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水滸傳•제 74편
진명과 황신이 책문에 당도하여 바깥을 내다보니, 두 갈래 군마가 당도했다. 한 갈래는 송강과 화영이, 한 갈래는 연순과 왕영이 각각 150여 명을 거느리고 있었다. 황신이 병사들에게 조교를 내리고 책문을 열게 하여, 두 갈래 인마를 모두 진으로 맞아들였다. 송강이 백성을 해치지 말고 병사들을 상하지 말라고 호령을 내렸다. 먼저 남쪽의 소채로 가서 유고의 가족을 붙잡아 모두 죽였다. 왕영은 먼저 유고의 부인을 붙잡았고, 졸개들은 집안의 재물을 모두 챙겨 수레에 실었다. 그리고 말과 소, 양 등도 모두 끌고 갔다. 화영은 집으로 가서 재물을 모두 수레에 싣고 부인과 여동생을 데려갔다. 청풍진에 남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돌려보냈다. 모든 일을 수습한 다음, 일행은 청풍진을 떠나 산채로 돌아갔다.
수레와 인마가 산채에 당도하자, 정천수가 맞이하여 취의청으로 인도했다. 황신은 호걸들과 인사를 마치고 화영 옆에 앉았다. 송강은 화영의 가족에게 처소를 마련해 주어 쉬게 하고, 유고의 재물을 졸개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왕영은 유고의 부인을 붙잡아 와서 자기 방에 숨겨두었다. 연순이 물었다.
“유고의 처는 지금 어디 있나?”
왕영이 대답했다.
“이번에는 아우의 아내로 삼아야겠습니다.”
연순이 말했다.
“주려면 자네에게 주어야지. 일단 불러오게, 내가 할 말이 있으니.”
송강이 말했다.
“나도 물어 볼 말이 있네.”
왕영은 여인을 대청 앞으로 데려오자, 여인은 울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하였다. 송강이 소리쳤다.
“네 이년! 네가 관원의 부인이라 나는 호의로 구해서 내려 보냈건만, 네년은 어찌하여 도리어 원수로 갚았느냐! 오늘 이렇게 붙잡혀 왔는데, 무슨 할 말이 있느냐?”
연순이 일어나며 말했다.
“이런 음탕한 년에게 뭘 묻습니까?”
요도를 뽑아 한칼에 두 동강을 내버렸다. 왕영은 계집이 칼에 베이는 것을 보고 크게 노하여 박도를 들고 연순과 싸우려고 했다. 송강 등이 일어나 말렸다. 송강이 말했다.
“연순이 저 계집을 죽인 건 옳은 일이네. 형제! 내가 힘을 써서 구하여 내려 보냈더니 부부가 똘똘 뭉쳐 안면을 바꾸고 도리어 나를 해치려 한 걸 자네도 보지 않았는가? 저런 계집을 가까이 두면 백해무익하네. 송강이 차후에 좋은 여인을 골라 주겠네.”
연순이 말했다.
“아우도 잘 생각해 보게. 지금 죽이지 않으면 후에 필시 자네에게 해를 끼칠 걸세.”
왕영은 여러 사람들이 설득하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연순은 졸개들을 불러 시체를 치우고 피를 닦아내게 한 다음, 연회를 열어 축하하였다.
다음 날, 송강과 황신이 혼례를 주관하고 연순·왕영·정천수가 중매가 되어 화영의 여동생을 진명에게 시집보냈다. 모든 예물은 송강과 연순이 준비하였다. 사나흘 동안 연회를 열었고, 혼례가 끝난 후 6~7일이 지났다. 졸개가 사정을 정탐하고 와서 보고하였다.
“청주의 모용부윤이 화영·진명·황신이 배반했다는 공문을 중서성에 보냈고, 조정에서는 대군을 일으켜 청풍산을 토벌하러 온다고 합니다.”
보고를 받고 두령들이 상의했다.
“이곳의 작은 산채는 오래 머물 곳이 못됩니다. 만약 대군이 와서 사면을 포위한다면, 어떻게 대적하겠습니까?”
송강이 말했다.
“내게 한 가지 계책이 있는데, 여러분 마음에 들지 모르겠습니다.”
두령들이 모두 말했다.
“양책을 듣고 싶습니다.”
“남쪽에 양산박이란 곳이 있습니다. 둘레가 8백여 리이고, 가운데 성이 있고 해자가 둘러싸고 있습니다. 조천왕이 4~5천 군마를 모아 지키고 있는데, 관군도 감히 똑바로 쳐다보지 못합니다. 우리가 인마를 수습하여 거기로 가서 입당하면 어떻겠습니까?”
진명이 말했다.
“그런 곳이 있다면 좋습니다. 하지만 인도해 줄 사람이 없으면, 그들이 우리를 받아주려 하겠습니까?”
송강이 크게 웃고 나서, 생일선물을 탈취한 일에서부터 유당이 서신과 황금을 가져온 일, 또 그로 인해 염파석을 죽이고 강호로 도망친 일까지 모두 얘기했다. 진명이 듣고 나서 기뻐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형님이야말로 그들의 큰 은인입니다. 이 일은 지체할 수 없으니, 빨리 수습하여 떠납시다.”
계책이 정해지자, 수레 수십 대를 준비하여 가족과 재물 등을 싣고, 2~3백 필의 말도 준비하였다. 졸개들 가운데 가고 싶지 않다는 자는 은자를 나누어주어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나게 하고, 가기를 원하는 자들은 부대에 편입시켰는데 진명을 따라온 자들까지 모두 4~5백 명이었다. 송강은 무리를 셋으로 나누어 하산시켰는데, 양산박을 치러 가는 관군으로 위장했다. 산 위에서 모든 것을 수습하여 수레에 싣고, 산채는 불을 질러 황무지를 만들었다.
송강과 화영이 기병 4~50기를 거느리고 수레 일곱 대에 가족들을 태워 호위하면서 먼저 출발했다. 진명과 황신은 기병 8~90기를 거느리고 수레 몇 대를 끌고 두 번째로 출발했다. 뒤에 연순·왕영·정천수 세 사람이 4~50필의 말과 1~2백 명을 거느리고 청풍산을 떠나 양산박을 향해 나아갔다. 도적을 잡으러 가는 관군임을 알리는 깃발을 들고 갔으므로, 아무도 감히 가로막는 자가 없었다. 6~7일 행군하여 청주로부터 멀어졌다.
송강과 화영은 말을 타고 선두에서 가고 뒤에는 가족을 태운 수레가 따라가고 있었는데, 서로 간에 20여 리의 거리를 두고 있었다. 가다 보니 앞에 산이 하나 나타났는데, 대영산이라고 했다. 양쪽으로 높은 산이 있고 그 가운데에 넓은 역참대로가 나 있었다. 두 사람이 말을 타고 앞서 가고 있는데, 앞쪽에서 징소리가 울렸다. 화영이 말했다.
“앞에 필시 강도가 있을 것이다!”
화영은 말을 멈추고 쟁을 들었다. 활과 화살을 정돈한 다음, 화살을 다시 화살통 안에 꽂았다. 기마병을 불러 뒤에서 따라오는 군마를 재촉하는 한편, 수레를 멈춰 세웠다. 송강과 화영은 20명의 기마병을 거느리고 앞으로 나가 길을 살폈다. 반리쯤 갔는데, 약 백여 명의 인마가 붉은 갑옷을 입은 청년장사를 호위하고 있었다.
청년장사가 방천화극을 들고 말을 타고서, 산기슭 앞에서 크게 소리쳤다.
“오늘 나랑 너랑 싸워서 승부를 가려 보자!”
그때 맞은편 언덕 뒤에서 또 백여 명의 인마가 나타났는데, 앞에 흰 갑옷을 입은 청년장사를 호위하고 있었다. 그 청년장사도 손에 방천화극을 들고 있었다. 저쪽은 모두 흰 깃발이었고, 이쪽은 모두 붉은 깃발이었다. 흰 깃발과 붉은 깃발이 휘날리는 가운데 북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두 청년장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 각각 화극을 들고 말을 몰아 가운데 큰길 위에서 교전하였다. 화영과 송강이 말을 멈추고 바라보았는데, 과연 호적수였다.
두 청년장사는 각각 방천화극을 썼는데, 30여 합을 싸웠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 화영과 송강은 마상에서 구경하다가 갈채를 보냈다. 화영은 한 걸음 한 걸음 말을 몰아 앞으로 나아가 구경했다. 두 장사가 싸우면서 점점 깊은 계곡에 다가갔다. 한쪽 화극에는 표범꼬리 같은 술이 달려 있고, 다른 한쪽 화극에는 오색실을 꼬아 만든 술이 달려 있었는데, 한순간 두 술이 뒤엉켜 풀어지지 않았다. 화영이 마상에서 그걸 보고 말을 멈춘 다음, 왼손으로 활을 잡고 오른손으로 화살을 한 대 먹여 날렸다. 화살은 바람처럼 날아가 두 술이 엉킨 곳에 명중했고, 두 화극은 서로 떨어졌다. 바라보고 있던 2백여 명이 일제히 갈채를 보냈다.
두 장사는 싸움을 멈추고 말을 달려 곧장 송강과 화영 앞으로 왔다. 마상에서 몸을 굽혀 인사하고 말했다.
“신전장군(神箭將軍)의 큰 이름을 듣고자 합니다.”
화영이 대답했다.
“이분은 나의 의형 운성현 압사이신 산동 급시우 송공명이시고, 나는 청풍진 지채 소이광 화영이오.”
두 장사는 화극을 버리고 말에서 내려 무릎을 꿇고 절하며 말했다.
“존함을 들은 지 오래입니다.”
송강과 화영도 황망히 말에서 내려 두 장사를 일으키고 말했다.
“두 분 장사의 이름은 어떻게 됩니까?”
붉은 갑옷을 입은 장사가 말했다.
“저는 여방(呂方)인데, 본적은 담주입니다. 평소 여포를 좋아하여 방천화극을 익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작은 여포’라는 뜻으로 소온후(小溫侯) 여방이라 부릅니다. 산동에 약재를 팔러 갔다가 본전을 다 까먹고 고향에 돌아갈 수 없어, 이 대영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