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날 이야기
김홍래
오늘은 휴일이어서 시사 주간지를 펴들고 거실에서 여유를 부리고 있다. 아내가 시장엘 간다면서 함께 가자고 하여 실로 오랜만에 전통시장 구경에 나섰다. 시장하면 옛 생각과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 어릴 적에는 마음 설레며 손꼽아 장날을 기다렸다. 내가 어릴 적에는 나들이 한다는 것이 고작 읍내에 있는 시장에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장날 마다 시장에 따라가겠다고 어머니를 조르고 보챘다. 어머니는 농사지으신 콩이며 마늘이며 농산물을 팔아 이것저것 살림에 필요한 것들과 우리들의 옷이나 신발 같은 것을 구입하시기 위한 것이었지만 나는 장 구경도 하고 어머니가 사주시는 점심도 먹고 또 혹시 새 옷이나 신발을 사주실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시골의 내가 살던 곳에서 읍내 장터까지는 시오리쯤 되었으므로 어린 나를 데리고 가시기가 힘드신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는 시장에 내다 팔 농산물들을 보자기에 잔뜩 싸서 이고 양손에도 무겁게 들고 가셨기 때문에 어린 나를 데리고 간다는 것이 부담이 컷을 것이다. 시장에 따라 가면 어머니가 가져가신 농산물을 다 파실 때까지 나는 옆에 쪼그리고 앉아 기다렸다. 시장가서 내가 제일 신나는 것은 점심을 먹는 것인데 어머니는 대개 찐빵집에서 찐빵을 사주셨다. 그 집에서는 찐빵과 김칫국을 함께 주었는데 멸치를 넣고 푹 끓여낸 김칫국 맛이 참으로 일품이었다. 그 집의 찐빵 만드는 법은 좀 독특했다. 빵 반죽을 길에 늘려놓고 앙꼬를 올리고 감싸서 봉한 다음 칼로 잘라서 토막을 내어서 만들었는데, 하나씩 손으로 만든 것 보다 투박하고 볼품은 없어 보였지만 아주 맛있었다. 어른들은 그 빵집을 이북집이라고 불렀는데, 아마 북한에서 살다가 오신 분들이었던 모양이다. 장날이면 그 집은 언제나 요기를 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장날하면 그래도 난전(亂廛)이 많이 들어서서 북적거려야 장날 맛이 난다. 난전은 조선 후기에 와서야 발달하게 되었는데, 조선은 초기부터 국역(國役)을 부담하는 육의전(六矣廛)과 시전상인에게 그 보상으로 상품을 독점 판매할 수 있는 금난전권(禁亂廛權)을 부여하고, 난전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조선 후기가 되면서 도시의 팽창과 인구의 급격한 증가와 더불어 상업이 더욱 발전하고, 시전 외에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었고 거리에는 많은 난전이 생겨나게 되었다. 난전에서는 특히 보부상(褓負商)들의 활약이 컸는데 보부상들은 상품을 머리에 이거나, 등짐으로 저 날라 가며 시장을 옮겨 다니면서 주로 생필품을 판매하였다. 조선 시대 때에도 서민들은 주로 난전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하여 사용하였으므로 오늘날 서민들이 전통시장을 많이 이용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직도 5일장에 가면 장날에는 시장 입구는 물론이고 가게나 상점 앞 출입문만 남겨 놓고 온통 난전을 벌여 놓았다. 지금도 전통시장의 난전에는 전국의 상인들이 모여 든다.
내가 커서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어릴 적에 어머니를 따라 가던 단양 장은 1일과 6일에 장이 섰는데 단양이 경북과 강원도의 경계에 위치하므로 장날이면 인근 소백산 넘어 경북 풍기와 영주, 예천, 그리고 가까운 강원도 원주나 영월, 강릉의 상인들과 산물이 모여들었다. 그래서 장날에는 경상도 특유의 억양 있는 말투나 느리고 말꼬리가 올라가는 강원도 사투리도 쉽사리 들을 수 있었다. 이곳이 주로 산을 끼고 있는 산지(山地)의 시장이다 보니 생선이나 젓갈, 공예품, 고급 의류와 같은 상품 보다는 산나물이나, 과일, 마늘, 잡곡과 같은 상품들이 주류를 이룬다. 특히 봄에는 소백산과 금수산에서 나는 산나물이 풍성하고 가을이면 송이버섯, 싸리버섯, 능이버섯과 같은 각종 버섯과 황기, 당귀, 헛개나무, 오가피 같은 산약초가 주를 이룬다. 아울러 경상도 풍기에서 올라온 인삼과 강원도 동해에서 올라온 어물이 시장의 풍성함을 더해 주었다. 특히, 난전에는 70세도 넘은 할머니가 매 장날마다 떡을 가지고 나오셨는데, 봄, 여름에는 인절미와 쑥절편을, 가을이나 겨울에는 콩송편과 마구설기를 파셨다. 마구설기는 흰 쌀가루에 이 지역에서 나는 호박고지, 대추, 밤, 울콩, 팥 등을 넣고 버무려서 쪄낸 것으로 언제 먹어도 감칠맛이 있고 먹고 나면 속도 든든하고 편안했다.
근래에 와서는 슈퍼니 마트니 하여 생필품과 식품 등을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구입하여 먹고, 쓰고 하지만 전통시장에 비하면 밋밋하고 건조하기 이를 데 없다. 전통시장에 가면 정돈되고 깔끔한 맛이야 덜하지만 왠지 모르게 더 친근하고 푸근한 정서가 있으며 한결 여유롭기도 하고 무엇보다 사람 사는 냄새가 그윽해서 좋다. 요즘 전통시장은 대형 마트에 밀려 손님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편리함도 좋지만 전통시장에서 푸근한 정을 나누며 시장을 보는 것도 괜찮을 성 싶다. 이제 곧 가을이다 어릴 적 설레며 기다렸던 빛 바라지 않은 장날의 추억이 아직도 오롯이 남아 있을 그 장터에 가보아야 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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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댓글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지금도 오일장에 가면 옛날 만큼은 아니라도
사람이 살아가는 생동감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네 지금도 5일장에 가면 볼거리들이 많습니다.
즐거운 휴일 보내시기 바랍니다.
푸근함이 느껴지는 글 잘 읽었어요
전통 시장 오일장에 가 보고 싶어지네요
걸음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나어렸을때 장날에
먹었던 찐빵, 왕만두,
생각이 나네요,,
참 맛있었는데,,,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시장의 분위기가 펼쳐진듯.. 잘 보았습니다.
걸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시절 행복하세요
어릴적 어머니 손잡고 오일장에
자주갔던 생각이 나네요.
고운 댓글 감사합니다. 늘 건안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걸음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늘 건안하시기 바랍니다.
옛날 5일장의 풍경이 눈에 선하네요! 감사합니다.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