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변에서 일어나는 재판을 보면 반드시 옳은 사람이 승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궤변(詭辯)의 논리가 승리할 때도 있고, 변호사의 능력이나, 그러한 여러 요소들이 재판의 승패(勝敗)를 가르기도 하는 것도 보게 됩니다. 반드시 정의가 승리해야 하는데, 때로는 그렇지 못한 일도 벌어지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 사이에 시비가 생기면 공명정대(公明正大)하게 재판하라고 말씀하십니다(1절). 그리고 악한 자에게는 처벌을 내리되, 태형(笞刑)을 하게 했을 땐 40대까지만 때리라고 말씀하십니다(2절, 3절). 어떤 죄는 사형에 해당하는 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죄에 대한 처벌은 죽이는 것이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너무 심하게 때려서 죽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한 것입니다. 나중에 유대인들은 사십 대까지 때리지 않고(혹시 숫자를 잘못 세어 더 때릴 수도 있으니) 40에 하나 감한 숫자인 39대까지만 때리도록 하여, 그것이 관습이 되기도 했습니다(고후 11:24). 억울한 처결이 이뤄지지 않도록 하고, 악한 자를 처벌하되 죽여야 할 죄가 아니라면, 철저하게 응징(膺懲)하되 죽을 정도로 하지는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4절). 그 일한 만큼의 대가를 주라는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9:9, 10과 디모데전서 5:18에서는 이 말씀에 대한 해석으로 단순히 동물복지에 대한 말씀만이 아니라, 일꾼이 일을 하면, 그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씀으로 해석했습니다. 특별한 상황에서는 다를 수 있겠지만,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노동을 요구했으면, 그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본인이 원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소위 말하는 열정페이(熱情Pay; 어떤 이유를 핑계로 하여 보수를 주지 않고 봉사나 노동을 요구하는 것을 의미)를 요구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말 그대로 자신이 자원하여 무보수로 섬기겠다고 한 것이 아닌 때에는 정당한 보수를 제공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특별히 교회나 기독교단체에서는 이러한 부분을 깊이 되새겨야 합니다.
5절부터 10절은 계대혼인법(繼代婚姻法) 혹은 계대결혼법(繼代結婚法)이라고 일컫는 제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어떤 가족의 한 아들이 결혼한 후 아들을 낳지 못한 상태에서 죽었을 경우에, 그 대(代)를 잇도록 하기 위해 죽은 아들의 아내가 남편의 형제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도록 하는 제도가 계대혼인법입니다. 그렇게 하여 한 가족의 대를 이어가도록 하였는데, 그 죽은 아들의 형제가 이러한 결혼을 거절하면 성문으로 나아가 장로들과 사람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현하게 하고, 죽은 남편의 아내가 그 형제의 신발을 벗기고, 그 얼굴에 침을 뱉어서 모욕을 주게 하는 의식을 치렀습니다. 그 당시 신발은 권리나 지위를 상징하는 것이었는데, 그 권리와 지위를 빼앗겼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대를 잇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고, 그러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을 수치로 여기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제도도 어떤 의미에서는 가족을 돌보고 배려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싸루고 있을 때 한 사람의 아내가 자기의 남편을 구하기 위해 싸우는 상대방의 음낭을 잡으면, 그 여인의 손을 찍어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11절, 12절). 음낭을 잡는다는 것은 그 남자의 생식 기능을 멸절시키려는 것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고대에서는 생육하고 번성하기 위해 자식을 낳고 대를 잇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는데, 이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는 것을 가혹한 처벌로 응징한 것입니다.
또한 거래를 할 경우에는 공정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13절~16절). 사기와 속이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였습니다. 저울추를 속이거나, 되를 사용할 때 큰 것과 작은 것 두 개를 가지고 눈속임을 하지 말도록 하였습니다. 자기 유익을 위해 속이면서 악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께 가증하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모든 일에 정직해야 하고, 거래를 할 때에도 눈속임이 아니라, 공정하고 정직하게 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누군가와 물건을 사고팔 때, 장사를 하면서 무엇인가를 팔 때 정직해야 하고, 공정한 저울을 사용하여 속이지 말고 정직하게 거래해야 합니다. 더 주지는 못할망정 속이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십니다(17절~19절). 출애굽기 17:8~16을 보면 아말렉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했던 직후에 이스라엘이 아직 전열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18절) 기습적으로 습격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힌 족속입니다. 물론 모세가 아론, 홀과 함께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두 손을 들어 하나님께 기도할 때 전쟁에 이기게 하시는 역사(役事)로 아말렉에게 승리했지만, 하나님은 이러한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에 싸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 17:16). 19절에 “너는 천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라는 말씀은 아말렉과 싸워 그 흔적도 남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비겁하게 이스라엘 민족을 공격한 아말렉을 철저히 진멸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정하길 원하십니다. 공명정대(公明正大)하길 원하십니다. 정직하길 원하십니다. 정정당당하길 원하십니다. 비겁하거나, 속이거나, 야비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삶의 태도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 거짓과 속임수와 야비한 모습으로 살아가면 안 됩니다. 그것은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수치스러운 모습입니다. 정직하게, 공정하게, 공명정대하게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끝까지 유지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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