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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동역자:누가와 루디아
사도행전 16:10~15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사도 바울의 2차 이방 전도 여행 때에 사도 바울을 돕는 두 명의 협력자가 등장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 분은 누가이고 한 분은 루디아라는 여성도입니다. 이 두 사람의 협력자이 후일에 사도 바울의 복음 전도 사역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사도 바울의 동역자로서 큰 힘이 되어준 두 사람의 삶의 모습을 살펴보고 우리도 역시 오늘날 주님의 복음 사역의 동역자 신분인 것을 상기하면서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사도 바울의 동역자 누가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10절에 보면 사도행전의 기록 중에 처음으로 ‘우리’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사도행전 16장 10절에 처음으로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라고 한 말씀은 사도 바울의 선교단에 사도행전의 기록자 누가가 처음으로 동행한 것을 명백히 드러낸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는 어떤 사람입니까? 누가는 이방 사람인데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누가의 고향이 시리아 안디옥이라는 말도 있고 마게도냐 빌립보 사람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는 직업이 의사입니다. 골로새서 4:14 말씀에 보면,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에 쓴 편지에서 안부를 전할 때에 “사랑을 받는 의사와 또 데마도 너희에게 문안하노라”고 쓰고 있습니다. 그의 기록인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쓴 헬라어 단어들이 의학용어들이 종종 나오기 때문에 특별히 누가는 외과의사 즉 몸의 수술을 하는 의사라고 평가합니다. 이처럼 이방인 출신 의사 누가는 이차선교여행 도중에 드로아에 합류하여 사도 바울이 순교하는 주후 65년경까지 약 15년간을 함께 동행합니다. 사도 바울의 사역이 그처럼 많은 열매를 맺고 큰 성과를 거둔 이면에는 의사 누가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처럼 오랫동안 사도 바울 곁에서 그를 도우면서 주님의 일을 함께하면서 사도의 신뢰와 사랑을 받았던 누가의 신앙과 인격과 삶은 어떠하였을까요? 누가의 신앙과 인격과 삶을 보면 다음 네 가지 특별한 점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먼저, 누가는 복음 진리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누가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복음을 처음 접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학설대로 그가 시리아 안디옥이 고향이라면 그곳에서 처음으로 복음을 접했을 것이고 시리아 안디옥 교회에서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접하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에 깊이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그는 직업이 의사여서 그런지 학구열이 대단하였습니다. 그는 정확히 진실을 알기를 추구했습니다. 누군가가 얘기하기를 판사와 검사는 사람이나 사물의 어둡고 나쁜 점을 주목한다면, 성직자는 사람이나 사물의 좋은 점에 주목하고, 의사는 있는 모습 그대로의 사람과 사물과 사건을 바라본다고 말하였습니다. 만약 의사가 환자를 보고 그 환자의 정확한 상태를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면 좋은 점만 보고 나을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보고 처방한다면 보기보다 훨씬 중한 병자는 의사의 오진 때문에 치료받다가 악화되고 죽고 말 것입니다. 나쁜 점만 보고 과도하게 처방하고 수술해버리면 암도 아닌데 암이라고 판단하여 수술하여 절개하고 보니 별 것 아니어서 환자를 더 괴롭게 하고 이전보다 더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의사는 환자의 정확한 상태를 파악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그 환자에 꼭 맞는 처방과 수술을 하여 그 환자를 고쳐야 하기에, 언제나 의사는 정확한 진단을 하려고 엄격한 훈련을 받습니다. 그래서 의사 출신인 누가 역시 복음의 진리가 과연 진실한가, 과연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이 역사적 사실인가 여부를 직접 증인들을 찾아서 알아보고 확정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복음 진리를 더 깊이 알고자 만사 제쳐놓고 사도 바울 가까이 있고자 그의 전도여행에까지 함께 참여하기로 결단하였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의 진리를 정확히 확인하고 이를 교회와 성도들에게 남겨둘 필요성을 느끼고 사도 바울이 가이사랴 감옥에 갇혀 있는 이년 동안을 할애하여 예루살렘과 유다 지역의 증인들을 일일이 만나서 있었던 일들을 확인하고 그것을 기록한 것이 누가복음인 것입니다. 누가복음만이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한 후에 세례 요한의 모친 엘리사벳에게 가서 교제를 나눈 사실들과 그들의 성령으로 부른 찬가들과 성전의 시므온과 안나의 찬가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누가복음은 누가가 직접 발로 뛰어서 고증하여 얻은 분명한 자료들을 통하여 예수님의 일생을 기록한 것입니다. 또한 사도행전 역시 그가 베드로의 모든 행적과 사도 바울의 일정들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으니, 아마도 누가는 틈틈이 여행 중에도 일기를 썼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한 일기들을 확인하면서 중요한 것만 추려서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일차로 갇혔을 때까지의 일정을 기록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누가가 학자적인 역사적 안목을 가졌기에 초대 교회 시대의 모습들을 엄선하여 기록함으로써 후대 이천년이 지난 우리에게까지도 초대 교회 시대의 신앙의 모습들을 알 수 있어서 후대의 교회들의 기준점을 삼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누가는 의사로서의 치밀한 사실성을 추구하는 자세와 검증을 통하여 복음 진리를 잘 보존해줌으로써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큰 유익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누가처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를 열렬히 사랑하고 복음을 더 알아가기를 힘쓰고 이 복음을 전하려고 힘쓰는 사람들이 됩시다.
또한 누가는 겸손한 사람이요 봉사의 사람이었습니다.
누가는 교회 역사에 참으로 긴요한 책인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하였지만 그 책들을 기록하면서 자기가 기록했다는 말을 일체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그 책들을 기록하기 위하여 참으로 많은 노력과 기도를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 책들이 진실하고 간결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아서, 그 책을 읽는 성도와 교회들이 영적 유익을 얻고 진리를 알고 신앙의 덕을 세울 수 있도록 성령께 기도하며 썼을 것입니다.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기록하였으나 그는 그 두 책에 자기 이름을 남기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지극히 겸손한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또 한 가지 그가 지극히 겸손한 사람으로서 낮은 자세로 섬기는 자임을 보여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삼차 전도 여행을 다 마친 후에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가이라샤 감옥에 끌려가서 이년 동안 있다가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상소함으로 로마로 재판받으려고 배를 타고 가게 되었을 때입니다. 그 때 사도 바울이 죄수가 되어 호송하는 로마 군인들에게 에워싸여 배를 타고 갈 때에 누가도 바울 곁에 동행하여 그 배에 올라탑니다. 사도행전 27장 1~2 말씀에 보면,
“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로 가기로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스도 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항해할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 죄수와 동행하여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조건은 그 죄수의 노예로 등록된 사람 두 사람이 가능하다고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로마가 압송되어 결박되어 배를 타고 갈 때에 의사 누가는 바울의 노예 신분으로 등록하고 그 배에 함께 타고 로마까지 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노예의 자기를 등록할 정도로 누가는 자기를 낮추기를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누가는 겸손한 사람이었으니, 노예의 신분이 되어서라도 죄수가 된 사도 바울의 곁에서 그를 섬기고자 한 섬김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바울의 노예가 되면서까지도 그를 수종들려고 한 누가는 참으로 겸손한 사람, 섬김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겸손한 사람, 섬김의 사람으로 살아갑시다.
그리고 누가는 바울과 끝까지 함께한 동반자였습니다.
누가가 이차 선교 여행 도중에 드로아로부터 시작하여 사도 바울과의 동행은 그 이후에 사도 바울이 순교할 때까지 한결같았습니다. 바늘이 가는 곳에 실이 가듯이 늘 바울 곁에는 누가가 곁에 있었던 것입니다. 로마의 일차 감옥에 있을 때에도 누가는 그의 곁에 있었으며, 이차로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사도 바울이 그의 마지막 편지 디모데후서를 쓸 때에도 바울 곁에 있었습니다. 디모데후서 4:9 이하를 보면 사도 바울이 보고 싶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이렇게 써보냅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어떤 동역자는 이제 사역이 너무 버겁고 힘들어서 그냥 세상으로 돌아가버렸는가 하면 어떤 동역자들은 사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떠나가야 했으나 누가는 변함없이 곧 순교를 앞둔 사도 바울 곁에 머물러 주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대단한 영적인 사람이지만 동시에 인간적인 감수성이 매우 예민한 분이기 때문에 속으로 외로움도 많이 타고 보고싶은 간절함 때문에 애가 타는 분이었습니다. 그는 성령에 사로잡혀 불같이 설교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많은 병도 고치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 없이는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고 한 말도 못할 만큼 떠는 분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에게도 낙심과 두려움과 슬픔과 외로움이 찾아올 때에 힘들어 하곤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더군다나 사도 바울은 많은 여행과 감옥 생활과 핍박을 당할 때 맞고 찢긴 상처들 때문에 몸이 여러 군데가 아팠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누군가가 곁에서 돌보아주어야 할 필요가 많은 분이었습니다. 이렇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약한 사도 바울 곁에서 그를 돌보아주고 위로해주고 격려해주고 말을 들어주고 생각을 나눌 참된 친구가 필요했습니다. 바로 그러한 일에 딱 맞는 분이 바로 누가였던 것입니다.
누가는 항상 바울의 필요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거의 모든 에너지를 영혼 구원의 일에 몰두하는 분이기에 누가는 바울의 곁을 늘 지키면서 바울이 겪을 수 있는 정신적, 육체적 탈진을 막도록 그의 말 상대가 되어주고 충고해주고 강권해서 쉬게 하는 일을 끝까지 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순교를 직감한 사도가 남겨둔 교회들에 대한 근심과 동역자들이 감당하는 여러 사역들을 두고서 근심이 많이 있었을 터인데, 그 곁에서 끝까지 사도의 친구로서 바울을 위로하고 힘을 주었던 분도 누가였던 것입니다. 사역의 동반자, 변함없는 친구, 정말 완벽한 사도의 친구가 누가였던 것입니다. 사도가 그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러한 귀한 친구를 만난 것은 하나님의 예비하신 축복임이 분명합니다. 사도가 그의 사역을 잘 마치고 주님 앞에 갈 수 있었던 것은 누가라는 보배로운 친구가 그 곁에 한결같이 있어 주었기 때문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훗날 사도 바울이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지극히 큰 영광의 상을 받을 때에 누가는 사도 바울이 받는 상과 같은 사도의 상을 받을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이르시기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한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한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에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논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태복음 10:41,42)
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누가처럼 한결같은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여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수고합시다. 장차 그 상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또 한 사람의 사도 바울의 동역자로 헌신한 분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빌립보 성의 루디아라는 성도입니다. 그는 본래 소아시아의 두아디라 태생인데 이곳 빌립보에 정착하여 자색 옷감을 파는 큰 옷감 장사였습니다. 자색 옷감은 당시 최고급 옷감으로서 값이 매우 비쌌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큰 비단 옷감 장사꾼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에게해를 건너 빌립보 성에 들어가서 전도하려고 유대인 기도처에 갔다가 전도했을 때에 주님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서 사도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의 전도 설교를 들을 때에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온전히 믿게 되는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즉 루디아는 만세 전부터 하나님께서 미리 택정하신 하나님 백성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성령께서 순종해서 바다 건너 마게도냐인의 손짓을 보고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이 작정된 영혼인 루디아를 만나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부르시지만 그 일은 반드시 땅에서 순종하여 일하는 손과 발과 입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지상에서 자기의 뜻대로 순종하여 일하는 사람 일꾼이 필요합니다. 자기의 동역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와 누가가 바로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순종함으로 바다 건너까지 와서 복음을 전함으로써 절대로 복음을 들을 수 없었던 빌립보 성의 루디아가 예수님을 전해 듣고 믿고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도 하나님께서 절대적으로 자기에게 필요한 동역자로 여기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싶지만 그의 뜻에 맞게 순종하는 자가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자기를 드리는 자는 하나님께 지극히 소중히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늘 깨어 기도하고 성령님께 우리 자신을 내어드리십시오. 그리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일하실 것입니다. 늘 깨어 기도하며 그의 뜻을 깨닫고 기꺼이 순종함으로써 영광의 주님의 존귀한 동역자로 계속하여 쓰임받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하기는 루디아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셔들이자마자 자기 온 식구를 바울에게 데리와 와서 전부 세례를 받았습니다. 아마 그 기도처가 있었던 자리 옆에 흐르는 강에서 세례를 받았을 것입니다. 온 식구가 세례를 받았을 때에 루디아는 너무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의 전도대 일행을 자기 집으로 청하였습니다. 식사 대접을 해드렸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강청했습니다.
15절 후반절에 그 강청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루디아는 예수님을 믿고 자기의 구원을 받은 기쁨이 충만하자 온 가족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하고서, 자기의 넓은 집을 바울 및 일행 선교사님들의 빌립보 지역 체류 기간 동안 마음껏 쉬면서 일할 수 있는 선교 본부로 내어드린 것입니다. 사도 바울과 동료들은 갑작스러운 이러한 루디아의 제안을 받고 놀라서 거절했겠지만 루디아의 의지는 확고하여 강권하여 자기 집에 한사코 머물게 함으로 사도 바울 일행은 결국 루디아의 말을 수락할 수밖에 없게 했습니다.
참으로 루디아는 예수님을 진실하게 믿자마자 구원의 큰 기쁨을 인하여 주님과 주의 종들과 복음 사역을 위하여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곧장 찾아서 헌신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루디아의 집이 곧 유럽 최초의 교회당이 되는 영광이 주어졌다 할 것입니다.
이러한 적극적인 봉사와 헌신의 영적 유전인자는 이후의 빌립보 교회 성도들 전체의 특징이 되었던 것을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써 보낸 빌립보서를 알 수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빌립보를 떠나 데살로니가 성에 가서 전도할 때에도 선교 헌금을 보내 돕는 최초의 선교 후원 교회가 되었습니다. 한번만 아니라 두 번이나 사도 바울과 그 일행의 필요 경비를 위하여 재물을 보냈으며, 나중에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많은 선물들을 에바브로디도라는 성도의 손에 들려서 보냈으며, 에바브로디도는 선물만 드리고 돌아가지 않고 성도들의 부탁대로 로마에 남아서 주야로 사도 바울의 옥바라지를 해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에바브로디도는 너무나 심혈을 기울여서 사도 바울을 돌보다가 몸에 병이 나서 거의 죽을 뻔 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헌신을 기억하면서 축복하기를, 그들이 드린 것들을 하나님이 향기로운 제물로 받으셨다면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그들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실 것이라고 축복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빌립보 성의 첫 신자였던 루디아의 영적 유전인자를 본받은 것이라고 말하여도 과장이 아닐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이 그 이후 이차 삼차 로마 투옥 후에 사역하는 모든 과정에서 빌립보 교회가 사도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초대 교회 시대에 크나큰 영적 업적을 이루었는데, 그 일은 혼자만의 수고와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 곁에서 그를 돕는 아름다운 동역자들이 함께 수고함으로 협력하여 그 크고 놀라운 영적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일생을 살펴보면 그를 돕는 다양한 협력자들이 있었습니다. 선지자 실라는 사도의 영적 조언자 역할을 해주었을 것입니다. 누가는 사도 바울의 건강을 책임지는 개인 주치의 역할을 하였으며 특별히 사도 바울 곁을 지키는 한결같은 친구로서 사도 바울의 정서적 위로자의 역할을 늘 해주었습니다. 또 사도가 가는 곳마다 루디아처럼 사도 일행을 위하여 숙소와 먹을 것을 제공하는 헌신자들도 있었습니다. 고린도교회에는 가이오라는 분이 그러한 수고를 아끼지 아니하였습니다(로마서 16:23). 또 사도 바울이 가는 곳마다 마치 우연처럼 그를 미리 맞을 준비를 하며 호위무사처럼 바울을 위하여 목숨까지 바칠 각오로 돕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있었습니다. 또한 시리아 안디옥에서나 로마에는 사도 바울을 지극히 사랑하는 그의 어머니 같은 루포의 모친 성도도 있었습니다. 또 사도 바울에게 아들처럼 늘 사랑하고 따르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분들이 있었기에 사도 바울은 그 힘들고 어려운 고난 속에 그 큰 일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특별히 교회에 보내는 공적 편지마다 늘 자기를 위하여 기도해달라고 그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서 부탁하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 에베소서 6:18,19,20 말씀에 보면 이렇게 써보냈습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도는 늘 복음 전도자로서 각처에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해야 할 책임감이 늘 마음에 컸는데 지금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데도 그 일을 계속하려는 열망이 마음에 가득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위하여 자기 힘으로 안되니, 자기를 위하여 기도해줌으로써 자기가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확신있고 자유롭게 증거할 수 있도록 힘과 지혜를 달라고 편지를 받는 성도들에게 중보 기도를 부탁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토록 엄청난 전도의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그를 위하여 늘 뒤에서 기도로 돕는 기도의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9세기 말에 미국과 유럽에 전도자로서 크게 쓰임받았던 미국의 디엘 무디 선생이 어느날 성령께서 말씀해주시기를, 네 교회 성도 중에 장차 천국에서 큰 상을 받을 자가 지금 교회당에 있다고 하셔서 곧장 자기 교회에 달려가보았답니다. 그랬더니 한분의 할머니가 그 교회당에서 무디 선생을 위하여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계시더랍니다. 무디 선생의 전도의 말씀이 힘있게 역사하도록, 많은 영혼들이 그의 입술의 말을 통하여 구원받게 해달라고 그렇게 열렬히 기도하고 계시더랍니다. 그래서 무디 선생은 자기의 언변이 아니라 뒤에서 그렇게 기도하는 기도의 중보자들 덕분에 자기를 통하여 영혼 구원의 열매가 많이 맺혀진 것을 또 다시 확실하게 깨달았노라고 전한 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주의 종과 교회를 위하여 기도의 후원자가 됩시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혼자의 힘만으로 절대로 맡겨진 사역을 다 이룰 수 없습니다. 수많은 동역자들의 협력과 도우심을 통하여 주님의 일을 감당해가도록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그렇게 누가와 루디아와 같은 귀한 동역자를 붙여 주셔서 그 일을 감당하게 해주신 것입니다. 우리 함께가는교회도 지금 하나님의 동역자, 우리 주님의 동역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영혼들을 믿음으로 잘 세우고자 하시지만, 영이신 하나님께서 직접 일할 수 없기에 주님 안에서 거듭난 인간 협력자들로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 사도 바울의 전도팀과 그를 도왔던 수많은 성도님들의 수고를 통하여 복음 진리가 널리 퍼지고 영혼들이 건져지고 교회들이 든든히 세워지고 이방의 어둠이 빛으로 밝혀진 것처럼, 우리도 이 시대에 힘을 모아 협력한다면 이 시대에 귀하고 복된 열매들을 맺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특별히 오늘 의사 누가와 루디아를 사도의 동역자의 모델로 삼아 살펴보았거니와 우리 각자 받은 달란트대로 부르심받은 자리에서 한 마음 이 되어 함께가는교회에서 주의 종들과 장로님들 및 여러 성도님들이 힘을 합하여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기도와 봉사와 재능과 소유와 사랑과 연약할 때에 곁에 함께 머물러 줌으로써 헌신합시다. 그리할진대 분명히 주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그의 뜻하신 바를 다 이루어가실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주님 앞에 서게 될 때에 사도 바울의 동역자 누가와 루디아와 여러 협력자들처럼 우리도 주님께로부터 고귀한 영광의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