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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온 |
구차제정 |
점차행적멸 |
삼행적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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色 |
초선:有覺有觀 |
언어 적멸 |
구행적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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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무각무관 |
각관 적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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受 |
삼선:離喜捨心 |
喜心 적멸 |
신행적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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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선:淨念一心 |
출입식적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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識 |
공처:度色想 |
색상적멸 |
의행적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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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처:度空處想 |
공처상적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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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 |
무소유처:度識處想 |
식처상적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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想 |
비비상처:度有想無想 |
무소유처상적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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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 |
멸진정:想受滅 |
상수적멸 |
제행적멸 |
그런데 여기에서 왜 구행이 맨 처음 멸하게 되는 것일까? 우리는 모든 사물을 개념화하여 명명하고 이렇게 명명된 개념이 언어이다. 우리는 사물을 보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구행의 뜻: 유각유관이 구행이라 함은 이같이 개념화된 언어로 대상을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상적으로 말하는 행위가 구행이 아니라 언어를 존재의 지시어로 사용하는 태도가 구행인 것이다. 이같이 언어를 존재의 지시어로 사용하게 되는 것은 자신을 존재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행을 통해 먼저 자아를 계탁하고 자아와 대립하고 있는 존재들을 허구적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는 자아의 계탁에서 비롯된 허구적 존재이며, 이 허구적 존재를 실질적인 존재로 착각하고 있는 것을 구행이라고 할 수가 있다.
신행의 뜻:신행이 출입식을 의미한다 함은 자아를 계탁하는 태도를 말한다. 그대 인도인들은 호흡을 자아의 가장 본질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리그베다에서 이미 호흡이 세계의 본질로 이해되고 있음을 우리는 창조송으로 알려진 송가에서 다음과 같이 볼 수가 있다.
그때(태초에)는 非有도 없었고 有도 없었다. 공기도 없었고 그 위에 하늘도 없었다…. 본래의 힘으로 一者만이 바람도 없이 호흡하고 있었다.
아무 것도 없는 태초에 세계의 근원이 되는 일자가 호흡하고 있었다는 것은 호흡이 곧 그 일자의 존재의 징표라는 뜻이다. 호흡은 이같이 근원적 존재의 가장 중요한 특성으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자아를 의미하는 아트만도 ‘호흡하다’ 의 의미를 지닌 동사 ‘an’ 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원래는 호흡을 의미했다. 그것이 브라마나 (Brahmana)기에 자아의 본질을 의미하게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신행이 출입식을 의미한다고 해서 신행을 숨쉬는 행위로 이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자아를 어떤 본질적인 것에 의해 유지되는 것으로 계탁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아를 계탁하는 것은 사유작용의 소산임을 우리는 오온설의 고찰에서 살펴본 바 있다. 자아의 취착은 느끼고 사유하는 의행에 기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구행은 신행에 ㅡ이지하고 신행은 의행에 의지한다고 할 수가 있는데 실제로 앞에 인용한 <잡아함 568경> 에서는 멸하는 순서는 구행, 신행, 의행의 순서이지만, ‘생기는 순서는 의행, 신행, 구행이다’ 라고 하고 있다.
이것은 18계를 연하여 생긴 촉을 통해 새롭게 규정된 육계와 새롭게 연기한 의식(수상사)들에 식이 머물면서 증장할 때 종합적으로 사유하는 의행(想, 무명)이 먼저 일어나고 , 이에 연하여 자아를 계탁하는 신행(行)이 일어난 다음, 계탁된 자아(識)에 의해 모든 법이 식의 대상(명색)으로 존재화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리고 이같은 허구적인 존재의 실상을 깨닫는 과정은 이와 역순인 구행, 신행, 의행의 순서임을 알 수 있다. 대상세계를 보고 그것을 존재로 생각하는 망념을 먼저 없애면, 대상의 허구성이 드러남으로서 대상과 상대적으로 존재하는 자아의 허구성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며, 그 결과 이같은 존재를 허구적으로 조작하는 마음이 무지한 마음(무명)임이 자각되는 것이다. 행멸의 과정에서 구행이 최초로 멸한다고 하는 것은 이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고찰했듯이 이같은 행의 멸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은 세계의 無化가 아니라 세계를 존재로 생각하는 망념의 멸진임과 동시에 법계로서의 세계에 대한 깨달음이며 그와 같은 깨달음에 사응하는 삶의 정립, 즉 여법한 삶(열반)의 성취라고 할 수가 있다. 이와 같이 팔정도는 열반을 성취하는 길인 것이며 그것은 어떤 다른 세계로 초월함으로써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팔정도를 자신의 삶의 방식으로 삼을 때 성취된다고 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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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부처님의 말씀을 시설(施設, 반야)이라 하는 까닭은.. 일반 언어일반 언어와 다름없이 보이나 실은 미묘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 봅니다. 즉 12연기에 나오는 3행과 일반인이 아는 3행은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를 노랑님이 보여주고 있는데..^^ 일반인이 아는 3행은.. 촉연기 이후에 알려지는, 존재화가 이루어진 이후의 행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촉에 의해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12연기법을 공부하는 학인들은 보다 더 깊은 관찰이 요구된다 하겠습니다..^^()..
[ 어떤 것이 몸의 행이고, 어떤 것이 입의 행이며, 어떤 것이 뜻의 행입니까? 장자여, 날숨[出息]?들숨[入息]을 몸의 행이라 하고, 각(覺)과 관(觀)이 있는 것을 입의 행이라 하며, 생각[想]과 의도[思]를 뜻의 행이라 합니다. 어찌하여 날숨?들숨을 몸의 행이라 하고, 각이 있고 관이 있는 것을 입의 행이라 하며, 생각과 의도를 뜻의 행이라 합니까? 장자여, 날숨?들숨은 곧 몸의 법으로서 몸을 의지하고 몸에 속해 있고 몸을 의지해 활동합니다.
--> 가마경에서 설명하는 신행입니다.숨쉬는 것을 身행,몸의 행의 행이라고 하고 있는데 신행을 숨쉬는 것이라고 하면 재미난 현상이 일어납니다.행을 멸하면 무명이 멸하는데 날슴들숨이 멸하면 무명이 멸할까요? 날숨들숨이 멸하면 죽음이겟지요.이렇게 신행을 호흡문제로 생각하면 모순이 됩니다.흔히 알고 있는있는 삼행에 대하여 다시 공부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