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주변에 그 어는 누구도 자전거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내것은 아니지만 신문사에 자전거가 있었습니다.
그 자전거를 형이 먼저 배우고 나는 영초교 운동장에서 형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자전거는 반짐발이, 짐발이 보다는 작고 신사용 보다는 큰 그런
자전거였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신문사에서 기자가 기사를 써서 그 원고를 소화물 취급소에
갖다 주는 일을 할때는 꼭 그 자전거를 타고 갔었지요.
그 당시 자전거만 있으면 인기 짱이였던 시절 입니다.
신문 배달을 시작 한지 3년이 지나 중학교 1학년때 나도 그동안 모은 돈으로
누구나 부러워 하던 신사용 자전거를 살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반 짐발이를 사라고 하셨지만
나는 신사용 자전거가 탐이 났었습니다.
괜히 으시대고 싶기도 하고 신문 배달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
우겨서 신사용으로 샀지요.
삼처리 자전차포에서 자전거를 사던 날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기술 시간에 배운 자전거 분해 조립을 실습 하기 위하여
자전거를 사 온 첫날 자전거 대부분 분해를 하였는데
날이 어두워져 급히 자전거를 조립 하다가 너트가 맞지도 않는데
어거지로 힘껀 조립 하다가 나사가 망가져서
그 다음날 부품을 사다가 바로 교체 한 일이며....
학교에 갈때는 동네 친구들 가방을 운전대 양쪽으로 2개씩 그리고 뒷자리에 2개
모두 6개를 달고는 친구들은 뒤에서 뛰어 오고 나는 신나게 달리던 추억들....
그 당시는 차가 거의 없어서 시내에서 손 놓고 신나게 달리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 합니다.
학교 갔다 오면 자전거 닦아 놓으라는 아버지의 잔소리도 많이 들었고
펑크가 났을때 처음에는 자전거포에 가서 떼웠지만 나중에는
폐타이어를 얻고, 돼지 본드를 사서 직접 때우기도 하였습니다.
고 2때는 홀로 자전거를 끌고는 단양까지 갔다 왔습니다.
혹 중간에 펑크라도 날까봐 펑크 떼우는 장비를 모두 가지고
비포장 도로를 달려서 단양에 도착을 하였는데
엉덩이가 얼마나 아프던지 다음날 자전거 안장에 앉기조차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가지고 간 자전거를 가지고 와야 하길레 어쩔수 없이
그 길을 되 돌아 와야 했지요.
혹시 기억이 날려는지 모르는데 쌍용서 입석을 넘을라면 커다란 느릅재가 있었는데
그곳을 한번도 내리지 않고 오기로 자전거를 타고 넘었습니다.
그때는 무서울게 없는 10대였지요.
언제나 그 자전거는 내 보물 1호였지요
고등학교를 졸업 하고 집을 떠나면서 자전거와 자연스레 멀어지고....
이제는 없어진 그 자전거
언제가는 새로운 자전거로 동해안 해안 도로를 달려 부산까지 가고 싶습니다.
그 날이 오기 전에 체력을 보강 하여야 하는데.....
같이 가고 싶은 친구는 리플 달아 주세요.
첫댓글 와~~~~~감탄이다 나두 낑가 주라 싸이클 아님 잼 없는 사람이니까 자격은 되겠지
정순이 감기에도 불구하고 좋은글에 네가 감탄한다 . 아묻튼 정모때 같이네려 가자....
옛생각 절로 나는 글이다. 자전거 타 본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까마득하다. 처음 자전거를 6학년 영월초교 대운동장에서 친구가 가져온 자전거로 한바퀴 돌아 보고, 바로 종수네 집 앞에 있던 구군청거리까지 냅다 나간 기억이 새롭구나... 한번 배우면 평생 잊어 버리지 않는게 자전거타기 라는데...
그래 나두다 학교운동장에서 친구자전거 얻어타고 배운.... 지금도 가끔 근처 비행장으로 아들과 함께 타러간다...근데 동해안 해안도로로 부산까지는 영 무리지싶은데.....
우리 경식이가 약한 소리를 다하네 그럼 너 빼줄까?
경식아 아들 비행장 근처서 놀게 되면 비행 청소년 된다 조심해..........
경식아 부산은 강원도 보다 한참 아래지방이기 때문에 계속 내리막 길이란다. 돌아올땐 택배로 부치고 버스타고 오면 될꺼구......정만이는 돌아올 때도 자전거 타고 오라그러지 뭐.
이거이 벌써 자전거 번개팅 모이 하는 것 같구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