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금)’은 ‘덮개(人)’와 ‘땅(土)’, 그리고 ‘표면 아래의 것(二)’ 등이 합쳐진 글자다. ‘땅 아래에 존재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金’이 반드시 황금(gold)을 지칭한 것은 아니었다. 반고(班古)의 『한서(漢書)』는 “금은 다섯 가지 쇠붙이를 일컫는다. 누런 색은 금(金), 흰색은 은(銀), 적색은 구리(銅), 푸른 것은 아연(鉛), 검은 것은 철(鐵)이라고 한다”고 쓰고 있다.
‘금(황금)’은 중국 고대에도 귀한 물품이었다. 고대 자전인 『설문(說文)』은 금에 대해 ‘노란색 쇠붙이가 으뜸이다. 오래 매장되어 있어도 녹이 슬지 않고, 백 번 단련해도 가벼워지지 않는다(黃爲之長,久埋不生衣,百鍊不輕)’고 했다. 다섯 가지 쇠붙이 중에서도 황금(黃金)을 최고로 쳤다는 얘기가 된다.
금은 희소성과 영구적 속성으로 인해 교환의 매개체로 사용됐고, 춘추전국시대부터 화폐 단위로 쓰였다. 『전국책(戰國策)』에는 ‘진(秦)나라에서는 20냥(兩)을 1금(金)이라고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한(漢)나라 때에는 1근(斤)을 1금으로 정했고, 송(宋)나라 시기는 1전(錢)을 1금으로, 명(明)나라 이후에는 황금 1냥을 1금이라고 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금은 인류 경제역사와 함께 했던 셈이다.
금은 고귀함을 상징했다. 귀한 자손을 금지옥엽(金枝玉葉)이라 했고, 금이나 옥처럼 귀하게 여겨야 할 규칙은 금과옥조(金科玉條)로 표현했다. 평생 새겨들어야 할 말은 ‘금언(金言)’이다. 금은 경계의 대상이기도 하다. 지나치게 좋아하고 쫓게 되면 ‘배금주의(拜金主義)’로 흐른다. 또 돈을 앞세워 권력을 행사하면 금권(金權)정치의 폐해가 드러난다. 최영 장군은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했다지 않는가.
돈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가치가 곧 금리(金利)다. 그러나 정작 중국에서는 금리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들은 금리를 ‘리시(利息)’로, 이자율을 ‘리뤼(利率)’로 각각 표현한다. 중국이 19일 밤 전격적으로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인플레를 잡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 하면 한국은행은 금리인상 시기를 놓쳤다고 국회 국감에서 질타를 받고 있다. 금(金) 관리에 한 나라 경제의 성패가 달려있기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