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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 원문보기 글쓴이: 장상익
지금이 조선시대인가?
광화문 광장에도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만 서 있고 대한민국을 건국한 분들을 위해서는 조형물 하나도 없는데, 이번에도 서울시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과 해방과 근대화의 숨결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126년 된 유서 깊은 동대문교회를 헐어내고 조선시대의 성벽을 더 잘 드러내려고 안달이다.
그 이유는 서울 성곽이 유네스코 문화재로 등재되도록 주변 정리를 한다는 명목이지만, 유네스코 문화재 보존의 정신은 도리어 고대사와 현대사가 공존하는 것을 장려하고 있다. 옛 유적을 복원해 살리려고 뜻 깊은 근대사의 유적을 허무는 일은 유네스코 자체가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 성곽 돌 성벽들은 목숨을 걸고 왜적을 퇴치한 진주성처럼 승리의 역사가 서려 있는 곳도 아니고, 삼전도의 치욕으로 끝난 남한산성 같이 민족사의 애환이 깃든 곳도 아니다. 거기에 반해 동대문교회는 성곽을 쌓은 시대보다는 나중에 건축되었지만, 그 교회 터에 아펜젤러 언더우드와 함께 들어 온 첫 선교사 스크랜턴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가난한 여성들을 위해 병원을 세워서 각종 질병으로 고통 받던 많은 서민들을 치료 했다.
또한 일제의 억압과 강탈에 맞서서 3.1 독립만세 운동을 주도 했고, 그것을 세계에 알린 헐버트 선교사의 활동 무대였으며, 항일 운동가 김상옥 의사와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 원장을 지낸 손정도 목사 같은 애국지사들이 거쳐 갔거나 활동하던 교회이다. 이 교회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셔우드 홀 선교사는 한국 땅에 만연했던 결핵 퇴치를 위해 최초로 크리스마스 실을 만들어 보급했으며, 근래에는 이 교회의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의 정신대로 끌려가서 성노예가 되었던 자신의 아픔을 고백하여 사회문제로 터뜨린 교회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서울시가 성곽 공원 조성을 위해 이처럼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의 얼이 깃든 기념비적 예배당의 가치를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얼마간의 돈을 쥐여주고 헐어버리려 한다는 것은 참으로 짧고 어리석은 생각이라 생각된다.
대안을 제시한다면 우리의 옛 문화재와 동대문교회를 독립과 항일,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웃사랑이 실천되었던 의미 있는 테마공원으로 연계해서 개발하는 방법이다. 서울시 관계자들의 지혜로운 결단을 기대해 본다.
원성웅 목사(옥토교회 담임, 서울연회 전 감리사)
볼드윈 채플에 대해서.
여러분께서는 그간 동대문교회 문제에 대하여 많이 들어오셨고 그에 따른 염려도 크셨으리라 생각합니다만 동대문교회에 있는 우리 감리교회의 또 하나 소중한 보물이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어 호소합니다.
현재 동대문교회 입구 오른쪽에는 한옥 건물이 한채 서 있습니다. 1938년 기록에 의하면 한옥건물 17평으로 목사 주택으로 사용되었고, 1966년 서울시가 한양성곽을 교회 안쪽으로 밀어넣어 쌓을 때 약 7평이 줄어들어 지금은 가옥대장에 9.97평. 예배당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서기종 목사님이 오신 후 벙커홀이라 불리우며 주일에는 유아반 주일학교 교실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동대문교회 교인들은 이 한옥건물이 아주 오랫동안 목사 사택으로 사용되어져 왔으므로 그저 오래된 주택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 동대문교회의초기모습(1900년대초-흑백) Easter Gate Church Seoul과 주변 모습이 분명하게 보인다. 사진상 오른쪽 끝에 잘려서 보이는 건물이 스크랜튼의 시약소이자 예배당으로 사용하던 건물로 추측되고 있다. 이 사진은 카나다의 박준하로 부터 입수했다고 한다. ⓒ 당당뉴스DB
1990년 발간된 동대문교회 100년사' 에도 이 한옥건물 사진이 '문화재 주택' 이라는 제목으로 나와있습니다. 미감리회 해외선교부( 남선교부)의 스크랜튼 선교사는 1889년 동대문에 선교부지 (지금의 동대문교회 부지) 를 마련하고 1892년 9월 그 부지 안에 있던 한옥에서 시약소를 개설하였읍니다. 주일에는 이곳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한편 미감리회 해외여선교회의 스크랜튼 대부인도 볼드윈 기부금으로 동대문교회 부지 옆에 선교 부지(예전의 이대병원 부지)를 마련하여 그곳에 볼드윈 시약소 볼드윈 예배당 볼드윈 여학교를 건축하였습니다. 1892년12월25일 동대문교회는 스크랜튼 예배당에서 볼드윈 예배당으로 이전하여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약 2년전 ,서울시와 담임목사에 의하여 교회 부지가 공원으로 묶여 버리고 서울시에 강제수용될 상황에서, 유지재단과 동사모는 이 한옥 건물이 1892년 볼드윈 자금으로 건립된 볼드윈 예배당으로 생각되어 종로구청에 문화재 신청을 했었습니다. 감신대 이덕주 교수님께서 추천서도 써 주셨습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볼드윈 예배당으로 볼만한 증거가 없다며 기각하였습니다.
참관인 중에는 한옥의 경우 건물을 지으면서 전통적으로 상량식때 건축에 관한 기록을 대들보 부위에 남기므로 천정을 일부 뜯어 건축 연도를 확인해 보자는 제안도 했었지만 동대문교회 측은 이 한옥 건물이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전혀 없는 낡은 주택에 불과하다며 협조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런데, 동대문교회와 유지재단 간의 소유권소송 중 재판부에 제출된 이덕주교수님이 작성하신 '동대문 교회에 관한 역사자료 검증'에서 이 한옥 건물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교수님은 이 역사자료 검증을 위해 많은 연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난번 추천서는 잘못 알고 써 주었다고 하셨습니다.
즉
" 스크랜튼은 1892년 9월부터 전에 확보해 두었던 동대문 선교 부지 안에 있는 한옥 집에서 주일 집회를 시작하였다."
"1892년 9월부터 동대문교회 최초 집회 장소로 사용되었던 남성선교부 안의 한옥 건물은 12월 여성선교부 안에 볼드윈 예배당이 마련된 후에는 공적인 집회 장소로 사용되지 않고 동대문에 파송된 토착인 남성사역자 가족들의 생활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
"1901년 동대문교회의 토착인 남성 전도사 고시형을 이 한옥 목사 사택에서 거주하게 하였고 생활비는 미감리교회에서 보내주었다"라고 쓰여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1910년대 코윈 테일러 선교사가 찍은 동대문교회 전경이 들어있는 사진(위)을 갖고 있습니다. 이 사진 속에는 지금의 위치 바로 그곳에 한옥 건물이 예전 동대문교회 건물(1910년에 건축됨) 과 함께 서 있습니다.
동대문교회 담임목사는 유지재단과의 소유권 소송에서 현 동대문교회 부지는 스크랜튼 선교사가 구입한 것이 아니고 1910년경 교인들의 헌금으로 구입하였으며, 부지 구입 후 예전 교회건물이 지어질 때 이 한옥 건물이 목사사택 용도로 함께 지어졌다고 주장 했습니다. 그리고 스크랜튼이 구입한 부지는 예전 이대병원이 있던 땅 맨 꼭대기의 일부였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서기종목사는 위 주장에 대한 어떠한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고 , 1심 재판부는 서기종목사의 주장을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스크랜튼 예배당은 살아 있습니다. 스크랜튼 시약소는 존재하고 있습니다.
교인들에게는 숨긴채 서울시에 동대문교회를 공원으로 만들어 달라 하고, 구역회에서는 '서울시에 합의수용 할 것인가, 강제수용 당할 것인가'를 선택하게 하고, 본부의 감독님들이 서울시와 존치를 논의 하는 동안 서울시에 "동대문교회를 빨리 강제수용해 달
라" 고 요청한 담임목사에 의해 동대문교회는 125년 역사를 동대문 언덕에 묻고 쫒겨나게 됐습니다.
동대문언덕에서 암울했던 한국 근대화 시기에 선교의빛, 교육의빛, 의료의빛, 독립정신의 빛 항일투쟁의 빛으로 온누리를 밝혔던 동대문교회! 이제 포크레인의 굉음속에 무너져 내리려 하고 있습니다.
감리교인 여러분!
목숨바쳐 이 민족을 구하려했던 스크랜튼 선교사님의 흔적이 남아있는 이 스크랜튼 예배당을 우리가 끝까지 지켜낼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이 한옥건물에 관한 자료가 있으시면 연락 주십시오.
청와대 투고문 1차
안녕하세요.
저는 동사모(동대문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회원 장상익목사입니다.
부탁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동대문감리교회의 철거를 막아주시기 바랍니다. 이 일은 동대문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근대사와 기독교 역사를 뿌리 채 흔드는 심각한 사건입니다.
지금 서울시에서는 126년 전 아펜젤러 선교사와 헐버트선교사 등이 설립 담임 했던 동대문감리교회를 철거하고 녹지 공원을 만들려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나라가 이 만큼 성장하기까지 누구의 도움이 가장 컷겠습니까? 구한 말“외국 선교사님들의 조선 사랑입니다.” 그 분들은 가난하고 무지하고 온갖 질병이 넘쳐나는 조선 땅에 목숨을 걸고 들어와 어둠과 무지를 깨우기 위해 병원과 학교를 세워 오늘날과 같은 세계적인 대한민국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지금도 합정동 양화진에 가면 조선을 위해 기꺼이 생명을 바친 수 많은 선교사님들의 비석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동대문교회 2대 담임목사였던 헐버트 선교사님은 " 나는 저 위대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기보다 조선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는 말을 남기고 양화진에 잠들어 계십니다.
의사였던 스크렌튼 대 부인은 현 이대 부속병원의 모체인 조선 최초의 여성병원을 동대문 교회 내에 설립하여 명성황후께 "보구녀관" 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습니다. 여러 선교사님들이 동대문교회의 역대 담임목사로 섬기면서 의료와 교육을 통해 조선의 고통과 무지를 깨웠고 그 결과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나라가 되었습니다.
또한 동대문교회는 일제 강점기 때 독립 투사들을 도와 항일 운동을 했고 이승만, 이상재, 서재필, 주시경, 윤치호, 이준, 손정도, 김상옥 열사같은 독립 투사들을 배출했습니다. 13대 담임목사였던 손정도목사는 김상옥의사와 유관순열사 등 수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배출한 독립 유공자로써 3.1운동을 주도한 후 상해 임정에서 의정원의장(현 국회의장)을 역임하고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하였습니다. 또한 김상옥 의사는 동대문교회에서 선교사들과 독립투쟁을 하며 3.1운동을 주도했고 상해로 망명, 귀국 후 종로 경찰서를 폭파하고 단신으로 일경 1천명과 10일간 싸우다가 순국한 항일 독립운동가입니다.
지금도 126년 전 조선 최초로 세워진 ㄱ자형 예배당과 선교사님이 미국에서 직접 제조해 들여 온 여명의 종이 보존 되어 있습니다.(이런 이유로 일제에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그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잔디밭을 만들어야겠다며 강제 철거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민국의 기독교인들은 머지않아 선교사님들의 숭고한 희생 정신과 항일 독립 운동가들의 민족 정신이 허무하게 사장 될지 모른다는 불안과 분노를 떠안고 있습니다. 하여 저희 동대문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루 빨리 서울 시장의 마음과 생각이 바뀌길 바라지만 서울 시장과 관련부서(역사도심관리과) 공무원들은 저희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바라는 것은 그 분들의 숭고한 정신이 사장되지 않도록 공원 안에 역사 기념관을 세워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원을 찾는 사람들이나 학생들에게 역사 교육의 장으로 명물화시켜 외국인들과 내국인들에게 관광및 교육적 효과를 동시에 얻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제안은 서울시와 한국기독교가 동시에 Win-Win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 마져도 수용 하려고 하지않고 있습니다.
2013년 12월 30일 약 100여명 정도의 동사모(동대문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회원들은 박원순시장 면담을 요구하며 시청 입구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우리측 대표자들이 관련 공무원들과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같은 말을 반복하는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 오라 했지만 처음 저희가 제시한 여러 가지 안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대안이 얼마나 실효를 거둘 것인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서울시가 계속해서 동대문교회의 역사적 가치와 순국 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무시한다면 갈수록 더 많은 기독교인들이 시청 앞을 찾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지금 한국교회 안에는 분노한 기독교인들의 서명 운동이 불길 같이 번져가고 있습니다. 이 불길이 더 커지기 전에 박원순 서울 시장과 관련 공무원들은 조속히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끝으로 조선 말기 선교사님들의 숭고한 정신이 사장되지 않기를 다시한번 바라는 마음으로 언더우드 선교사님의 기도문을 올립니다.
-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문 -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이곳 조선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이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심으셨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사실 자체가 기적입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그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들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 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를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질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 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분명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신 이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자녀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이곳 모든 사람들로 부터
경계의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 아멘
이 문제는 한 개교회와 교단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기독교 역사 전체의 문제이며 그 분들이 생명까지 희생하며 물려준 우리들의 믿음의 유산인 것입니다.이제는 우리가 목숨바쳐 지켜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도움 주실분들은 010-9312-3367 이나 eun-glory@hanmail.net 로 연락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