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zul.im/0NmDrX
외가쪽 본가가 있는 파주에는
나보다 나이는 훨씬 많지만
항렬로는 조카뻘인 아저씨가 계십니다.
지금도 정정하게 농사를 짓고 계시는데,
그 분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이 아저씨가 저녁에 일을 마치고
읍내에 나가서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밤 12시가 넘어 걸어서 집으로 귀가하고 있었다.
얕으막한 산을 넘어가면 지름길이 있고,
큰길을 따라가면 30분 정도 더 걸렸다.
그 산에는 예전에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아저씨는 술도 취했고,
집에 빨리 들어갈 생각으로 지름길을 택하게 됐다.
그렇게 얼마 동안을 산길을 따라
비틀비틀 걷고 있었다.
달빛에 의지해 간신히 길을 확인 할 수 있었고,
바람도 간간히 불어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언덕 정상에 이르렀고, 내리막길이 나왔다.
가벼운 마음으로 콧노래도 부르면서
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저 쪽 길 앞에 달빛에 비춰지는 어떤 물체가 보였다.
아저씨는 속으로
'저게 뭔가... 저게 뭘까... 허허 꼭 사람같네.. 허허'
하면서 계속 걸었다.
그러다 이윽고 아저씨는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사람이었다.
건장한 체격의 남자였던 것이다.
그 남자는 길 한가운데 서 있었다.
아저씨는 가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당시 아저씨 말을 빌리자면,
'야.. 진짜 술이 한번에 확 깨더라.
머리가 쭈빗 서는 게, 야.. 진짜 환장하겠더라.'
아저씨는 본능적으로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 시간에, 그 곳에,
그렇게 산길에 서 있는 사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한단 말인가.
아저씨는 발걸음을 멈추고 침을 꼴깍 삼켰다.
이미 술은 다 깬 상태였다.
그러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냥 지나가기로 했단다.
그런데 그 사람을 지나쳐서 가자,
그 사람이 나즈막하게 뒤에서 말을 걸었다.
그 남자: 아저씨...
아저씨는 발걸음을 멈추고 꼼짝 못하고 말았다.
이윽고, 그 사람이 다시 말을 걸었다.
그 남자: 이봐요, 아저씨.
아저씨: 헐... ㄷㄷㄷ
그 남자: 아저씨, 내가 씨름이 하고 싶은데
나랑 씨름 한 판 합시다.
뒤를 돌아봤더니,
그 남자의 생김새는 아주 키가 크고 건장한,
마치 옛날 장군 같은 인상이었다고 한다.
아저씨는 이판사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망갈 수도 대들 수도 없었다.
이 남자는 분명 사람이 아니었다.
아저씨는 어렸을 때
할아버지한테 들은 얘기가 생각났다.
'도깨비가 씨름을 걸어 오면 해줘야 한단다.
그런데 지면 큰 봉변을 당할거다.
씨름을 이기려면
반드시 왼발을 걸어 넘어뜨려야 한다.
왼발은 자기 발이 아니라
빗자루나 싸리나무이기 때문에
힘을 쓰지 못하거든.
그리고 도깨비가 지칠 때까지
또는 해가 밝을 때까지 계속 이겨야 한다.'
아저씨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 남자와 씨름을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왼발을 걸어 넘기자 그 남자는 바로 넘어졌다.
그 남자는 씨름에서 지자
씩씩거리며 다시 하자고 했다.
그 남자는 또 넘어졌고, 계속 하자고 했다.
그러길 몇시간째...
아저씨는 도저히 해가 밝을 때까지 할 자신이 없었다.
너무 지쳤고, 힘들었다.
그래서 아저씨는
그 남자가 철퍼덕 넘어졌을 때를 타서 도망을 쳤다.
산길을 죽어라 달리자,
그 남자가
'야 이눔아, 씨름 계속해!!!'
라면서 뒤쫓아 왔다.
도망가다 뒷멀미를 잡히면
그 남자는 아저씨를 마구 때렸다.
아저씨는 맞으면서도 다시 뿌리치고 도망갔고,
도망가다 잡히면 또 얻어 맞았다.
그렇게 한참을 가니 집에 도착했다.
그 남자는 집까지 쫓아 온것이다.
아저씨는 마당 한쪽에 있는 광 앞에 섰다.
광 문을 활짝 열고 그 앞에 서자
그 남자가 확 달려 들었고,
몸 싸움 끝에 그 남자를 광으로 밀어 넣고
밖에서 문을 잠그는 데 성공했다.
아저씨는 기진맥진해서 마루에 쓰러졌고
정신을 잃어버렸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집이 난리가 났다.
아저씨가 얼굴이 피멍이 들고 옷도 온통 다 찢기고
몸에 멍이 들어 마루에서 자고 있던 것이다.
식구들이 깨우자 아저씨는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어젯밤 일이 생각났다.
"맞아, 광.
내가 그늠을 광에 집어 넣고 잠궈버렸어."
이윽고 동네 청년들을 몇명 불러 모았다.
모두 손에는 몽둥이를 하나씩 들고 광 앞에 섰다.
그리고 아저씨는 조심스럽게 광문을 열었다.
그런데,
광 안에는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닌가.
청년들과 함께 조심스럽게 광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광에는 거짓말같이 아무도 없었다.
창문도 없는 광에서 누군가가
밖으로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자 조심스럽게 뒤따라 들어오던
아주머니가 소리쳤다.
'저기, 저거! 저거 보세요!'
아주머니가 가리키는 곳에는,
바닥에 자빠져 있는
낯선 싸리 빗자루가 하나 있었다.
'그래, 저놈이구만.'
아저씨는 얼른 빗자루를 집어 들고
마당에 나와 불에 태워버렸다.
그리고 아저씨는 바로 병원에 가야했다.
이도 부러지고, 온몸이 찢기고 멍이 들었던 것이다.
첫댓글 도깨비야 사람을 줘패면 어떡해 놀아줬잖아
사람을 줘패면 어케 깨뱌
씨름광공.??
아니 한번 지면 끝 아니었어? 무섭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