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환(幻)을 찾아서
전순복
초록이 그리운 계절. 사방을 둘러봐도 희뿌옇기만 하다. 하지만, 머잖아 저 마른 가지에도 단추 같은 꽃들이 열리겠지. 가난에 야윈 어미가 달덩이 같은 아기를 포대기에 업고 있듯, 물기 하나 없는 삭정이에서 돋아난 꽃들이 환하게 웃어주는 일. 그건 분명 기적임에도 무심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을까. 내 안에 아직도 미지의 땅이 있을까…. 편협과 채움의 타성으로 오염된 내 안에 아직도 순수의 땅이 남아있을까.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회색의 계절. 초록을 마중하려 남쪽으로 내려갔다. 바다와 푸름을 견주고 있는 야자수가 자라고 있는 경상남도 남해. 반달 모양의 바다를 품고 있는 ‘물건방조어부림(勿巾防潮魚付林)’. 바다 초입에 세워진 이 방조림은 고기들이 숲 그늘을 보고 찾아오기 때문에 고기를 불러들이는 숲이라고 한다. 몽돌해변 뒤, 길이 1.5km 폭 30m의 방조어부림에는 느티나무, 푸조나무, 팽나무, 생강나무, 모감주나무, 참느릅나무, 말채나무, 후박나무, 등, 2,000여 그루의 나무들이 살고 있다.
정중동(靜中動)의 나무들이 봄을 채색할 물감을 만들고 있는 그 앞. 무량(無量) 쏟아지는 햇살 아래 몽돌과 파도가 사부작사부작 정담을 나눈다. 몽돌의 틈새마다 빛바랜 가을의 흔적이 날아와 있다. 낙엽을 부탁하고 떠난 가을은 어디에서 쉬고 있을까.
적막이 농밀한 겨울 바다. 바람과 파도가 곡진하게 키운 몽돌의 노래가 잘브락거린다. 물과 바람이 만든 곡선에 내 마음도 말랑말랑해진다. 햇살이 쟁강쟁강 부서져 내린다. 몽돌 위에 드러누워 파도의 음률에 귀를 기울인다. 겨울을 뚫고 나온 봄이 연둣빛으로 우화(羽化) 하듯, 내 머릿속 묵정밭에도 새순이 돋아날 것 같다.
남해군 홍현리 다랭이마을. 바다 지척에서 등고선을 따라 이어진 층층 계단의 논배미가 있다. 하늘과 바다의 지문이 구불구불 새겨져 있는 듯하다. 층층이 만들어진 다락논은 생의 의지를 한 뼘씩 늘려갔던 애환의 형상일까. 고단했던 그들의 숨소리가 층층이 놓여있는 듯하다.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곡선의 해풍(海風)이 등성이를 올라온다. 곡선은 항구적 존재 조건이 아닌 무한하게 열려있는 텍스트. 당신에게 휘돌아 갈 수도, 당신이 내게 되돌아오기에도 무리가 없는 초록빛 날숨 같은 것이다.
옥빛 바다와 풍성한 햇살과 싱싱한 생선들이 사람을 먹여 살리는 활기찬 곳. 긴 겨울이 지겨울 때면 불현듯 햇 봄을 찾아 내려가던 통영에 들렀다. ‘청마 유치환거리. ‘초정 김상옥 거리.’ ‘윤이상 거리.’ 등 예술가들의 이름이 붙여진 장소들이 보인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청마 유치환’ 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 그 옆에 시인의 생가(生家)도 정갈하게 복원해 놓았다.
바다가 보이는 툇마루에 앉아,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을 받는 것보다 행복했다는 연서(戀書)를 썼던 청마. 꽃이 핀다고 다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닐 터. ‘이영도’와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의 태동(胎動)이 詩로 육화(六花)되지 않았을까 헤아려본다.
<내 음악은 내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내 음악은 우주의 큰 힘, 눈에 보이지 않는 큰 힘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주에는 음악이 흐릅니다. 이 흐르는 우주의 음악을 내 예민한 귀를 통해 내놓을 뿐입니다… 그 잔잔한 바다 그 푸른 물색. 가끔 파도가 칠 때도 그 파도 소리는 내게 음악으로 들렸고, 잔잔한 풀을 스쳐 가는 소리도 내게는 음악 소리로 들렸습니다.> 작곡가 윤이상 문학관에 적혀있는 글을 읽으며 가슴이 아팠다.
1917년 통영에서 태어난 윤이상은 프랑스 파리 국립 고등음악원과 독일 베를린음악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했다. 하지만 1967년 동백림사건으로 서울로 납치된 후, 간첩 활동을 했다는 허위자백 끝에 무기형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한다. 결국, 세계 음악계의 구명운동으로 2년 만에 석방되었다. 1995년 이국땅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 상처 입은 용 한 마리. 그가 남긴 유품들을 둘러보며 지난(至難)했던 그의 생을 추론해본다. 아직도 견고한 저, 높고 단단한 이데올로기의 벽. 하지만 음악이란 새의 하늘같은 것을….
통영에서는 사람도 바다도 누비질을 한다
해 물레가 자아낸 금사로 야물딱 야물딱 박음질 하는 바다
햇솜 같은 날개의 갈매기들이 실밥을 물어 올리며 아침을 연다
한낮이면, 은색 실로 갈아 끼운 바다가 얇은 갯바람을 넣어 누비질 한다
일없는 바람이 성근 부리로 실을 물고 당기지만 촘촘한 통영 누비는 한 척의 배도 빠뜨리지 않는다
달달달, 하루를 꿰매가던 사람들이 솜처럼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
촘촘한 웃음을 누비는 시간이면 바다는
달 물레가 자아 낸 금사로 야물딱, 야물딱 수를 놓는다
현무玄武 가 솟아오르고 주작朱雀이 금빛 날개를 흔들며 달 속으로 사라진다
보풀 하나 안 일어나는 야문 달빛
통영에서는 사람도 바다도 누비를 만든다
전순복 《지붕을 연주하다》 시집 중에서 <통영누비>
‘소매물도’를 가기 위해 들른 통영 여객선 터미널 한 귀퉁이에 누비 제품을 파는 가게가 보인다. 크고 작은 누비 가방들과 작은 소품을 파는 상점이다. 개량 한복에 누비 조끼를 입은 여주인이 읽고 있던 책을 덮고 일어선다. 반듯한 이마에 생머리를 틀어 올린 주인은 누비 제품처럼 단아하고 야물딱져 보인다. 읽고 있던 책을 탁자 위에 놓는데 얼핏 보니 《백석 평전》이다. 시인의 흔적을 읽고 있는 여인을 보며 통영과 백석의 의미를 추론(推論)해본다.
백석 나이 스물세 살 무렵. 친구 여동생의 결혼식에서 만난 여인은 단번에 백석을 사로잡아버렸다. 이후 백석은 蘭(본명 박경련)이 사는 통영으로 몇 번이나 내려갔으나, 번번이 만날 수가 없었다. 충렬사 계단에 앉아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에는 타관으로 시집을 갈 것 같다>* 며 蘭과의 미래를 꿈꾸었던 백석. 하지만 그녀와의 인연은 끝내 이어지지 않았다. <마른 팔뚝의 새파란 핏대를 바라보며 가난한 아버지와 내가 오래 그려오던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 그렇게도 살뜰하던 동무가 나를 버린 일을 생각한다>**던 백석. 蘭을 기다리던 충렬사 앞에는 백석의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었다.
소매물도 가는 뱃길. 갈매기들이 순한 갯바람을 조율하며 바닷길을 따라온다. 봄을 펼쳐놓은 바다의 은빛 비늘이 눈부시다.
서둘러 찾아간 남녘이 내 안에 연둣빛 수액을 만들었을까. 새순이 돋아나려는지 몸이 느슨해진다. 슬그머니 깨물고 있던 졸음을 굳이 놓치고 싶지 않은 봄날이다.
* 백석 통영 2. 인용
** 백석 내가 생각하는 것은. 인용
전순복 시인
2014년 《에세이문학》 수필 등단.
2015년 《시와소금》 詩 등단.
시집 《지붕을 연주하다》
[출처] 봄의 환(幻)을 찾아서 / 전순복|작성자 마경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