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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고 싶은 수상한 공간, 다시 찾은 잃어버린 자아
- 송명화의 수필, 고노 다에코의 모티프 이론으로 읽기
권대근
문학박사, 하북미대 객좌교수
Ⅰ.로그인
송명화는 2025년 평사리문학상 대상, 우하박문화문학상 평론 부문 최우수상, 신격호샤롯데문학상 대상을 동시에 거머쥔 3관왕 작가로서, 오늘의 한국 수필문단을 대표하는 뛰어난 필력의 소유자이다. 그의 수필은 단순한 감상이나 일상 기록에 머물지 않고, 예리한 지성과 깊은 통찰로 우리 사회의 그늘진 자리와 인간 내면의 균열을 정면에서 응시한다. 현실의 모순을 외면하지 않는 비판의식, 삶의 미세한 결을 놓치지 않는 감각, 그리고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따뜻한 인간애가 한 문장 한 문장 속에 살아 있다. 문장은 단단하면서도 유려하고, 사유는 날카로우면서도 품격이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눈으로는 아름다움을 맛보고 마음으로는 진실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송명화의 작품 세계는 문학성과 시대의식이 조화를 이룬 드문 성취로, 한국수필이 도달할 수 있는 높은 경지를 보여 준다.
본고에서는 그녀의 <수상한 사진관>을 ‘모티프’이론으로 살펴보려 한다. 고노 다에코(河野多惠子)는 작품을 움직이는 핵심 장치로서 모티프(motif)를 중시하였다. 모티프란 단순히 반복되는 사물이나 이미지가 아니라, 인물의 무의식과 욕망, 결핍, 억압된 감정을 드러내며 작품 전체의 의미망을 형성하는 중심 동인이다. 겉으로는 평범한 소재라도 그것이 반복되거나 변주될 때, 독자는 그 사물 뒤에 숨은 심리적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송명화의 수필 <수상한 사진관>은 홍대의 이색 사진관 체험을 서술한 글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나이 들어 굳어진 자아가 다시 꿈과 감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욕망이 흐른다. 이 작품은 사진관 비 거울 계단 동화적 환상 등의 모티프를 촘촘히 배치하여 중년 여성 화자의 내면 변화를 섬세하게 드러낸다. 고노 다에코의 모티프 이론으로 읽을 때, 이 수필은 단순한 체험담을 넘어 상실된 자아 회복의 서사로 확장된다.
Ⅱ. 클릭
1. ‘사진관’ 모티프
이 작품의 핵심 모티프는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사진관이다. 사진관은 단순히 사진을 찍는 장소가 아니라, 현실의 자아와 욕망 속 자아가 교차하는 상징 공간이다. 화자는 “좁은 계단을 빙 돌아내려 가자 하얗고 작은 문이 보였다”고 말한다. 이 장면은 현실 세계에서 비현실 세계로 진입하는 통로이자,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내려가는 통과의례처럼 읽힌다. 고노 다에코 식으로 말하면, 공간은 곧 심리의 은유이다. 계단 아래 숨은 사진관은 화자의 일상 밑바닥에 잠들어 있던 욕망의 장소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현실의 얼굴이 아니라 꾸며진 또 다른 얼굴을 가진다. 이 작품을 감상하는 묘미는 현실의 얼굴과 내면의 얼굴 사이를 읽어내는 데 있다.
입술이 붉은 소녀들이 화관을 쓰고 내 앞을 가로질러 갔다. 왁자지껄 터지는 웃음이 따라왔다. 나를 보고 웃는가 싶어 뒤를 돌아보았다. 벽을 따라 죽 늘어선 십여 개나 되는 앙증맞은 화장대들 앞에는 갓 없는 전구가 빛을 발하고, 그 아래 갖가지 머리핀과 색조화장 도구들이 놓여있었다. 드라이어가 있고, 공주풍 화관과 마술사의 모자까지. 문도 없는 작은 방에서 아이들은 다양한 의상을 입고 혹은 가면이나 망토를 쓰고 모델보다 멋지게…. 벽에 붙은 수백 장의 사진 속에서 신나는 열망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화면을 엿보았다. 다섯 대의 컴퓨터가 작업 중이었다. 포토샵을 통해 더욱 생기 있게 예쁘게 멋지게 혹은 충격적으로 인물을 표현하는 손끝이 재발랐다.
- <수상한 사관관> 중에서
고노 다에코의 모티프 이론으로 볼 때, ‘변신 욕망’과 ‘또 다른 자아의 탄생’을 집약적으로 보여 주는 핵심 장면이다. 먼저 “입술이 붉은 소녀들”, “화관”, “공주풍 화관”, “마술사의 모자”, “가면”, “망토” 등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장식물들은 현실의 일상적 자아를 벗고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 하는 욕망의 모티프이다. 사진관은 단순한 촬영 공간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잠시 공주가 되고, 마술사가 되고, 모델이 되는 자아 변형의 무대가 된다. 또한 “벽에 붙은 수백 장의 사진 속에서 신나는 열망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는 표현은 사진들이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젊음 아름다움 주목받고 싶은 욕망이 응축된 상징물임을 말한다.
이어 “포토샵을 통해 더욱 생기 있게 예쁘게 멋지게 혹은 충격적으로 인물을 표현”한다는 대목은 현대인이 실제 모습보다 가공된 이상적 자아를 더 갈망한다는 시대 심리를 드러낸다. 결국 이 단락의 모티프는 꾸밈 도구와 사진 기술을 매개로 현실의 부족한 자아를 넘어서려는 인간의 본능적 욕망이며, 화자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자신 안에 잠들어 있던 변신의 욕망과 젊음에 대한 그리움을 동시에 자각하게 된다. “더욱 생기 있게 예쁘게 멋지게 혹은 충격적으로 인물을 표현하는 손끝이 재발랐다.”라는 표현은 사진이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새로운 자아를 창조하는 행위임을 보여준다. 현실의 주름과 피로를 넘어, 자신이 되고 싶은 또 하나의 자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2. ‘앨리스’와 ‘요정들’ 모티프
화자는 사진관에 들어서는 순간 자신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비유한다. 또한 사진관 안의 젊은 여성들을 “요정들”이라 부른다. 이 동화적 모티프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그것은 중년의 삶 속에서 억눌렸던 소녀적 감수성, 놀이 본능, 자유에 대한 갈망이 다시 떠오르는 징후이다. ‘앨리스’와 ‘요정들’은 잃어버린 소녀성의 귀환을 의미한다. “입술이 붉은 소녀들이 화관을 쓰고 내 앞을 가로질러 갔다.”에서 볼 수 있듯이 화관, 망토, 마술사의 모자 같은 소품들은 현실의 직업 나이 책임에서 벗어나 잠시 다른 존재가 되게 하는 장치들이다. 고노 다에코가 즐겨 포착했던 것도 바로 이런 평범한 일상 속 변신 욕망이다. 화자는 그 세계에 속하지 못한 “이방인”처럼 서 있으나, 사실 그녀가 가장 간절히 동경하는 세계가 바로 그곳이다. 소녀들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는 부러움과 그리움, 그리고 잃어버린 젊음에 대한 애틋함이 함께 담겨 있다.
입술이 붉은 소녀들이 화관을 쓰고 내 앞을 가로질러 갔다. 왁자지껄 터지는 웃음이 따라왔다. 나를 보고 웃는가 싶어 뒤를 돌아보았다. 벽을 따라 죽 늘어선 십여 개나 되는 앙증맞은 화장대들 앞에는 갓 없는 전구가 빛을 발하고, 그 아래 갖가지 머리핀과 색조화장 도구들이 놓여있었다. 드라이어가 있고, 공주풍 화관과 마술사의 모자까지. 문도 없는 작은 방에서 아이들은 다양한 의상을 입고 혹은 가면이나 망토를 쓰고 모델보다 멋지게…. 벽에 붙은 수백 장의 사진 속에서 신나는 열망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화면을 엿보았다. 다섯 대의 컴퓨터가 작업 중이었다. 포토샵을 통해 더욱 생기 있게 예쁘게 멋지게 혹은 충격적으로 인물을 표현하는 손끝이 재발랐다.
- <수상한 사관관> 중에서
‘앨리스와 요정들’ 모티프가 가장 선명하게 구현되는 이 장면은, 현실의 공간이 순식간에 환상 세계로 전환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화자 앞을 스쳐 가는 “입술이 붉은 소녀들”과 “화관”, “공주풍 화관”, “마술사의 모자”, “가면”, “망토” 등은 일상의 인물이 아니라 동화 속 존재들처럼 제시되며, 사진관 내부를 마치 이상한 나라의 무도회장으로 바꾸어 놓는다. 이때 소녀들은 단순한 젊은 손님이 아니라 화자가 잃어버린 청춘과 자유로운 감성의 분신이며, “왁자지껄 터지는 웃음”은 현실의 중압감에서 벗어난 생명의 환희를 상징한다. 벽에 붙은 수백 장의 사진과 컴퓨터 화면에서 쏟아지는 활기는 요정들이 뿌리는 마법의 가루처럼 공간 전체를 들뜨게 만들고, 포토샵으로 인물을 새롭게 탄생시키는 손끝은 현대판 마술사의 지팡이 역할을 한다. 결국 이 장면에서 화자는 앨리스처럼 낯선 문을 통과해 젊음과 놀이, 변신이 허락되는 세계를 목격하며, 그 요정들 사이에서 자신 또한 다시 소녀가 되고 싶은 무의식적 열망을 깨닫게 된다.
3. ‘옛 사진’ 모티프
작품 후반부에서 화자는 휴대폰 속 사진과 옛 흑백사진을 꺼내 본다. 여기서 사진은 기억을 봉인한 시간의 표본이 된다. 시간과 상실의 자각을 ‘옛 사진’ 모티프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과거의 사진 속 화자는 아직 꿈을 믿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화자는 말한다. “사진을 찍을수록 기대 속의 내 모습과 점점 멀어져가는 나이가 되었다.” 이 대목은 작품의 정서적 중심이다. 사진은 젊음을 붙잡지 못한다. 오히려 현재의 얼굴과 기대 속 자아의 간극을 더 선명히 보여준다. 따라서 사진은 기억의 위안인 동시에 상실의 증거다. 고노 다에코의 관점에서 보면, 이 반복되는 사진 모티프는 자기 인식의 통증을 환기한다. 화자는 카메라를 통해 자신을 보지만, 그 시선은 타인의 시선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진은 자아 확인의 도구이면서 동시에 자아 소외의 도구가 된다.
카페에 앉아 휴대폰을 연다. 진지한 모습, 같은 표정과 같은 포즈의 사진들이 가득한 사진방에서 색다른 내 모습을 찾아본다. 잊고 살았던 굵게 패인 나이테가 점점 제 나이를 찾아가고, 다시 에너지를 얻으러 옛날 사진까지 꺼내 본다. 사진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떠올리는 화두 같은 동화가 있다. 강소천 선생님의 ‘꿈을 찍는 사진관’이다. 잠이 들면 그리워하던 어릴 적 친구를 만나게 되는 꿈을 꾸고 그 장면을 찍을 수 있게 되는 사진관은 어린 내 가슴에 현실처럼 들어앉아 기대를 갖게 했다. 사진사의 지시에 따라 포즈를 잡고 플래시 불빛에 눈 깜빡일까 조심하는 빛이 역력한, 흑백사진 속 수줍은 눈동자에서 아직도 그때 그 꿈을 본다. 꽃이나 예쁜 잎으로 꾸며진 채 흑백사진 속에 아직도 살아있는 내 꿈들이여.“흑백사진 속 수줍은 눈동자에서 아직도 그때 그 꿈을 본다.”
- <수상한 사관관> 중에서
‘옛 사진’ 모티프는 단순한 과거 회상의 도구가 아니라, 현재의 자아와 잃어버린 시간, 그리고 아직 소멸하지 않은 꿈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기능한다. 화자는 휴대폰 속 “같은 표정과 같은 포즈”의 현재 사진들 사이에서 색다른 자신을 찾지 못하고, 결국 “다시 에너지를 얻으러 옛날 사진까지 꺼내 본다.” 현재의 디지털 사진이 반복되고 고정된 삶의 표정이라면, 옛 흑백사진은 가능성과 설렘이 살아 있던 시간의 저장소이다. 특히 “흑백사진 속 수줍은 눈동자에서 아직도 그때 그 꿈을 본다”라는 문장은 사진이 죽은 기록물이 아니라 지금도 꿈을 발산하는 살아 있는 기억임을 보여 준다. 강소천의 <꿈을 찍는 사진관>을 떠올리는 대목 역시 사진을 현실 복제가 아니라 소망을 붙잡는 마법적 장치로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고노 다에코의 모티프 이론으로 보자면, 이 반복되는 옛 사진은 화자가 상실한 순수성 기대감 자기애를 환기시키는 무의식의 매개물이며, 세월에 지친 현재의 자아가 다시 생기를 얻기 위해 돌아가고 싶어 하는 내면의 원형 공간이라 할 수 있다.
4. ‘마음을 찍는 사진관’ 모티프
작품의 마지막에서 화자는 묻는다. “다음에 이곳을 다시 찾는다면 ‘마음을 찍는 사진관’을 찾을 수 있을까.” 이 문장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결정적 모티프다. 구원의 상상력이 내재되어 있다. 육체의 얼굴이 아니라 마음의 얼굴을 찍고 싶다는 욕망, 즉 본래의 감성, 순수한 기쁨, 살아 있는 내면을 복원하고 싶다는 소망이다. “굳어가는 내 마음이 젤리처럼 부드러워지고 핑크빛으로 물들 수 있기를.”에서의 젤리와 핑크빛이라는 표현은 현실적이지 않다. 그러나 바로 그 비현실성이 상처 입은 삶을 치유하는 상상력의 힘이다. 고노 다에코가 말한 모티프는 종종 무의식의 언어로 나타난다. 여기서 젤리처럼 말랑해진 마음은 굳어버린 감정의 해빙을 의미한다.
비가 그쳤다. 홍대거리가 반짝거리기 시작한다. 간판 곳곳 네온사인이 켜지고, 나무들은 반짝이 꼬마전구로 짠 화려한 옷을 걸친다. 다음에 이곳을 다시 찾는다면 ‘마음을 찍는 사진관’을 찾을 수 있을까. 좁은 계단을 돌아 입구의 작은 문을 밀치고 발을 들여놓는 순간, 굳어가는 내 마음이 젤리처럼 부드러워지고 핑크빛으로 물들 수 있기를. 요정들 속에서 나도 커다란 토끼 머리띠를 하고 애들처럼 미소 지으며 함께 할 수 있기를. 내 남은 삶에 고운 사진관 하나 간직하게 되기를.
- <수상한 사관관> 중에서
‘마음을 찍는 사진관’ 모티프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던 결핍과 욕망이 마침내 희망의 상상력으로 전환되는 절정의 장면이다. 비가 그치고 “홍대거리가 반짝거리기 시작한다”는 서두는 외부 풍경의 변화이면서 동시에 화자의 내면 날씨가 개이는 상징적 전환이다. 이제 화자가 찾고 싶은 것은 얼굴을 꾸며 찍는 사진관이 아니라 “마음을 찍는 사진관”이다. 이는 외모나 나이, 현실적 성취가 아닌 감성 순수 기쁨 생기 같은 내면의 진짜 모습을 확인하고 싶다는 소망을 뜻한다. “굳어가는 내 마음이 젤리처럼 부드러워지고 핑크빛으로 물들 수 있기를”이라는 표현은 세월 속에서 경직된 감정이 다시 유연성과 설렘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치유의 언어이며, “토끼 머리띠를 하고 애들처럼 미소 지으며”라는 구절은 억눌렸던 놀이 본능과 소녀성이 되살아나는 환상적 자아 복원의 이미지다. 고노 다에코의 모티프 이론으로 보면, 이 사진관은 실제 장소가 아니라 화자가 무의식 속에서 갈망하는 재생의 공간이며, 남은 삶을 다시 아름답게 살아가게 해 줄 정신적 피난처이자 미래의 자아를 찍어 보는 희망의 암실이라 할 수 있다.
Ⅲ. 로그아웃
송명화의 <수상한 사진관>은 홍대의 이색 사진관을 둘러본 하루의 기록이 아니라, 나이와 현실 속에서 굳어버린 자아가 다시 꿈꾸기를 소망하는 내면의 드라마이다. 사진관, 앨리스, 옛 사진, 비, 계단, 요정들, 마음을 찍는 사진관 등 여러 모티프는 서로 연결되며 화자의 결핍과 욕망, 상실과 회복의 과정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고노 다에코의 모티프 이론으로 볼 때, 이 작품의 진정한 주제는 “사진”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고 싶은 마음이다. 화자는 사진을 찍으러 간 것이 아니라, 잊고 살았던 자기 안의 소녀를 만나러 갔다. 그래서 독자는 작품을 덮으며 깨닫는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 다시 찾아가고 싶은 ‘수상한 사진관’이 있다. 그것은 거리의 골목 어딘가가 아니라, 아직 완전히 늙지 않은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수상한 사진관
홍대거리에 비가 내렸다. 투명한 비닐우산에 튕기는 빗방울이 많아질수록 내다보이는 사람 수도 불어났다. 청춘들이 거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어제 부산에서 올라와 행사를 치르고 덤으로 얻은 날인지라 걸음은 빗방울전주곡에 맞춰 스텝을 밟고, 나는 어느새 대학가요제에 열광하던 스무 살 때처럼 생기가 넘쳤다. 튀는 아이디어에 사로잡혀 내가 사진을 찍느라 딴전 피는 사이 이모와 이모부는 골목 옆 작은 간판 아래로 먼저 몸을 숨겼다.
수상하다. 좁은 계단을 빙 돌아내려 가자 하얗고 작은 문이 보였다. 문을 열고 내가 속하지 않은 까마득한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에 나는 발을 멈추었다. 눈과 입을 동시에 열었다. 정신을 탁 놓았다. 내 몸이 내부를 다 가려버리는 좁다란 문턱에 서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감탄사를 멈출 수 없게 되었다. 매력적인 간판에 이끌려 들어선 ‘수상한 사진관’ 한가운데서 나는 이방인처럼 눈을 굴리며 혼자 서 있었다.
입술이 붉은 소녀들이 화관을 쓰고 내 앞을 가로질러 갔다. 왁자지껄 터지는 웃음이 따라왔다. 나를 보고 웃는가 싶어 뒤를 돌아보았다. 벽을 따라 죽 늘어선 십여 개나 되는 앙증맞은 화장대들 앞에는 갓 없는 전구가 빛을 발하고, 그 아래 갖가지 머리핀과 색조화장 도구들이 놓여있었다. 드라이어가 있고, 공주풍 화관과 마술사의 모자까지. 문도 없는 작은 방에서 아이들은 다양한 의상을 입고 혹은 가면이나 망토를 쓰고 모델보다 멋지게…. 벽에 붙은 수백 장의 사진 속에서 신나는 열망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화면을 엿보았다. 다섯 대의 컴퓨터가 작업 중이었다. 포토샵을 통해 더욱 생기 있게 예쁘게 멋지게 혹은 충격적으로 인물을 표현하는 손끝이 재발랐다.
작았다. 화장품도 소품도 전등도 심지어는 가구도 매우 작았다. 그것들이 내 눈길에 반응한다. “안녕하세요, 아줌마.” 우리 말 말고 그들이 쓰는 다른 말이 있을 듯하여 나는 웃음만 보낸다. 입구에 비치된 샘플 앨범을 펼치니 갖가지 포즈의 사진들이, 다양한 인물들의 추억들이 자기가 어떠냐고 물어온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묻는 앨리스에게 체셔고양이는 “네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에 달려있다.”고 하였지. 어디선가 나타난 이모에게 이끌려 수십 명 요정들로 부산한 사진관 문을 닫고 지상으로 오르는데 등 뒤와 눈앞은 판이하게 다른 세상이었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카페에 앉아 휴대폰을 연다. 진지한 모습, 같은 표정과 같은 포즈의 사진들이 가득한 사진방에서 색다른 내 모습을 찾아본다. 잊고 살았던 굵게 패인 나이테가 점점 제 나이를 찾아가고, 다시 에너지를 얻으러 옛날 사진까지 꺼내 본다. 사진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떠올리는 화두 같은 동화가 있다. 강소천 선생님의 ‘꿈을 찍는 사진관’이다. 잠이 들면 그리워하던 어릴 적 친구를 만나게 되는 꿈을 꾸고 그 장면을 찍을 수 있게 되는 사진관은 어린 내 가슴에 현실처럼 들어앉아 기대를 갖게 했다. 사진사의 지시에 따라 포즈를 잡고 플래시 불빛에 눈 깜빡일까 조심하는 빛이 역력한, 흑백사진 속 수줍은 눈동자에서 아직도 그때 그 꿈을 본다. 꽃이나 예쁜 잎으로 꾸며진 채 흑백사진 속에 아직도 살아있는 내 꿈들이여.
사진을 찍을수록 기대 속의 내 모습과 점점 멀어져가는 나이가 되었다. 내 모습을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나이의 경계선도 한참을 넘어왔다. 자신 있게 나를 들여다보지 못하는 사이, 느는 주름살 개수보다 더 빠르게 굳어가는 감성을 그러려니 받아들여 온 세월이 처량하다. 차렷, 렌즈를 의식하며 어색하게 웃고, 같은 표정, 같은 자세로…. 디지털 카메라에 이어 휴대폰 카메라를 쓰느라 사진사와 사진관이 어루만져주던 꿈꾸던 영역을 까맣게 잊었다. 돈과 명예가 이루어줄 줄 알았던 꿈은 그것의 크기와는 반비례하듯 설렘과 환희가 쪼그라들고, 바쁜 시간에 쫓기며 두터운 안경알에 나를 가두었다.
염탐하듯 둘러보았지, 새롭다는 표정을 하고서. 투명한 우산을 들고, 늙수그레한 아줌마가. 혹시 내게 눈길을 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나야말로 수상하였겠지. 이모가 여권사진을 찾아왔다. 이마도 두 귀도 다 드러내야 하는 한계가 있어서이겠지만 평소 이모의 미모는 온 데 간 데 없다. 각색을 못하는 성미라 머뭇거리는데 이모부가 카페 탁자 밑에서 내게 발로 신호를 보낸다. “예쁘고 단정하게 잘 나왔네.” 그제야 맞장구를 치며 나도 거든다.
비가 그쳤다. 홍대거리가 반짝거리기 시작한다. 간판 곳곳 네온사인이 켜지고, 나무들은 반짝이 꼬마전구로 짠 화려한 옷을 걸친다. 다음에 이곳을 다시 찾는다면 ‘마음을 찍는 사진관’을 찾을 수 있을까. 좁은 계단을 돌아 입구의 작은 문을 밀치고 발을 들여놓는 순간, 굳어가는 내 마음이 젤리처럼 부드러워지고 핑크빛으로 물들 수 있기를. 요정들 속에서 나도 커다란 토끼 머리띠를 하고 애들처럼 미소 지으며 함께 할 수 있기를. 내 남은 삶에 고운 사진관 하나 간직하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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