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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고진(白沙古鎭)에 있는 백사벽화
백사는 이강에서 북쪽으로 8km거리에 있는 마을로 북쪽으로는 옥룡설산, 남쪽으로는 용천 , 서쪽으로는지산(芝山)을 면하고 있다. 이곳은 이강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 중의 하나로 여강에 있는 나시족 최초의 집거지이면서 여강 목씨토사(세습족장제도)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명대 건축물인 대보적궁(大寶積宮),유리전(琉璃殿), 문창궁(文昌宮) 등이 이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유명한 백사벽화가 대보적궁내에 있다. |
<나시족의 상형문자=동파문자>
세계 기록 문화유산으로 현재까지 1000년이상 상용되고있는 500여문자이다.
"구름걸친 옥룡설산에 올라 복많이받고 부귀 영화를 길게 누리시오"
옥룡설산
이곳은 중국운남성 샹그리라 여강에있는 해발 5596m 만년 설산으로 4680m 까지 케이불카로 올라가는곳입니다. 이 지구상에서 일반인을 케이불카로 제일 높은 곳 으로 올여 보낼 수 있는곳 이라고 안내인의 자랑이 대단했읍니다.티�의 8대신산(인간의 발이 밟지 못한곳 오직 신만이접근가능한산)의 하나로 알려진산이다.
<옥룡설산 리프트 승차장 아래에 있는 현지 식당>
여행객이 몰려 식사 전쟁이였다. 기계적으로 나오는 식사가 정말로 신기했다. 눈 깜작할사이에 식탁이 치워지고 새로운 음식 나오고 하는데 채 5분이 안걸리는 공급 체계가 확보 되고 있었다.
<원시림과 야크(소)>
이곳의 가축은 가두어 키우는 축사는 존재하지 안는다. 심지어 돼지도 방목을 한다.원시림에는 방목되는 야크, 염소들의 천국이며 관광객과 함께 거닐고있고 원시림은 그자리에 썩어 그자리에 걸음으로 남는다.
백 수 하
비취색 물감을 잔뜩 풀어 놓은 듯한, 아무리 보아도 자연스럽지 않은 자연의 빛깔, 이곳은 백수하 라고 부르는 호수다.옥룡 설산의 만념설이 녹아 내리면서 석회질을 비롯한 여러 광물질이 함유된 물이 오랜도록 흐르면서 저런계단을 만들고 석회성분이 바닦에 가라 앉으면서 청옥빛깔의 호수를 만들었단다.
여강(리장)고성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여강(리장)고성
여강은 옌젼(大硏鎭)이라고도 불리운다. 송나라말 원나라 초인 1253년, 후비리에가 남쪽으로 쳐들어 와서 따리(大理)를 정벌할 무렵, 리쟝에 이르러서 병영을 세웠다. 명나라 때에 이 성읍은 규모를 갖추었고, 무(木)씨 성을 가진 투쓰(土司)가 통치하였다. 고성의 북쪽에는 의샹산, 사자산등이 있어서 북쪽으로부터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막아주어 겨울에도 그다지 춥지 않다.
위룽쉐산으로부터 흘러내리는 신선한 물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고성 곳곳을 흐른다. 이 물줄기들로 인해 리쟝의 독특한 정경을 만들어 '동방의 베니스'라 불리기도 한다. 고성의 중심에는 쓰팡지에(四方街)가 있다. 여기에 방사상으로 길이 나있는데 바닥이 모두 돌로 되어있다. 시가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상권으로 많은 상점과 음식점들이 몰려있다. 골동품, 그림, 의류, 액세서리 등을 싸게 구입할 수 있는 매력적인 쇼핑지역이기도 하다.고성은 나무로 된 기와 건물이다. 삼면이 방이고 한 면이 벽인 구조로 되어있는데, 이 군락이 독특하다.
1997년 12월 4일 리쟝 고성은 세계문화유산지구로 지정되었다.
이 수로를 통하여 흐르는 물을 이용 오전에는 채소와 곡식을 씻고 호후에는 빨래를 하도록 정하여 운영해온 규율이 지금도 지켜지고 있는 800년 역사의 고성은 이탈리아의 품페이 처럼 그 당시에 도로가 포장되어 있었고 돌로 정교하게 건설한 다리(려강대석교)가 현존하고 그길은 지금사람이 걸어다니고 있다는것은 역사의 아이론이였다.
<모서신족의 전통의상을 입은 소녀와 필자>
차마고도를 넘어온 마방들이 이곳에 모여 물물 교환을 흥정하던 장터(광장)
800여년전 이미 포장된 도로(광장)을 확보하고 티벳을 중심으로한 마방들이 모여들어 물물교환을 흥정했다는 장소는 지금도 바닦이 반질 반질하게 달아 반득이는 돌로 깔려 있었다.
전통 옷감을 짜는 모서인족
800여년전 이미 도로가 포장되여 현존 한다는거리
유일하게 존재한다는 800여전된 건축된 돌다리
유일하게 남아 있는 한점의 유물인 여강대석교 밑으로는 맑은 물이 흐르고 송어, 잉어등 각종 물고기가 논일고 있으며 이를 구경하기위한 물고기 사료가 곳곳에서 판매되고 있었다.
(고성광장)
서산(西山)삼림공원
운남민족촌을 구경하다 보면 그 주변으로 병풍같이 둘러싼 커다란 돌산을 볼 수 있는데, 그 산이 서산(西山)삼림공원이다.
산세가 미인이 잠을 자고 있는 듯하다 하여 '잠자는 미인산'이라 불리우며, 누워있는 부처의 모습이라 하여 '와불산(臥佛山)'이라 불리기도 하는 서산은 그 정상에 있는 용문석굴의 채광이 오전에 가장 좋다고 해서 보통 오전에 방문하는 곳이다.
서산은 해발 2500m의 높이로 면적이 2만평방미터에 이르고, 웅대한 삼림이 공원을 형성하고 있다. 서산의 주요 유람지로는 화정사(華亭寺), 태화사(太華寺), 니얼묘, 삼청각(三淸閣), 용문석굴(龍門石窟), 전지(澱池) 등이 있고, 제일 높이 있는 용문석굴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걸어서 내려올 수 있다.
원 통 사
中國 昆明市에서 가장 오래된 圓通寺 唐代에 지어진 1200 年의 역사를 지닌 가장 규모가 큰 절
용문석굴
용문에서본 곤명호(전지호)
昆明湖에는 넓은 호수(남북으로 길이40km, 동서 폭으로 8km)로 건너편의 앞에 유명한 西山을 끼고
곤명을 한층 돋보이게 위치한다.
청나라 시절인1781년 착공 하여 1853년에 완공된 석굴로 위씨족인 토공이 2대어걸처 손으로 돌을 쪼아 굴을 뚤어 곤명호를 조망할수 있도록 서산공원의 서쪽 암벽에서 곤명호를 바라보는 절벽을 굴착한 구조물이다.
서산 관광의 백미라 할 수 있으며, 돌벽을 깎아 만든 길을 따라가면서 한편으로 탁트인 호수를 바라볼 수 있다. 삼청각에서 용문의 정상인 달천각까지 1333단의 석단이 만들어져 있다. 용문은 1840년부터 1853년까지 13년에 걸쳐 70여명의 석공들이 밧줄에 매달려 돌을 조각한 것이다. 석단뿐 아니라 석실, 신상 등이 만들어져 있다.
**등(登오를)용(龍용)문(門문) 이란 말은?**
후한(後漢)말.환제(桓帝)때는 혼란이 극심했다,발호장군(跋扈將軍)으로 불리며 횡포를 일삼던
외척 양기(梁綺)가 죽자.이번엔 단초(單秒) 등을 중심으로 하는 오사(五邪)의 환관들이 권력을
쥐고 천하을 뒤 흘들었다,
이때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해 뜻있는 관리들이 모여 힘을 합쳐환관들의 무리와 맞서 싸웠다 이 무리의 핵심 인물이 바로 이응(李膺)이다,이응은 관리로서 지조를 굽이지 앉아 그 당시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였다.태학(太學)의 젊은 학생들은 그를"천하의모범"이라고 까지 하며 기꺼이 따랐다. 신진 관료들 역시 그의 추천 자체가 바로 장래을 약속받는 첩경으로 인식되어 결국 "등용문" 이라는 말까지 생겨나게 된 것이다.
과연 등용문은 무엇일까????
용문은황하(黃河)상류지역에 있는 협곡 이름인데 물살이 너무 빨라 웬만한 물고기는 거술러 올라갈 정도로 엄두도 못낼 정도였다,용문을 올라가려고 도전한 물고기 중 실패한 물고기는 바위에
비늘도 찢기고 상처을 입어 두번 다시 오를 생각 조차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일단 그물살을 거슬러 올라가기만 하면 그 물고기는 용으로 변한다 해서"등용문"은 출세의 디딤돌이라는 말로 옛날부터 사용햇던 것 이다
*이글은 중국의 후한서(後漢書)에 나타내는 글로써 입신 출세의 관문을 뜻하며 뜻을 크게 펼쳐 영달하는 것에 비유하는 글인듯 하다*
석림공원
중국 남부의 운남(云南, Yunnan)에는 많은 명소들이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명소의 하나가 바로 석림(石林, Shilin)이다. 사람들은 신비한 석림을 돌아보면서 이런 돌의 수풀이 어떻게 생겨났고 어떻게 지금까지 계속되는지에 대해 늘 의문을 가지게 된다
석림에는 여러 명소들이 많은데 그 중 돌이 많고 돌 사이로 난 갈림길이 400여갈래나 되는 "해저미궁"이 속한 대석림이 석림에서 가장 대표적이고 역사가 가장 오랜 명소이다. 이 곳의 돌들은 선이 죽죽 뻗어 있고 담담한 청회색을 나타내는, 세계적으로 대표적인 카르스트지모에 속한다. 이 곳에는 또 상이한 모양의 돌들이 그만의 볼거리를 자랑하기도 한다. 위의 돌은 빗물에 씻겨 뾰족한 칼처럼 되고 아래의 돌은 흙에 덮여 있다보니 물이 흐른 흔적을 보이는 칼의 산, 불의 바다인 "도산화해(刀山火海)", 연꽃모양의 "연화봉(蓮花峰)" 등은 보는 사람의 상상을 불러일으키기에 족하다.
"망봉정(望峰亭)"은 림해(林海)를 구경하기 가장 좋은 곳이다. 이 곳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온통 돌의 세계가 한 눈에 안겨든다. 돌로 된 산봉속을 걸으면 수시로 석봉(石峰)에 길을 막히게 된다. 석봉의 모양 또한 기이하고 생동하기 그지없다. 엄마가 아들을 데리고 산책하는 듯한 "모자해유(母子偕遊)", 돌위에 코끼리가 서 있는 것 같은 "상거석대(象踞石台)"와 같이 모양에 따라 기이하고 아름다운 이름이 붙여진 석봉이 아주 많다.
이석림은 2억7천만년전 바다 이던 곳이 지각변동으로 융기하여 육지가 되었고 오랜세월 풍화작용을 거처 마모된 암석이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나 금년 6월에야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등록된것은 암석에 인위적으로 새겨놓은 글씨들 때문으로 자연을 훼손한 사실이 걸림돌로 남아 뒤늣게 인정을 받은것이란다.
한글 표기에 자부심을 느낀다.
"석림"이라고 쓴 요놈의 글씨가 자연을 훼손한 것 이라서 유네스코 자연유산 지정에 세번이나 "팽"당했었답니다.
마지막 여행지에서 할미꽃과 함께
운남성(雲南省)은 중국의 23개 성(省)중의 하나로 남한 면적의 4.2배인 중국대륙에서 제일 서남쪽 변방에 위치하고 있으며 베트남,미안마, 라오스 삼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운남성은 다채로운 모습을 가진 땅에 백족, 합니족, 태족, 나시족 등 25개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광활한 고산지역이였다.
여강의 고산지역에서 생산되는 복숭아는 한국산보다 보통 1/2정도 크고 맛이 훌륭했으나 값은 개당 2천원(한국돈)으로 만만치 않았다.
이렇케해서 2007년 해외 여행을 마감 했습니다.
첫댓글 우와 멋잇습니다~두분 행복하세요~~
좋은곳 다녀오셧군 ... 앉아서 곳구경 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