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제26대 진평왕은 창녕조씨 시조 조계룡(曺繼龍)의 장인(丈人)이다.
진평왕(眞平王)의 성은 김씨, 이름은 백정(白淨), 진흥왕의 장손자 이며,
어머니는 만호부인(萬呼夫人)이고, 왕비는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579년에 왕이 되어 632년에 승하할 때까지 54년 동안 왕으로 있었다.
신라 진평왕릉(眞平王陵)
창녕조씨 시조 조계룡(曺繼龍,571-651 )은 창녕의
한림학사 이광옥의 따님인 예향의 몸에서 태어났다.
예향은 어려서부터 피부병으로 고생하였는데, 명의를 찾아
고치려 하였으나 백약이 무효인지라 근심과 절망에 싸여 있었는데,
어느날 선인이 나타나 화왕산정에 신령한 연못이 있는데
거기에서 목욕을 하고 성심으로 기도하면 완쾌될것이라 하였다.
화왕산 연못(용지)에 가서 목욕을 하고 성심으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안개가 자욱하더니 예향이 사라졌다가 연못에서 솟아 올랐다.
화왕산에서 돌아온 예향은 병이 씻은 듯이 완쾌되었고,
태기가 있어 남자아기를 낳았으며, 아기는 미모가 수려하고,
총명하였으며, 겨드랑 밑에 조(曺)자가 뚜렷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어느날 꿈에 한 장부가 나타나 말하기를,
"나는 화왕산 연못 용의 아들로 이름은 옥결(玉訣)이며 그대가 낳은
아이의 아버지이다. 아이를 잘 기르면 후에 공후(公候)나 아니면
경상(卿相)이 될 것이며, 자손이 만세토록 번성할것이다" 하고는 사라졌다.
너무나 특이한지라 한림학사 이광옥이 이 사실을 진평왕에게 아뢰니
임금(진평왕)이 겨드랑 밑에 있는 조(曺)자로 성을 하사하고,
용의 아들이라 계룡(繼龍)이라 이름하니 이분이 바로 창녕조씨 시조이다.
이후 조계룡은 장성하여 진평왕의 부마(駙馬:임금의 사위)가 되었고,
한번은 동래에 왜구가 침범해 왔을 때 진격해 들어가니,
왜구들이 "조공(曺公)은 천인(天人)이시다." 하고는 스스로 군사를
거두어 물러갔으며, 벼슬이 태사(太師)에 올라 왕실의 스승이 되었다.
그리고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해졌다.
진평왕릉의 왕버들
진평왕릉은 경주 보문단지 가는길 오른쪽인 보문동에 있으며
면적은 4만 3,645㎡(14,400여평)이고, 무덤의 지름은 36.4m,
높이는 7.9m이며, 사적(史蹟) 제180호로 지정(1969년)되어 있다.
신라 초대 임금인 혁거세 다음으로 재위기간(54년)이 길었으며
여러 차례에 걸친 고구려의 침공에 대항하는 한편
수나라와 수교하였고, 수나라가 망하자 당나라와 수교하였다.
진평왕릉의 숲
국내적으로는 원광(圓光)ㆍ담육(曇育) 등 승려를 중국에 보내 수도하게
하는 등 불교진흥에 힘썼으며, 특히 경주 남산성(南山城)을 쌓았으며
명활산성(明活山城)을 개축하는 등 수도 방위대책에 힘썼다.
창녕조씨 시조 조계룡(曺繼龍)의 묘(경주 안강)
첫댓글 ○ 역사적으로 훌륭한 유학자(선비)와 인재를 배출한 창녕(昌寧) 조(曺)氏
시조(曺繼龍)와 후손들의 업적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