년 이상 되었다. 그렇다면? 사주팔자를 풀어보는 모든 명리학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이 화두가 끝내 풀리지 않자 최근 회갑이 다 된 필자가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에서 고대천문학을 중점적으로 공부하면서 고뇌하고 연구한 결과 30년 이상 고민했던 그 의문이 서서히 얼음이 녹듯이 풀리기 시작하여 약 30년 이상을 정리해오던 이 원고를 논리정연하게 다시 정리해서 지금에서야 세상에 펴놓게 되었다.
왜? 근원적으로 틀려왔던가는 이 책을 읽어 나가보면 해결될 것이다.
또한, 염제 신농씨께서도 의약을 개발하고 농사짓는 방법을 펴실 때에 모두 팔괘로 지도하였다고 하는데, 지금도 염제께서 직접 책을 썼다는 『본초학』이 전래되고 있으므로 동양의학은 역리학과 함께 출발하였다고 사료된다.
2절, 황제내경
『황제내경黃帝內徑』은 소문, 영주, 운기 편으로 분류된다. 소문은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를 기초로 한 생리, 병의 원인, 양생養生 등의 의학에 관하여 개론적 원리로 이루어져 있다.
영추는 영묘한 인체를 진단하여 치료하는 침구鍼灸법으로 임상적인 의학론을 전개한 것이다.
운기運氣 편은 천운天運과 지기地氣인 우주 천체에서 방사하는 강력한 에너지가 인체에 미치는 천체기상과 그 현상을 연구하고 발전시켜 농사를 짓고, 질병을 미리 예방하며, 인류가 살아가는 모든 분야에서 지혜롭게 대처하는 데 꼭 필요한 하늘이 내려주신 글로서 인류문명에 기여해오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이 『황제내경』 을 떠난 동양의학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이 신서神書는 대자연에 순응하며 자연과 더불어 사는 인생관을 기저로 하는 의학서임과 동시에 문답형식의 방법을 대입하여 인간과 우주 전체인 자연과의 관계를 상세하면서도 현묘玄妙하게 그 이치를 밝혀주고 있다.
인간이란 우주의 축소판이므로 이 운기運氣학을 5운運6기氣학이라고도 하는바, 출생한 년, 월, 일, 시를 알면 사주四柱를 당연히 풀어볼 수 있지만, 이 출생出生 사주四柱를 알면 입태入胎 사주四柱인 5운6기도 필요충분조건이 성립되는 과정에서 풀어볼 수 있게끔 되어 있으므로 입태 당시인 천기天氣인 5운과 지기地氣인 6기를 판단할 수 있어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 공헌해왔던 것이다.
3절, 역경易經
삼경三經 가운데 하나로서 첫째가는 고대 중국의 철학서다. 상고시대 上古時代에 태호 복희씨가 그린 괘卦에 대해 주나라 문왕이 총설하여 괘사卦辭하고 주공이 이것을 육효六爻에 대하여 상설하여 효사爻辭하셨다.
공자께서는 여기에다 우주자연의 심오한 원리를 대입시켜 십익十翼을 한 것이 이 『역경』의 내용이다.
이 책의 이름이 주周나라 때 지어졌다고 하여 주역周易이라고 부르기는 하나 실은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이전부터 진秦·한漢 사이에 완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힘의 대결과 인간의 가치관의 혼동과 변화가 많았던 시대時代였으므로 인간적인 존재가치와 도덕성을 바로 세우기 위한 성현聖賢들의 역작力作으로서 지도자들의 지침서指針書였다고 생각된다.
일반적으로 역리易理학은 곧 주역周易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심오하고도 실천철학적인 이 책이 오늘날 육효점占을 치는 것으로 잘못 인식되어 옛 성현聖賢들께 송구한 마음, 그지없는 바이지만, 역리易理학과는 모두가 연관되어 있다.
역리학은 주역의 이치를 근간으로 하여(학구적인 많은 사람들 중에는 주역을 보고 판단하고, 보는 관점이 천양지차로 다양하다. 예를 들면 왕필의 주역 사상을 기본으로 하여 각양각색의 연구발표가 있는가 하면, 오늘날은 서구유럽 등 선진국에서 과학자들이 수학적으로 연구하여 발표하고 있는 현실도 직시直視할 필요가 있다) 우주의 천운天運과 지기地氣, 그리고 인체를 소우주小宇宙로 관찰하고 진단하는 오운 육기학과 모든 사람들의 운명을 보는 사주四柱명리命理학(중국에서는 명상가(明相家)라 하여 사주팔자와 관상, 즉 관형찰색을 보는 사람이 최고의 명상가요, 학자로 각광받고 있음), 관상觀相학, 기문둔갑, 손빈의 육임신과 금구결, 대육임, 소육임, 자미두수, 육효, 매화역수, 관상, 수상手相학, 풍수지리 風水地理학 등 너무나 다양하다.
이 학문은 5천 년 이상 우리 선조들과 함께 생활해오면서 검증된 것들로서 학문이나 종교를 앞선 실증된 학문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 같다.
최근에 국경 없는 삶을 살면서 인터넷으로 모든 사람들의 운명을 상담하면서 세계적으로 통계치를 갖고 있는 음령오행音靈五行, 즉 음파 물리학적인 성명姓名학 등이 뜨고 있는가 하면, 육효六爻도 한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이것을 수학적으로 풀어 진리를 규명하려는 학자學者들도 많이 있어서 그 고매한 영혼을 갖고 있는 분들께 머리 숙여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4절, 사주四柱 명리학사命理學史
앞에서 간략하게 언급한 바 있으나 다시 살펴본다면, 명리命理학은 면면히 맥을 이어오다가 기원전 1222년경 내사內使 벼슬을 하던 천문학자 숙복 선생이 처음으로 년年을 기준으로 하여 인간의 운명을 판단하기 이르렀다.
그 후 동주東周사람인 낙珞록자 선생(낙록자란 구슬 모양의 '옥(玉)으로 락락珞珞같은 돌'의 뜻을 취한 것으로 사람 이름은 아니며, 『낙록자』라는 책에서 록명[碌命]이란 명칭이 스스로 나온 것이며, 그 법은 오로지 사람이 출생한 년, 월, 일, 시에서 산출한 팔자로서 길흉화복을 넓게 헤아렸다)이 년, 월을 기준으로 하여 운명을 판단하는 학설을 창안했다.
그 이후 당나라 사람이었던 이허중은 자字가 상용容이다. 위나라 이충李의 8세손으로 아버지 운과 어머니 진陣씨 사이에서 태어난 여섯 아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진사에 급제하여 당나라 헌종 때 전중시어사展中侍御史라는 벼슬을 지냈다. 그는 학문을 좋아해 통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음양오행서五行書에 심취되어 사람이 처음 태어난 생년, 생월, 생일을 간지로 배속시키고 그것에서 흐르는 에너지인 천운과 지기地氣와 상생, 상극의 파장이 왕성하고 쇠퇴함을 판단하여 인간들의 수명의 장단, 운의 이롭고 불리함, 부귀빈천 등을 추론하였다. 그러므로 이허중은 사주명리학의 시조始祖로서 이 학문의 발달사에 차지하는 비중은 그 어느 것보다 크다. 그러하기 때문에 이것이 오늘날까지의 사주명리학四柱命理學의 기본 틀이 되었다.
그러나 이허중의 사주명리학은 현대의 사주명리학과는 전체적인 틀은 같으나, 그 내용에서는 큰 차이를 보여준다.
즉, 사주팔자의 글자 가운데 연주年柱 두 글자를 중심으로 하고 일주와 월주를 보조 자료로 하여 생극과 쇠왕을 살피고 여기에다 각종 신살神敎, 약 200개 이상이나 되는데, 예를 들면 역마살, 도화살, 삼재살, 장성살 등)을 대입하여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예단하였으나 현재보다는 적중률이 좀 떨어지는 편이었다(단순한 사회구조에서는 적중률이 높았을 것이다). 그런 연유 때문인지 그 당시에는 학문學問화되지 못하고 구전口傳으로만 전해져감으로써 믿음성이 희박했다.
그 후 한동안 맥이 끊어지는가 했을 때, 송宋나라 때로 추정되는 서거역 자평子平이란 사람이 처음으로 사주학에 일대 혁명을 일으키며 현대까지 통용되고 있는 사주학을 완성시킨다.
이허중李虛中의 연주 중심에서 보는 적중률이 낮은 점(인구가 더 많아졌겠고 좀 다양한 생활환경이 됐기 때문이 아닐까?)을 보완하고 오랜 임상실험을 통해 적중률이 탁월한 일주 중심日主中心의 명리학을 서문화書文化하여 『연해자평淵海子平』이란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됨은 동양 역대의 사주명리학의 역사를 앞뒤로 선을 긋는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다.
즉, 명리命理학이 생긴 이래 최대의 쾌거였다. 그 후 명나라 때에는 장신봉이 『명리정종(命理正宗』을 저술했고, 만육오가 『삼명통회三命通會』를 저술했다.
청나라 초기에는 여춘대가 『궁통보감窮通寶鑑』을 저술했다. 명사明史 예문지에는 『삼명담적천수 라고 실려 있는데, 바로 이것이 명나라 개국공신 유백온이 지은 『적천수滴天髓』의 원본이다.
청나라 초엽에 진소암이 『적천수, 원본을 주해한 『적천수집요』를 저술했다. 진소암은 강회 5년(1666년)에 사망했으나, 그의 저술연대는 그보다 앞선 것이다.
청나라 초엽에 심효첨이 『자평진전子平真詮』을 저술했는데, 건륭 41년인 1747년에 호공보가 이것을 발행했다.
심효첨은 건륭 4년 기미년에 진사에 급제한 사람이었다. 임철초는 건륭 38년 서기 1773년 4월 18일 진시辰時에 출생해서 그 당시 73세 되는 나이에 『적천수 천미闡微』를 저술했다.
최근에 이르러 1933년 원수산이 『적천수천미 闡微』를 발행했는데, 진소암의 주석도 함께 넣었다.
1935년애는 서락오가 『적천수 징의徵義』를 발행했는데, 『적천수천미』에서 진소암의 주석註釋 부분을 삭제한 것이다.
그 후에 서락오는 다시 『적천수 보주』와 『자평수언子平粹言』을 저술했고 원수산이 『명리탐원命理探原』과 『명보命譜』를 펴내었다. 이상이 대표적인 사주명리학 고전의 발행순서이다. 현대에 와서 위천리의 『명학강의命學講義』와 『팔자제요八字提要』는 뜻이 깊은 것들이다.
우리나라의 박재완 선생은 위천리의 『명학강의』를 번역하여 『명리요강命理要綱』의 이론체계를 세웠고, 위천리의 『팔자제요』를 번역하고 거기에다 일지론을 첨가하여 『명리사전』 을 세상에 펴 내놓았다.
그 외에도 우리나라에서 역학을 연구하고 공부하려는 후학들을 위해 학리적으로 책을 펴낸 기라성같이 수많은 유명인사들이 많이 있는데, 이분들을 뒤 참고문헌에 실었다. 그 외에도 은하계별처럼 수많은 분들이 강단에서 강의하거나, 강호에서 은거하면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는 고매한 분들께 정중히 큰절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