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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넉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합니다. 이 병원에서 전임 목사님을 만났어요. 제가 이 병원을 다닌 지가 꽤 오래됐는데 만난 것은 처음이에요. 그런데 진료받는 과목도 같고 그러니까 변명이 같은 거죠. 변명도 같고 진료받는 의사도 같았어요. 둘이가 서로 얼굴을 보면서 약간 소름 돋는 듯한 느낌으로 한참 보고 있었던 것 같아요.
하여튼 그날 내내 생각이 되게 많았습니다. 그리고 지난날의 삶의 어려움들이 또 목회의 어려움들이 생각이 많이 났어요. 그중에는 정말 이 고난은 내가 피해 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것도 있었고, 어떤 어려움들은 정말 이해되지 않는 어려움들,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하나님이 어려움을 주셨을까라는 것도 있었고, 어떤 건 정말 경험하지 않았으면 이거는 경험하지 않는 것 자체가 복이겠다는 어려움도 제 삶에 있었습니다.
고난이나 문제 어려움을 만나게 되면 사람들은 질문을 해요. 고난의 유익 중에 하나가 질문하게 만들어 하나님은 왜 빨리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을까 기도해도 해결되지 않고 여전히 나를 괴롭히는 문제들이 왜 내 삶에 많을까 자꾸 질문을 하게 되는 거예요.
내가 뭘 잘못해서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어려움을 겪게 하실까
기도하고 이렇게 열심히 수고하는데도 왜 하나님이 이 어려움에서 나를 벗어나게 해주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저는 되게 질문이 많은 사람이에요. 여러분에게만 질문하지 않을 뿐이지 실제로는 되게 질문이 많은 사람입니다. 종종 이 질문을 저 자신에게 할 때도 있어요. 비슷한 거예요.
왜 하나님은 나를 고난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실까
왜 이 고난이 끝나면 또 다른 고난을 주셔서 계속 고난의 삶을 겪게 하실까
라는 질문을 수없이 하게 됩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여러분과 제가 죽을 때까지도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실 때도 있어요.
왜 그러실까요?
이 질문을 가지고 말씀을 한번 준비해 봤습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은 해결되지 않는 인생의 문제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여러분과 저의 삶에 두시고 그 문제를 통해서 여러분과 저에게 말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거예요.
사람들은 문제 해결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하나님 말씀에 잘 순종해요. 그러니까 고난이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따라요.
그런데 이 고난이 끝나면 문제가 해결이 되면 하나님 말씀에 신경도 쓰지 않아요. 그러니까 돌아보지도 않는 거죠. 심지어 못 들은 척하기도 하고요. 고난의 때 하나님께 했던 약속도 다 잊어버려요. 분명히 여러분 중에도 하나님과 약속했던 여러분이 힘들 때 약속했던 것들을 잊어버리고 이 자리에 앉아서 있을 수 있는 분도 꽤 있을 거예요.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 옛날 여러분이 하나님께 했던 약속이 좀 떠올랐으면 좋겠어요.
왜요?
우리는 잊어도 하나님은 기억하시기 때문이에요. 여러분이 힘들 때 하나님과 약속했던 그 약속을 여러분 잊어버릴 수 있어요. 우리는 잘 잊는 존재잖아요. 내 죄악 내 잘못을 얼마나 잘 있는 존재예요. 그러니까 당연히 있겠죠.
근데 하나님은 잊으실까요?
하나님의 기억력에 문제가 생길까요?
그런 일은 없다는 거예요. 물론 하나님이 어떤 경우에는 잊어주긴 하시지만 그 약속은 우리 스스로 하나님께 한 거니까 하나님이 아마 잊지 않으시고 다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고난이 끝나면 그렇게 잘 깨달아지던 것들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대부분 여러분 성도들은 또 여러분과 저는 문제가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지 못해요. 그러니까 인생에 고난이 없을 때 문제가 없을 때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 말씀을 잘 듣지 못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듣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안 듣는 거죠.
하나님이 말씀하셔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여러분과 저의 삶에 두시는 거예요. 왜 문제가 있어야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우리가 듣기 때문인 것입니다. 결국 살리기 위해서 여러분과 저를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기 위해서 고난을 해결하지 않고 우리를 고난 가운데 두시는 거예요.
놀랍게도 고난 가운데 있으면 말씀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져요. 고난이 없을 때는 이해하지 못한 말씀들이 고난이 오기 시작하자마자 이해가 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말씀의 깊이도 깊은 말씀의 의미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이전에 이해하지 못했던 말씀이 고난을 겪으면서 이해되기 시작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오늘 67절을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그러니까 고난 중에 어려움 중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지킨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고난이 없으면 우리는 잘못된 생각도 꺾이지도 않고요. 잘못된 행동도 되돌아보지 않아요 여러분과 저 중에 우리 중에 누구가 누구도 고난이 없으면 자기의 잘못을 돌아보지 않는다는 거예요. 고난이 있어야 자기의 잘못을 돌아봐요. 여러분이 가정이 잘 되는데 자녀에게 문제가 없는데 여러분의 육체가 건강한데 스스로 잘못을 돌아보고 회개하고 뉘우치는 사람이 과연 몇이 될까요?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아요. 한 대 맞아야 고난이 와야 어려움이 와야 그때쯤 한 번쯤은 질문 내가 뭘 잘못했을까? 아니 수없이 잘못해놓고 그때서야 내가 뭘 잘못했을까 이게 말이 되냐고 우리가 그런 존재인 거예요.
고난은 어려움은 고장 난 우리를 고치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고장 난 인생을 고치는 장치가 고난인 거죠. 때로는 하나님은 교회를 고치기 위해서 교회 가운데 고난을 두시고요.
때로는 여러분과 저를 성도들을 고치기 위해서 성도들의 삶의 고난을 위해 고난이 아니면 안 고쳐지는 거예요.
여러분 누구의 말을 듣고 여러분의 삶을 한번 고쳐본 적이 있나요?
선생님 때에 맞았다고 해서 여러분의 인생이 고쳐지던가요?
어제까지 공부 안 하던 애가 오늘 몇 번 혼났다고 해서 오늘 공부 잘하는 애는 없어요. 최소한 우리는 고난이 와야 자기를 돌아보기도 하고 자기가 잘못된 것을 고치기도 해요.
왜요?
이거 안 고치면 고난이 안 끝날 것 같으니까 이거 못 고치면 고난이 안 끝날 것 같으니까 고난을 마지 못해서 고치는 여러분 솔직히 저도 그래요. 저도 이 잘못된 걸 안 멈추면 하나님이 내 목회와 함께하지 않을 것 같아서 이 잘못된 행동을 내가 멈추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복 주지 않을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으이 궁여지책으로 마지 못해서 나는 여전히 세속적이고 나는 여전히 불순종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막 고치려고 하는 거예요.
우리가 그런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 되게 하기 위해서 고난을 여러분과 저의 삶 가운데 두십니다. 참 이렇게 속이 좀 상하는 건 그래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거예요. 고난이 와도 하나님 음성을 못 듣고 고난이 와도 잘못된 행동을 못 고치고 고난이 와도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앙이 박히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이게 정말 대책이 없어요. 어쩌면 지금은 그 대책 없는 목회자나 성도들이 모여서 목회를 하겠다고 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대책이 안 쓰는 거예요. 왜 권한을 줘도 안 되니까 들어박게 해도 안 되고 돈을 막 날리게 해도 안 되고 뭘 해도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한번 좀 반대로 생각해 보면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시점이 문제 해결의 시점일 때가 많다는 거예요. 반드시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런데 많은 경우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시점이 문제 해결의 시점과 같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과 저의 삶에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를 가르치고 우리를 지적하고 계신 거예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이 하나님의 지적을 알 수가 있어야죠.
여러분 우리가 학창 시절을 다 못냈잖아요. 여러분 혼나도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때가 학창 시절 때는 정말 많았어요. 맨날 선생님만 욕하는 거예요. 선생님 이래서 선생님한테 막 이상한 이름을 붙여놓잖아요. 독사 이렇게 다 붙여놓잖아요.
왜요?
아니 선생님이 분명히 문제가 있어서 우리를 혼낸 건데 지금은 때리지는 않지만 저희 때 맞았잖아요. 이유가 있어서 맞았어요. 근데도 자기는 돌아보지 않고 선생님만 욕해요. 그래서 선생님 욕하기 좋으려고 선생님 이렇게 별명을 붙여놓고 선생님이 안 보이면 막 그 별명을 부르고 선생님을 뒷담화 했던 기억이 저에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과 저의 삶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두시고 여러분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기다리시고 여러분이 하나님의 지적을 깨닫기를 바라고 계신다는 것을 꼭 알아야 됩니다.
두 번째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가 사람을 의지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내 삶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요. 기도하고 막 부르짖었는데 해결되지 않아요. 왜 해결되지 않냐 하면 내가 사람을 의지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한번 따라하겠습니다.
문제 해결이 사람에게 있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때때로 사람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시기도 해요.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문제를 해결하는 건 아니더라고요. 사람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사람이 문제를 해결하는 건 아니에요. 하나님은 문제를 우리 가운데 두시고 우리가 여전히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시는 거죠.
여러분 문제가 있어야 내가 하나님 의지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요. 문제가 없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잘 의지하고 있다고 생각해 근데 어려움이 와야 내가 정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 붙잡고 있구나 사람을 바라보고 있구나라고 생각을 합니다.
예배를 드리고 있어도 그 시선이 하나님을 향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도를 많이 해도 여전히 그 시선이 하나님을 향하지를 않아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 시선을 하나님께 향하기 위해서 향하게 하기 위해서 고난과 어려움을 여러분의 저와의 삶에서 거둬가지 않고 그냥 두시는 거예요. 시선과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람을 의지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요즘 새벽에 사사기 말씀을 통해서 엄청 도전을 받고 있는데 또 여러분은 좀 어떤지 잘 모르겠어요. 저는 정말 도전을 많이 받아요. 그런데 마음이 좀 쓰려요. 말씀은 엄청 은혜로운데 제 속은 좀 이렇게 쓰려요.
여러분 사사 시대가 왜 광야 시대보다 못했을까요?
광야의 삶의 목적이 이 가나안을 들어가는 거였잖아요. 그러면 사사 시대가 광야 시대보다 훨씬 더 풍성해야 하고 광야 시대보다 훨씬 더 신앙도 좋아야 하고 광야 시대보다 훨씬 더 윤리적이어야 돼요.
근데 사다 시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았기 때문인 거죠.
하나님을 왕으로 모셔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왕이 되거나 또 남이 왕이 되는 것을 방치해요.
여러분 우리는 내가 왕이 되는 것도 금지해야 되지만 남이 왕이 되는 것도 금해야 돼요. 우리 가정에서 누가 하나님보다 왕이 되려고 하면 그것도 멈추게 해야 되고요. 교회에서도 누군가가 하나님보다 왕이 되려고 한다면 그것을 멈춰야 되는 거예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자기 소견이 옳은 대로 살았다는 것은 사람이 중심된 사회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중심된 사회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이 중심된 사회가 아니라 사람이 중심된 사회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서 여러분과 저를 떨어지게 하기 위해서 때때로 고난과 어려움을 주셔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성도들이 왜 무너질까 신앙생활하다 왜 좌절할까?
대부분은 사람 때문이에요. 사람 때문에 사람 의지하다가 사람과 친밀하다가 사람과 몰려다니다가 넘어지는 일들이 정말 인생의 어려움보다 넘어지는 건 훨씬 더 많아요.
여러분 한번 돌려보세요. 여러분의 삶이 어려워서 정말 힘들어서 신앙을 내려놓거나 포기하거나 좌절하기보다 사람 때문에 더 많이 무너지잖아요.
이게 어떤 의미예요?
내가 하나님을 사람보다 나을 하나님의 사람을 더 많이 의지한다는 의미에요. 그래서 대부분의 많은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다 넘어지는 건 사람 때문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 고난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 사람에게 향해 있던 시선을 하나님께로 옮겨가요. 고난은 사람 옆에 앉아 있던 우리를 일으켜 세워서 하나님 옆에 앉게 해요. 어려울 때 하나님의 곁에 있다가 편해지면 사람 곁으로 갑니다.
근데 여러분과 저는 어떤 존재예요?
편하든 아니면 어렵든 간에 하나님 옆에 앉아 있는 존재여야 돼요. 더 정확하게 말하면 편하든 편하지 않든 문제가 있든 문제가 없든 상관없이 하나님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 존재인 거죠.
여러분 사람은 문제를 만드는 존재이지 문제를 해결하는 존재가 아니에요. 만약에 우리 주변에 정말 문제를 해결하는 이들이 있다면 정말 그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에요. 정말 하나님이 들어서시는 사람인 거죠. 진짜로 사람은 문제를 만들지 기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물론 이렇게 가끔 보면 좀 그럴싸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있어요. 목회자들 중에도 그렇고 성도들 중에도 좀 그럴싸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있어요.그런데 자세히 보면 문제를 만드는 사람이지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여러분 저는 사람을 너무 좋아해요. 저는 어려서부터 사람을 정말 정말 좋아했어요. 그래서 저희가 옆 동네를 가기 위해서는 산을 막 넘어야 돼요. 오른쪽인 옆동네는 산 능성을 서너 개 넘어야 되고, 왼쪽에 있는 옆 동네는 진짜 산 안을 좀 고스란히 넘어가야 가요.
근데 제가 그 어린 나이에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밤 12시 1시까지 놀았어요. 그 형들 집에서 저는 사람이 너무 이렇게 그리운 옛날부터 그리고 지금도 아마 그 속성은 그대로 남아 있을 거예요.
근데 요즘 제가 하는 일이 뭔지 아세요?
사람으로부터 멀어지는 일이 요즘 제가 하는 일이 사람으로부터 멀어지는 일이에요. 왜 그런지 아세요?
사람과 가까우니까 사람의 소리가 자꾸 크게 들려요. 사람의 소리는 이렇게 자주 듣다 보면 이게 명령으로 들려요. 가끔 여러분이 자녀들한테 어떤 이야기를 했는데 막 자녀들이 막 화를 내죠.
왜요?
사람의 소리는 가끔 듣다가 보면 이게 명령으로 들려요. 교회에서도 막 뭘 말을 하잖아요. 그럼 어느 순간 이게 막 명령으로 그래서 막 분쟁이 있고 싸우는 거예요. 명령으로 한 건 아니에요. 근데 사람의 말이 묘하게 말은요. 자주 듣다 보면 그게 명령으로 들려요. 어느 순간 사람의 소리가 크게 들리고 그 사람이 한 말을 막 내가 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이 자꾸 드는 거예요.
물론 우리가 그렇게 해서 동력자가 되고 하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될 사람들이잖아요. 그래서 요즘 제가 하는 일은 사람으로부터 걱정은 여러분부터 멀어지려고 한 건 아니니까 사람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서 제가 정말 노력을 많이 합니다.
여러분 사람의 소리가 크게 들리는데 하나님의 소리가 들려요. 사람의 소리 하나님의 소리가 싸우면 진짜 누가 이겨요?
원래 하나님의 소리가 이겨야죠 근데 우리의 삶에서 누가 이겨요?
사람의 소리가 이기잖아요. 하나님이 여기게 말씀하셨고 자녀가 여러분에게 부탁을 해요. 누가 이겨요? 자녀의 소리가 이기죠? 하나님이 한번 이기게 해본 적 있으세요?
별로 없으시죠? 남편과 아내가 무슨 말을 해요? 하나님이 또 무슨 말씀을 하셔요? 그러면 누가 이겨요? 또 남편과 아내는 소리가 이기죠?
하나님을 이기도록 하나님의 자리를 내어드린 적이 솔직히 우리가 몇 번이 되나요?
별로 없어요. 하나님은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세요. 거둬가지 않으신 거죠? 이 고난이 끝나면 또 다른 고난을 주시고, 이 고난이 끝나면 또 다른 고난을 주셔요.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일종의 작전이에요.
작전 만약에 우리가 좀 더 성숙하고 좀 더 어른의 모습이라면 그렇게까지 대하지는 않으실 거예요.
근데 우리는 믿음이 너무 어려우니까 막 고난만 거둬가면 금방 증세가 보이는 거예요. 고난만 조금만 편하게 해주면 금방 증세가 보여요.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이 안 되겠다 싶어서 어떤 일을 에게 계속 고난과 연단을 주시는 거죠 세 번째로 우리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자리가 있게 하시기 위해서 고난과 어려움 문제와 힘듦을 주십니다. 우리는 고난이 없으면 인생에 문제가 없으면 하나님께 우리의 자리를 내주지 않아요.
여러분 내 생각을 포기해야 하나님의 생각이 내 삶에 자리 잡고요. 내 꿈을 포기해야 하나님의 비전이 내 삶에 자리 잡을 수 있어요. 내 욕망을 포기해야 하나님의 마음이 내 삶에 자리 잡을 수 있고요. 내 이익을 포기해야 하나님의 유익을 위해서 내가 헌신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포기할 때 하나님의 자리가 생기고 포기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자리 잡을 수 있어요. 뭐가 우리를 내려놓게 만들어 고난이 우리를 내려놓게 만드는 거예요. 삶의 힘듦이 때로는 내 자리를 하나님께 내어드리게 하는 거예요. 내가 주인 되어 살았더니 정말 너무 힘들다. 하나님 하나님 이제는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셔서 나를 좀 이끌어주십시오.
이렇게 하는 거예요. 고난이 없으면 여러분의 인생의 자리를 우리가 한 뼘이라도 하나님께 드릴까요?
안 드리죠 여러분의 삶에는 하나님의 자리가 있으신가요?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의 자리가 있으신가요? 여러분의 식탁엔 하나님의 자리가 있으신가요?
없죠? 요즘은 이렇게 유튜브가 식탁을 다 차지했어요. 저희 집도 그렇고 하나님의 자리가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래서 고난을 거둬가지 않으신 거죠? 우리 인생에 하나님의 자리가 있게 하기 위해서 여러분 고난은 내려놓게 하는 힘이 있어요. 그러니까 내 것을 내려놓게 하는 힘이 있어요. 여러분 자녀에게 막 고난이 오면 우리는 이상한 생각을 해요. 하나님 이 자녀 하나님 겁니다. 이렇게 맞잖아요. 자녀에게 권한이 없으면 이게 내 자식이에요. 막 자녀가 너무 힘들면 하나님 이거 하나님 자식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아니 멀쩡할 땐 다 자기 거다가 왜 고난이 오면 하나님께 맡기냐고요 그렇지 않나요? 하나님이 좀 멀쩡한 거 받고 싶지 않을까요? 좀 온전한 거 받고 싶지 않을까 하나님이요. 왜 고난을 이미 하나님께 드리냐고요 고난은 내 비전도 포기하게 만듭니다.
여러분 고난을 겪어야 내 비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비전을 위해 살더라고요. 이 비전은 솔직히 목사들이 문제인 거예요. 목사들이 어릴 때 가졌던 마음을 가지고 막 계속 목회를 몰아붙여요. 하나님이 아니라고 분명히 얘기하는데도 계속 밀어붙여요. 이 고집들이 저로부터 시작한 목사들에게는 정말 많이 있어요.
교회가 안 되는 시점 문제가 아마 목사들의 이런 비전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차라리 비전이 없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여러분 오늘 좀 편하게 들으세요. 약간 내용이 조금 눌리지만 분명히 말씀 중에 은혜가 있을 거니까 좀 편하게 들으십시오. 고난은 내 욕망도 포기하게 만들고요. 내 이익도 포기하게 만들고 내 유익도 포기하게 만들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의 자리가 생기고 하나님의 계획이 내 삶에 자리 잡을 수 있어요.
여러분 하나님의 계획이 여러분의 인생에 자리 잡고 있나요?
여러분의 계획이 여러분 인생을 이끌어가잖아요. 내가 60이 되게 이래 내가 70대까지 여러분과 너 중에 우리 중에 누군가가 하나님 내가 70대는 뭘 위해 살아야 될까요? 하나님 내가 80대는 뭘 위해 살 거예요? 하나 나 60대는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쓰실래요?
이렇게 하나님께 계획을 물어본 적이 있나요? 나 60대 이걸 살 거예요. 하나님 나를 막 밀어주시고 나를 좀 도와주시고 하나 해주세요.
이렇게 하나님을 설득하지 하나님이 나를 또 60대에 무엇으로 쓰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쓰시는 자리에 내가 서겠습니다. 이렇게 말하지 않잖아요.
여러분 고난은 나를 위해 살면 망한다는 메시지입니다. 고난은 나를 위해 살면 망한다 메시지예요. 고난은 내가 주인공의 삶에서 내려오게 만들고요.
또 고난은 내가 주인공이기를 포기해야 포기하게 만들어요. 그래야 하나님의 자리가 생기게 됩니다. 고난이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인정하게 돼요. 그래서 하나님이 고난을 빨리 거둬가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고난을 거둬가버리면 자기가 금방 주인이 되니까 오랫동안 우리의 주인이 되게 하시기 주인이시기를 원하셔서 그냥 우리 삶의 가정의 고난을 두시는 거예요. 고난이 왕의 자리에서 우리를 내려오게 만듭니다.
우리는 다 자기만의 왕좌에 앉아 있잖아요. 그 자리에서 고난이 내려오게만 사람이 막 소리 지른다고 내려오지 않아요. 목사님 그런 자리에 안 내려와요. 여러분이 저한테 첫날 만날 막 소리 쳐보세요. 안 내려와요. 제가 고난을 당하면 그 자리에서 내려와요. 고난을 당해야 어려움을 겪어야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지 알고 무능한 존재일도 압니다.
여러분 내가 부족한 줄 알아야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잖아요. 내 생각이 엉망이고 내 계획도 엉망이고 내 능력도 엉망인 줄 알아야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려고 하잖아요. 근데 이게 아니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겠어요?
당연히 안 모셔요. 고난은 우리가 얼마나 무능한 존재인지를 알게 합니다.그리고 제가 여러분은 잘 기억나지 않겠지만 새벽 예배를 한 번 안 나온 적이 있어요. 제가 집에 있으면서 안 나온 적은 없어요. 어디 가서 안 나온 적 있지만 집에서 있으면서 허리 아파서 누워 있을 때 말고는 안 나온 적이 없어요.
딱 한 번 안 나온 적이 있어요. 아침에 이렇게 일어났는데 귀신 울림이 아니라 제가 이렇게 병이 있잖아요. 몸이 정말 굳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눈밖에 깜빡깜빡거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내한테 여보 내가 몸이 안 움직인다고 내가 오늘 예배를 새벽 교회를 못 가니까 당신이 가서 기도하고 이렇게 오라고 다행히 저는 좀 잠을 잘 자서 그런 상태인데도 바로 좀 잠이 들었어요. 한 두세 시간 자고 났는데 일어날 때 몸이 이렇게 일어나시더라고요.
제가 얼마나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야 나는 하나님이 건드리면 내 몸 하나도 못 움직이는 존재구나.
진짜 꼼짝을 못하겠더라고요. 기침 들림과는 전혀 다른 거예요. 기초들림은 그런 게 있는데 증상이 그런 증세도 없이 그냥 진짜 몸이 굳어버린 거예요. 딱 굳어서 지금은 이제 약도 잘 먹고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는데 한 번 그런 적이 있었어요.
그때 깨달았죠. 나는 정말 병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고 하나님 앞에서 너는 정말 무능한 인간이구나를 깨달았어요.
그러면 제가 바뀌었을까요?
안 바뀌어요. 잘 그래서 계속 어려움을 주는 거예요. 저도 왜 아친구 하나님과 목회 어려움 없게 하시고 매일 아침 하나님 내 목회 정말 잘 되게 매일 기도해요. 어쩌면 필요 없는 기도일지도 몰라요. 하나님이 안 걷어가실 거거든요.
여러분이 저를 봐도 하나님이 제 인생의 고난을 안 걷어갈 것처럼 보이죠. 여러분 제가 여러분을 보면 어떨까요? 그러니까 서로를 봐도 좀 그렇지 않을까요?
하나님 저 권사님에게는 평생 고난을 안 거듭 갈 것 같아 이래 보이지 않나요?
이젠 좀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얼마나 고집 세고 말 안 들으면 하나님이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고난을 통해서 나를 다루실까 이쯤 우리가 하나쯤 고 생각해야 될 게 있어요.
이건 꼭 생각하고 넘어가야 되는 건데, 고난이 내 실수와 내 잘못, 내 범죄를 통해서도 머물 수 있어요. 이건 꼭 기억해야 돼요. 모든 고난에 내 범죄와 실수가 있는 건 아니지만 어떤 고난에는 내 범죄가 연관되어 있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내가 회개도 했어요. 정말 잘못된 자리를 떠나기도 했어요.그런데 고난이 있으면 그것은 내 잘못이나 내 죄 때문에 온 고난은 따지고 보면 아닌 거예요.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내 삶의 고난을 걷어가지 않으신 채 계속 내 삶에 두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한 번쯤은 생각해 보십시다. 내 삶의 고난을 주실 때 하나님이 마음이 편하실까요?
하나님이 제 삶에 막 고난을 주실 때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과연 편할까요?
안 편하시죠? 그럼 하나님이 어떻게 기대할까요?
저를 저를 빗대어 이야기하면 아 요놈이 좀 빨리 깨달았으면 좋겠다. 내가 왜 지금 고난을 안 걷어가고 그 고난을 삶에 두는지를 좀 빨리 깨달았으면 좋겠다가 하나님의 마음이 아닐까요?
묻습니다. 여러분이 겪고 있는 가족 간의 갈등에는 어떤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을까요?
여러분이 겪고 있는 질병이라는 어려움에는 어떤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을까요?
여러분이 겪고 있는 성도와 이웃 간의 갈등에는 어떤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을까요?
여러분이 겪고 있는 물질의 문제에는 어떤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을까요?
여러분 우리가 좀 이 하나님의 뜻을 잘 이해해야 고난을 이겨내기도 하고 고난을 통한 온전한 유익을 우리가 누릴 수 있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지금 나에게는 어떤 고난이 있고 그리고 어떤 어려움이 남아 있을까 그리고 남아 있는 어려움과 고난에는 어떤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을까를 생각해 봤어요. 제 권한은 여러분과도 관계가 없을 수 없잖아요. 어쨌든 그래서 제가 사람의 이야기는 하지 않고요. 그냥 뜻만 한번 제가 세 가지를 찾아봤어요. 왜 하나님이 저에게 고난을 거둬가지 않고 계속해 어려움을 주실까 그 종류가 그 어려움이 어떤 걸 말하면 뭐 연관되고 이렇게 하니까 그거는 쫙 빼고 그냥 결과만 하나님이 저에게 세 가지 마음을 주셨어요.
이런 거죠. 내가 너희에게 고난을 거두어 가지 않는 건 이것 때문이야. 이게 이제 하나님의 저를 향한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제가 세 가지를 생각합니다. 첫 번째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을 버려라. 제 인생의 어려움에 담긴 하나님의 첫 번째 메시지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을 버려라. 하나님이 기뻐하는 걸 니가 기뻐하고 하나님이 좋아하는 걸 니가 좋아하고 하라는 거예요.
근데 목회자는 자기 기쁨에 빠질 때가 많아요. 자기 하나님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기보다는 내 기쁨에 내 만족감에 빠져서 목회할 때가 많아요.그때 하나님이 저에게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해라. 이게 고난이 담긴 저를 향한 첫 번째 메시지.
두 번째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라.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으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일부만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나를 믿으라는 거예요.
여러분 제가 하나님을 100% 믿을까요? 안 믿어요?
제가 100% 믿었으면 기적이 일어났겠지 난리가 났겠죠. 안 믿는 증거가 여기 있잖아요. 100% 하나님 못 믿어요 안 믿어요 믿을 마음이 믿을 정도로 제 마음이 겸손하지도 않아요. 그래서 하나님이 고난을 주는 거예요. 나를 믿어라. 니가 의지할 건 나밖에 없다. 너는 내 것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저에게 깨닫게 해 주셔서
세 번째 제 고난에 담긴 하나님의 뜻은 끝까지 신세를 하라는 거예요. 채찍이 없으면 너는 나를 위해 충성할 놈이 아니야. 너에게 어려움이 있으면 너는 끝까지 나를 붙잡고 목회의 길을 가지 않을 거야. 그래서 내가 너희에게 어려움을 주는 거야.
이게 저를 향한 하나님의 세 번째 메시지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지금 여러분에게 여러분이 처한 고난을 통해서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실까요?
혹 말씀을 듣는 도중에 깨달으셨으면 너무 감사할 것 같아요. 말씀을 듣는 도중에 하나님이 그래서 나에게 이 어려움을 거둬가지 않고 계시는구나.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늘 눈물 흘리게 하시는구나 라고 깨달았으면 오늘 말씀 정말 잘 전한 거고, 여러분 아무런 깨달음 없이 저게 무슨 말일까 했으면 제가 회개하겠습니다.
하나님 제가 또 오늘도 마지막으로 말씀 한 구절 읽고 우리 찬양할 텐데요. 71절 좀 띄워주실래요? PPT를 제가 올리지 않아서 오늘 본문 71절이죠. 같이 한번 정말 크게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