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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국(小國) 일본(日本), 왜(倭)를 병합(倂合)하다 [제1편]
2022년 12월 25일
○ ‘왜(倭)=왜노(倭奴)’는 누구고, ‘일본(日本)’은 누군가? 우리들이 알고 있는 ‘왜(倭)=왜노(倭奴)’는 누구고, ‘일본(日本)’은 누군가? 같은 종족(種族)인가? 서로 다른 종족(種族)인가?
“삼한(三韓) 역사(歷史)”에 따르면 : ➊ “낙랑(樂浪) 땅에 왜(倭)가 있었다”했고, ➋ “삼한(三韓) 남(南)쪽 땅에 왜(倭) 접(接)했으며, 때로는 섞여 살 때도 있었다.”고 하는데, 실제(實際) 『그들의 역사(歷史)에 대해 누구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적절(適切)한 표현(表現)일 것 같다. 참 더럽게 웃기는 이야기지만, 이게 오늘의 학계(學界) 현실(現實)이다.
도대체 이들은 누군가? 필자(筆者)는 우리 카페(Cafe)에 여러 차례에 걸쳐 “왜(倭)와 일본(日本)”에 대한 역사해설(歷史解說)을 게재(揭載)하였다. 오늘은 이미 게재(揭載)된 것들 외(外) 『왜(倭)와 일본(日本), 이들은 동족(同族)인가?, 또는 별종(別種)인가? 또는 한 개의 나라(國)였는가? 두 개(個)의 나라(國)였는가?』 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였다.
➤ 사서(史書)에 따르면 : ‘한(韓)과 왜(倭)’는, 수백(數百) 년 공존(共存)하면서 한(韓)의 남(南)쪽 땅에, 때로는 진한(辰韓)과 변한(弁韓)과 함께 섞여 살기도 했으며, “왜(倭)”는 마한(馬韓)과 경계(境界)하고, 변한(弁韓) 또는 진한(辰韓)과도 경계(境界)하며, 인접(隣接)해 있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역사서(歷史書)에서 말하는 바에 따르면 :
➨ 〈‘반도(半島)와 열도(列島)’ 땅이 아닌 연속(連續) 이어진 땅(陸地)에서, 경계(境界)가 서로 맞닿아 있다[接境]〉 고 한 것이다.
만약(萬若) 《『오늘의 ‘대한민국(大韓民國) 학계(學界)의 주장(主張)’처럼,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 논자(論者)들의 주장(主張)’처럼 : 한반도(韓半島)가 삼한(三韓)의 땅이었다고 한다.』면,『경상도(慶尙道)와 전라도(全羅道)는, 왜(倭)의 땅일 수밖에 없다.』》 이건 오늘의 현실(現實) 속에 있는 이야기다.
『이런 형편(形便)을 인정(認定)하겠는가? 못하겠는가?』 이건 누굴 탓할 일도 없다.
「이러한 현실(現實)을 인정(認定)하고, 안 하고의 문제(問題)가 아닌 필수(必須) 항목(項目)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대한민국(大韓民國) 스스로 자청(自請)해서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 논리(論理)를 검증(檢證) 한번 없이 수정(修正) 한번 없이, 그대로 수용(受容)하여 국민(國民)들에게 강제(强制)하였기 때문이다. 이건 누굴 탓할 일도 없다. 대한민국(大韓民國)이란 국가(國家)가 자청(自請)하여, 그들 스스로 국민(國民)들을 상대(相對)로 세뇌교육(洗腦敎育)을 시켰기 때문이다.
어쩔 건가? 〈국민(國民)들은 이에 대하여 “강제(强制)한 국가(國家)나 정권(政權)에게 항변(抗辯) 한 번 제대로 해보았는가?” 전혀 들은 바 없다. 결국(結局) 국가(國家)나 국민(國民)들이나 똑같은 도토리 그 이상(以上)도, 그 이하(以下)도 아닌 도토리일 뿐이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서(歷史書)를 보면 :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왈(曰) : 《韓在帶方之南,東西以海為限,南與倭接,方可四千里 : 한(韓)은 대방(帶方)의 남쪽에 있는데, 동(東)쪽과 서(西)쪽은 바다(海)로 한계(限界)하며, 남(南)쪽은 왜(倭)와 함께 접해있다. 사방(四方) 4천리(千里)이다.》라고 하였으니,
➊ 당시(當時)에 한(韓)이 있었던 땅(地)은, “반도(半島) 땅”이 아니었다는 뜻이며, ➋ 남(南)쪽이 바다(海)가 아닌 것은 “왜(倭)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➌ 한(韓) 즉 한국(韓國)이 한반도(韓半島) 땅에 있었다는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의 논리(論理)가 얼마나 주먹구구식인지, 언어도단적(言語道斷的) 역사해설(歷史解說)이지를 알려주는 한 예(例)다. 얼마나 웃기는 반도(半島) 학계(學界)인가!
➨ 사서(史書)의 기록(記錄)마다 다소(多少)의 이론(異論)은 있다. 이에 따르면 : ➊ 『왜(倭)와 일본(日本)은 동족(同族), 같은 국가(國家)로 묘사(描寫)되고, 일본으로 개명(改名)하였다.』 라고 말하고 있는데, 일부(一部) 사서(史書)에서는 : ➋ 『일본(日本)은, 왜(倭)의 별종(別種)으로 소국(小國)이었지만 왜(倭)를 병합(倂合)하여 “일본(日本)”이 된 것이다』라고 설명(說明)하고 있다. 기록(記錄)을 따라 “왜(倭)와 일본(日本)”을 살펴보기로 하자.
※ 〈“남아세아(南亞細亞)의 인도대륙(印度大陸)으로부터 스리랑카[SriLanka], 벵골만[Bengal, 灣], 남중국해(南中國海)”로 이어지는 해역(海域)은, ‘왜(倭)+일본(日本)’의 주요(主要) 이동로(移動路)이며, 대만(臺灣)까지 이어지다가 근세(近世)에 결국(結局) 유구(琉球)를 거처 열도(列島)에 정착(定着)하게 된 것이다.〉라고 설명(說明)할 수 있을 것이다.
(1) 해동역사(海東繹史) : ‘漢書’를 인용(引用)하여 이르기를 : 《樂浪海中,有倭人,分爲百餘國,以歲時來獻見[海東繹史 原文] : 낙랑(樂浪)의 바다 가운데에 왜인(倭人)들이 있어 100여 나라로 나뉘어 있는데, 해마다 와서 헌상(獻上)하며 뵈었다.》 고 하였다.
➤ ”낙랑(樂浪)의 바다 가운데에(海中), ‘왜(倭)’가 백여(百餘) 나라로 나누어져 있다“라고 하였는데, “낙랑(樂浪)의 해중(海中)”이란 어디에 있는 어떤 바다(海)를 말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제기(問題提起)다. 도대체 어디냐?
낙랑(樂浪)은? ▲ 낙랑군(樂浪郡) ▲ 낙랑국(樂浪國)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여기서 낙랑군(樂浪郡)은. 그 땅을 어떤 곳에 배치(排置)한다하더라도 고구려(高駒驪)를 떠날 수 없다. 그러나 낙랑국(樂浪國)이라면 그 의미(意味)가 전혀 다르게 된다.
“낙랑(樂浪) 해중(海中)”이란 말은, 곧 “한국(韓國)”과 접(接)해 있는 큰 바다 가운데[大海 中]를 일컫는 말이다. 그곳은 동(東)쪽과 서(西)쪽은 바다(海)이고, 남(南)쪽은 “왜(倭)와 연접(連接)하였다”고 하였으니, 뭍(陸地)이었다“는 뜻이다.
『한반도(韓半島)와 열도(列島) 땅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지세(地勢)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지세(地勢)는 수천(數千)만년(萬年) 전(前)에 이미 그 형세(形勢)가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가불가(可不可)를 따질 수 없는 조물주(造物主) 탓이다.
(2) 후한서(後漢書) 왜(倭) :《倭在韓東南大海中依山島為居,凡百餘國…樂浪郡徼去其國萬二千里…其地大較在會稽東冶之東與朱崖儋耳相近…建武中元二年倭奴國奉貢朝賀使人自稱大夫倭國之極南界也… : ‘왜(倭)’는 ‘한(韓)’의 동남(東南) 큰 바다 가운데, 산(山)과 섬(島)에 사는데, 무릇 백여(百餘) 나라이다. 낙랑군(樂浪郡) 변방에서 그 나라까지는 1만(萬) 2천리(千里)를 가야 한다. 그 땅은 대략 회계(會稽) 동야(東冶)의 동(東)쪽으로 주애(朱崖)와 담이(儋耳)와 서로 가깝다(相近). 건무(建武) 중원(中元) 2년에, 왜노국(倭奴國)이 사신을 조정에 보내어 봉공(封貢)하면서 스스로 대부(大夫)라고 하였는데, 왜국(倭國)은 가장 남쪽 지경(地境)[南界]에 있다고 하였다.》 고 하였다.
➊ ‘한(韓) 즉(卽) 한국(韓國)’의 동남(東南) 큰 바다 가운데는 어딘가? 또 한(韓)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삼한(三韓)인가? ➋ 『낙랑군(樂浪郡) 변두리에서 1만 2천리 떨어진 곳이 어디며, 그곳이 주애(朱崖)와 담이(儋耳)와 서로 가깝다』 라는 곳은 어딘가? ➌ 가장 남쪽(極南界) 땅은?
(3) 진서(晉書) ㈠ 倭人 : 《倭人在帶方東南大海中,依山島爲國,地多山林,無良田,食海物。舊有百餘小國相接,至魏時,有三十國通好。: 왜인(倭人)은 대방(帶方) 동남(東南) 큰 바다 가운데에 있는데, 산과 섬(島)에 의지하여 나라가 있다. 땅에는 산에 나무가 많고, 좋은 밭은 없고, 해산물을 먹는다. 예전에 백여(百餘) 소국(小國)으로 서로 접해있다. 위(魏)나라 때에 이르러 30개 나라와 서로 통하였다. 戶有七萬。昔夏少康之子封於會稽,當會稽東冶之東。: 7만 호(戶)가 있다. 옛날 하(夏)의 소강(少康)의 아들이 회계(會稽)에 봉해졌는데, 회계(會稽)는 동야(東冶)의 동(東)쪽에 있다.》고 하였다. 또 이르기를,
㈡ 東倭 :《晉書·宣帝紀:魏正使元年,春正月,東倭重譯納貢。동왜(東倭) : 진서(晉書) 선제기(宣帝紀)에, 위(魏) 정사(正使) 원년(元年) 봄 3월에, 동왜(東倭)가 여러 번의 통역을 거쳐 공물을 바쳤다.》고 하였다.
대방(帶方)? 또 대방(帶方)의 동남(東南) 큰 바다는? 회계(會稽)와 동야(東冶)는? 오늘날의 절강성(浙江省)이나 복건성(福建省) 등지에 회계(會稽)가 있었다는 말은 지명(地名)의 왜곡(歪曲)과 조작(造作)이 확실(確實)하다.
왜냐하면 ‘낙랑군(樂浪郡)이나 대방군(帶方郡)’으로부터 ‘1만2천리’라는 곳은, 오늘날의 중원(中原) 대륙(大陸) 땅을 벗어나, 인도지나반도(印度支那半島)를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➊ 동왜(東倭) : 《魏 正使 元年, 봄 3월, 동왜(東倭)가 여러 번의 통역을 거쳐 공물을 바쳤다.》고 하였으니, “동왜(東倭)”다. 상세(詳細)한 것은 전혀 알 길이 없다.
➋ 북왜(北倭) : 산해경(山海經) : 《海 內 北 經 : 蓋 國 在 鉅 燕 南, 倭 北. 倭 屬 燕 : 개국(盖國)은 거연(鉅燕)의 남(南)쪽에 있고, 왜(倭)는 북(北)쪽에 있는데, 왜(倭)는 연(燕)에 속했다.》라고 하였으니 “북왜(北倭)”다. 【“개국(盖國)은 개마(蓋馬)이고, 개마(蓋馬)는 현토군(玄菟郡)에 속한 현(縣)의 이름이며, 생각해 보면, 개마(蓋馬)는 본래(本來) 개국(盖國) 땅이 의심된다.”라고 당(唐) 이현(李賢)은 주석(注釋)에서 말하고 있다. 李賢注云:蓋馬,縣名,屬玄菟郡. 今案蓋馬疑本蓋國地】
“후한서(後漢書) 동옥저(東沃沮)” 편에서 이르기를 : ≪後漢書東沃沮 曰 : 《本東沃沮,在高句麗蓋馬大山之東,蓋馬縣名屬玄菟郡,其山在今平壤城西,平壤卽王儉城也 : 동옥저(東沃沮)는 고구려(高駒驪)의 개마대산(蓋馬大山) 동(東)쪽에 있다. 개마(蓋馬)는 현(縣)의 이름으로 현토군(玄菟郡)에 속했다. 그 산(山) 곧 개마대산(蓋馬大山)은 평양성(平壤城) 서(西)쪽에 있다. 평양(平壤)은 즉(卽) 왕검성(王儉城)이다.≫라고 하였으니 문제(問題)가 되는 것이다. 오늘의 주제(主題)는 아니지만 : 평양성(平壤城) 서(西)쪽은 어디냐? 하는 것이다.
➌ 남왜(南倭) : 《극(極) 남계지지(南界之地) 즉(卽) 가장 남(南)쪽 지경의 땅에 있다》하였으니 곧 “남왜(南倭)”다.
➍ 서왜(西倭) :
(4)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왜(倭) : 《倭 人 在 帶 方 東 南 大 海 之 中 , 依 山 島 為 國 邑 。 所 有 無 與 儋 耳 、 朱 崖 同 。 倭 地 溫 暖 , 冬 夏 食 生 菜 , 皆 徒 跣 。: 왜인(倭人)은 대방(帶方)의 동남(東南) 큰 바다 가운데에 있는데, 산(山)과 섬(島)에 나라 읍(邑)이 있다. 가지고 있는 것은 없으나 담이(儋耳), 주애(朱崖)와 같다(同). 왜(倭) 땅은 온난(溫暖)하여, 겨울과 여름처럼 날로 무친 나물을 먹을 수 있다. 모두 맨발이다.》라고 하였다.
대방(帶方)은? 담이(儋耳)와 주애(朱崖)는? 아열대(亞熱帶) 기후(氣候)를 가졌다.
『담이(儋耳)와 주애(朱崖)』 는 오늘날의 광동성(廣東省) 남서(南西) 뇌주반도(雷州半島)와 해남도(海南島) 경주(瓊州) 주변을 지칭한다고 하는데, 이는 경사(京師)【당시(當時) 장안(長安)】로부터 7300-7400 리 떨어져 있다고 하였으나, 실제거리(實際距離)는 1,700k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7, 000 리가 넘는다는 말은 2,800km를 상회(上廻)하는 거리여야 맞는 말이다.
➤ ‘장안(長安)=서안(西安)’에서 2,800 km 정도(程度)가 되는 곳은, 베트남[Vetnam] 최남단 메콩강(Mekong, 江) 삼각주(三角洲) 땅이 된다. 이곳에 “담이(儋耳)와 주애(朱崖)”가 있었다고 한다면 거리(距離)상으로 올바른 해설(解說)이 될 수 있다.
(5) 宋書 倭國 : 《倭 國 在 高 驪 東 南 大 海 中 , 世 修 貢 職 。: 왜국(倭國)은 고려 동남(東南) 큰 바다 가운데 있는데, 대대로 공물(貢物)을 바치는 직분을 행하였다.》
【송서(宋書) : 487년 남제(南齊) 무제(武帝)의 칙명(勅命)에 따라 심약(沈約)이 488년에 편찬을 완성한 것으로 송나라 60년(420∼478)의 역사(歷史)를 기록한 사서(史書)이다】
‘고려(高驪)’란 ‘고구려(高駒驪)’를 말하는 것인데, “고구려(高駒驪)의 동남(東南) 큰 바다 가운데”는 어딘가?
(6) 南史 倭國 : 《倭 國, 其 先 所 出 及 所 在 , 事 詳 北 史 。 物 產 略 與 儋 耳 、 朱 崖 同 。 地 氣 溫 暖 , 風 俗 不 淫 。: 왜국(倭國)은, 그 선조들에 대한 것은, 북사에 상세하다. 물산(物産)은 담이(儋耳)와 주애(朱崖)와 대략 같다. 땅의 기운은 온난(溫暖)하며, 풍속(風俗)은 음란하지 않다.》고 하였느니,
『주애(朱崖)와 담이(儋耳)는?』 물산(物産)이 “담이(儋耳)와 주애(朱崖)”와 같다고 한 것은, 같은 기후대(氣候帶), 인접(隣接)한 땅을 말하는 것과 같다. 그곳은 어디?
“前漢書 武帝紀” 본문(本文)의 주석(註釋) 편을 보면 : 《응소(應召)가 이르기를, 담이(儋耳)와 주애(朱崖) 2군(郡)은, 애안(崖岸)의 가장자리로, 진주(珍珠)가 나오는데, 주애(朱崖), 담이(儋耳)라고 일렀다. 장안(張晏)이 이르기를, 이물지(利物志)에서 2군(郡)은 바다 가운데 있는데, 동서(東西)가 천리(千里), 남북(南北)이 5백리다. 신(臣) 찬(瓚)이 이르기를 : 무릉서(武陵書)에, 주애군(珠崖郡)은 심도(瞫都)에서 다스리는데, 장안(長安)까지 7,314리이다. 담이(儋耳)는 장안(長安)에서 7,368리이며, 현(縣)이 5개이다. 漢書卷六.武帝紀第六〔五〕應劭曰:二郡在大海中崖岸之邊.出真珠,故曰珠崖.張晏曰:異物志二郡在海中,東西千里,南北五百里.臣瓚曰:茂陵書珠崖郡治瞫都,去長安七千三百一十四里.儋耳去長安七千三百六十八里,領縣五.》라고 하였다.
➨ 여기서 「‘장안(長安)=서안(西安)’으로부터 ‘7,000’리는, 오늘날의 베트남[Vetnam] 최 남단(南端) 서(西)쪽 해안(海岸)까지에 다다른다.」
헌데 “동서(東西) 천리(千里), 남북 오백(五百)리”가 되는 곳은. “해남도(海南島)”가 될 수 있다. 그 지세(地勢)가 그렇다. 이걸 전제(前提)로 “장안(長安) 즉 경사(京師)”를 가늠해 볼 수 있는데, 『해남도(海南島) 경주(瓊州)로부터 2,800km 떨어진 곳은 : 감숙성(甘肅省) 최 서(西)쪽 돈황(燉煌) 주변(周邊)』에 이른다.
전한서(前漢書) 무제기(武帝紀) 본문(本文) 주석(注釋)편에서 “신(臣) 찬(璨)이 이르기를 : 무릉서(武陵書)를 인용(引用)하여, 『주애군(珠崖郡)은 장안(長安)으로부터 7,314리요, 담이(儋耳)는 7,368리』라고 하였다.
(7) 南齊書 倭國 : 《倭 國 , 在 帶 方 東 南 大 海 島 中 : 왜국(倭國)은, 대방(帶方) 동남(東南) 큰 바다의 섬(島) 가운데에 있다.》
➨ 대방(帶方)은?
(8) 北史 倭國 : 《倭國在百濟,新羅東南,水陸三千里,於大海中依山島而居.其地勢,東高西下 : 又云:去樂浪郡境及帶方郡並一萬二千里,在會稽東,與儋耳相近. : 왜국(倭國)은 백제(百濟)와 신라(新羅) 동남(東南)에 있다. 물과 땅으로 3천리인데, 큰 바다의 산(山)과 섬(島)에 의지하여 산다. 그 땅의 기세는 동(東)쪽은 높고, 서쪽은 낮다. 또 전하기를, 낙랑군(樂浪郡) 지경(地境)과 대방군(帶方郡)으로부터 나란히 1만2천리다. 회계(會稽)의 동(東), 담이(儋耳)와 서로 가깝다. 氣候溫暖,草木冬青,土地膏腴,水多陸少 : 기후(氣候)는 온난(溫暖)하며, 초목(草木)은 겨울에도 푸르다. 토지(土地)는 기름지고 비옥한데, 물은 많고 육지는 적다.》고 하였다.
➊ ‘낙랑군(樂浪郡)·대방군(帶方郡)’은? 이곳에서 1만2천리라면 4,800km 정도 떨어진 곳인데, 장안(長安) 근교(近 郊)로부터 남(南)쪽으로 4,800km는, 인도네시아[Indonesia] 보르네오[Borneo] 남(南)쪽 바다이다.【동남(東南)쪽이면 괌[Guam] 남(南)쪽 해중(海中)이다】
➋ 회계도(會稽道)는, “절강성(浙江省)의 동남(東南)지역”을, 회계(會稽)는, “절강성(浙江省) 소흥부(紹興府)”이다. 담이(儋耳)는 “담이군(儋耳郡)으로써 주애군(珠崖郡)이다.” 이곳은 광동성(廣東省), 해남성(海南省)지역이다. 그러나,
이러한 곳 ‘담이(儋耳)·주애(朱崖)’는, 경사(京師)로부터 겨우 ‘1,600-1,700’km, ‘절강(浙江)’쪽은 겨우 ‘1,200-1,300’km 이므로 1만리(萬里)니, 1만 2천리니 하는 말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즉 지명(地名)을 조작(造作)했거나, 이동(移動)시켰다는 것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장안(長安)=서안(西安)’에서 대만(臺灣)의 ‘타이페이’도 겨우 1,600km에 지나지 않는다.】
(9) 梁書 [唐,散騎常侍,姚思廉撰] 倭 : 《倭者,自云太伯之後,俗皆文身。去帶方萬二千餘里,大抵在會稽之東,相去絕遠。物產略與儋耳、朱崖同。地溫暖,風俗不淫。: 왜(倭)는, 대백(大白) 이후(以後)이다. 풍속(風俗)에 모두 문신을 한다. 대방(帶方)으로부터 ‘1만 2천 여리’를 가는데, 대체로 보아서(무릇) 회계(會稽)의 동(東)으로, 서로 가로막혀 멀리 떨어져 있다. 물산(物産)은 담이(儋耳)와 주애(朱崖)와 같다(同). 땅은 온난하며 음란하지 않다.》
➨ 대방(帶方)으로부터 1먼 2천여리 떨어져 있다. 회계(會稽)의 동(東)쪽으로, 물산(物産)은 주애(朱崖), 담이(儋耳)와 같다.
(10) 括地志 倭國 : 왜국(倭國) : 《倭國西南大海中,島居凡百餘小國,在京南萬三千五百里。[史記·五帝本紀,島夷,正義,引] : 왜국(倭國)은 서남(西南) 큰 바다 가운데 있는데, 섬(島)에 사는데 백여 작은 나라로 나누어져 있다. 서울(京)로부터 남(南)쪽으로 1만3천 5백리이다. [사기(史記)오제본기(五帝本紀) 도이(島夷)편의 정의 주(注)를 인용(引用)한 것이다]》
괄지지(括地志)는, 『당대(唐代)의 학자(學者) 복왕(濮王) 태(泰)【唐太宗, 子】가 AD 639년을 기준(基準)하여 찬(撰)한 것이다』라고 전해지고 있으니, 위에서 말하는 왜(倭)는,
➨ 《황성(皇城 : 京)의 남(南)쪽으로 13,500 리 떨어져 있다》고 한 것이다. 괄지지(括地志)가 편찬(編纂)되었을 때 “경(京)”은, “장안(長安)”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唐) 태종(太宗)의 네 번째 아들이었던 ‘복왕(濮王) 이태(李泰)’의 ‘괄지지(括地志)’에 따르면 : 장안(長安) 즉 『서울(京)로부터 남(南)쪽으로 13,500리에 “왜(倭)가 있었다”』고 한 바에 따르면 “이곳은 인도네시아[Indonesia] 자카르타[Jakarta]가 자리 잡고 있는 자바섬[Java, 島] 남쪽 해안에 이른다.”
이러한 예(例)를 따라보면 : 〈‘담이(儋耳)와 주애(朱崖)’는 오늘날의 해남성(海南省)에 없었다〉는 뜻이 된다.
(11) 唐會要 99 倭國 :《倭國古倭奴國也。在新羅東南。居大海之中。北限大海。西北接百濟。正北抵新羅。南與越州相接。: 왜국(倭國)은 옛 왜노국(倭奴國)이다. 신라(新羅) 동남(東南)쪽의 큰 바다가운데에 산다. 북쪽은 큰 바다에 한계(限界)한다. 서북(西北)쪽으로는 백제(百濟)와 접(接)하며, 정북(正北)에는 신라(新羅)에 다다른다. 남(南)쪽은 월주(越州)와 서로 붙어있다. 則天時。自言其國近日所出。故號日本國。蓋惡其名不雅而改之。: 측천무후(則天武后) 때에, 스스로 말하기를 나라근처에서 해가 나오는 바, 고로 일본국(日本國)이라고 불렀다. 그 이름이 추하고 아름답지 않아 고친 것이다.》
➨ 《신라(新羅) 동남(東南) 대해(大海) 중에 있다. 서북(西北)은 백제(百濟), 정북(正北)은 신라(新羅), 남(南)쪽은 월주(越州)와 “상접(相接)”한다》
상접(相接) : 명사 / 1. 서로 한데 닿는 것. 서로 붙는 것. 2. 서로 접하거나 대하는 것 / [네이버한자사전] : 相接 : 서로 닿거나 또는 서로 붙음.
➨ 《‘왜(倭)=왜노국(倭奴國)’의 남(南)쪽 땅은, 월주(越州)와 사로 한데 붙어있었다(相接)》는 것이다.
(12) 隋書 倭國 : 《倭國,在百濟、新羅東南,水陸三千里,於大海之中依山島而居。其地勢東高西下。: 왜국(倭國)은, 백제(百濟), 신라(新羅) 동남(東南), 수륙(水陸) 3천리에 있는데, 큰 바다가운데 산과 섬에 의지하여 산다. 그 땅의 기세(氣勢)는 동(東)쪽은 높고, 서(西)쪽은 낮다. 安帝時,又遣使朝貢,謂之倭奴國。氣候溫暖,草木冬青,土地膏腴,水多陸少。안제(安帝) 때에 또 사신을 보내어 조공(朝貢)하였는데, 말하기를 왜노국(倭奴國)이라고 하였다. 기후(氣候)는 온난(溫暖)하여 초목은 겨울에도 푸르며, 토지(土地)는 기름진대, 물은 많고, 뭍(地)은 적다.》
➨ 《백제(百濟), 신라(新羅) 동남(東南)쪽으로 수륙(水陸) 3천리에 있는데, 동(東)쪽은 높고, 서(西)쪽은 낮은 지세(地勢)를 가지고 있다》고 하였는데,
오늘날의 열도(列島)의 지세(地勢)는 : “서(西)쪽은 높고, 동(東)쪽은 낮다” 즉(卽) 수서(隋書)의 기록과는 전혀 다른 정반대(正反對)의 지세(地勢)를 가졌다. 곧 “열도(列島) 땅이 아니다”는 뜻이다. 이러한 지세(地勢)는, 대만(臺灣)과 똑같다.
(13) 舊唐書 ➊ 倭國 : 《倭國者,古倭奴國也。去京師一萬四千里,在新羅東南大海中。依山島而居…衣服之制,頗類新羅。: 왜국(倭國)은 옛 왜노국(倭奴國)이다. 경사(京師)에서 1만(灣)4천리(千里)를 가야 한다. 신라(新羅)의 동남(東南)쪽 큰 바다 가운데에 있서, 산(山)과 섬에 의지해 산다. 의복(衣服)의 제도는 상당히 신라(新羅)와 비슷하다.》
➋ 日本國 : 《日本國者,倭國之別種也。以其國在日邊,故以日本為名。: 일본국(日本國)은, 왜국(倭國)의 별종(別種)이다. 그 나라가 해의 가장자리에 있어, 고로 일본(日本)이라고 이름하였다. 或曰:倭國自惡其名不雅,改為日本。或雲:日本舊小國,並倭國之地。: 혹(或) 이르기를 : 왜국(倭國)은 그 이름이 아름답지 못하고 나빠, 일본(日本)으로 고쳤다. 혹은 일본(日本)은 옛 소국(小國)으로 왜국(倭國)의 땅을 병합(倂合)하였다. 又雲:其國界東西南北各數千里,西界、南界鹹至大海,東界、北界有大山為限,山外即毛人之國。: 또 이르기를 : 그 나라 지경(地境)은 동서남북(東西南北) 각각 수천리(數千里)인데, 서계(西界)와 남계(南界)는 두루 대해(大海)에 다다르며, 동계(東界)와 북계(北界)는 큰 산이 있어 한계(限界)하는데, 산(山) 밖으로는 곧 모인국(毛人國)이다.》
위의 글 ‘➊+➋’를 보면 :
➌ 《“왜(倭)는 왜노국(倭奴國)”을 지칭하는 것이고, 경사(京師)로부터 1만 4천리를 가야하며, 신라(新羅)의 동남 대해(大海) 중(中)에 있다. 헌데 의복(衣服) 제도(制度)는 신라(新羅)와 같다.》고 하였으니, 옛 신라(新羅)인들도 “훈도시[ふんどし]”를 찼다는 것일까?
경사(京師)로부터 ‘1만 4천리’는? 괄지지(括地志)는 서울(京) 남(南)쪽 13,500 리(里) 라고 하였는데, 거기가 거기다. 즉 “인도네시아[Indonesia] 자카르타[Jakarta]가 자리 잡고 있는 자바섬[Java, 島] 남쪽 해안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건 “당(唐)” 때를 말하는 것으로, ‘고구려(高駒驪)·백제(百濟)·신라(新羅)’가 있었을 때의 이야기다. 고로 『낙랑(樂浪)…대방(帶方)』은, 『장안(長安) 또는 그 근교(近郊)』를 말하는 것이 된다.
➍ 《“일본국(日本國)은, “왜(倭)=왜노국(倭奴國)”의 별종(別種)으로 소국(小國)이었다. 헌데 「소국(小國)이었던 “일본(日本)”이 “왜(倭)=왜노국(倭奴國)”을 병합(倂合)」해 버리고, 일본(日本)이라고 했는데, 그 나라의 땅은 동서남북(東西南北) 각각 수천(數千)리나 되었다》고 하였다.
➨ 결국(結局) 『오늘날의 “열도(列島)” 땅은 사서(史書)에 기록(記錄)된 “왜(倭)=왜노국(倭奴國)=일본(日本)” 땅이 아니었다.』는 것이 중요(重要)한 대목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이들은 “남아세아(南亞世亞)로부터 도래(渡來)한 무리(衆)들이다.” 라는 것이 결론(結論)이다.
(14) 新唐書 日本 : ➊ 日本,古倭奴也。去京師萬四千里,直新羅東南,在海中,島而居,東西五月行,南北三月行。: 일본(日本)은, 옛 왜노(倭奴)이다. 경사(京師)에서 1만4천리로, 곧바로 신라(新羅) 동남(東南), 바다가운데에 섬(島)에 사는데, 동서(東西)로 다섯 달을 가고, 남북(南北)으로는 세 달을 간다. ➋ 或雲日本乃小國,為倭所並,故冒其號。: 혹은 이르기를, 일본(日本)은 소국(小國)으로, 왜(倭)를 병합(倂合)하였는바, 고로 이름이 되었다.》
‘신당서(新唐書)’의 기록(記錄) 역시(亦是) ‘구당서(舊唐書)’와 똑같은 설명(說明)을 남겨 놓고 있다.
(15) 通典 倭 : 《倭自後漢通焉,在帶方東南大海中,依山島為居,凡百餘國 : 光武中元二年,倭奴國奉貢朝賀,使人自稱大夫,倭國之極南界 : 왜(倭)는 후한(後漢)때에 통했다. 대방(帶方) 동남(東南) 큰 바다가운데에, 산(山)과 섬(島)에 의지하는데, 무릇 백여(百餘)국이다. 광무(光武) 중원(中元) 2년에, 왜노국(倭奴國)이 봉공(封貢)조하(朝賀)한 바, 사신(使臣) 스스로 대부(大夫)라 하였는데, 왜국(倭國)은 가장 남쪽 지경(地境)에 있다고 하였다. 其王理邪馬臺國,去遼東萬二千里,在百濟,新羅東南,其國界東西五月行,南北三月行,各至於海,大較在會稽·閩川之東,亦與朱崖·儋耳相近 : 그 왕(王)은 사마대국(邪馬臺國)에서 다스리는데, 요동(遼東)으로부터 1만2천리를 가야하며, 백제(百濟)와 신라(新羅)의 동남(東南)에 있다. 그 나라의 지경(地境)은 동서(東西)는 5개월을 가야하며, 남북(南北)으로는 3개월을 가야하는데, 각각 바다에 이른다. 대략(大略) 회계(會稽)·민천(閩川)의 동(東)쪽에 있다. 또 주애(朱崖)·담이(儋耳)와 서로 가깝다.土氣溫暖,冬夏生菜茹 … 衣服之制頗同新羅 : 倭一名日本,自云國在日邊,故以為稱 : 》
➊ 「왜(倭)는 대방(帶方) 동남(東南) 해중(海中)에 있으며, 왜인(倭人) 스스로 “가장 남쪽 지경에 있다”고 하였다. 또 왕(王)이 있는 사마대국(邪馬臺國)은, 요동(遼東)에서 1만2천리를 가야하는데, 백제(百濟)와 신라(新羅) 동남(東南) 대해(大海) 가운데 있다.」
➋ ‘요동(遼東)’【⒜ 오늘날의 요녕성(遼寧省) 심양(瀋陽) 중심(中心)으로 보면】에서 1만 2천리(千里)는, “오늘날의 베트남[Vetnam] 최 남단(南端) 서(西)쪽 해안(海岸)까지에 다다른다.” 이건 장안(長安)에서 7,000 여리(餘里)와 대동소이(大同小異)한 땅을 가리킨다.
➌ ‘요동(遼東)’【⒝ 카자흐스탄의 재상박(宰桑泊)=기태호(基台湖)=자이산호(湖) 동변(東邊)】에서 동남(東南) 1만 2천리는, “오늘날의 베트남[Vetnam] 최 남단(南端) 서(西)쪽 해안(海岸)까지에 다다른다.” 이건 장안(長安)에서 7,000 여리(餘里)와 대동소이(大同小異)한 땅을 가리킨다.
위의 글 “➋+➌”에서, 『요동(遼東)【⒜ 요동(遼東) ⒝ 요동(遼東)】에서 ‘1만 2천리(千里)’가 가리키는 곳은 똑같은 곳을 나타낸다. 또 무릉서(武陵書)에서 말하는 장안(長安)에서 7,314리, 7,368리【茂陵書珠崖郡治瞫都,去長安七千三百一十四里.儋耳去長安七千三百六十八里,領縣五】를 가리는 곳 역시 똑같은 곳이다.【오늘날의 베트남[Vetnam] 최 남단(南端) 서(西)쪽 해안(海岸)까지에 다다른다.】』 이게 정말 우연(偶然)의 일치(一致)일 수 있을까?
➍ 회계(會稽)와 민천(閩川)의 동(東)쪽에 있으며, 주애(朱崖)와 담이(儋耳)와 서로 가깝다」고 하였는데,
오늘날의 지도(地圖)를 보면 : 「‘회계(會稽)와 민천(閩川)’은, ‘주애(朱崖)와 담이(儋耳)’의 동북(東北)쪽 3천리(千里) 이상 떨어진 ‘절강(浙江)과 복건(福建)’쪽에 있기 때문에, “‘주애(朱崖)와 담이(儋耳)’와 서로 가깝다는 말은 성립(成立)될 수 없다.
“회계(會稽)와 민천(閩川)은 서로 가깝다.” 또는 “주애(朱崖)와 담이(儋耳)는 서로 가깝다”고 했다면 이는 이치(理致)에 맞는 말이 된다.
그러나 회계(會稽)·민천(閩川)이 주애(朱崖)와 담이(儋耳)와 함께 인접(隣接)해 있었다면 충분히 가능한 기록(記錄)이다. 그러나 3천리(千里) 이상(以上) 떨어져 있는 지명(地名)들을 “서로 가깝게 있다[相近]”라고 말할 수는 없다.
➎ 오늘날의 일본인(日本人)들의 유전자[遺傳子 : DNA]와 가장 가까운 종족(種族) 또는 민족(民族)은, 바로 “한국인(韓國人)”들이다. 즉(卽) 한국인(韓國人)들의 유전자(遺傳子 : DNA)와 가장 가까운 무리들은 오늘의 “일본인(日本人)”들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 것일까? 『오늘날의 열도(列島)는, 옛 “왜(倭)=왜노국(倭奴國)=일본(日本) 땅이 아니었다.”』 는 뜻이다. 『곧 지배(支配)층들만이 남아세아(南亞世亞)로부터 열도(列島)로 도래(渡來)하여 토착민(土着民)들을 정복(征服), “일본(日本)”이라고 자칭(自稱)했다.』 는 뜻이다.
오늘날의 열도(列島) 국민(國民)들은, 관(官)에서 하는 일에 대해서는 가불가(可不可)를 따지지 않으며 순응(順應)하는 것이 몸에 배여 있고, 관(官)을 지극히 기피(忌避)한다. 우리들로써는 이해불가(理解不可)할 정도다. 이건 19세기(世紀) 열도(列島) 땅에서 벌어졌던 신구세력(新舊勢力)들의 치열(熾㤠)한 암투(暗鬪)와 쟁투(爭鬪)와 밀접(密接)한 관계(關係)가 있다.
이때서야 비로소 ‘열도(列島)’ 땅으로 이주(移住)한 “일본(日本)”이 토착민(土着民)들을 정복(征服)하고, 정착(定着)하여 정치(政治)를 펴게 되는 것이다. [제2편으로 계속(繼續)]
2022년 12월 25일 [글쓴이 :문무(文武)]
첫댓글 1, 2 편 정도로 끝을 내려 하였으나, 지도, 사진등이 겹쳐지는 바람에 4편 정도로 나눠지게 됩니다.
게재물 '한 개'의 용량이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해 조세요.
남북 수천리, 동서 수천리, 동북쪽에 큰 산이 있고, 코뿔소와 물소, 코끼리가 있다는 왜나라의 조건이라면..
현재 '보르네오 섬' 뿐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렇다면 모인국은 보르네오 섬 북부와 인접하는 필리핀의 민다나오 섬이라고 추정한다고 생각합니다.
문무선생님 감사합니다
항상 즐겁고 행복하셔요
"현조"님!
"대진"님! 반갑습니다. 영하 십 몇도를 내려 가던 추위가 조금 누그러졌습니다.
우리 카페에 대한, 조선사에 대한 관심과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사실 "왜"는 옛 "왜노"입니다. 일본(日本)은, 삼한으로부터 삼국등 옛 조선왕조로부터 어떠한 이유등으로 이주, 이동, 도피한 무리들의 집합체이며, 따라서 조그만 나라(小國)로 오늘날의 필리핀과 대만 일대에 존재했다고 보아집니다.
이러한 무리들이 '당의 측천무후' 때 비로서 "왜노"를 병합해 버리고, 국명을 "일본"이라고 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
특히 이들 세력들은 서양세력들이 "천주교"를 앞세워 동진함에 따라 밀리고 밀려 대만을 거쳐 유구를 거쳐 18-19세기경에 오늘날의 열도로 이동을 했는데, 19세기 열도 땅의 수많은 국지전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봅니다.
이는 오늘날 열도 땅에서 발견되는 엣 왜의 존재가 하나도 없다는 것 역시 이를 뒷받침합니다. 발견 된 것들 상당수가 조작한 것들로 믿을 수 없는 유물유적이죠. 여기서 "왜노는 말 그대로 조선의 울타리로 공물을 바치는 노역에 봉사하는 노예였다"는 뜻과 같습니다.
특히 왜노국의 토산물 중에서 물산편을 보면 "이들 왜노국"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알려줍니다.
또 본래의 왜노국 종족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오늘날의 인도로 부터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등의 인종들과 대동소이한 무리들입니다.
특히 해국도지를 살펴보면 : '왜의 이동로'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왜'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다"는 것이 확실합니다. 아니면 숨기고 있거나 말입니다.
열도의 학자들은 아마도(?)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이나, 이를 숨기고 오직 천황기만을 앞세워 국민들을 강제로 세뇌시키며, 일등 국민 즉 '천손 족을 자칭하고 있습니다. 이들에 의하면 조선족은 죽으나 사나 남의 침략을 받아 식민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2등국민'일 뿐입니다. 이건 대한민국 정권이나 학계 스스로 그렇게 만들고 있으며, 뭐 좋은 일이라고 이를 애지증지하며 승계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보면 :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자체가 의심스러울 지경입니다.
즉 대한민국의 1948년 탄생은, "냉전시대의 소산물로, 중국과 미국, 소련과 일본에 의해, 타의에 만들어진 국가일 뿐이다"라는 겁니다.
이는 정치적으로 보면 : 오늘날도 똑 같습니다.
[특히 북한 땅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 : 북한 땅은, "중국과 미국, 소련과 일본"에 의해 분할통치시대가 열릴 수도 있다]는 학자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데, 이건 정치역학의 문제이기 때문에 가능성이 아주 많다는 것이죠. 즉 '미국도, 중국도, 소련도, 일본'도 '한반도 통일'은 결코 바라지 않는다는 메세지입니다.
한국인들이 꿈을 꾸도 있다는 이야깁니다. 현실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일본 자위대의 군화가 또 다시 반도 땅을 짓밟는다? 오늘날의 대한민국 우익과 보수층(특히 윤석열 정권)들의 바램일까요? 이런 짓은 매국노와 무엇이 다를까요? 윤석열 정권의 친일정첵은 알맹이가 없습니다. 무작정, 무대포 '친일'입니다.
"친일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대한민국 방위를 위한 친일?
열도 방위를 위한 친일? 지금도 우린 일제 식민지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하면 과장된 표현일까요?
그러나 실제 오늘의 정권을 보면, 이해불가한 '친일정책'입니다. 목적없는, 무작정, 무대포 '친일'입니다.
누구를 위한 '친일'일까요?
'왜' 또는 '일본'에 대해서 뭐 아는 것이 있을까요? 정말 답답한 정권이며, 대한민국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