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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을 전담하고 두어 달 정도 지났을 무렵. 눈칫밥도 좀 생기고 점심시간에 무리 지어 다닐 수 있을 쯤. 본격적으로 회사 돌아가는 현황이 보였다. 원청인 S&T 중공업은 만성적자를 이유로 계속 사업을 축소. 남은 물량을 전부 하청으로 외주 주려는 움직임이었다. 이렇다보니 사측 입장에선 자연스럽게 통일 중공업 시절부터 일해 왔던 원청 노동자가 눈엣가시였다. 노조 때문에 해고는 마음대로 못 하니 분기마다 파트 단위로 유급휴가를 보냈다. 나와 똑같은 작업 파트가 휴가를 가면 지옥도가 펼쳐졌다. 매일 3시간씩 잔업을 해도 모자라 긴급물량이 터져 24시간 철야를 한 적도 있었다. 반면 같은 파트가 전부 들어오면 일이 없어서 옆 부스로 지원을 가서 일했다. 용접을 완료한 차축에 자잘한 부품을 붙이는 일이었다.
옆 부스의 길 삼촌은 육십 평생 경상도에서 살아 온 토박이었다. 쌍시옷 발음을 아예 못 해서 술자리에서 놀려먹곤 했다. 특이하게 오른쪽 약지가 V자 모양으로 휘어 있었는데 농장에서 망치질하다가 생긴 장애였다. 80년 당시 시골이었으니 치료며 산재처리고 해줄 리가 만무. 결국 뼈가 부러진 채로 방치하다 그대로 굳어버렸다. 길 삼촌 본인은 “반지 끼알 것도 아인데 뭐 어떻노.” 라고 넘어갔지만 볼 때마다 속이 씁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삼촌은 괴팍한 성격으로 소문이 나있었다. 곁에서 일하던 부사수들이 전부 뛰쳐나가 늘 혼자 밤늦게까지 일하기 일쑤였다. 확실히 목소리도 까랑까랑했고 말도 험하게 하는 편이긴 했다. 근데 막상 같이 일해 보니 친해지기 어려운 성격은 아니었다. 하던 말 계속하고, 화나면 목소리를 올릴지언정. 감정을 오래 담아두거나 장유유서에 찌들어 묻지도 않은 조언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묵묵히 자기 할 일하고, 그 일의 삯으로 삶을 꾸리며, 그런 자기 자신에게 자부심 가지는 노년. 투자며 재테크 따윈 알 바 아니며 월급 통장 하나로 모든 걸 다 해결하는 시대에 한참 뒤처진 남성. 그런 낡은 사람이어서, 좋았다.
길 삼촌이 법 없이도 살 법한 인간상이 된 이유는 단순했다. 사회에 대한 불신이 너무나 많이 쌓였기 때문. 그는 소년 때부터 노동법 사각지대에서 벌어지는 온갖 불합리를 몽땅 몸으로 받아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낮 12시까지 일하다 숙소. 다시 저녁 5시부터 심야 12시까지 일하는 농장에서 다쳐도 치료 못 받고, 임금 떼이고 욕받이까지 되어가며 일하다 도망쳐 나왔다. 막노동을 하면서 그럭저럭 자산 좀 축적하나 했더니 30대에 병이 왔다. 나라는 이때도 삼촌을 지켜주지 않았다. 모아 둔 돈을 몽땅 다 잃고 다시 재기하기 위해 경남 모든 시를 다 돌아다녔다. 40대 후반 와서야 4대 보험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고 하니 정상사회보다 무법지대에서 살아 온 기간이 훨씬 긴 셈. 나도 삼촌도 서로를 이해했고, 우린 띠동갑 두 바퀴 돌리는 나이 차임에도 절친한 직장 동료가 됐다. 삼촌과 나는 잔업이 끝나면 늘 회사 앞 투다리에서 오뎅탕과 막걸리를 마셨다.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 삼촌은 늘 똑같은 작별인사를 했기에 아직도 귓가에 그 목소리가 생생하다.
“내일도 사부지기 때아 보자이.”
7-8월은 여러모로 무척 괴로운 시기였다. 다른 것보다 육체가 괴로웠다. 처음 겪는 여름 용접의 고통은 상상초월. 현장에는 냉방기 같은 것도 없었다. 선풍기를 쬐자니 바람 맞은 용접 부위에 구멍이 송송 뚫렸다. 결국 맨몸으로 버텨야 했는데 매 시간마다 힘이 쭉쭉 빠져 나갔다. 육체를 한계까지 밀어붙였으면 잘 쉬기라도 해야 할 텐데 그마저 불가능. 점심시간에 쉴 장소가 없었다. 점심시간만 되면 몽롱했던 나날. 우연찮게 정직원들이 탈의실을 휴게실로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슬며시 따라가 들어가 봤더니 불을 꺼놓고 에어컨 틀어놓은 채로 낮잠들 자고 있었다. 온몸의 근육이 따뜻한 치즈가 된 듯 축 늘어진 상태. 노곤함을 부추기는 포만감과 내 고생을 안다는 듯 온몸에 푸근하게 감겨오는 바람에 그대로 뻗어버렸다. 점심시간 종료 5분 전 종에 맞춰 일어나니 머리가 무척 개운했다. 가벼워진 몸으로 탈의실을 나가려 할 쯤. 정직원 아저씨 한 분이 뱁새눈 뜬 채로 문 앞을 막아서더니, 하청 직원은 여기 오면 안 된다고 했다. “아, 예…… 죄송합니다.” 돌아서서 현장으로 돌아가는 순간, 서러워서 입술이 다 떨렸다. 자기들은 냉방기 쬐어가면서 일하면서, 우리보다 월급 두 배 가까이 더 받으면서, 여름휴가 때 출근 안 하고 쉴 거 다 쉬면서, 대체 뭐가 아쉬워 쉬는 것마저 꼬장을 놓는 걸까. 차별의 설움은 이렇듯 사소한 곳에서부터 찾아온다. 이날 이후로 노조원 개개인과는 친분을 가지되 단체는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일터 안에서만 서러웠다면 모를까. 회사 밖마저 고통만 도사렸다. 200만원 될까 말까한 월급으로 다달이 140만원을 갚아나가다 보니 하루하루 목숨부지 밖에 할 수 없었다. 결국 또 게임에 빠졌고 밤새 게임하다 출근하기 일쑤였다. 게임에 빠져들면 들수록 출근은 더욱 괴로워져 갔고 현실의 삶은 마치 벌 받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당시의 괴로움은 SNS에 고스란히 문자로 남아 있다.
[저녁 8시 30분, 오늘도 힘겹게 잔업을 마쳤다. 퇴근 카드를 찍고 후문을 나서면 불 꺼진 한국재료연구소가 보인다. 길을 건너 마산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기다린다. 가장 빠르게 가는 108번 버스마저 12분 후에 도착. 뭔 놈의 버스가 이리 느긋한지, 한숨 쉴 기력조차 없어 조용히 벤치에 앉아 휴대폰만 들여다본다. 이 회사는 잔업 근무자를 위한 통근버스 따윈 없다. 휴게실도, 샤워실도 열어주지 않는다. 땀에 찌든 옷을 입은 채 걸레짝이 된 몸으로 버스에 오른다. 오늘따라 유달리 커플이 많다. 그러고 보니 연애를 못 해본 지 몇 년이나 지났더라? 연인들의 어깨를 스쳐 지나가면서 나도 모르게 수그러든다. 열심히 일했다는 자부심 따윈 느낄 새도 없다. 버스 안 모든 승객이 기름내와 용접 흄 냄새 풍기는 나를 불쾌하게 여길 것 같아 불안하다. 2인 좌석 구석에 쪼그려 앉아 목을 기대는 동안, 만원버스임에도 옆에 누구도 앉지 않는 현실에서 예감은 확신이 돼간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누구도 던져주지 않는다. 세상은 그저 냉소로 회답한다. 넌 흙수저 주제에 노력도 하지 않았잖아?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긴 한데, 나도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좀 행복하게 해달라는 게 그리 거창한 부탁인가?]
삶이 암만 괴로운들 시곗바늘은 돌기 마련. 여름이 지나자 달력은 훌렁훌렁 넘어갔다. 집에 돌아오면 모니터 앞에 앉아 포대 과자와 맥주를 마시느라 살이 10키로 넘게 불긴 했어도 어떻게든 버텨냈다. 용접 실력도 안정되어 산소 절단기를 댈 일이 거의 없어졌다. 조 파트장님이 제품 쌓아놓은 파레트를 슬쩍 보시더니 “이제 좀 쓸만하네.” 흡족한 표정으로 따봉을 날리고 가셨다.
가을이 오자 뜨거운 연인처럼 언제나 함께 해왔던 우울과 권태기에 돌입했다. 원인은 나의 일방적인 양다리. 계절이 바뀌니 어린애 같은 우울보다 어른스러운 체념 쪽이 더 끌렸다. 세상이 다 그렇지 뭘, 누군들 다르게 살겠니. 매사에 감정 쏟지 말고 의연해지렴. 매일매일 감정이 쥐여 짜이는 것보다야 차라리 허무한 게 나았다. 두 달 쯤 열심히 하던 게임을 지우고 설렁설렁 독서나 하기로 했다. 그쯤엔 이외수 옹의 초창기 작품에 빠져 있었다. 중기 작품이 부조리한 속세를 향한 풍자와 유유자적한 내세를 향한 동경으로 점철되어 있었다면. 초기 작품은 배고플 적의 한맺힘에서 나온 염세와 악 받침이 느껴졌다. 점심시간마다 사장님이 놔주신 사무실 탁자에 책을 얹어놓고 보곤 했다.
10월 중순 어느 날. 그날도 어김없이 용접을 하고 있었다. 이젠 누구의 터치도 받지 않았기에 눈치껏 이어폰으로 음악 들어가며 일했다. 하우징 한쪽 면을 다 때운 다음 뒤집으려 용접면을 벗은 순간. 처음 보는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깜짝 놀라 뒤로 몇 걸음 물러서니 그제야 시야에 들어왔던 이의 모습이 온전하게 보였다. 작은 키에 통통한 얼굴. 귀여운 갈래머리에 안경을 낀 외모. 후줄근한 회색 작업복보다 잘 다린 백색 교복이 훨씬 어울릴 듯한 그녀는 연거푸 고개를 숙이더니,
“헉, 죄송해요. 천현우 씨…… 맞으시죠?”
“네. 맞는데요.”
“명세서 나왔어요, 여기.”
촌지 주는 학부모마냥 공손하게 봉투를 내밀었다. 이런저런 숫자와 문자가 쓰여 있었지만 결국 ‘쥐꼬리’라 요약정리해도 무방한 내용을 읽는 동안. 신입 경리인 듯한 그녀는 현장을 기웃거리더니 갑자기 반색했다.
“소설 보시는구나.”
“예, 뭐……”
“이거 진짜 재밌게 읽었어요. 여자의 한이랄까. 비참함 같은 게 너무 잘 느껴져서. 혹시 추천하는 작가 있으신가요?”
“저 소설 잘 안 보는데예.”
“아……”
급격하게 움츠러드는 모습에 어쩐지 죄지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덕분에 잘 쓰이지도 않던 머리가 순발력을 발휘해야 했다.
“음, 이기호 작가님? 갈팡질팡 어쩌구…… 하는 제목이었는데.”
“아! 고맙습니다, 꼭 볼게요.”
고개 꾸벅 숙이며 돌아서는 그녀의 작업복엔 안초원이란 이름이 박음질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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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난 사람이 경리로 들어왔구나. 제조업 쪽으로 온 젊은 경리직원들은 낯을 많이 가렸다. 말수도 적고 업무 외 이야기도 최대한 자제하려고 했다. 그도 그럴 게, 현장 아저씨들은 자기들의 행위며 발언이 실례란 사실을 몰랐다. 공유하는 언어의 세계가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아저씨들의 “애 잘 낳을 것 같네.”란 말은 칭찬의 의미였지만, 여성들이 느끼기엔 그저 성희롱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한국이 연하가 연상더러 불쾌함을 쉽게 표시할 수 있는 나라던가. 결국 알아서 사리고 최대한 멀리할 수밖에. 어차피 경리직은 잠깐 거쳐 가는 아르바이트니 사람들한테 굳이 잘 보일 필요도 없었다. 나 역시 깊은 인연이 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근데 불과 다음 주 월요일. 점심시간 종과 함께 장갑과 앞치마를 벗어던질 쯤. 초원 씨가 불쑥 부스로 찾아왔다. 책을 너무 잘 읽었다며 묻지도 않은 감상평을 늘어놓는데 참 난감했다. 읽은 지 한참 됐는지라 내용이 기억나질 않았다. 맞장구치느라 가뜩에 땀범벅인 이마 위로 진땀이 주르륵 흘렀다. 그 사이 우린 자연스럽게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가게 됐다. 밥 먹는 동안 서로의 신상을 교환했다. 초원 씨는 나보다 한 살 어린 스물 넷. 여중여고 국어국문학과의 완벽한 여초사회 사람이었고 창원대학교에 백일장 상으로 특채 입학했다고 했다. 소설가가 꿈이었지만 학기가 갈수록 문장이며 내용이 맞갖지 않아 펜을 꺾고 공무원 공부에 매진하고 있었다. 나 역시 특례 도중 졸고를 이곳저곳에 던졌지만 다 실패했다고 하니 “정말요!?” 라며 눈을 번뜩였다. 소심한 건지 대범한 건지 도통 모를 사람이었다.
그날 이후 초원 씨는 점심시간 10분 전마다 부스로 찾아왔다. 음료수를 뽑아오기도 했고, 책상 위에 올려 둔 책을 살피다가, 옆에서 용접면을 쓰고 구경하기도 했다. 용접하다가 “우앙.” 하는 감탄사가 들려오면 점심시간 임박을 알 수 있었다. 근 보름 쯤 같이 다녔을까. 쉬는 시간에 길이 삼촌과 커피를 마시던 도중. 초원 씨 얘기가 나왔다.
“거 가시내 고거. 니랑 사귀나?”
“아재고 아지매들이고. 암튼 쫌만 같이 댕기믄 꼭 그라드라. 아입니다.”
“그래? 신기하네. 가시내 말도 잘 몬해가 답답하드만. 니랑 얘기할 땐 완전 총알이데.”
그 이유를 언뜻 알 것 같았지만 굳이 말하진 않았다. 중공업은 본래 남초 직장. 더군다나 20대 여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초원 씨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격오지. 더군다나 혼자 움직이는 삶이 익숙한 사람도 아니었다. 점심시간에 허구한 날 카톡이 울려대는 거 보면 본질은 활달한 사람이었으리라. 단지 낯선 세계에서 자신과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과 마주하며 위축되었을 뿐. 그러다 어느 정도 비슷한 코드라도 공유 가능한 사람을 만나서 반가웠을 뿐이었다. 정보가 없는 이들에겐 이런 과정이 이성 간 호감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눈치가 노키아 다닐 적보다 더 감퇴한 나는, 날도 어김없이 찾아 온 초원 씨에게 “우리. 쫌 이상한 소문이 돌던데……” 라며 쓸데없는 운을 띄웠다. 덕분에 생글생글 따사롭던 표정은 한 순간에 싹 식어버렸다.
“어…… 죄송해요, 폐를 끼쳤구나.”
“아입니다. 제가 미안하지예. 눈치 없이 굴어가.”
“죄송해요.”
“아니 미안한 건 내라니까.”
“죄송하다니까요.”
잠깐 정적 후. 어째선지 이런 이야기하고 있는 내 모습이, 씩씩대고 있는 초원 씨 모습이 어째 바보 같아서, 입가에서 웃음이 피식 새어 나왔다. “왜 웃어요, 왜.”, “아니 자기도 웃김시롱 뭐라 캅니까.” 그 자리에서 서로 한 일 분 정도 웃었던 것 같다. 이 날을 계기로 우린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밤늦게 시시콜콜한 톡을 주고받다가 가끔씩 퇴근길에 같이 저녁도 먹었다. 어쩌다 보니 언제 한 번 같이 책이나 보러 가자는 묘한 약속도 했다. 시간을 불특정한 약속들이 대체로 그렇듯 공수표가 될 줄 알았는데 웬 일, 10월의 한 토요일 특근 날. 정시에 맞춰 재료 연구소가 있는 뒷문으로 나오니 초원 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스터디 마치고 달려왔으니 약속을 지키라고 했다. 나는 당황했고, 그녀는 당돌했다.
결국 잡혀가다시피 토월천 맞은편 상남대로를 걷게 되었다. 재료 연구소 한 블록을 지나면 경남에서 보기 드문 빌딩 숲이 펼쳐졌다. 은행 앞 카페에 들러 산 커피를 각자의 손에 든 채 번잡한 8차선 길을 걸었다. 그저 건물과 차를 위해 존재하는 멋없고 불친절한 거리. 아직 달뜨지 않은 단풍잎 가로수와 자동차 소음만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도 위에서 책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대상은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 초원 씨는 항소 이유서가 만들어진 과정을 보며 절박함이야말로 최고의 동기라고 생각했다. 그 동안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를 외부에서 찾으며 재능탓과 환경탓도 해봤고, 내부에서 더듬으며 의지박약과 지식부재란 문제점을 찾기도 했지만, 결국 동기부여가 제일 큰 문제였음을 깨달았다. 살기 위해 글을 썼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글을 쓴 유시민 작가가 부럽고 멋지다고 했다. 손짓까지 섞어가며 말하는 그 모습이 어쩐지 웃겨서, “그럼 빵 가서 글 써볼랍니까?” 라고 했더니 볼만 부풀렸다.
창원시청이 위치한 초대형 교차로 옆 이마트에서 햄버거로 대충 저녁을 때운 후. 성산 아트홀의 뒤통수를 지나 용지호수에 도착했을 무렵. 땅거미는 완전히 셔터를 내리고 잔잔한 호숫가는 달과 빌딩들의 거울이 되었다. 주홍빛 가로등만 띄엄띄엄 놓인 아늑한 풍경을 지나 약 한 시간의 여정 끝에 의창 도서관까지 당도했다. 2층 일반 자료실에서 초원 씨는 이기호의 소설을 골랐고, 나는 샐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집어 들었다. 허세 부린답시고 집은 책이라 좀처럼 잘 넘어가진 않았다. 진도는 거의 못 뺀 채 정신, 영혼, 이원론, 물리주의, 자유의지 따위 단어만 머릿속에서 맴돌 무렵. 그새 책 한 권 뚝딱했는지 이기호 작가의 책을 몽땅 끌어 온 초원 씨가 말했다.
“그 책 재밌어요?”
“존나 어렵네예. 다 못 읽지 싶은데.”
“빌려가요 그럼.”
“회원증 만들기 귀찮아예.”
“그럼 매주 여기 같이 와요.”
“예?”
“싫어요?”
“허, 나 참……”
그때 딱 잘라 거절 못한 게 실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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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용지호수는 이렇게 화려합니다만. 그때 당시엔 진짜 암 것두 없었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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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딱 잘라 거절 못한 게 실수였다. 덕분에 10월 내내 도서관에 끌려 다녀야 했다. “이 책 다 읽으면 다신 안 올 낍니다!” 라고 뒤늦게 못을 박자, 초원 씨는 “그럼 감상문까지 써오기!” 로 받아쳤다. 그 잔망스러움을 도저히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결국 책은 가을 다 갈쯤에야 간신히 완독했다. 길가에 자켓보다 패딩과 코트가 더 많이 돌아다니는 11월 중순, 도서관에서 나오는 길. 초원 씨에게 감상평은 이미 머릿속에서 정리했다고 말했다. 답변은 못 미더움 가득 담은 가시눈으로 돌아왔다. 비싼 소감이니 듣고 싶다면 커피 값을 내라고 더 뻔뻔하게 응수했다. 정우상가 부근 카페서 테이블 앞에 마주 선 우리 사이엔 전쟁 직전 적국 사신을 만난 듯한 긴장감이 돌았다. 제일 비싼 아이스 바닐라 라떼를 갈취 당한 초원 씨는 한껏 진지한 표정으로.
“감상평 기대해도 되죠?”
“그야 물론.”
“말해 봐요.”
옳거니, 걸렸구나! 커피 한 번 쭉 빨아들인 후. 이를 몽땅 드러내 활짝 웃어 보였다.
“어차피 죽을 거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뭐에요, 그게!”
“멋지지예? 지리지예? 놀라서 할 말이 없지예? 어어, 와예? 때릴라꼬? 응? 때릴꼬야?”
“아, 열 받아 진짜!”
한 달 꾹꾹 눌러 담았던 놀림의 쾌감은 컸다. 허나 거짓말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는 법. 결국 사기기망죄로 귀갓길까지 동행하는 형에 처했다. 불순한 의도가 아니었음을 열심히 변론했지만 존경하는 안초원 판사님께선 단칼에 기각하셨다. 하여 특근 탓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멀디 먼 까치 아파트까지 걸어야 했다. 창원 운동장 맞은바라기를 걷는 동안. 중간에 슬쩍슬쩍 손잡으려 했지만 초원 씨는 그때마다 주먹을 쥐어버렸다. 마치 가위바위보처럼, 빠만 내면 묵으로 응수하는 대치가 이어졌다. 허나 보가 왜 바위를 이기겠는가. 손바닥으로 작은 주먹 째로 덮어버리자 초원 씨는 오리입을 내밀었다. 양 볼이 불시에 입을 잡아당긴 듯 절로 웃음이 터졌다.
“감상평은 진심이었는데.”
“됐거든요.”
“도서관 좀 더 같이 댕기고 싶은데, 그것도 됐어예?”
“그건, 괜찮네요.”
“근데 맨 입으로?”
“…… 진짜 치사해.”
결국 초원 씨는 굳게 다물고 있던 주먹을 펼쳐 깍지 꼈다. 평소 수다스럽던 모습은 어디가고 불긋해진 얼굴로 앞만 보고 걸었다. 가끔씩 내 옆모습을 흘깃대다가도 시선이 마주치면 도로 정면으로 고개 돌려버렸다. 괜히 어색해서 뭐라 말문 좀 틔어보려다 관뒀다. 아무렴 어떤가. 이토록 기분 좋은 침묵을 굳이 깰 필요가 있을까. 발맞춰 걷고, 숨소리 하나하나 의식하면서, 신호등 앞에 멈춰 서면 헛기침 좀 하다가도, 초록불 켜지면 느슨해졌던 손을 다시 꽉 붙잡는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그간 일주일을 6일 같이 보냈다. 토요일은 굳이 따지자면 없는 날. 무의미한 하루였다. 사정상 특근 안 할 수는 없었기에 꼭 회사를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면 피곤하고 만사가 귀찮았다. 맥주랑 과자와 함께 유튜브 두세 시간 보면 끝. 헌데, 단지 돈과 맞바꿔왔던 시간을 이토록 설레게 보낼 수 있다니 얼마나 축복인가. 시티 세븐의 요란한 불빛 맞은편 창원천의 으슥한 골목길. 좁은 골목길엔 다 비슷하게 생겨먹은 벽돌집들과 불법 주차한 차만 죽 늘어져 있었다. 반딧불이도 다 죽어버린 초겨울. 뜬 눈으로 외로이 밤을 지새는 가로등 앞에서 초원 씨는 걸음을 멈췄다.
“이제 혼자 갈게요.”
“허허. 집 앞그지 데리다 달라 칼 때는 은제고.”
꼭 잡고 있던 손을 풀고 얼굴 마주 본 순간. 자못 진지한 초원 씨의 표정을 보았다. 웃음도 짜증도 없는 얼굴은 한껏 굳어 있었다. 내가 모르는 복잡한 감정을 품고 있는 듯 보였다. 그 모습에 실실 웃던 내 입술도 축 쳐져 일자가 되었다. 무슨 실수라도 했나? 이성 경험이 없기에 짚이는 구석도 없었다. 혼자서 머릿속 기억의 테이프를 되감기하던 그때. 깜빡이면 사라질라 눈 부릅뜬 채 바라보던 초원 씨가 옹송그렸던 입술을 서서히 열었다.
“대답하지 말고 들어주세요.”
침 꼴깍 삼킨 채 턱짓만 두 번 까닥댔다. 초원 씨는 찬 공기를 담뿍 들이 삼키고선, 마치 선전포고하듯.
“저, 현우 씨가 좋아요.”
“어……”
“대답 금지. 제스처도 금지.”
초원 씨가 자기 입술에 검지를 갖다 댔다. 나도 모르게 그 동작을 따라했다. 그제야 흡족한 듯, 본래의 푸근한 미소로 돌아와선.
“제가 곧 회사를 나가요. 대답은 그때 주세요. 아셨죠? 그럼 가볼게요. 월요일에 만나요.”
대기업이 하청업체 납품단가 후리듯 일방통보를 내린 초원 씨는 그대로 돌아섰다. 작은 뒷모습이 골목을 끼고 돌아 사라질 때까지 그저 멍하니 지켜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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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아침 출근길까지 안 올라오면 가숭어떼 떡밥으로 만들겠다는 협박에 마지못해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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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길 버스 안. 심박수는 좀처럼 떨어지질 않았고 머릿속은 엉망진창 난장판이었다. 가벼운 입맞춤 정도는 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지만 설마 고백이라니. 너무 갑작스럽잖은가. 생애 첫 피고백의 느낌은 얼얼했다. 개연성이 너무 없으니 온갖 가설만 암세포처럼 뇌 안에서 자꾸 증식했다. 나쁜 버릇이 또 시작됐다. 누군가 내게 조금만 살갑게 굴어도 흉가 찾아낸 귀신마냥 의심암귀부터 번지는 버릇. 그 누가 용접 흄냄새와 땀냄새로 얼룩진, 배 나오고 땅딸막한데다가 못 생긴, 시간당 최저시급 언저리 받는 하청업체 용접공을 좋아하겠는가. 은주에게 고백 못 한 이후로 찌질함은 고쳐지긴커녕 더욱 심해졌다. 아무렇지 않은 척 굴었지만 아직 1할도 못 쳐낸 빚은 계속해서 자존감을 좀먹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생각도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기에, 남들처럼 뛸 듯 기뻐하지 못 한 채 속앓이만 했다.
서로 톡 한 번 주고 받지 않은 채 주말이 지났다. 월요일 회의 시간. 사장님께선 장기자랑 무대처럼 직원들 모두가 빙 둘러앉은 가운데 초원 씨를 세웠다.
“우리 초원 씨가 7급 나랏미를 먹게 됐습니다! 근데 참 너무하네. 그걸 어제 얘기하면 어떡하나?”
“죄송합니다. 합격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발령이 갑자기 나서요……”
“그래그래, 서울 간댔나? 성공해서 먼 곳 가는데 박수 한 번 쳐줍시다.”
갈채가 쏟아지고, 잘 된 사람 나왔으니 본받아서 다들 열심히 노력하자는 사장님 훈화 말씀이 시작되는 동안, 혼자 서울이란 지명을 듣고 가슴이 철렁했다. 대체 뭐지? 이럴 거면 뭐하러 고백한 거지? 장거리 연애라도 하자는 건가? 잠깐 자기감정에 취해 내뱉어 본 한마디였을 뿐인가? 머리가 지끈거렸다. 초원 씨는 줄곧 내 시선을 피했다. 장난에 놀아난 기분이었다. 현장에 복귀해서도 도무지 용접이 잡히질 않았다. 그저 얼른 점심시간이 왔으면 했다.
마치 고꾸라진 시침을 억지로 들어 올리듯 버티어 간신히 열두시를 맞이했다. 늘 10분 전에 와서 기웃대던 초원 씨는 오지 않았고 사무실에도 없었다. 전화도 받지 않았고, 홍 대리에게 물어보니 이미 회사를 나갔다고 했다. 신기루에 홀린 기분. 그대로 다섯 시까지 아무 생각 없이 일했다. 그 동안 난도질당해 이리저리 찢겨 나갔던 생각이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했다. 차라리 잘 됐다. 이게 원래 내 현실. 잠깐 꿈 같은 시기가 있었을 뿐이다. 외로웠던 가을 한 달 동안 잠깐 설레며 보낸 걸로 족하지 않은가.
길이 삼촌도 정시 퇴근한 부스 안. 잔업 물량은 평소보다 일찍 동났다. 삼십분 남은 퇴근 시간만 기다리며 히터 앞에서 맥심커피를 타 마시고 있었다. 오늘 돌아가면 족발에 소주 두 병 마시고 다 잊자. 멍 때린 채 의자에 앉아 부스 밖만 바라보던 그때. 왼쪽 문 끝에서 빼꼼, 고개 내민 이와 눈이 마주쳤다. “어.” 반응하는 사이 사라졌던 시선은 다시금 빼꼼, 하고 나타났다가 없어졌다. 그 모습이 반갑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해서, 복잡한 감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거 참 잔망스럽그로 군다. 드오이소.”
그제야 감시자께서 총총 걸어들어왔다. 베이지색 캐시미어 코트에 빨간 체크무늬 목도리 차림의 초원 씨는, 평소처럼 천진한 표정이었다. 남의 마음도 모르면서. 괜히 속이 끓어 빈정대듯 한마디 툭 던졌다.
“키 테크 반납 안 하셨구만?”
“현우 씨 보려고 남겨뒀죠.”
“그짓말.”
“월요일에 보자고 했잖아요.”
“그랬든가예.”
“못 믿었구나?”
정곡으로 날아든 한마디에 말문이 턱 막혔다. 길고양이가 사람 보듯 쏘아오는 눈찌에 어색한 헛기침을 하고선.
“합격 축하합니더. 잘 됐네. 창원보다야 서울이 낫지. 거 뭐, 사람 쫌 득시글대는 거 빼면 살만 하답디다. 가서 적응 잘하시고……”
“왜 말 돌려요?”
“아니.”
“대답 들으러 왔어요.”
초원 씨는 아예 내 퇴로를 막으려 작정한 듯, 한 발자국 거리도 안 남기고 다가왔다. 속이 울렁댔다. 심장이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듯 뛰었고 이마는 숙취에 절어버린 양 꾹 죄여왔다. 고개 돌려 애써 시선을 피하려 했지만 실패. 털장갑 낀 두 손이 내 양 볼을 덮더니 고개를 다시 정면으로 모셔 왔다. 어린 시절 엄마한테 거짓말 추궁 당할 때가 떠올랐다.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타인의 호의를, 진심을 받아들이는 게 이토록 두려운 일이던가. 시큰해진 콧속에서 터져 나오려는 울먹임을 꾹 누르며 말했다.
“참, 너무하는 거 아입니까. 함 물어나 보입시다. 내가 와 좋은데?”
“몰라요. 누구 좋아해본 적이 없으니까. 그냥. 책 좋아하고. 같이 있으면 재밌고. 용접할 때 멋지고. 내가 하자는 데로 다 해주고. 그래서 좋아요.”
“암만 그래도 그렇지……”
“이기적인 소리하는 거 알아요. 저도 고백하기 전에 엄청 고민했으니까.”
애써 또박또박 말하는 초원 씨의 목소리엔 긴장이 가득했다. 마주한 눈은 촉촉했고 입술은 떨리고 있었다. 말마따나 얼마나 생각을 많이 했겠는가. 첫사랑과 첫 고백의 낯섦과 두려움. 마음의 거리는 가깝되 몸의 거리가 서로 멀어지기 직전의 상황. 감정과 이성의 시소 가운데서 얼마나 고민했을지 알기에, 그 용기와 진심에 대답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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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지 호수 근처 바보 주막에서 한 잔, 아니 좀 많이 마시고 썼습니다. 잘 안 써지더니 어떻게 뚫었네요. 확실히 알콜 도핑 성능 확실하구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