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즘은 마르크스가 폐기한 문제틀
전통적으로 마르크스주의는 경제라는 물질적 토대가 사회의 모든 것을 결정짓는다는 토대결정론으로 이해되었다. 이러한 토대결정론은 스탈린 이후 소비에트 마르크스주의의 기본적인 입장이었다.
하지만 영국이나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서구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소련이나 동유럽의 공식적인 입장에 동조하지 않고 과도한 토대결정론을 거부하였다. 이들은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이 인간의 고유한 삶을 변형시키는 왜곡된 사회구조의 비판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또한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기 위한 사회의 건설에 있다고 보았다. 가령 독일의 비판이론가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사물화 현상을 비판하며 인간의 고귀한 이성적 사유를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이자 유산이라고 주장하였다. 마르크스주의에서 ‘인간’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인간주의 사상은 서구 마르크스주의뿐만 아니라 소련에서도 마르크스주의의 강력한 주류로 등장하였다. 스탈린이 죽은 후 소련 공산당의 서기장이 된 니키타 흐루쇼프(Nikita Khrushchyov, 1894~1971)는 스탈린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며 인간적인 사회주의의 건설을 주장하였다.
그런데 마르크스주의에서 휴머니즘의 강조는 사실상 계급투쟁을 포기한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이는 마르크스주의 노선을 사소하게 변경했다기보다는 마르크스주의 자체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휴머니즘에서 ‘인간’이란 프롤레타리아트와 같은 특정한 계급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인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알튀세르가 휴머니즘에 대해서 분개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는 마르크스주의 휴머니즘을 외치는 사람들이 주로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에서 그 이론적 근거를 발견하고자 한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주지하다시피 《경제학 철학 초고》, 《독일 이데올로기》(Die deutsche Ideologie, 1845~1846)와 같은 대표적인 초기 저작에서 마르크스는 인간의 삶 혹은 노동의 소외를 강조하며 이에 대한 철학적 극복을 역설한다. 이 저작들에서 마르크스는 사회를 만든 주체로서의 인간 혹은 인간의 활동(노동)이 정작 자신이 만든 결과물인 사회로부터 소외를 당하게 되는 구조적 원인을 분석한다. 그러나 여기서 그의 주관심사는 사회의 구조 자체라기보다는 인간해방에 있으므로 과학적인 분석보다는 소외와 소외의 극복이라는 휴머니즘의 문제틀(problematic)에 머무르고 만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마르크스의 이러한 초기 저작에 주목하는 것은 마르크스 자신도 폐기한 잘못된 문제틀에 매몰되는 것과 같다. 그는 마르크스 사상의 발전 과정에는 근본적인 문제틀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공산당 선언》(Manifest der kommunistischen Partei, 1848)을 기점으로 마르크스는 휴머니즘이라는 문제틀을 완전히 폐기한다. 인간 소외와 극복이라는 휴머니즘의 문제틀은 완전히 사라지며 오로지 계급적 이해관계가 얽힌 자본주의 사회의 객관적 ‘구조’ 분석이라는 과학적 문제틀이 이를 대체한 것이다. 알튀세르는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틀의 변화를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dhelard, 1884~1962)가 사용한 ‘인식론적 단절(rupture épistémologique)’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인식론적 단절’이란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Thomas Kuhn, 1922~1996)의 용어인 ‘패러다임(paradigm)’과 유사한 뜻을 지닌다. 갈릴레이를 통해서 천문학적 관찰의 기본적인 관점이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바뀌었을 때 그것을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명명했듯이, 마르크스 사상에도 분명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천동설이라는 패러다임은 지동설의 패러다임에 의해서 완전히 대체된다. 마찬가지로 인간해방과 소외의 극복이라는 초기의 문제틀은 ‘구조’ 혹은 ‘구조 분석’이라는 문제틀로 대체되었다.
마치 인간의 눈에만 현실적인 원근법을 과학이라고 믿는 르네상스의 휴머니즘처럼 인간해방이나 소외의 극복을 부르짖는 이론은 그 자체가 과학과는 무관한 또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와 과학을 구분짓는 것, 그것이야말로 알튀세르가 보기에는 마르크스주의의 첫 번째 이론적 사명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휴머니즘은 마르크스가 폐기한 문제틀 (보고 듣고 만지는 현대사상, 2015. 08. 25., 박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