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영 씨는 근로작업장에 다니며 길 익히는 연습도 하고, 자취에 필요한 자금을 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약자 전용 일자리'인 근로작업장을 둘러보며 불편한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근로작업장은 너무도 ‘손쉬운 대안’처럼 느껴진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과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겠다면서 불편해지지 않는 길을 택했다. 장애인을 만나고, 서로를 이해하고, 이런저런 차이를 맞춰가는 일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윤을 내야 하는 기업 처지에서는 비효율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니 장애인에게 노동의 기회를 보장하면서도 편리하고 효율적인 방안 - 장애인끼리 일할 공간 마련해주기 - 를 선택한 것이다. 여기에는 '포함하되 배제한다'는 원리가 작동하고 있다.
이 원리가 사회를 지배할수록 지역사회가 장애인을 만날 기회는 점점 줄어들었다. 내가 생활하는 공간, 내가 일하는 직장, 내가 운영하는 사업장에 장애인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 힘들어졌다. 사람들은 공생하는 법을 점차 잊게 되었고, 사회는 장애인이 살아가기에 너무 가혹한 곳이 되어갔다.
사회사업가는 이 흐름을 거스르는 길을 의도적으로 택해야 한다. 물론 때와 형편에 따라 약자 전용 수단을 활용할 수도 있겠다. 근로작업장에서 일하며 얻는 유익도 많을 테고, 앞으로 다른 일자리를 구하는 디딤돌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선영 씨가 근로작업장에서 일해본 경험이 선영 씨의 구직활동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약자도 가급적 여느 사람이 일하는 곳에서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야 한다는 방향만큼은 잃어버리지 않으면 좋겠다. 지역사회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세상의 흐름에 저항할 수 있어야 작은 변화라도 시작할 수 있다. 약자도 살만한 사회를 만드는 미세한 발걸음이라도 뗄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을 한 것이다.
이전에 지역사회를 두루 다니며 구직한 분들이 있다. 그분들 곁에서 구직의 과정을 함께했던 사회사업가도 있다. 이런 분들의 노력 덕분에 지역사회가 변했다. 앞선 사람들이 길을 잘 닦아놓아서, 뒤따르는 사람들이 조금은 수월하게 걸어갈 수 있다.
“오늘은 여기서 좀 일하다 갈래요?”
근로작업장 방문을 마치고 누군가 농담처럼 던진 질문에 선영 씨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아니오.”
선영 씨 마음은 명확한 것 같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2.07.26 00:35
첫댓글 전채훈 선생님의 생각에 공감합니다. 사회사업가로서는 더욱 동의합니다.
이날 선영 씨의 단호한 대답에 확신했습니다.
선영 씨의 마음이 그렇듯, 제 마음도 명확해집니다.
'누군가 세상의 흐름에 저항할 수 있어야 작은 변화라도 시작할 수 있다.'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